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

기후위기 운동을 한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던 때가 있었다. 민주와 반민주, 자본과 노동으로 맞서던 시절 기후위기는 100년 뒤 혹은 1000년 뒤에나 다가올 미래의 일로 여겨졌다. 까마득한 옛날이야기 같지만 우리 사회가 기후위기에 관심을 가진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푸른아시아’는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나무를 심는 운동을 펼치는 단체다. 오기출 푸른아시아 상임이사(61)는 ‘1세대’ 기후운동가로 불릴 만한 사람이다. 그는 30대 중반까지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등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단체에서 일했다. 선배와 동료들은 정치권으로 갔지만, 그는 다른 길을 택했다. 기후변화 문제가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1998년 한국휴먼네트워크(푸른아시아의 전신)를 창립했다.

오기출은 몽골에 주목했다. 몽골은 기후위기의 상징적인 현장이었다. 온난화 속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가팔라 급속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기후위기라는 말조차 생소했다. 그래서 들고나온 게 ‘황사’ 문제였다. 봄철이면 한반도를 습격하는 황사 피해를 막기 위해 몽골 사막화를 막자는 운동을 펼쳤다.

쉽지는 않았다. 2000년대 이후에도 기후변화나 사막화 같은 이슈는 한국 사회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2004년에는 함께 일하던 이들이 모두 단체를 그만두었다. 한 활동가는 “선배도 이제 포기하시라”며 떠나갔다. 홀로 남아 실의에 빠질 무렵 단체 후원 통장에 끝자리가 ‘2원’인 돈이 입금됐다. 광명시에 있는 한 어린이집 원장이 그달 치 월급 전체를 후원금으로 낸 것이다. 통장 잔고 앞에서 그는 하염없이 울었다(돈을 보내준 그 원장은 그 후 푸른아시아의 비상임이사로 활동했다).

다시 팔을 걷어붙이고 새로 의기투합한 활동가들과 함께 부지런히 몽골을 드나들었다. 사막화로 터전을 잃어버린 유목민들이 환경 난민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활동가들은 주민들과 함께 부지런히 나무를 심고 숲을 가꿨다. 차츰 생태계가 되살아났고, 도시로 떠난 주민들이 돌아오면서 공동체가 복원됐다. 이런 성과가 쌓여 2015년 푸른아시아는 유엔사막화방지협약이 수여하는 ‘생명의 토지상’을 수상했다.

오기출 이사는 우리 모두 ‘벌새’가 되자고 말한다. 손가락만 한 몸집을 가진 이 새는 숲에 불이 나면 도망치지 않고 개울가에서 물을 머금어 불붙은 나무에 뿌린다. 벌새 한 마리는 산불을 끄지 못하겠지만, 인류가 벌새의 심정으로 나무를 심는다면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가올 디스토피아의 시대, 1세대 기후위기 운동가는 희망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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