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테이블 코인 테라와 담보 토큰 루나의 몰락은 말 그대로 ‘역대급’ 사건이었다. 몰락 이후 일주일간 증발한 ‘테라 USD(UST)’와 루나의 시가총액은 총 450억 달러(약 55조원) 수준이었다. 충격이 컸던 만큼, 테라-루나의 몰락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우선 스테이블 코인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해졌다. 미국 재무장관 재닛 옐런은 테라-루나 몰락 직후인 5월10일(현지 시각) 금융안정감독위원회 연례보고서 관련 청문회에서 “의회가 스테이블 코인 규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중요하고,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UST는 급격히 성장했고, 금융 안정성에 위험이 생겼다. 우리에겐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라며 UST를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사실 미국은 테라-루나가 몰락하기 이전부터 스테이블 코인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스테이블 코인은 대부분 미국 달러와 연동(페깅)돼 있는데 이는 잠재적으로 미국의 통화정책과 달러 패권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시장, 예금보험공사, 통화감독청에 관한 바이든 실무 그룹(실무 그룹)’은 지난해 11월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보고서를 통해 테라 사태와 같은 상황을 경고하기도 했다. 시장이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다면, 해당 코인을 처분하고 탈출하려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였다. 실무 그룹은 이와 같은 사태가 금융시스템 전반에 해를 끼칠 수 있다며 스테이블 코인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입법 및 규제를 촉구했다.
테라 사태 이후 국회도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은 ‘루나·테라 사태 원인과 대책은’이라는 세미나를 하고, 당정 간담회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멈춰 있던 가상자산 태스크포스를 재가동하기도 했다.
두 정당은 공통적으로 가상자산에 관한 기본 법률을 신속히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규제는커녕 가상자산 자체를 규정하는 기본법도 부재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국내에 가상자산을 규제하는 법률은 자금세탁 방지를 목적으로 개정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 유일하다. 가상자산의 정의, 코인 발행과 유통과정, 가상자산 사업자 승인 등 가장 기초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규제 공백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테라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에 가상자산 기본법이 제정됐다고 하더라도 테라 사태를 막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가상자산 기본법과 관련해 국회에 발의된 13개의 제·개정안에는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내용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는 2019년 페이스북이 스테이블 코인 ‘리브라’ 발행 계획을 발표한 이후 세계 각국이 관련 규제 체계 마련에 착수해온 것과 대조된다. 가장 앞선 규제를 수립한 것으로 평가되는 유럽연합(EU)은 가상자산 규제 기본법안(MiCA)에서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 자격, 준비자산 운용 방법 등을 규정한 바 있다. 천창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경영학과)는 지난해 12월 자신의 논문에서 “한국이 국제적 논의에서 상당히 뒤처져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스테이블 코인 규제와 관련한 내용을 법안에 반드시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테라 및 루나 코인 피해자들이 코인 발행사인 테라폼랩스와 권도형 대표 등을 고발하며, 이들에 대한 수사도 시작됐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엘케이비파트너스는 지난 5월19일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권도형 대표 등을 사기 및 유사수신행위로 고발했다. 알고리즘상의 설계 오류 및 하자에 대해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것은 사기이며, 고이율의 예치 서비스를 제공했던 ‘앵커 프로토콜’은 인가를 받지 않은 채 불특정 다수인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유사수신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테라 2.0’으로 부활 꾀하나
그러나 테라 측이 실제로 처벌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법이 규정한 사기 및 유사수신행위 요건에 테라 사태가 부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먼저 사기로 처벌하기 위해선 권도형 대표 등 테라 측이 ‘기망의 의사’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 증명돼야 한다. 즉, 자신들의 결과물이 상대에게 피해를 끼칠 것임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상대방을 착오에 빠트렸다는 것이 입증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입증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블록체인 등 IT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뤄온 김동환 변호사(법무법인 디라이트)는 “현재로선 권도형 대표 및 테라 측이 테라-루나가 알고리즘 설계에 결정적 결함이 있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는지가 불분명하다. 만약 그런 인식이 있다 하더라도 수사기관이 이를 입증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라고 말했다.

유사수신행위 적용도 까다롭긴 마찬가지다.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특정한 행위가 유사수신행위에 해당한다고 규명되기 위해선 ‘금전’을 모집해야 한다. 그런데 앵커 프로토콜이 예치받은 가상자산을 과연 금전이라고 볼 수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2018년 대법원이 금전을 ‘우리나라에서의 통화’라고 판시한 바 있기 때문이다. 해당 판례를 적용한다면, 가상자산은 법률상 금전에 해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실질적으로는 앵커 프로토콜이 예금 서비스처럼 기능했음에도 법률상 유사수신행위로 판결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 테라폼랩스 권도형 대표는 기존 테라-루나를 버리고 ‘테라 2.0’을 출시해 부활을 꾀했다. 5월17일 권 대표는 ‘테라 생태계 재생계획 2’를 발표했는데, 이 제안은 테라 커뮤니티에서 65.5%의 지지를 받아 통과됐다. 테라는 ‘재생계획’에 따라 기존 루나의 이름을 ‘루나 클래식’으로 바꾸고, 새로운 코인 ‘루나’를 발행했다.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은 다시 발행하지 않았다. 새로운 루나는 총 10억 개가 발행되는데, 이 중 70%는 기존 루나 및 UST 보유자들에게 각기 보유량에 따라 무상 지급(에어드롭)되었다. 발행 직후 모든 물량을 팔아치우고 탈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테라는 새로운 루나를 분배받은 사람들에게 최장 4년까지 의무 보유 기간을 두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새 루나에 우호적이지 않다. 5월28일, 17.8달러 가격으로 출시된 새 루나는 5시간 반 만에 4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도지코인의 창시자인 빌리 마커스는 테라 2.0에 대해 “암호화폐 도박꾼들이 얼마나 멍청한지 세상에 보여줄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