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번방 사건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포토라인에 선 조주빈이다. ‘박사’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조씨는 텔레그램에서 성착취물을 공유하는 ‘박사방’을 운영했다. 목 보호대를 차고 나와 “악마의 삶”을 살았다고 말하는 광적 범죄자는 사건의 심벌이 되었다. 텔레그램 성착취의 시초인 ‘N번방’ 운영자 ‘갓갓’ 문형욱의 무표정한 얼굴을 함께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텔레그램 성착취는 몇몇 범죄자가 벌인 평지풍파가 아니다. 악한 수요가 대담한 공급을 만난 결과물이다. 문제의 채팅방 중에는 ‘참여자’가 9000여 명에 이르는 것도 있다. 그중 일부는 수십만 원에서 100만원 이상을 지불하고 불법 촬영물을 구매하기도 했다. 구매자와 판매자는 단순 계약 관계를 넘어섰다. 텔레그램방은 이들에게 ‘접선’ 장소일 뿐만 아니라 모종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5월18일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N번방을 무너뜨려라〉는 이를 재현한다. 운영자가 채팅방에 피해자 신상정보를 올리면 ‘고객’들은 함께 모욕과 협박을 가했다.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를 앞다퉈 조롱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에서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과)는 “니즈(수요)가 없었다면 조주빈이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조주빈과 문형욱을 사회에서 격리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수요가 존재하는 한 새로운 유형의 공급자가 등장할 수도 있다.
성착취 협업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것인가. ‘팀 eNd(엔드)’의 답은 단순하다. 피해자에 대한 관심과 끈질긴 연대다. 이들은 전업 활동가가 아니라 본업이 따로 있는 시민들이다. N번방 문제를 알게 된 뒤 충격을 받아 개인 시간을 쪼개 행동하기로 했다. “디지털성범죄를 끝장내겠다는 포부를 담아” 단체 이름을 지었다. 2020년 초 시위팀을 꾸리려 했던 게 시작이다. 그해 3월 첫 시위를 계획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좌절됐다. 국민적 관심 속에 조주빈과 문형욱이 검거됐으나 이들이 보기에 상황은 산 넘어 산이었다. 언론은 가해자 서사를 받아쓰며 2차 가해를 하고, 관련법 개정은 지지부진했다. 이때 시작한 활동이 ‘재판 방청연대’이다. 피고인들이 형량을 줄이기 위해 갖은 수를 쓴다는 걸 알게 됐다. 재판부는 피해자 대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래서 전국에서 열린 재판에 직접 가서 지켜보고 기록하기로 했다. 개요는 SNS ‘카드뉴스’를 통해 알렸다. 지난 4월 나온 〈그래서 우리는 법원으로 갔다〉는 재판 과정에서 있었던 일과 활동가들의 생각을 정리한 책이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팀 eNd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재판에서 N번방 가해자 변호인들은 인정에 호소했다. 가족을 증인으로 세울 때 특히 그랬다. 2020년 9월24일 열린 안승진(별명 ‘코태’)의 공판에서, 변호인은 안승진의 어머니를 증인석에 세운다. 사는 형편과 유년·학창 시절, 군 생활을 물었다. 안씨 어머니는 “애 아빠가 일용직인데 4개월간 일이 없어 보름 정도밖에 일을 못했다” “초등학교 3~4학년까지 많이 허약해 새벽마다 울고 경기를 일으켰다” “군 생활은 잘했다”라고 답했다. 안승진의 변호인은 “안승진을 키우고 지켜봐온 엄마인데, 아쉬운 생각,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대목이 있나?”라고 물었다. 팀 eNd ‘뽀또’ 활동가는 ‘자식의 잘못에 자식 교육 잘못한 엄마를 비난하는 가부장의 관점이 엿보이는 질의’라고 썼다. 안씨 어머니는 “아이가 조용하고 말썽을 피우지 않아 잘 자라고 있는 줄 알았다. 내가 좀 더 신경 써야 했다는 반성을 많이 했다”라고 말했다.
안승진은 문형욱(갓갓)의 공범이다. 성인보다 아동·청소년이 협박에 취약하다는 점을 이용해 미성년자에게 성착취물을 촬영하도록 강요했다. 군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에 성매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 검찰은 징역 20년을 구형했으나 1심, 2심 재판부는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범행을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며,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피고인 가족이 선도를 다짐했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안승진이 항소하지 않아 형은 확정됐다.
팀 eNd는 온라인상에서만 만나던 문형욱의 공범들이 한 재판정에 모인 상황도 기록했다. 2020년 10월12일 공판에서 나온 이들의 증언은 ‘협업적 성착취’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준다. 증인들은, 문형욱과 달리 자신이 이 범죄행위 일부에만 책임이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범행 당시 고3이던 양○빈은 “‘여자랑 놀게 해준다’는 트위터 글을 보고 텔레그램방에 들어갔다. 성적인 건 줄 몰랐다”라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의 유사성행위를 촬영했는데, 문형욱의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문형욱이 집이나 학교로 찾아와 해코지할까 봐 가담했다는 것이다. 양씨는 지체장애 1급이다. 1차 증인신문에 출석하지 않아 과태료 200만원이 부과됐으나, 추후 재판부는 ‘불편한 몸으로 결국 증언하러 왔다’며 이를 취소했다. 양씨는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뽀또 활동가는 염색을 하고 한껏 멋부린 그가 “〈쇼미더머니〉 출연자처럼 보였다”라고 적었다.
