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

지난해 4월, 강유빈씨(가명·23)는 디시인사이드 우울증갤러리를 알게 됐다.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과 편하게 이야기 나눌 곳이 있어서 반갑고 신기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유빈씨는 디지털성범죄의 피해자가 되었다. 우울증갤러리에 자신을 모욕하는 글이 올라오진 않는지 매일 확인을 하고, 비슷한 피해자가 없는지 백방으로 찾고 있다. 가해자를 통신매체이용음란죄와 모욕죄로 고소했지만, 수사는 2개월 만에 모두 중지되었다. 지난 1년간 유빈씨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

유빈씨는 회원가입 절차 없이 익명으로도 글을 쓸 수 있는 편리함 때문에 디시인사이드의 우울증갤러리를 이용하게 되었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모인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들도 있지만 절차가 까다로웠다. 회원가입을 해도 등급을 올리기 위해 본인인증도 해야 했다. 디시인사이드는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비회원으로도 글을 쓸 수 있어서 안전하다고 느끼고 쉽게 활동을 시작했던 것 같다.”

익명성은 디시인사이드를 국내 최대 규모의 커뮤니티 사이트로 성장시킨 동력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익명성 때문에 수많은 디지털 범죄가 발생한다. 디시인사이드에는 하루 평균 82만 개 이상의 글이 올라오고 220만 개가 넘는 댓글이 작성된다(5월26일 기준). ‘갤러리’라는 이름의 여러 게시판 가운데, 우울증갤러리는 방문객 상위 1% 안에 드는 인기 갤러리다.

유빈씨는 고정된 닉네임을 쓰며 갤러리 이용자들과 관계를 맺어갔다. 자주 글을 쓰자 그를 알아보고 안부를 묻는 사람들도 생겼다. 친해진 우울증갤러리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비공개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누군가 밤에 라방(라이브 방송)을 하면 친한 사람들이 다 같이 접속해 그날 힘들었던 일을 나누기도 하고, 위로도 하고. 그렇게 같이 놀았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합동 방송도 하게 되었다.” 유빈씨는 지난해 10월에 직접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다. 친하고 믿을 만한 사람들만 함께한다고 생각했다. 친구를 사귀는 보통의 일상처럼, 갤러리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일과를 공유하던 사람들과 훨씬 더 가까워지게 됐다.

올해 2월, 이런 보통의 일상이 악몽이 됐다. 비공개 계정으로 친구 ㄱ씨와 합동 방송을 하던 중이었다. ㄱ씨의 팔로어였던 한 남성 유저가 라이브 방송에 들어왔다. 단 몇 초 만에 유빈씨의 얼굴 화면을 캡처하고 나갔다. 그는 유빈씨의 얼굴 사진을 60여 명이 모인 실시간 음성 채팅 메신저인 ‘디스코드’ 방에 공유하며 성적으로 모욕적인 말을 붙였다. 알고 보니 이 남성은 이런 수법으로 피해자들을 모욕하기로 악명이 높은 이용자였다.

피해자들은 주로 갤러리에서 활동하는 젊은 여성 유저였다. 라이브 방송 중인 여성의 얼굴을 캡처하거나 SNS에 올라온 여성들의 ‘셀카’ 사진을 저장한 뒤, 그 아래 소위 ‘능욕 글’을 써서 우울증갤러리에 올리고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전시’하는 수법이었다. 유빈씨 사진 아래에는 신체 부위를 지칭하는 저속어와 비윤리적 성행위를 묘사한 말들, 부모나 동물을 언급하고 빗대며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들이 잔뜩 적혀 있었다. 경찰서에서 이루어진 유빈씨의 피해 진술서에는 이런 문답이 나온다. “전투기(가해자의 닉네임)가 올린 글을 보고 무슨 느낌이 들었나요?” “수치심이 들고 충격을 받아 죽고 싶었습니다.”

그날 밤 유빈씨는 악플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증상을 처음 겪었다. 아침 저녁으로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 상황이 너무 수치스럽고 힘든데 누구한테도 말을 못하겠더라. 약을 많이 먹으니까 혼잣말을 하거나 이상행동을 하게 되었다. 결국 가족들도 내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눈치 채게 됐다.”

가족에게 혼자 묻어둔 말들을 하고 난 뒤 유빈씨는 겨우 힘을 낼 수 있게 되었다. 가해자를 처벌하겠다고 결심했다. 유빈씨는 경찰서를 찾아 가해자를 통신매체이용음란죄와 모욕죄로 고소했다. 성폭력처벌법 제13조(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에 따르면 ‘자기 또는 타인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통신매체를 통해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그림 등을 유통하는 사람’을 처벌할 수 있다. 유빈씨는 또 다른 피해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디시인사이드 수사에 소극적인 이유는?

그런데 경찰 관계자는 유빈씨에게 고소장을 쓰는 대신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의 ‘삭제팀’에 문의하라고 조언했다. “디시인사이드에서 일어나는 일은 못 잡는다고 했다. 수사도 안 해보고 그렇게 말한다는 게 납득이 안 되고 너무 화가 났다. ‘수사도 안 하시겠다는 거냐’라고 따지자 그제야 고소장을 접수하라고 했다.”

