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가니스탄(아프간)에서 온 아이들의 첫 등굣길. 아침 일찍부터 휴대전화가 바삐 울렸다. 학생들이 일찌감치 가방을 메고 아파트 앞에 모여 있다고 했다. 아이들의 등굣길에 동행하려던 노옥희 울산교육감(64)의 발걸음도 급해졌다. 애초 약속한 등교 시간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서둘러 등교 준비를 마친 아프간 아이들과 함께 9시20분보다 한 시간쯤 빨리 학교로 출발했다. 아이들은 새로 만날 한국인 친구에게 줄 과자 선물이 담긴 종이봉투를 들고 있었다.
지난 3월21일 아프간 특별기여자 자녀 초등학생 28명이 울산 서부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모두가 아이들을 반긴 건 아니었다. 일부 학부모는 멀고 낯선 곳에서 오는 학생들에게 거부감을 드러냈다. 노옥희 교육감은 아이들이 무사히 학교에 들어갈 수 있도록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곁을 지켰다.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다”라던 노옥희 교육감이 아이들 곁을 4년 더 지킬 수 있게 됐다. 노옥희 교육감이 6·1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6월7일 울산교육청에서 노옥희 교육감을 만났다.
처음엔 수학만 잘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했다. 1979년 울산 현대공업고등학교 수학 교사로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학생들은 졸업하고 나면 대부분 공장에 취직했다. 학생들에겐 입시 공부보다 취직을 위해 자격증을 따는 게 중요한 일이었다. 개중 대학에 가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몇몇 있었다. 이 학생들을 아침, 저녁으로 열심히 가르치는 게 교사로서 할 일을 다 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의 생각이 바뀐 건 수학 교사라 계산을 잘할 거라는 이유로 (학교가 맡겼던) 매점 관리 업무를 하면서였다. 거기에서 한 학생을 만났다. 쉬는 시간에 매점에서 물건을 팔고 장학금을 받는 ‘매점 장학생’으로 일하던 아이였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하게 된 일이었다. 매점 장학생이던 학생은 1980년대 초, 졸업 후 부산 사상공단 금형공장에 취직했다. 취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손목이 잘리는 산재사고를 당했다.
마땅히 도움을 청할 곳이 없던 학생은 매점 담당 선생님에게까지 찾아왔다. 놀란 노옥희 교사가 학생을 돕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공장은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았다. 공장 사장 앞으로 되어 있는 재산도 없었다. 결국 학생은 산재 보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절망에 빠진 제자를 보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학생뿐만이 아니었다. 노동 현장에서 다치고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졸업생이 많았다. 노동자로 살아가는 제자들이 늘면서 그의 교사 생활도 이전과 같을 수 없었다. “학생들에게 수학만 열심히 가르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고민했다.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찾다 노동문제에 관심을 두고 교육 운동에도 참여하게 됐다.”
1980년대 중반은 민주화를 바라는 각계각층의 선언이 이어지던 때였다. 1986년 5월10일 교육계에서도 ‘교육민주화 선언’을 발표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교사·학생·학부모의 교육권, 자주적인 교원단체 설립을 보장하고 강제 보충수업·심야 학습을 철폐하라는 요구가 담겼다. 노옥희 교사도 동참했다. “교육민주화 선언에 참여하면 해직될 줄 알았다. 하지만 함께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안 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는 안 되더라.” 그의 예상대로 전국적으로 교육민주화 선언에 참여한 교사에 대한 징계가 내려졌다. 그해 10월 해직됐다.
‘거리의 교사’에서 울산 첫 진보 교육감까지
‘거리의 교사’가 되고 난 후엔 울산사회선교실천협의회 노동문제상담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울산지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등에서 노동·교육 운동을 이어갔다.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던 건 해직당한 지 13년이 지난 후였다. 1999년 울산 명덕여자중학교로 두 번째 ‘첫 출근’을 했을 땐 그간의 해직 생활을 한꺼번에 보상받는다고 느껴질 만큼 감격스러웠다. 그런데 복직하고 3년 뒤 또다시 학교를 떠나야 했다. 이번에는 그가 직접 결정한 일이었다. 2002년 교육위원 선거 출마를 위해서였다. “학교에서 한 사람의 좋은 교사로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육위원에 당선되어 교육정책을 바꿔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2002년 보수 일색이던 울산교육청에 사상 처음으로 진보적인 교육위원이 당선됐다. 그리고 16년 뒤인 2018년에는 울산교육감이 되어 돌아왔다. 울산의 첫 진보 교육감이었다.

