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 차림의 ‘넥타이 부대’ 사이로, ‘보스턴 레드삭스’를 연상케 하는 빨간색 야구 점퍼가 유난히 튀었다. 점퍼 차림의 사내가 닿은 곳은 서울 대치동의 한 빌딩 3층. 사무실 입구 책꽂이에는 만화책이 빽빽이 꽂혀 있었다. 간판은 없었다. 대신 ‘위 메이크 프라이스(위메프)’ 로고가 야구 점퍼 등 부위에 새겨져 있었다. 

국내 소셜 커머스(social commerce) 업계에서 매출 2위를 달리고 있는 위메프는 문을 연 지 두 달 만인 10월8일 80여 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소셜 커머스 시장의 급격한 성장세에 힘입은 덕이다. 1위 업체 티켓몬스터는 지난 5월부터 11월까지 130억원 매출을 올렸다.

소셜 커머스란 트위터·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기반으로 하는 전자상거래를 일컫는다. 식당·스파·전시 등 각종 서비스를 하루 한 가지씩 반값 이상 할인하는 대신, 수백명에서 수십만명까지 공동구매를 해야 거래가 성사되는 방식이다. ‘소셜 쇼핑’ 혹은 ‘그룹 바잉’이라고도 한다. 기존 온라인 쇼핑몰에도 ‘하루 파격 세일’ 같은 이벤트가 있지만 집중도가 이만큼 높지 않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안희태소셜 커머스 업계에서 1위를 달리는 티켓몬스터 신현성 대표(가운데)는 겨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가맹 대상 업주들에게 냉대받았다고 말한다.

소셜 커머스는 평소 홍보하기 쉽지 않은 지역 업체와 소비자를 연결한다는 점에서 일단 양쪽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소셜 커머스 업체는 판매 금액의 약 20%를 수익으로 챙긴다. 소비자는 싼 가격으로 원하던 물건이나 서비스를 살 수 있고, 지역 업체는 홍보 효과를 누린다. 올해 3월 ‘위폰’을 시작으로 그간 업체가 100개 이상 새로 생겼다.

올 들어 소셜 커머스 100여 개 생겨

일찌감치 인터넷 상거래의 트렌드를 읽고 소셜 커머스 업계에 뛰어든 매출액 상위 기업들의 설립자 면면이 흥미롭다. 일단 젊다. 소셜 미디어 등 매체 환경의 변화에 예민한 세대다. 티켓몬스터 직원의 평균 나이는 26세. 사무실이라기보다 대학 캠퍼스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신현성 대표(25)는 지난 1월 미국으로 이민 간 지 20여 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대기업에 다니던 그를  가족 모두가 붙들었지만, 잘 닦인 회사 생활에 흥미를 잃은 그는 펜실베이니아 대학 동창 2명과 함께 한국행을 결심했다.

소셜 커머스를 택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이미 미국에서 2008년 만들어진 그룹폰이라는 모델이 큰 호응을 얻고 있었다. 국내 소셜 커머스 업체 모두 그룹폰과 흡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창업주 앤드루 메이슨 씨(29)도 시카고에서 음악을 공부한 평범한 젊은이다. 그룹폰은 SNS에 기반한 역대 상거래 방식 중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둘째, 한국 인터넷 시장의 잠재력을 내다봤다. 마침 트위터·페이스북 등 SNS가 무서운 기세로 확산 중이었다. 공동구매 여건상, 많은 사람이 구입해야 가격 인하가 가능하다. 소비자들은 트위터를 통해 정보를 스스로 나르고 홍보하게 된다. 단지 대접받는 고객이라기보다 행동하는 고객으로 분한다는, 패러다임의 차이가 있다. 신문·방송 등에 집중된 기존 광고 시장의 권위는 SNS에서 통하지 않는다. 소셜 커머스를 이용해본 서울 강남 한 카페 관계자는 “작은 규모라 그간 광고할 만한 데가 마땅치 않았다. 소셜 커머스의 경우 반값 쿠폰 제공에 수수료까지 제하고 나면 적자나 다름없지만, 마케팅 비용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두세 시간 남짓 눈을 붙이고 일에 몰두하는 신현성 대표는 막상 귀국하면 맨 먼저 하고 싶던 서울 구경 한번 제대로 못했다. ‘소셜 커머스’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사업 초창기, 업주들에게 냉대받던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하루에도 수백 건씩 업체의 요청이 쇄도한다.

