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가 5월18일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넷플릭스 제공

‘N번방’은 수만 명의 가해자가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청소년에게 성착취를 일삼았던 사건이다. 가해자들은 피해자에게 사진·영상 촬영을 강제하고 이를 온라인 채팅방에 유료로 유통했다. 문형욱, 조주빈 등 N번방을 만들고 운영해온 이들은 현재 수감된 상태다. 2019년에 알려진 N번방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건 얼마 전 넷플릭스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N번방을 무너뜨려라〉 때문이다. 영상에는 N번방 가해자들의 범죄 수법과 더불어 범죄행각을 뒤쫓은 기자와 경찰들의 인터뷰가 빼곡하게 실렸다.

이들이 피해자에게 접근한 주요 루트는 SNS·메신저 앱(오픈채팅 등)이다. 익명으로도 일대일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서비스 특성을 이용해 가해자들은 피해자에게 직접 해킹 링크를 전달하거나 아르바이트를 제안했다. 그리고 접근하자마자 가장 먼저 피해자의 신상을 탈취했다. 고용계약서를 쓰자고 하거나 악성 프로그램을 설치하게 한 것이다. 지역 육아 카페에 공유된 내용에 따르면 어떤 이들은 초등학생에게 가정통신문·알림장을 촬영해 보내라고 요구한다고도 한다. 가정통신문에 기재된 아이의 학교·학급·이름을 알아내기 위해서다.

신상을 손에 쥔 가해자는 사진, 영상 혹은 루머를 피해자 주변인에게 유포하겠다며 협박한다. 여기에는 피해자의 부모도 포함된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때, 부모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겠다고 말하는 건 피해자가 할 말이다. 부모는 가장 가까이에서 도와줄 수 있는 보호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에게 도움을 얻기는커녕 도리어 알려질까 두려워하는 건 왜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오래전의 일을 들춰보려 한다. 열아홉 살에 나는 스토킹 피해를 겪었다. 그는 자신을 만나주지 않으면 내 신변에 위해를 가하겠다고 협박했다. 집 앞에서 기다리는 건 물론이고 피가 낭자한 자해 사진을 보내거나 열 시간이 넘는 전화 통화를 강요했다.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날들이었지만, 부모님에게 도와달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 스토커는 내 전 남자친구였고 나는 그와의 관계를 부모님께 알리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성(性)과 관련된 이야기는 할 수 없다는 불문율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금기를 깨는 순간, 이 불행의 원인이 나일지도 모른다는 자책감과 수치심이 콸콸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왜 우리는 부모에게 성을 이야기할 수 없는가. 기실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의 몸은 지극히 모순적으로 다뤄진다. 10대 아이돌의 몸은 거리낌 없이 소비하면서 정작 일상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의 성은 억누르고 금기시된다. 특히 동성애·트랜스젠더·무성애 등 다양한 성애에 대해 폐쇄적인 문화는 청소년의 섹슈얼리티 탐색 과정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어른들은 청소년이 자기 몸과 성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하도록 도와주기보다 벌써 성을 이야기하냐며 타박하고 사유를 차단하려 한다.

텔레그램에서 성착취물을 공유하는 ‘N번방’을 운영했던 ‘갓갓’ 문형욱. ⓒ연합뉴스

‘일탈계’ 직면해야 하는 이유

이 때문에 성을 탐구하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은 온라인으로 스며든다. 네이버 지식iN을 중심으로 청소년들의 성 관련 질의를 조사한 이다정의 연구(2020)는 이를 뒷받침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 관련 질의 중에서도 청소년기 성정체성 질문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분석 대상이 된 질문 358건 중 약 41%에 달한다. 랜덤채팅· SNS·오픈채팅·인터넷방송 등 익명의 온라인 채널에서 자신의 성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은 수없이 많다. ‘일탈계’도 그중 하나다.

일탈계는 자신의 몸 사진이나 성적인 포스팅을 게시하는 익명 SNS 계정이다. 일탈계 계정주는 주로 청소년으로, N번방 사건에서 가해자들의 주요 표적이 되었다. 익명으로 유지되는 일탈계 특성상 신상이 유출되는 건 피해자들에게 치명적인 위협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큐멘터리에서는 ‘일탈계’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언론에서 N번방 보도를 할 때, 일탈계는 주로 피해자를 폄하하거나 책망하기 위한 수사로서 동원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N번방 너머를 말하기 위해 우리는 ‘일탈계’를 직면해야 한다. 청소년이 성을 말하는 것이 왜 ‘일탈’인지, 청소년들은 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일탈계를 통해 자기 몸을 말하려 했는지 묻기 위해서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의 나영 대표는 〈비마이너〉 칼럼에서 이렇게 쓴 바 있다. “위험한 것은 일탈계 자체가 아니라 일탈계가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표현하고 사회적 관계와 경제적 자원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되는 것이고, 그 자체로 금지되고 말할 수 없는 공간으로 남는 것이다.” 이 문장은 청소년에게 그의 섹슈얼리티를 표현할 자유와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로 바꾸어 쓸 수 있다. 우리는 청소년이 자기 몸을 탐구할 기회를 제공했나? 청소년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성을 사유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들이 위험을 감수하도록 내버려둔 건 누구인가.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N번방을 무너뜨려라〉는 사이버 성착취의 실체를 낱낱이 해체한 수작이지만, 한편으로 사건의 잔혹함 때문에 양육자들에게 막연한 공포감과 두려움을 남기기도 했다. 공포는 사람을 움츠러들게 한다. 실제로 다큐멘터리를 본 몇몇 지인은 내게 자녀의 온라인 활동을 어떻게 차단하고 관리해야 하는지 물었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뒤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겠다거나 SNS 회원가입 자체를 막겠다고 공언한 이들도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청소년도, 온라인도 아니다. 이 사건을 넘어서기 위해 우리는 다른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 N번방에 대한 두려움이 청소년에 대한 통제와 제재로 향한다면, 다시 그들은 ‘금지되고, 다른 이에게 말할 수 없는 공간’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로지 자기 몸을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최소한의 디지털 리터러시는 필요하다. 범죄 사례를 꾸준히 공유하며 경각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N번방 사건 이후 통제되고 변화되어야 하는 건 청소년이 아니라 가해자이며,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할 수 없게 만든 우리 사회다. 그뿐만 아니라 익명의 사용자가 위험한 링크를 보내도 아무런 제재가 없는 SNS 플랫폼도 변화가 필요한 대상이다. 청소년에 대한 감시와 제재는 이미 넘치도록 많다. N번방 사건으로부터 안전하기 위해 청소년을 더 규제할 필요는 없다. 그들에게는 오히려 더 많은 기회와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를 논의하는 것이 N번방 이후 우리 사회의 과제다.

※이번 호로 ‘있습니다 씁니다’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수고해주신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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