수사기관이 디시인사이드 수사에 소극적인 까닭은 무엇일까? 유빈씨의 통신매체이용음란죄 고소 건을 담당했던 경찰서 여성청소년과의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디시인사이드에 영장을 발부해 압수수색까지 집행했지만 피의자를 특정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유빈씨 사건은 4월8일 수사가 중지되었다. ‘수사 중지 결정서’에는 “디시인사이드는 2013년 2월18일 이후 회원가입 시 실명인증을 받고 있지 않다. 비회원의 게시물은 인적사항을 특정 지을 수 없다”라고 적혀 있다. 회원가입을 하지 않은 비회원인 경우 IP 추적이 쉽지 않다. 게다가 개인정보 보안 기능을 강화한 해외 브라우저로 디시인사이드에 접속한 경우 국내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찾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유빈씨 사건의 수사 중지 결정서. 피의자를 특정할 만한 단서 및 소재를 확인할 수 없어 수사를 중지한다고 쓰여 있다.

디지털 성착취 단체방 모니터링 및 신고 제보를 이어오고 있는 ‘프로젝트 리셋(ReSET)’ 측은 “경찰이 디시인사이드 관련 수사를 저어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경찰에 제보를 해도 ‘어차피 못 잡는다’라는 식으로 거절하거나, 사건이 배당되는 경찰서에서 인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수사 진행이 어려울 거 같다는 연락을 받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게시 글을 삭제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유빈씨는 디시인사이드에 자신과 관련된 게시 글을 신고하고 삭제를 요청했다. 업체는 묵묵부답이었다. 디시인사이드 관계자는 〈시사IN〉과 통화하면서 “게시물 신고와 문의는 웹사이트 내 신고 게시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신고 글을 작성하면 우리 측에서 답변을 보낸다”라고 말했다. 유빈씨도 이 통로를 이용해 신고했다. 하지만 글도 삭제되지 않았고 디시인사이드로부터 신고가 잘 접수됐는지, 왜 지워지지 않는지에 대한 회신도 전혀 받지 못했다. 사진이나 신상, 모욕적인 글이 공공연히 떠돌아도 업체와 직접 소통할 수 없으므로 디시인사이드에서 피해자가 구제받을 방법은 없는 셈이다.

3월이 되자 피의자는 유빈씨의 신상을 캐내 갤러리에 올렸다. 얼굴 사진에 이어 본명, 대학, 학번까지 공개됐다. 유빈씨에게 가장 힘든 시기였다. 유빈씨는 자신 말고도 다른 피해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함께 대응하자고 설득하기 위해 애썼다. 이 과정에서 피의자가 또 다른 피해자를 가장해 유빈씨에게 접근하기도 했다. 피의자는 유빈씨를 조롱하는 글을 계속해서 갤러리에 올리며 자신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를 보이려고 했다. 경찰에 잡히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도 보였다. 연락이 두려워 한 달 동안 전화번호를 세 번이나 바꾼 건 피의자가 아닌 피해자인 유빈씨였다.

피해 지원만 한 해 18만여 건

지난 4월8일 유빈씨 사건의 ‘수사 중지 결정서’에는 “디스코드를 상대로 국제수사 공조 요청하려고 하였으나 요청할 수 있는 범죄의 범위는 미국 연방법에 위배되는 초국가적 사건, 예를 들어 아동·성착취물에 한정됨에 따라 정보제공을 받지 못하였다”라는 내용도 있다(위 사진). 결국 피의자는 ‘성명불상’으로 남았다. 경찰서에서 보낸 문자메시지에는 “현재로서는 피의자를 특정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상황’이기 때문에” 수사를 중지하는 것이고, “향후 ‘수사 공조’가 가능해진다면 다시 수사를 개시할 수 있다”라고 적혀 있었다.

성범죄 사건을 다수 변론해온 김예원 변호사는 유빈씨 같은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자기가 알아서 빠릿빠릿하게 증거를 찾아오는 피해자가 아니면 수사기관이 움직이지 않는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에게 부족한 수사를 보충하라고 지시할 주체마저 사라지면서 수사 지연, 수사 중지가 더 빈번해졌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2021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의 피해 지원 건수만 2021년 한 해 동안 총 18만8083건이다. 용기를 내 피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매우 어려운데도 이 정도다. 여기까지 가닿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한 사례들까지 포함하면 피해자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 빙산의 일각 중 하나가 유빈씨 이야기다.

휴대전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빈씨가 불쑥 이렇게 말했다. “이 폰이 전부 깨져버리면 좋겠어요. 피해가 발생한 이후의 제 삶이 완전히 부서진 것 같아요. 이런 일이 왜 저한테 벌어졌는지 모르겠어요.”

유빈씨와 같은 디지털성범죄 피해자가 더 나오지 않으려면 무엇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리셋’ 측 활동가는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디지털성범죄를 전담으로 수사하는 경찰 내 조직의 확장이다”라고 말했다. “2021년 12월 사이버성폭력수사‘계’가 신설된 바 있으나, 그 규모나 예산 등이 너무 작다. 디지털성범죄를 사이버범죄의 하위 유형이 아닌, 심각한 강력범죄 중 하나로 판단하고 이에 대응하는 부서가 충분히 몸집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해외 서버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 등 수사 장벽이 높은 곳에서 디지털성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까지 잡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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