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자는 버섯처럼 납렵한 만두다. ⓒ최갑수 사진작가

찐쩐룽. 그러니까 김진룡 아저씨를 기억에서 끄집어내게 된 건 등기서류 한 장 때문이었다. 발신인은 강원도의 한 세무서 담당 공무원이었다. 그와 내 이름이 나란히 적힌 서류는 당최 해독이 불가능했다. 공무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죄송합니다만, 서울 사는 아무개입니다. 이런저런 서류를 받았는데 무슨 뜻인지요?”

“아, 기다려봐요. 박찬일씨 맞죠? 서류에 적힌 대로 하시면 됩니다.”

그는 마치 세금을 깎아달라고 하는 민원인을 상대하는 듯한 말투였다.

“저는 세금을 안 낸 적이 없습니다. 더구나 그 지역 세금을 떼어먹은 적은 더더욱 없는 것 같습니다만.”

“박찬일씨가 세금을 안 냈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찐쩐룽씨 체납 건이에요.”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김진룡씨 체납 건인데 왜 제게 독촉 서류를 보내셨는지요?”

그는 답답하다는 투로 말을 이었다.

“박찬일씨가 찐쩐룽씨와 ○○년에 거래한 적이 있죠? 인건비를 지급한 사실이 있네요.”

거래라. 인건비라. 이 세무서 직원은 단지 내가 세금 체납자와 거래 사실이 있다는 이유로 편의적으로 내게 무시무시한 등기서류를 보낸 것이었다. 나는 진땀을 흘리며 오랜 기억을 더듬었다.

○○년 무렵, 한 식당을 열려고 공사를 하고 있었다. 오래된 건물을 개조하는데 보통 골치 아픈 게 아니었다. 무허가 건물 비슷한, 도면도 없는 곳이었다. ‘무허가 건물 비슷하다’는 건 이만저만한 과정을 거쳐 ‘양성화’되긴 했지만 그 건물의 존재가 정확하고 상세하게 입증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뭐 그렇다 치고 넘어가자. 옛날엔 그런 일이 많았다. 무허가 건물이란 주민증 없는 사람 같은 것이다. 주민증이 없으면 무적자다. 사람은 있는데 기록이 없다. 실존하는데 입증이 안 된다는 뜻이다. 건물도 그렇다. 물리적으로 있는 건물인데, 없는 건물이기도 했다. 도면도, 증개축 이력 기록도 없었다. 전기선은 어디로 가는지 배관은 어느 구석에 묻혀 있는지 파보기 전에는 알기 어려웠다. 그때 해결사로 나타난 분이 김진룡 아저씨였다.

“내가 무허가 전문이요. 돈만 맞으면, 사장님 하자는 대로 다 합니다.”

아저씨는 조선족 동포였다. 그는 엄연한 중화인민공화국 인민이었으니 김진룡이 아니라 중국어 발음대로 찐쩐룽이었다. 동포라는 말을 나는 참 좋아한다. 한 배에서 났다는 뜻이다. 포(胞)는 자궁이자 태(胎)다.

동포인 그의 덕에 공사는 무사히 끝났다. 가스와 수도 매설 위치를 찾아냈으며, 심지어 원래 있던 화장실까지 뜯어내고 발주자의 요구대로 옮겼다. 물론 도면도 없이.

“나는 도면이 있으면 더 못해요. 없는 게 편해요. 무허가 전문이니까 말입니다. 내가 원래 무허가 사람이었소, 하하.” 그의 유머는 북방 배갈처럼 셌다. 무허가 인간이란 말은 아마도 조선족을 대하는 한국인의 시선을 비튼 풍자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한국인(또는 한민족)의 혈통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대한민국 국적을 얻을 수 있었다. 언젠가 그가 한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국적을 얻는 게 나 같은 사람은 어렵소. 품행방정해야 한다지 않소.”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이 말은 공식적이다. 국적을 얻자면 누구든지 품행방정(品行方正)을 전제로 한다. 한때 구인 공고에도 빠지지 않던 말. 이제는 민간에서는 사라진 말. 그는 품행이 방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연락이 끊어진 후에 내게 날아든 세금 체납 서류에 여전히 찐쩐룽으로 남았으리라.