노옥희 교육감은 매번 마주하고 설득하며 문제를 돌파했다. 그중 하나가 아프간 학생들의 입학이다. 고국을 탈출해 한국에 온 아프간 특별기여자와 자녀들이 올해 2월 울산에 정착했다. 유치원생은 2개 원, 중·고등학생은 각각 7개교, 17개교에 나눠 배치됐다. 초등학생 28명은 모두 서부초등학교에 배치됐다. 서부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생 과밀과 문화적 차이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나섰다. 노옥희 교육감은 여러 차례 학부모들을 만났다. 첫 설명회에 온 학부모들은 입학 반대 피켓을 들고 있었다. 노 교육감이 말을 꺼낼 때마다 ‘학생들끼리 말도 안 통하는데 충돌이 생길 거다’ ‘이슬람 학교가 되어 학교 이미지가 안 좋아질 거다’ 등의 야유가 쏟아졌다.
노 교육감은 오히려 이슬람 문화권에 대해 배울 좋은 기회라고 설득했다. “늘 같은 사람들끼리 있으면 배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낯선 곳에 가서, 낯선 이들끼리 접촉할 때 배움이 일어난다.” 아프간 학생들의 입학으로 인한 과밀학급 문제는 지원을 확대해 보완하겠다고 약속했다. 두 번째 설명회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학부모들은 준비해온 플래카드를 들지 않았다. 야유 소리도 줄어들었다. 3월21일 등굣길에 반대 시위가 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아이들은 환대 속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중·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한국어를 배울 때를 제외하곤 다른 학생들과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는데, 서부초등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종일 따로 수업을 듣는다. 기존 서부초등학교 학생들과 아프간에서 온 학생들이 섞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노옥희 교육감에게 남은 숙제다.
‘포괄적 성교육’ 도입은 울산 교육계에서 하나의 ‘사건’이었다. 2020년 울산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1학년 학생들에게 속옷 빨래를 과제로 내고, 과제 인증 사진에 성희롱 댓글을 달아 문제가 제기됐다. 가해자는 20여 년 경력의 중견 교사였다. 노옥희 교육감은 해당 교사를 징계하는 것과 별개로 학교 내 성문화를 점검하고 성교육을 재정비했다. 지역 성폭력 상담·교육단체, 여성단체, 학부모단체 등 10여 개 단체와 함께 머리를 맞댔다. 이때 전문가들이 내놓은 대안이 ‘포괄적 성교육’이었다. “포괄적 성교육은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 중심의 성교육이다. N번방 사건에서 보듯 청소년들이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사이버 성폭력 문제가 심각하다. 학생들은 훨씬 앞서가고 있는데 성교육이 따라가지 못한다. 성차별, 성평등, 성적 자기결정권 등을 포괄하는 성교육이 필요하다.”
당장 포괄적 성교육에 대해 반발이 일었다. 울산 지역 일부 기독교단체는 노 교육감을 초대한 예배에서 ‘포괄적 성교육 반대, 동성애 반대’를 주제로 설교했다. 노 교육감이 나오는 길목엔 같은 내용을 담은 유인물을 나눠주고 서명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포괄적 성교육이 다양한 성적 지향을 포괄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주장이 반복됐다. 노 교육감은 반대 단체를 향해 이렇게 답했다. “동성애가 어떻게 조장이 되느냐. 학교엔 다양한 성적 지향을 가진 학생들이 이미 있다. 포괄적 성교육은 그 학생들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재선 도전은 쉽지 않았다. 이번 6·1 지방선거에서 울산교육감 보수 단일 후보로 나온 김주홍 울산대 명예교수(국제관계학)는 적극적으로 네거티브 공세를 펼쳤다. ‘포괄적 성교육·학생 노동인권 교육은 편향된 이념 교육’ ‘전교조 교육감 OUT’이란 식이었다. 김주홍 후보는 선거 기간 국민의힘 정당 색과 유사한 빨간색 점퍼를 입었다. 울산에 ‘보수 바람’이 거세지면서 노옥희 캠프의 우려도 커졌다.