인터넷 업계에서 ‘홈런’을 친 경험이 있는 설립자에게는 좀 더 무난할까. 위메프의 설립 투자자는 게임 ‘던전앤파이터’를 개발했던 네오플의 전 대표 허민씨(35)다. 그는 2000년 서울대 최초의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으로 주목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학생회 주요 멤버 5명이 시작한 네오플의 성공으로 청년 재벌로 불렸다. 2008년, 네오플을 넥슨에 팔고 미국으로 건너간 허씨는 미국 실리콘밸리를 방문하면서 ‘가장 창의적인 인터넷 기업’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한국과 달리, 그곳에서는 시장 경쟁력이 증명되지 않은 아이디어에도 앞을 다투어 투자가 이루어졌고, 실패한 이에게도 재기의 기회가 있었다. 올해 초 원년 멤버가 의기투합해 ‘나무인터넷’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위메프는 여러 사업 파트 중 하나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안희태‘위메프’의 공동 설립자인 이종한 나무인터넷 대표.

2000년 허민씨와 함께 서울대 총학생회를 이끌었던 이종한 나무인터넷 대표(36)는 위메프의 탄생을 게임에 비유했다. “게임을 할 때 캐릭터를 조금씩 키워가는 재미가 있다. 그러다가 그 캐릭터가 한계치만큼 성장해버리는 때가 온다. 그러면 흥미가 떨어진다.” 개척의 여지가 풍부한 소셜 커머스로 방향을 튼 이유다.

위메프가 지향하는 소셜 커머스 모델은 뚜렷하면서도 모호하다. 김도형 브랜드실장은 “궁극적으로는 상품 하나보다는, 스토리와 아이디어에 담긴 가치를 팔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미국 그룹폰의 전신 ‘더포인트닷컴’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앤드루 메이슨 그룹폰 창업자는 2006년 ‘더포인트닷컴’이라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쉽게 말해 ‘공동 행동’을 위한 사이트다. 환경·예술·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행동 제안이 올라온다. 돈이 부족한 예술가가 콘셉트가 흥미로운 작업 아이템을 제안하면 수백명이 각각 소액을 결제해 그 꿈을 이루게 해준다. 대기업의 동물실험 중단을 요청하는 사람 1000명이 모이면, 실제 업체에 대한 보이콧이 진행된다.

아직은 먼 얘기다. 당장은 에버랜드 입장권 10만 장을 파는 게 더 반응이 좋다. 그래도 상품 자체보다 스토리텔링에 주력하려 한다. 김 실장은 판매 상품 중 산양삼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삼 씨앗을 산에 뿌리고 6년간 자연 그대로 방치해 키웠지만, 판로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 없는 생산자 개인의 사연이 흥미로워 내용 그대로 홍보 게시물을 제작해 올렸다. 579명이 구입하며 성공을 거두었다.

“대기업과의 제휴는 승산 없는 게임”

상품에 가치를 더하는 작업은 일종의 트렌드이기도 하다. 하버드 대학 출신 3인이 뭉쳐 올봄 업계에 도전장을 낸 쿠팡도 얼마 전 ‘내셔널지오그래픽 전시회’ 티켓을 반값에 판매하면서 수익금의 10%를 환경 단체에 기부했다. 김범석 대표(32)는 소셜 커머스를 하나의 미디어로 생각한다. 광고는 물론 상품 정보를 주고받는 일종의 잡지 개념이다. 가능한 한 문화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데 방점을 찍어 전시·콘서트·요가 등 체험 상품이 주를 이룬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안희태김범석 쿠팡 대표는 수익금의 10%를 환경 단체에 기부했다.

김 대표는 미국에 머물 당시 미디어 업체를 운영하며 소셜 커머스의 시장 가능성을 보았다. 지역 광고 시장에 대한 수요는 있으나 공급이 마땅치 않았다. 신문이나 방송은 부담이 되었다. 소셜 커머스가 적합한 사업 모델이었다.

기자가 방문한 소셜 커머스 업체 세 곳은 모두 최근에 확장 이전을 했다. 두 달 만에 직원을 40명에서 100명으로 늘린 업체도 있었다. 거품 가능성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다. 진입 장벽이 낮아 소규모 업체가 난립하는 가운데 최근에는 신세계 등 대기업도 제휴나 자체 브랜드를 앞세워 진출하고 있다.

류한석 IT 칼럼니스트는 소셜 커머스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두 가지 점을 강조했다. 질적 우수함과 지역이라는 기반이다. “대기업과 제휴해 물량 공세를 펼치는 업체도 있는데 매출이야 늘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적자라 승산이 없다. 질을 유지하면서도 지역별로 나눠 종류를 늘려야 성장 가능성이 올라간다.” 그는 또 우리나라의 SNS 활용도가 아직 초기 단계라고 평가했다.

〈소셜 크리에이티브〉의 저자 황성욱씨는 그 점 때문에 오히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집착하지 말라고 말한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활용해 그들과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소셜 마케팅의 핵심이고 본질이다. SNS는 관계를 이어주는 일종의 인터페이스 정도로만 보아야 한다.” 결국 서비스가 오가는 오프라인상의 신뢰가 중요하다는 지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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