포자(바오쯔)는 둥그렇게 오므려 만든다. ⓒ최갑수 사진작가

짜장면에도 무말랭이가 들어가던 시절

그는 술을 좋아했다. 삼겹살에 소주도 잘 마셨다. 중국 독주인 바이주는 한국에서 너무 비싸고, ‘삐주(맥주)’는 싱거워서 안 마신다는 그였다. 대신 빨간 뚜껑을 찾았다. 술을 마시면 자주 만두나 국수를 먹었다. 선주후면, 해장의 전통을 가진 동포였다. 서울 자양동에 있는 그의 집에 가본 적이 있었다. 냉동고에서 만두를 찾아서 내게 쪄주었다. ‘고향’만두였다.

“만두는 둥그런 게 맛있어요. 포자가 만두지 이런 교자는 만두가 아닙니다. 원래는 얍삽해서 안 먹습니다.”

포자, 그러니까 바오쯔(包子)는 둥그렇게 오므려 만든다. 교자는 버선처럼 날렵한 만두다. 그날 그가 꺼내준 만두가 교자였다. 아, 그가 말했지, 만두는 속(소)이 없는 빵이라고. 중국은 그렇게 구별해서 부르고, 우리는 다 만두라 부른다. 그는 한국에 와서 받은 제일 큰 충격이 중국집에서 단무지 주는 것과 만두 속에 당면이 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구두 신은 발에 또 구두 신고 다니는 사람 없잖소?”

당면은 원래 만두와 동격인 국수의 일종으로 하나의 식사다. 그런 뜻이었다. 우리도 만두에 당면 넣은 역사가 길지 않다. 해방 이후에도 없었다. 당면을 넣으면서 한국의 만두는 아시아의 다른 나라 만두와 독자적으로 갈라섰다. 아니 김치를 넣으면서 이미 갈라선 길이었달까. 어릴 때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는 만두와 사먹는 만두의 차이는 소에 있었다. 어머니는 당면을 듬뿍 넣었고, 파는 건 돼지비계와 검은색 무말랭이가 많이 들어 있었다. 다져 넣은 무말랭이는 색깔이 고기 같고 씹으면 쫄깃하고 오도독했다. 만성적인 식량 부족의 나라에서 최선의 재료였다. 모든 것이 모자라도 무는 풍성했다. 그 시절 짜장면에도 무말랭이가 들어갈 정도였다.

만두에 대한 집착과 진심은 저 대륙 사람들의 공통점인 듯하다. 내가 아는 중국 혈통 주방장 두 분이 있다. 그들이 식당을 열면서 제일 신경 쓴 일이 만두를 손으로 직접 빚는 것이었다. 군만두는 빚는 것이지 사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손님이 군만두를 시켜 먹고 청구된 비용을 보고 ‘서비스 군만두에 왜 돈을 받느냐’며 화를 내자 크게 실망해서 만두 만들기를 그만두었던 분이 이연복 주방장이다. 그의 절친이자 화교 선배인 왕육성 주방장도 미쉐린 원 스타를 받은 식당을 열면서 내놓은 메뉴가 바로 부인의 손만두였다.

여전히 김진룡이 아니라 찐쩐룽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세무서 서류로 확인된 아저씨. 품행이 방정하지 못해서 손해를 보는, 만두에 진심이었던, 점심으로 배달시킨 만두국도 중국식으로 꼭 만두만 건져먹고 국물은 남기던 아저씨. 설비공과 타일공은 좁은 공간에서 쭈그리고 일해서 무릎이 일찍 망가진다고 속상해하던 아저씨는 이제 세금을 다 냈는지 모르겠다. 공사판에서 마시는 시멘트 가루를 씻어내는 데는 삼겹살이 제격이라는 말을 듣고 아주 좋아했던.

“박 사장님, 오늘 가루 많이 마셨는데 삼겹살 구우러 안 갑니까.”

그러고는 정작 소주만 잔뜩 마시던 김진룡 아저씨.

덧붙이는 말:김진룡 아저씨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가명을 썼다. 그가 동포 신문도 아닌 〈시사IN〉을 볼 가능성은 아주 낮지만, 그래도 이 글을 읽으면 자기 얘기인 줄 알아챌 것이다. 그가 밀린 세금을 내고 돈이 남아서 내게 만두를 사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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