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원 그림

1991년 6월9일 고정희 시인이 세상을 떴다. 그 어름 아침 신문을 보다가 고정희 시인이 지리산 뱀사골에서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슴 철렁했던 기억이 있다. 그의 갑작스러운 부고에 울컥했는데, 슬픔보다 배반감 같은 이상한 감정이었던 것도 생생하다. 1년쯤 지나 유고 시집이 나왔고 책이 집에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읽었을 텐데 그에 대해선 딱히 기억이 없다. 부고 기사를 본 그날 아침이 시인에 대한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러고 나는 그를 잊었다.

잊었던 그를 다시 떠올린 것은 국문학자 조연정의 〈여성 시학, 1980~1990〉을 읽고서였다. 요즘은 시집도 잘 안 보고 비평은 더더욱 안 읽는데, 제목도 표지도 심심하기 짝이 없는 이 책엔 자꾸 눈길이 가서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제목의 ‘1980~1990’이 시를 좋아하던 옛 시절을 환기한 모양이다. 아무튼 오랜만에 시에 매료됐던 예전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책에서 다룬 고정희, 김혜순, 최승자, 허수경이 모두 한때 내가 좋아했던 시인인 데다, 담백하면서 명료한 조연정의 글이-쓸데없이 난해해 시를 더 오리무중으로 만드는 평론들과 달리-비평의 재미를 새삼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조연정은 한국문학사를 여성주의 시각에서 다시 읽는 작업의 일환으로, ‘여성’이 하나의 주체로 처음 호명됐던 1980년대 대표적 여성 시인들의 작품을 여성해방문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한다. 그의 작업은 크게 두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김혜순과 최승자의 시에서 여성적 경험과 시각을 삭제했던 남성 비평가들의 독법을 비판하며 두 사람의 시를 ‘저자의 여성적 정체성’에 근거해 다시 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정희와 허수경의 시에서 간과된 여성주의적 성취를 적극 밝혀내는 것이다.

전자의 작업을 보면서 나는 김혜순과 최승자의 시를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을 떠올렸다. 그때 나는 여성이 처한 폭력적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린 시편들에 전율했고, 그런 만큼 시집 말미에 붙은 남성 비평가들의 해설에 당혹감을 느꼈다. 폭력에 대한 모든 진술을 지워버린 채 ‘방법적 드러냄’ ‘언어에 대한 감각의 우위’를 운운한 그들의 언어에 나는 반론을 제기하는 대신 내 독서를 의심했다. 시 한 편 제대로 읽지 못하는 스스로를 한심해하면서. 혹자는 그런 말에 흔들릴 게 뭐냐고 하겠지만, 비평이라는 언어의 그늘에서 자유롭기란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여성주의적 비평이 필요하고 조연정의 작업이 소중한데, 고정희와 허수경에 대한 적극적 독해는 이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허수경의 시집을 즐겨 읽었지만 그의 시에 나오는 아버지의 의미에 대해 딱히 생각한 적이 없던 내게, “‘아버지-남성’은 집안의 존재로, ‘딸-여성’은 집 밖의 공적 존재”로 의미화했다는 저자의 지적은 놀라운 깨달음을 주었다. 덕분에, 허수경의 다른 시들에서 “남성과 여성의 자리바꿈을 통해 ‘모성=여성=자연’이란 모성의 신화를 오히려 해체하는 장면”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확인해야겠다는 즐거운 숙제도 생겼다.

“하늘에 계신 우리 어머니”

그러나 가장 큰 깨달음은 고정희의 발견이었다. 시인의 행보를 따라가며 시를 분석한 저자의 작업을 통해 나는 비로소, “고정희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텍스트가 된 한 생애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고정희만큼 한국문학사에서 스스로의 생애를 텍스트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경우는 없다. 말과 어긋나지 않는 생은 참으로 드물다”라고 했던 김정란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 여성시는 고정희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갈라지는 새로운 경계를 그었다”라는 김승희의 말이 때 이른 죽음에 붙인 단순한 조사가 아니며, 고정희야말로 한국문학사의 문제적 작가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고정희는 1979년 첫 시집부터 1992년 유고 시집까지 11권을 남겼다. 밥벌이의 고단함을 온전히 감당하면서 해마다 한 권씩 시집을 낸 것인데, 이런 경이로운 생산이 가능했던 건 그에게 시는 무엇보다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당대 사회의 모순을 공론화해 해방의 물꼬를 트는 운동, 이것이 고정희가 생각한 시요 문학의 역할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마당굿시’라는 장르를 지속적으로 실험하며 발전시켰고, 흔히들 시 예술의 본령에서 벗어난 것으로 여기는 ‘행사시’ ‘목적시’에도 진심을 다했다.

이런 시에서 시적 완성도를 기대하긴 힘들다고 이제껏 나는 믿어왔다. 하지만 그의 시를 한데 모은 〈고정희 시전집 1, 2〉를 읽으며 나는 이 오랜 믿음을 버렸다. 목적성에 치우쳐 미숙하고 무미건조했던 그의 시가 “성숙한 해방시”로 나아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해방출사표〉(1990)에 실린 ‘이야기 여성사’ 연작, 유고 시집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의 ‘밥과 자본주의’ 연작이 그 증거다. 특히 “사랑하되 머물지 않으며/ 결혼하되 집을 짓지 않는 삶”을 노래하는 것으로 시작해 “하늘에 계신 우리 어머니”를 부르며 끝나는 ‘이야기 여성사’는, 여성해방이라는 ‘목적’을 넉넉히 감당하고도 남는다.

고정희는 “민중해방이 강조되는 곳에 몰여성주의가 잠재”하고 “여성해방이 강조되는 곳에 몰역사, 탈정치성이 은폐”된 현실을 직시했고,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둘로 나뉜 전선을 하나로 아우르는 미션에 도전했고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을 홀로 했다. 그는 여성과 남성, 농촌과 서울, 민중과 지식인으로 나뉜 세상에 있었으나 어느 한 무리에 속하는 대신 이 모든 경계를 살았다. 외로움에 사무치면서도 끝내 칼날 같은 경계를 떠나지 않고 거기서 꽃을 피웠다. 시가 곧 삶이고 삶이 곧 시였던 시인 고정희. 한국문학사, 한국 여성사에는 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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