이○재는 성착취물을 촬영하며 SNS로 생중계했다. 피해자는 문형욱이 소개했다고 말했다. 13세였다. 이씨는 피해자 나이를 알았다고 증언했으나, “문형욱과 피해자가 서로 원해서” 이루어지는 일인 줄 알았다고 주장했다. 미성년자 유사성행위, 강간, 성착취물 제작 및 스트리밍 혐의로 재판받은 그는 징역 3년형을 받았다. ‘체액을 모아주면 성착취물을 제작해준다’는 SNS 광고 글을 보고 문형욱에게 의뢰한 공범, 피해자를 성폭행하고 불법 촬영해 스트리밍한 공범의 진술이 뒤를 이었다. 두 사람 역시 징역 3년형을 받았다. 범행 장소는 재판을 기록한 활동가가 “자주 산책하던 곳”이기도 했다.

조주빈과 일당은 다른 피고인들과 좀 달랐다고 팀 eNd는 썼다. 가해자들은 대부분 고개를 숙이고 방청석을 쳐다보지 않았다. 신상정보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조차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변호인만 말을 했다. 그러나 조주빈 일당은 “정말이지 떳떳했다”라고 ‘안개’ 활동가는 책에 적었다. “방청객을 계속 응시했고 눈을 피하지 않았다. 자신의 신상정보를 방청객들 잘 들으라는 듯이 아주 크게 또박또박 말했다. 자신들의 범행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듯 당당해 보였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인터뷰에서 당시 감상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당시 느꼈던 감정을 솔직히 말하면, (그들이) 짧은 형량을 살고 나와 (내가) 보복을 당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섬뜩했다. 방청객을 굳이 쳐다보고 의식하는 모습이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제3자인 방청객마저 두려움을 느낄 법한 사건에서, 재판부는 피해자 보호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팀 eNd는 기록한다. 검사가 조서를 넘기던 중 피해자의 사진이 법정 스크린에 1분가량 비친 적이 있다. 판사, 검사, 피고인 변호인, 피해자 변호인 누구도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조주빈의 변호인은 피해자 진술 일부에 부동의했다. 피해자 변호인단은 이 과정이 보도되면,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피해자 가명을 직접 언급하는 대신 ‘피해자 일부’로 보도하도록 요청했다. 재판장은 ‘쓰지 말라고 기자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부탁은 가능하다’며, 현장 기자들에게 동의 여부를 물었다. 팀 eNd는 “법정에 가벼운 웃음이 돌았다. 법정이 피해자 변호인단의 절박한 요청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라고 썼다.
이런 일은 단발성 해프닝이 아니었다. 뽀또 활동가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형사재판에서 피해자는 배제된다. 재판부는 검사와 가해자의 말만 듣고, 재판마다 만나는 범죄자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것 같다.” 그는 판사의 감정이 양형에도 영향을 끼쳤으리라고 생각한다. “디지털성범죄 가해자는 대부분 10~20대다. 재판부는 아직 어리고, 앞날이 창창해 보이는 범죄자에게 실형을 선고하길 주저한다. 가해자들은 자신이 선처받을 것을 알고 있다.” 가해자들은 재판부에 반성문과 탄원서, 여성단체 기부 영수증을 제출했다. 실제 형 감량 요소로 반성문을 언급한 판결도 있다.
N번방 재판을 꾸준히 방청해온 그들은 재판부가 방청객을 의식해 변했다고 했다. ‘안개’ 활동가의 말이다. “방청객이 없던 초반에는 피해자 신상이 노출된 적이 있다. 계속 목소리를 내고 재판에 참석하다 보니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판사도 검사도 방청객이 많을 때는 단어 선택을 조심하게 됐다.” 팀 eNd의 시초인 시위팀을 만든 ‘멸균’ 활동가도 방청연대의 효과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방청연대는 오프라인 연대로서는 제일 간단하고 효과적이다. 내용을 다 못 알아들어도 피해자를 응원하는 한 사람으로서 자리를 채워주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라고 책에 썼다.
그러나 피해자와 연대하는 데에는 개인의 희생이 필요했다. 현업이 따로 있는 활동가들은 우선 몸이 상했다. ‘우주’ 활동가는 “수명을 끌어다 썼다”. 퇴근하면 법원에 달려가고 재판 후엔 후기와 성명문을 작성했다. 각종 이메일에 답장을 보내고 팀 회의를 진행했다. 긴급 기자회견을 준비하며 밤을 새운 적도 부지기수였다. 안개 활동가는 “팀 eNd 활동에 현생(실제 삶)을 끼워 맞췄다”. 한쪽 귀로는 비대면 강의를 듣고, 다른 쪽 귀로는 재판을 방청했다. 블로그 일기장에 뿌듯하다는 내용과, 일상의 균형이 깨져 걱정이라는 내용을 번갈아 적었다.
