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30일 빅매치 4연전을 앞두고 파주 NFC에서 훈련 중인 한국 축구대표팀. ⓒ연합뉴스

월드컵 본선행 조기 확정, 손흥민의 막판 스퍼트로 몰입했던 EPL 득점왕 레이스, 레알 마드리드의 극적인 빅이어(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컵) 탈환기…. 릴레이처럼 이어진 축구 열기가 고스란히 6월로 넘어왔다. 6월2일부터 6월14일까지,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연달아 빅매치를 갖는다. 공식 대회가 아닌 A매치 기간에 축구대표팀이 네 경기를 치르는 것은 처음이다. 상대 면면도 화려하다. 브라질(2일), 칠레(6일), 파라과이(10일) 등 남미 전통 강호들과 이집트(14일)를 차례로 만난다. 빅매치 4연전에서 ‘벤투호’는 흥행과 내용을 모두 잡을 수 있을까?

일단 스코어에는 마음을 비우자. 골보다 경기 내용을 챙겨 보는 게 더 의미 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본선까지 남은 기간은 5개월여. 본격적으로 월드컵 모드에 돌입한 벤투호는 6월부터 ‘오답노트’를 만들어야 한다. 아시아 최종 예선 때와는 다른 분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아시아 내에서는 전술이나 전략에서 상대적 우위를 논할 수 있었다. 경기마다 쾌승, 압승, 전승 같은 기대감이 넘실댔다. 6월에 만나는 팀들은 다르다. 본선 H조 싸움을 대비한 상대들이다.

사실 월드컵 시즌마다 거론되는 오답노트의 주제는 비슷하다. 수비 조직력 점검, 공격 마무리에서 정확성 높이기, 특정 선수 활용법으로 정리된다. 그중 수비 조직력을 앞세우는 이유가 있다. 본선 조별리그는 승점 확보를 위한 전략 싸움의 연속이고, 무실점은 최소 승점 1점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월드컵 도전자인 한국의 기조는 안전제일주의다. 한국 대표팀의 카타르행을 이끈 벤투 감독도 본선 조 추첨 직후 “월드컵에서는 운영이 달라질 것”이라며 경기 운영의 변화를 암시했다. 이번 브라질전을 앞두고는 “수비와 미드필드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라면서 “(손흥민 같은) 윙어들도 다른 지역에서 수비에 힘을 보태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과거 본선에서 선보인 한국의 수비 조직을 떠올리면, 높은 위치(높을수록 상대 골문에 가까움)에서는 거의 모든 선수가 적극적인 압박과 활동량을 보였다. 오히려 가장 위험한 지역에서 실수가 잦았다. 즉, 우리 골문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이었다. 수비수들이 마크맨을 자유롭게 놔두거나 패스미스(백패스, 횡패스)로 상대에게 역습이나 슈팅을 허용하는 경우였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보면 6월 A매치 4연전은 수비 조직을 점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세계 최강 브라질은 말할 것도 없고 칠레와 파라과이 모두 개인 기술과 전술을 앞세운 공격 색채가 짙다. 마지막 상대인 이집트에는 모하메드 살라가 있다. 손흥민과 함께 EPL 공동 득점왕에 오른 골잡이다. H조에서 만날 포르투갈, 우루과이, 가나 모두 세계 톱클래스 공격수들을 보유한 팀이라는 점에서 스파링 상대로 더할 나위 없다.

‘손흥민 보유국’이라는 이점

독자들이 이 글을 읽을 때면 브라질전은 이미 지난 경기가 되었을 것이다. 브라질전에서 얼마나 수비적으로 잘 대응했는지, 그렇지 못했다면 이어질 경기들에서 브라질전의 오답노트를 얼마나 활용하는지 확인해보자.

수비 대응을 우선순위에 둔다면 공격적인 재미가 반감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한다. 벤투 감독은 “큰 틀에서 변화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공격 일변도로 나섰던 아시아 예선 때와는 다르다. 볼 소유와 패스를 기반으로 하는 빌드업 축구를 유지하되 신중하게 기회를 노리는 흐름이 될 것이다. 공격 패턴의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디테일과 정확성으로 마무리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월드컵의 역사가 우리에게 준 교훈이기도 하다. 2018년 한국과 평가전을 가진 크로아티아의 이고르 스티마치 감독은 말했다. “현대 축구는 기회를 놓치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지난 5월29일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역시 좋은 예다. 슈팅 횟수에서는 리버풀이 23-3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압도했지만 정작 빅이어를 들어 올린 팀은 레알이었다. 문전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은 디테일에서 승부가 갈렸다(레알 대 리버풀 1-0). 이 시점 ‘손흥민 보유국’이라는 사실은 새삼 힘이 된다. 손흥민은 세계 최고 수준의 프로리그에서 득점왕에 오른 공격 자원이다. 절정에 오른 그의 감각을 활용하게 된 것도 행운이다.

벤투호의 변수 대처 능력 역시 점검 대상이다. 이번에 소집한 대표팀 명단은 우리에게 꽤 익숙하다. 사실상 벤투 감독의 머릿속에서 베스트일레븐에 관한 구상은 선명해진 셈이다. 과제는 ‘플랜 B’ ‘플랜 C’로 이어지는 카드를 마련하는 일이다. 예기치 못한 부상이나 컨디션 난조 등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본선 경쟁력이 달라진다. 6월에는 수비 라인이 시험대에 오른다. 수비의 핵 김민재(페네르바체)가 복사뼈 통증과 뼛조각 제거 수술로 소집 대상에서 제외됐다. 백업 1순위였던 수비수 박지수도 햄스트링 부상으로 빠졌다. 빌드업의 시발점 역할을 하던 김민재 공백은 팀 스타일과 전략의 변화로 이어진다. ‘왼발 수비수-오른발 수비수’로 센터백 조합을 만드는 벤투의 성향상 수비 라인은 새로운 조합으로 실험을 이어갈 전망이다. 주요 자원의 이탈에도 경기력에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긍정적인 답을 얻는다면 본선을 기대할 만하다.

미드필드진 조합도 관찰 대상이다. 부상으로 빠진 이재성의 역할을 권창훈이 대신할지, 혹은 황인범의 위치 이동을 통해 새로운 조합과 전술로 나설지 등을 주목해보자. 최적의 조합을 찾는 과정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마지막으로 노파심에 덧붙이는 이야기. 일각에서는 이집트를 지목해 본선 대비 상대로 적절한지 의심한다. 우리와 본선에서 맞붙을 가나와 스타일이 다른 데다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로 동기가 결여되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아프리카 예선을 돌아볼 때 이집트는 파워나 조직력보다 살라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팀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월드컵을 앞두고 치르는 친선전치고 무용한 경기는 없었다. 상대의 경쟁력이 강하지 않으면 않은 대로, 일종의 ‘정신 승리’를 할 필요도 있다. 모의고사처럼 치르는 경기가 있으면 자신감을 끌어올리기에 좋은 경기도 있어야 한다(통상 월드컵 직전 출정식을 겸해 열리는 평가전이 이런 역할을 한다). 6월의 4연전을 마무리하는 이집트전이 그런 분위기여도 나쁘지 않겠다.

바야흐로 월드컵 모드다. 카타르로 향하는 벤투호의 항해가 본격 닻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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