대중국 외교에 적신호가 켜졌다. 중국은 천안함 사건에서 중립을 표방하며 우리를 외면하더니, 연평도 포격에 대해서도 ‘교전’ 운운하며 북한을 두둔하는 인상을 준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건에 대해서도 ‘사실 확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소극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큰 기대를 걸었던 다이빙궈 국무위원의 방한도 성과 없이 끝났다. 아니, 그의 방한 이후 한·중 관계는 오히려 더 불편해졌다. 연평도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 없이 남북 양쪽의 자제와 6자회담 재개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2008년 5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전략적 파트너십’ 선언으로 가일층 격상된 한·중 관계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가. 중국의 외교 행태를 탓하기 전에 우리의 대중 외교를 면밀하게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국에 대한 과소평가가 우리 대중 외교의 가장 큰 패착이 아닌가 한다. ‘뜨는 중국’에 대한 냉철한 인식과 분석 없이 다분히 1990년대 한·중 수교 시대의 시각에서 중국에 접근해온 데 문제가 있어 보인다. 6자회담이나 북한 문제 모두 우리가 설득하면 중국이 따라올 것으로 믿은 것이다. 6자회담을 후진타오 주석의 핵심적 외교업적으로 간주하는 중국에 맞서 6자회담 무용론을 은근히 개진하며 ‘비핵·개방 3000’ 과 ‘그랜드 바겐’ 제안을 통해 북핵 문제 주도권을 잡으려는 한국 정부에 대해 중국의 심기가 편할 리 없다. 더욱이 중국과 북한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간과한 채, 북한 급변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한·미·중 3자 전략대화를 제안하는 한국을 중국이 곱게 볼 리 없다.
 

ⓒAP Photo우다웨이 중국 한반도 특별대표가 11월28일 베이징에서 “1월 초에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을 긴급히 갖자”라고 제안했다.

이 같은 배경에는 다분히 미국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과도한 기대가 작용하고 있었다. 중국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국가는 미국이기 때문에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강화하면 중국 문제도 자연히 해결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결국 미국은 한국 외교의 ‘만병통치약’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뿌리 깊은 인식이 대중국 외교를 망치는 요인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국, 6자회담 재개에 적극 나서야

전통적 동맹관계를 감안할 때 미국 편승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나, 그 방식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과의 전략동맹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라는 공동 가치에 방점을 두었다. 우리 시각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중국은 이러한 한국의 움직임을 미국이 구축하고자 하는 대중 견제 세력권에 한국이 적극 동참하는 것이라 파악한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를 무시하고 새로운 가치 동맹의 구축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려는 듯한 행동을 중국은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전인수식 대중국 접근도 문제다. 이제 중국은 대국이 아닌가. 대국에 맞게 역지사지로 중국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을 동맹으로 간주하는 중국으로서는 북한이 강력히 부인하는 천안함 사건에서 한국 편을 들기 어렵다. 미국이 우리 편을 드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중국 역시 북한에 기울게 마련이다. 연평도 사건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 같은 상황에서 남북 쌍방의 자제를 호소하고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을 모색하자는 태도를 보인 중국에 대해 국제 규범을 부정하는 국가로 낙인찍을 수는 없다. 국가 이익이 국제 규범에 앞서는 현실 속에서 중국의 책임·평판·신용 운운하며 도덕적으로 중국에게 한 수 가르치겠다는 식의 자세를 보이는 것은 오히려 한·중 관계에 악재가 될 수 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가? 무엇보다 중국에 대한 전문성 결여에 핵심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을 보자. 주로 미국·일본 전문가들이 외교안보 수석실, 외교부, 국정원 라인을 독점하고 있다. 이들은 중국을 중국의 시각이 아니라 미국·일본의 시각에서 보기 쉽다. 더 심각한 문제는 중국 전문가가 필요 없다는 현 정부 핵심 관계자의 시각이다. 중국 전문가를 써봐야 별로 도움도 안 되고 오히려 중국 편을 들기 때문에 없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청와대사진기자단다이빙궈 중국 국무위원(왼쪽)이 11월28일 청와대를 방문했지만 한·중 관계에 별 성과가 없었다.

이 못지않게 치명적인 것은 인적 연계망 구축상 하자이다. ‘관시(關系)’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서 핵심 자산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중국 측 주요 인사들과 촘촘한 연계망을 구축해놓은 과거 정부 사람들을 완전히 배제하고, 현 정부의 시각을 옹호하는 보수 인사들을 대중 접촉의 선봉에 세우고 있다. 이러다보니 ‘관시’ 구축과 건설적 대화는 고사하고 중국 측 인사들과 설전이나 하는가 하면, 관계 개선보다 서로 견해차만 재확인하는 회동이 되는 것이다.

대통령의 잘못된 현실 인식도 심각하다. 필자가 작년에 6개월 동안 베이징에 체류하면서 목격한 것은 한·중 관계의 급격한 냉각이었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이 터질 때까지만 해도 정부 측 인사 대다수는 한·중 관계에 이상이 없다는 태도를 취해왔다. 이명박 대통령도 ‘민간 부문에는 다소 문제가 있지만 정부 간에는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과연 그럴까. 현재 돌아가는 것을 보면 대통령이 보고를 잘못 받았든지, 아니면 밑에서 정확한 보고를 했는데도 대통령이 이를 왜곡했든지 둘 중 하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제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는 중국에 있다. 중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균형 있는 실용 외교를 전개해야 한다. 한·미·일로 구성된 ‘반(反)중국’ 삼각동맹은 대안이 될 수 없다. 미·중, 중·일 관계가 모두 좋아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번영이 보장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남·북 관계 개선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한·중 관계가 나빠진 가장 큰 원인은 결국 북한 문제 아닌가.

나아가 한국 정부는 6자 회담 재개에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 북한의 농축우라늄 시설 보유는 그간 해온 대북 제재가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군사적 행동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대화를 해야 한다. 양자 대화가 어려우면 6자회담으로 돌아가 현안 타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한·중 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최선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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