결과는 노 교육감의 10%포인트 차이(득표율 55.03%) 승리. 노 교육감은 재선 요인을 “학부모들이 교육복지에 효능감 느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18년 취임 직후부터 초중고 무상급식·무상교과서, 수학여행비·교복비 지원 등 교육복지 공약을 적극 추진했다. 울산교육청에 따르면, 2017년 110여만 원이던 학생 1인당 연간 부담금은 3년 후인 2020년 16여만 원으로 줄었다.
1기 노옥희 교육감 체제가 마무리되고 2기 노옥희 교육감 체제가 시작된다. 노 교육감은 이전까지 교육복지 기반을 쌓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이 기반 위에 ‘맞춤형 교육복지’와 ‘학교 자치’를 실현하겠다는 계획이다. 울산교육청에서 지원하는 학교 자치의 대표적인 사례가 2019년 도입된 ‘학생참여 예산제’이다. 학생들은 필요한 사업을 직접 기획한 뒤,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한다. 초등학교에선 ‘급식소 앞 미끄럼방지 패드 설치’ ‘가장 많이 투표된 나라 음식을 급식 메뉴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한 행복물병 제작’ 등의 사업이 나왔다. 학생 자치가 왜 필요할까? 노 교육감은 이렇게 답했다. “참여예산제를 시행하니 교직원들이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예산 편성이 나왔다. 학생들이 일방적으로 규칙을 따르는 게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결정에 책임을 지는 교육 속에서 학생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
6·1 지방선거에서 울산시장에 김두겸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었다. 울산시의회 의석수도 더불어민주당 17석·국민의힘 5석에서, 더불어민주당 1석·국민의힘 21석으로 뒤집혔다. 지방정부와 발맞춰 일을 꾸려가야 하는 노 교육감의 과제가 만만치 않다. “사립유치원 무상교육, 마을교육 공동체 사업 등은 지자체의 협조가 없으면 안 된다. 교육청에서 지역 인프라를 적극 활용해서 낮은 출생률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 경기를 살리고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을 지자체에 설득하려 한다.”

전국 교육계의 지형도 바뀌었다. 4년 전 14명(서울·경기·인천·충북·충남·세종·전북·전남·광주·강원·울산·경남·부산·제주)이던 진보 교육감이 9명(서울·인천·충남·세종·전북·전남·광주·울산·경남)으로 줄었다. 노 교육감은 교육 현장에서 크게 ‘자사고-일반고 전환’ ‘학업성취도 전수조사’가 쟁점이 될 거라고 봤다. 문재인 정부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2025년까지 자사고·외고·국제고를 모두 일반고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윤석열 정부는 ‘자사고 등 일반고 전환’을 재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노 교육감은 자사고-일반고 전환이 예정대로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고를 졸업한 학생들이 외국어 관련 학과에 안 간다. 자사고도 과거 ‘일류학교’처럼 우수한 아이들을 받아 가르치는 입시 전문학교로 기능하며 존재할 이유가 없다. 공부 잘하는 애들을 따로 교육하겠다는 논리밖에 남지 않았다.”
전수조사 방식의 진단평가(일제고사)는 박근혜 정부 때부터 점진적으로 폐지됐다. 박근혜 정부가 일제고사에서 초등학생을 제외했다. 문재인 정부는 전수평가를 표집평가로 바꿔 일제고사를 없앴다.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는 지난 2월14일 교육 공약을 발표하면서 “학업성취도와 격차 파악을 위해 주기적으로 전수 학력검증 조사를 하겠다”라고 말했다. 보수 교육감들은 진보 교육감 8년 체제로 학생들의 학력이 저하됐다며 학업성취도 진단평가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 교육감은 “학생들을 성적으로 줄 세우는 건 절대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지향하는,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을 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학생 개개인에 대한 평가가 중간·기말고사 등 이미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일제고사 부활을 위한 명분이 떨어진다고도 지적했다.
노옥희 교육감은 2018년 교육감으로 처음 당선되기 전에도 선출직에 여러 번 도전한 바 있다. 진보정당 소속으로 울산시장 선거에 두 번(2006·2010년), 국회의원 선거(울산 동구)에 한 번(2008년) 출마했다. 2018년과 2022년엔 왜 교육감이었을까. “여전히 당면한 현실이 있고 바꿔야 할 현장이 있고, 돌보아야 할 학생들이 있다. 사회를 늘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때마다 주어진 부름에 응했다. 교육감은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영역이다.” 노옥희 교육감의 또 다른 4년이 그 시작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