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녹색당 창당 10주년 행사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올해 초 〈RFA 자유아시아방송〉이 보도한 ‘대한민국 기후위기 보고서’를 설명하는 자리였다. 당시 여론조사 결과 기후위기 공약을 매우 중시하는 유권자 집단이 3분의 1 이상 존재한다는 점이 확인됐다. 수치를 떠나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한국인의 마음속에도 깊이 각인된 것만은 확실했다.
녹색당이 창당된 10년 전만 해도 기후위기는 국가의 주요 의제가 아니었다. 정년 연장에 반대하는 유럽 노동자의 시위를 이해하지 못하듯 사람들은 기후위기도 남의 나라 일로 여겼다. 지금이야 태스크포스를 꾸리는 등 언론에서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내 기억에 겨우 5년 전만 해도 기후위기는 변방의 이슈였다.
나는 녹색당 활동가들의 토론을 ‘경애의 마음’으로 들었다. 지난 10년 동안 금배지 하나 얻지 못하면서도 기후위기라는 화두를 정치판에 펼쳐놓기 위해 꿋꿋이 견뎌온 이들이다. 이번 토론에서 가장 많이 들린 단어는 ‘급진’이었다. 좀 더 전면적으로 좀 더 신속하게 기후위기 대응에 나서지 않고는 인류에게 미래가 없다는 절박감이 묻어나는 단어였다.
지금 기후위기 대응에 발 빠르게 나서는 곳은 자본(기업)과 로펌이다. 자본은 해상풍력 등 재생에너지 산업을 막대한 미래가치로 여겨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로펌은 나라 간 탄소국경세 분쟁, 각종 환경분쟁에 대비한 데이터를 모으는 중이다. 반면 정부는 뒷걸음질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보다 원전 가동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런 분위기라면 대선 때 화제가 되었던 ‘RE100(기업이 쓰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캠페인)’은커녕 ‘RE30’조차 어려워 보인다.
기후위기의 주도권을 자본과 법률가, 그리고 방향을 잘못 잡은 정부가 쥐는 미래는 암울하다. 유일한 희망은 시민을 앞세우는 길뿐이다. 지난 10년 사이 우리 사회의 시민의식도 분명히 달라졌다. ‘기후행동’이야말로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절실하다. 1980년 창당한 독일 녹색당이 수권 세력으로 발돋움하기까지 40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