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9일 당선자 신분이던 윤석열 대통령이 카이스트 나노종합기술원을 방문해 반도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인수위 사진기자단

국가의 교육 시스템이 오로지 ‘반도체’만 바라보고 있다. 6월7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반도체는 국가안보 자산이자 우리 산업의 핵심이다. 교육부의 첫 번째 의무는 산업 발전에 필요한 인재 공급이다”라고 말했다.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반도체 관련 대학 정원을 늘리는 데 난색을 표한 장상윤 교육부 차관을 강하게 질타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교육부는 부랴부랴 ‘반도체 올인’에 나섰다. 6월15일에는 ‘반도체 산업 생태계와 인재 수요’라는 공개 토론회를 열었다. 주요 실·국·과장급 인사가 참석하고 전체 직원이 온라인으로 청취하도록 했다. 이날 토론회에 대해 교육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부내 전 직원이 함께 고민하여 현장성 높은 반도체 인재 양성 방안을 수립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7월 중 반도체 관련 전공 대학 정원을 늘리는 구체적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 모든 호들갑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서 비롯됐다.

‘반도체 올인’은 그럴듯한 요구처럼 보인다.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핵심 부품이다. 한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2%(2021년 기준)에 이른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겨냥한 ‘산업 부흥’의 방법론이 하필 대학 정원을 향했다는 게 문제다. 반도체 관련 전공 정원을 늘리는 것은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정원 감축 공포에 빠진 비수도권 대학들에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2021년 12월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21년 대학 입학연령 인구(만 18세)는 약 47만6000명, 대학 모집 정원은 약 47만4000명, 대학 입학 인원은 약 43만3000명 수준이다. 한마디로 대학 정원에 비해 대학에 들어가는 학생이 4만여 명 부족하다는 의미다. 2024년에는 더 심각한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2024년 기준 만 18세 인구가 약 43만명, 입학 인원은 약 37만3000명에 불과하리라 전망한다. 대학 정원이 지금처럼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2년 후 전국 대학 충원율은 78% 수준에 그친다. 정원 미달 인원 약 10만1000명은 대부분 비수도권 대학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당장 지방소멸 위기에 신음하는 비수도권 지역에는 ‘예고된 재앙’인 셈이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 정원을 지속적으로 줄여왔다. 전국에서 20년간 17만2000명을 줄였다. 그러나 역대 정부가 추진한 대학 구조조정은 대체로 비수도권 대학에 가혹했다. 입학 정원이 줄어들수록 대학의 재정 상태도 나빠지고, 재정 부실 대학은 구조조정 대상에 오르며 다시 신입생이 줄었다. 악순환이다. 비수도권 대학에 불공평한 처사라는 목소리가 대두되자, ‘지역별 쿼터’가 적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2012~2020년 정원 감축 규모를 보면 서울·인천·경기 지역의 감축 인원은 4449명에 불과하다. 이 기간 전국 감축 총원(2만7725명)의 16%에 그친다. 이마저 서울 지역 대학들은 ‘정원 외 모집’을 늘리는 꼼수를 통해 오히려 입학 인원을 늘리기까지 했다.

문제는 반도체 관련 전공 정원을 얼마나, 어느 지역 대학에서 늘릴 것이냐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반도체 관련 전공 정원을 늘리기 위해 ‘수도권정비계획법’을 건드리는 것이다. 대학은 인구집중 유발시설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수도권정비계획법에 근거해 수도권 대학 전체 정원을 규제하고 있다. 문제는 이 법 규정이 수도권 과밀화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을 갖는다는 점이다.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의 수도권 집중화, 이로 인한 청년인구의 수도권 쏠림은 지방소멸, 부동산 가격 상승, 저출산의 핵심 원인으로 꼽힌다. 비수도권 지역 처지에서 이 법은 일종의 저지선으로 인식되었다. ‘반도체 인력 양성’이라는 명분으로 법 개정이 추진될 경우, 이 법이 담고 있는 다른 수도권 규제(과밀부담금 부과, 공장 총량 규제, 환경 규제 등)까지 개정 요구가 빗발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정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두 반도체 관련 전공 정원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6월9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한덕수 총리는 “수도권과 지방에 거의 비슷한 숫자의 증원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반도체 관련 전공 정원을 늘리더라도, 막상 학생들이 반도체 기업들이 몰려 있는 수도권 대학을 선호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실제로 국립대인 목포대 반도체응용물리학과는 올해 정원 미달이었으며, 전북 익산에 위치한 원광대는 학령인구 감소 여파로 올해 반도체디스플레이학부를 폐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8년 폐교된 강원도 동해시의 한중대학교. 비수도권 대학들은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어왔다.ⓒRFA 자유아시아방송 신선영

‘2021년도 산업기술인력 수급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반도체 분야 부족 인원은 약 1600명 수준이다. 반도체 관련 업계에서는 이보다 많은 수천 명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반도체 업계가 밀집해 있는 수도권에서 당장 특정 학과, 특정 전공 정원을 늘리기는 쉽지 않다. 정원과 무관한 ‘계약학과(기업과 대학이 계약을 체결해 산업체 맞춤 인력을 양성하는 방식. 정원 외 전형으로 선발)’를 늘리자는 주장도 나오지만 반도체 관련 계약학과야말로 더욱더 서울·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다. 2023년까지 반도체 관련 계약학과가 개설되는 학교는 한양대·카이스트·성균관대·연세대·포스텍·고려대·서강대 정도다. 기업이 직접 학교 측과 계약을 맺기 때문에 서울·수도권 대학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들 계약학과가 흡수하는 입학 인원들은 그만큼 비수도권 지역의 입학 인원을 빨아들이는 효과를 갖는다.

“싼값에 고급 노동자 구하고 싶은 기업”

더 본질적인 질문도 남는다. 윤 대통령의 말대로 교육부의 최우선 의무가 ‘산업 발전에 필요한 인재 공급’인지다. 이번 반도체 관련 전공 정원 논란은 윤 대통령과 윤석열 정부 교육정책의 기초 철학을 보여준다. 대학의 핵심 가치가 산업을 뒷받침하는 것이라는 관점은 향후 윤석열 정부의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 강하게 작동할 수 있다. 지난 5월에 마련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 따르면, ‘대학의 자율적 발전을 지원’하며 지방대학에 대해서는 ‘지자체의 자율성 및 책무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기조에서 그동안 교육부가 추진해온 ‘정원 감축 지역별 쿼터제’는 무력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학령인구 감소의 충격은 대체로 비수도권 대학이 감당하게 된다.

반도체 산업을 위한 인력 양성이 윤 대통령의 뜻대로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반도체 대기업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던 한 전문가는 “반도체 업종은 의외로 고강도 노동이 수반된다. 엔지니어가 ‘갈려 나간다’. 물리적 한계(미세 공정의 한계)로 몇 년 후 성장성이 둔화될 수밖에 없다. 입학 정원 확대는 싼값에 고급 노동자를 구하고 싶은 기업과 등록금을 안정적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대학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일이다”라고 평가했다. 정부는 이른바 ‘반도체 학과’ 정원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 산업 현장에서는 화학공학, 신소재공학, 전자공학 등 다양한 전공자들이 필요하다. 결국 정부의 ‘반도체 인력 양성’이라는 목표는 실체가 불분명한 거대한 소동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수도권 대학은 돈을 벌고, 비수도권 대학은 소멸의 공포에 한발 더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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