심적 고통도 겪었다. 매번 재판을 챙기는 활동가들은 분노하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는데, 여론 반응은 그만큼 따라오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조주빈과 문형욱의 1심 선고가 나오자 세상의 관심은 급격히 떨어졌다. 멸균 활동가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인터뷰에 이렇게 답했다. “재판 특성상 여러 차례 항소를 하고, 새로운 가해자도 계속 등장했다. 활동 기간은 예상보다 길어졌는데 갈 길은 많이 남은 기분이었다. 끝난 게 없는데 잊힐까 봐 걱정이었다.” 이 와중에 백래시가 몰려왔다. 인터뷰 기사에는 ‘여성가족부의 스파이’ 따위 악플이 꾸준히 달렸다. 시비 거는 이메일도 많이 받았다. 다큐멘터리 제작 작업을 진행하려 했으나 신상 노출에 대한 팀원의 우려로 불발됐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이들이 최우선시하는 것은 신변 보호다. 지금도 팀 eNd는 실명을 밝히지 않고, 시위를 할 때는 늘 모자와 마스크로 신원을 가린다. 언론 인터뷰 대다수는 서면으로만 한다. 간혹 대면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여성 기자만 허용한다’는 게 첫 번째 원칙이다. 이유를 물었다. 남성 기자는 활동가의 신상을 유출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했을까? 아니면 인터뷰하러 온 남성 기자 중 N번방 성착취 가해자가 있을 수 있다고 봐서일까? 우주 활동가는 “어느 쪽으로도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판단하기 어려웠다. 작은 위협이라도 우리 팀을 지키고 싶었다”라고 답했다.

팀 eNd는 N번방 사건을 ‘조주빈, 문형욱 등 일부 범죄자들이 사회에 해악을 끼친 일’로 규정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이들 생각에 이것은 “남성 집단 내에서 벌어진 명백한 여성혐오 사건이다.” 우주 활동가의 서면 답변은 이렇게 이어진다. “최초 보도 전까지 N번방의 존재는 수면 아래에 있었으며 그 방 누구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숨겼다. ‘남성 카르텔’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견고한지 깨닫게 한다. 디지털성범죄와 여성혐오는 특정한, 이상한 일부의 문제가 아니다. 그 방에 있던 남성들은 절대 소수가 아니었다. (…) 실제로 재판에서 만난 가해자들은 너무나도 지극히 평범한 남성들이었다. 일상에서 수없이 마주치고 지나쳤을 평범한 사람. 그들을 마주할수록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가해자를 겉으로 판단할 수 있는가?”
팀 eNd 활동가들은 철저히 신상을 가리지만, 원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우주 활동가는 “억울하지 않은 적이 없다. 늘 당당하게 디지털성범죄와 싸우는 활동가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모르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팀 eNd를 숨게 했다. 직접 날아오는 온라인 악성 댓글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비난 전반에 위축됐다. 가까운 사람들조차 활동을 말린다. 멸균 활동가를 알아본 지인과 가족은 “네 일이나 챙기라고, 굳이 왜 위험을 감수하냐며 바보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가 생면부지의 피해자들을 위해 나서온 것은 범죄행위에 분개해서이기도 하지만, 자신과 가족을 위한 일이라고 느껴서다. “나는 앞으로 여성으로 이 사회를 살아가야 한다. 당사자성이 있는 내가 여성 대상 범죄를 규탄하는 활동을 하는 게 왜 미련한 짓인지 모르겠다. 내 동생은 나보다 훨씬 어리다. 그도 여기서 살아가야 한다.”
활동가 네 사람에게 N번방 사건이 남긴 것을 물었다. 뽀또 활동가는 “흰 머리 다섯 가닥과 책 한 권”이라고 답했다. 새치는 가해자 재판을 지켜보며 받은 스트레스 탓에 생겼다. 이번에 펴낸 책 〈그래서 우리는 법원으로 갔다〉를 두고 그는 “내 인생의 남은 행운을 여기 다 썼다”라고 말한다. 멸균 활동가는 “더 열심히 살 수 있는 힘”이라고 했다. “내가 차별받는 취약층이라고,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절망하는 것보다 열심히 살아 사회·경제적으로 힘 있는 목소리를 내고 싶다.” 안개 활동가는 “바로 떠오르는 건 공포심이다. 고민도 많아졌다”라고 답했다. 그는 범죄가 점차 악랄해지고, 어린아이들이 성범죄에 노출되는 게 두렵다고 했다. 우주 활동가는 “‘우리’를 남겼다”라고 답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옆을 보지 않아도 우리 모두 디지털 성착취를 없애기 위해 각자 자리에서 각자 방식대로 걸어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