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월2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답변하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20대 대통령선거에서 주요 후보들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피해를 본 소상공인·자영업자들에게 폭넓은 보상을 약속했다. 손해보상을 위한 재정지출 확대는 선거가 끝난 후 가시화됐다. 기획재정부(기재부)는 5월12일, 36조4000억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안(추경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추경안을 두고 정치권이 뒤숭숭하다. 논란이 된 건 추경을 가능케 하는 재원이었다.

기재부가 밝힌 추경안 총액은 59조4000억원이다. 이 중 법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지방재정 편성 금액(23조원)을 제외한 금액이 지출 총액 36조4000억원이다. 기재부는 빚(국채 발행 등)을 동원하지 않고도 재원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오히려 나랏빚을 9조원 줄여가며 재원을 확보했다고 자평한다. 빚은 줄이고 지출은 늘린다. 이 마법 같은 일을 가능케 한 건 세수 추계 오류, 즉 올해 걷을 세금을 잘못 계산한 탓이다.

기재부의 설명을 단순하게 풀어 표현하자면 이렇다. 원래 예산안은 나라가 세금을 얼마나 걷을지 예상(추계)하며 지출 규모(예산)를 정한다. 보통 1년 전에, 이듬해 걷을 세금과 쓸 재정을 짜 맞춘다는 의미다. 나중에 쓸 돈이 늘어나면 예산안을 다시 편성해 국회에서 허락을 받는다. 이게 추경이다.

문제는 국가의 지출만 달라지는 게 아니라 수입(세입)도 예상을 빗나간다는 점이다. 이번 2차 추경에서 기재부의 ‘마법 지팡이’가 바로 이 세입 초과분이다. 지난해 계산(추계)과 달리, 올해 남은 기간 세금을 더 걷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미다. 기재부는 올해 초과 세수가 53조3000억원 규모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 중에 9조원은 나랏빚을 갚는 데 쓰고(국채 축소), 23조원은 법에 따라 지방재정으로 보내며, 나머지 21조3000억원을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등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이 21조3000억원에 각종 지출 구조조정(7조원)과 기금 여유자금 등(8조1000억원)을 동원해 조성한 게 총액 36조4000억원짜리 추경이다.

기재부의 추경안이 발표되자 야권은 곧장 반발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기재부의 ‘타이밍’을 문제 삼는다. 문재인 정부 당시에는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추경에 미온적이던 재정 당국이 정권이 바뀌자마자 ‘빚지지 않고도 집행 가능한 재원’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기재부 불신은 지난 2월에 16조9000억원 규모로 통과된 1차 추경 때부터 쌓여 있었다. 연초부터 논의된 1차 추경은 정부 원안(추경안)이 14조원 수준에 그쳤다. 여야 모두 대규모 증액을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정부안(14조원)을 집행하는 데에도 11조3000억원가량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며 증액에 반대했다. 결국 당시 1차 추경은 ‘사실상 대선 후 2차 추경이 진행될 것’이라는 예상을 남기며 2월21일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막상 국회를 통과한 최종안은 각종 잉여금과 기금 여유자금 등을 이용해 재원을 마련하는 것으로 확정됐다. ‘국채 발행’은 결과적으로 으름장에 그친 셈이다.

3개월 뒤 기재부의 태도는 바뀌었다. 야당 의원들은 이 같은 초과 세수를 1차 추경이 논의되던 당시에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기재부는 4월 이후에야 확실히 알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5월1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3월에 (법인) 실적이 나온다. 4월에 보니, 작년에 법인들의 이익이 좋았다. 올해 법인세를 30조원 이상 추가로 걷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근로소득세와 양도소득세도 작년보다 더 들어오고 있다. 이런 것들이 다 어우러졌다”라고 말했다.

2021년 세수 추계 오차율 무려 21.7%

기재부의 설명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두 가지 논란이 추가로 남는다. 첫 번째 논란은 어째서 이토록 세수 추계의 정확도가 떨어지느냐는 것이다. 세수 추계 오류는 지난해에도 논란이 되었다. 정부가 올해 2월 발표한 ‘2021년도 총세입 마감’에 따르면 당초 예상치(2020년 예산편성 당시 추계)보다 61조3357억원을 더 걷은 것으로 확인됐다. 오차율은 무려 21.7%에 달했다. 추계 오류가 60조원을 넘긴 것은 역대 최초다. 당시에도 기재부의 세수 추계 모델이 잘못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불과 3개월 만에 “2022년에도 53조3000억원이 더 걷힐 것 같다”라고 말하니 정치권으로서는 기재부에 대한 불신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5월9일 이임식에서 인사하는 홍남기 전 기획재정부 장관.ⓒ연합뉴스

두 번째 논란은 기재부의 경기예측 정확도 문제다. 기재부 설명대로라면 이 같은 추계 오류는 경기 상황을 잘못 판단한 데에서 기인한다. 그렇다면 올해 ‘53조3000억원이 더 걷힐 것’이라는 판단은 믿을 수 있을까. 기재부는 올해 초과 세수 대부분이 법인세·양도소득세·근로소득세 증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경기 상황에 따라 고용동향이 악화되거나, 부동산 시장이 급랭할 경우 실제 세입이 기재부의 추계에 못 미칠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는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완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등 각종 규제·세금 완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상황이다. 야당은 실제 세입이 이번 세수 추계에 미달될 경우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책임을 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권의 기재부 불신과 반발이 세수 추계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36조4000억원 중 7조원을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한다는 것도 정치인들에게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지출 구조조정은 이미 편성된 예산을 감액한다는 의미다. 기재부는 아직 집행되지 않은 돈이나 집행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돈을 긁어모았다고 설명한다. 기재부가 회수하겠다는 미집행 예산 중 4600억여 원이 각 지역 도로·항만·철도·토목 등 SOC(사회간접자본) 관련 예산이다. 지방선거를 앞둔 지역구 정치인들에게 지역 SOC 예산은 자신의 정치적 성과와 연관된다. 그래서 일부 의원들은 기재부가 국회의 예산 심의 권한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전년도 연말에 국회가 확정한 예산을 ‘지출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기재부가 사실상 재조정한다는 것이다.

2차 추경을 둘러싼 잡음의 본질은 정치권이 기재부를 더욱 불신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세수 추계가 어긋난 것도, 전례 없던 추경이 필요한 것도 모두 코로나19라는 변수 때문이다. 예측이 어려운 환경은 맞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 재정 집행에 소극적이던 기재부가 정권이 바뀌자마자 역대급 추경 재원을 내놓는 모습에 야권의 시선이 호의적이기는 쉽지 않다. 야당의 ‘기재부 불신’은 당분간 각종 예산 관련 논의에서 상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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