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야마 히데키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올해 9월 열릴 예정이던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중국의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연기됐다.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활동도 일단 중단됐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5월10일 류중일 대표팀 감독과 맺은 수당 계약을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LA 에인절스의 오타니 쇼헤이. ⓒAP Photo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감독 선발은 아마추어를 관장하는 대한야구소프트볼 협회(KBSA)가 맡는다. 류 감독은 KBSA가 1월 공모를 통해 뽑았다. 대표팀이 거의 프로 선수로 꾸려지는 만큼 실질적 운영은 프로의 KBO가 맡아왔다. 최고 수준의 야구 국제대회인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감독 선임권은 KBO가 행사한다. 아시안게임이 연기된 이상 이제 대표팀의 당면 과제는 내년 3월 열릴 제5회 WBC 대표팀 구성이다. 류대환 KBO 사무총장은 “류 감독은 아시안게임 감독직을 계속 유지한다. 아시안게임 대표팀 구성 초점이 차세대 대표팀 스타 ‘육성’에 맞춰져 있다면, WBC 대표팀은 문자 그대로 최강으로 꾸려야 한다. 감독 선임 문제도 기술위원회에서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영원한 라이벌인 일본은 지난해 자국에서 열린 도쿄 올림픽에서 이나바 아쓰노리 감독의 지휘 아래 금메달을 따냈다. 이나바 감독은 지난해 9월30일 임기 만료로 퇴임했고, 니혼햄 파이터스 감독을 지낸 구리야마 히데키(61)가 지난해 말 지휘봉을 잡았다.

2017년 취임한 이나바는 당초 5회 WBC까지 대표팀을 맡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2021년 예정되었던 경기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년 연기되면서 WBC 대회는 후임 구리야마의 책임이 됐다.

구리야마의 선임에 대해 일본 대표팀 주위에서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유가 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MVP인 오타니 쇼헤이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에이스 투수인 다르빗슈 유의 대표팀 합류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전임 이나바 감독은 현역 은퇴 뒤 프로팀 지도자로서는 코치로 한 시즌을 보낸 게 전부여서 선수 소집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현역 메이저리거를 대표팀에 합류시키는 게 쉽지 않다. 아직까지 대다수 메이저리그 구단이 소속 선수의 WBC 참가에 부정적이다. 여기에 일본 국가대표 선수에게는 한국과 달리 국제대회 참가 시 병역 혜택이나 FA 자격 일수 가산 같은 큰 메리트가 주어지지 않는다. 소정의 수당만 지급될 뿐이다. 2013년 3회 대회에는 일본인 메이저리거가 한 명도 대표팀에 승선하지 않았고, 2017년 4회 대회에선 일본 복귀를 염두에 두던 외야수 아오키 노리치카 한 명만 합류했다.

일본 야구계와 교류하고 있는 한국야구학회 회원 서영원씨는 “일본 야구는 야구 인기 부흥을 위해 2011년부터 대표팀을 상설화하고 프로와 아마추어 대표팀을 ‘사무라이 재팬’이라는 브랜드로 통합 관리하고 있다. 오타니와 다르빗슈의 대표팀 합류에 기대가 크다”라며 “국가대표팀 스폰서사 계약에 오타니가 합류할 경우 후원금 상향 조정 옵션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선입견을 지우고 최고의 선수 찾을 것”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다르빗슈 유. ⓒAFP PHOTO

구리야마 감독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일본 프로야구(NPB) 니혼햄 감독을 지내며 퍼시픽리그 2회, 일본 시리즈 1회 우승을 차지한 명장이다. 다르빗슈는 2011년까지 니혼햄에서 뛰었고, 오타니는 2013년 니혼햄에 입단해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두 선수는 구리야마 감독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구리야마 감독은 고교 시절 미국 진출을 꿈꾸던 오타니를 설득해 입단시켰다. 입단 뒤엔 외부에서 비판적 견해도 있던 ‘이도류’, 즉 투타 겸업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니혼햄의 전신인 도에이 플라이어스에서 1959년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한 재일동포 야구 원로 장훈씨는 “인성이 매우 좋다. 야구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며 구리야마 감독을 높이 평가했다.

대표팀 투수코치인 요시이 마사토도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NPB에서 통산 18시즌 89승, 메이저리그에서 32승을 따낸 명투수 출신이다. 니혼햄에서 투수코치로 활동하며 다르빗슈, 오타니와 한솥밥을 먹었다. 다르빗슈와 오타니는 전형적인 일본 투수와 달리 190㎝ 이상 장신에 근육이 발달돼 있다. 요시이 코치는 두 선수와 ‘토론’을 통해 최적의 투구 폼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2019년부터 지바 롯데 마린스 투수코치로 옮긴 뒤로는 지난해까지 ‘사사키 로키 육성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사사키는 입단 첫해인 2020년 1·2군 통틀어 실전에서 한 경기도 던지지 않고 훈련에만 전념했다. 구단 흥행을 우선해 섣불리 데뷔시키지 않고 성장기에 있는 선수에게 충분한 시간을 줬다. 사사키는 데뷔 2년 차인 올해 4월10일 시속 164㎞ 강속구를 앞세워 퍼펙트게임 대기록을 세우며 NPB의 새로운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요시이는 일본과 미국에서 선수로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그러면서도 현역 은퇴 뒤 스포츠과학의 명문인 쓰쿠바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학구파이기도 하다. 이 점은 구리야마 감독과 닮았다. 구리야마는 1984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해 내야수로 8시즌을 뛰었다. 신경성 난청인 메니에르병과 팔꿈치 부상으로 7시즌 만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2012년 프로야구 코치 경력이 전무한 가운데 니혼햄 감독으로 취임해 화제를 모았다. 감독 선임 당시 직업은 야구 해설가 겸 하쿠오 대학 경영학부 교수였다. 스포츠미디어와 야구를 접목한 경영 이론이 전공이다.

‘사무라이 재팬’ 감독 선임 뒤 구리야마는 독립 리그, 대학 야구, 고교 야구 경기까지 찾는 행보로 주목을 받았다. ‘대표팀 홍보’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구리야마 감독은 “선입견을 지우고 최고의 선수를 찾을 것”이라고 언론에 밝혔다. 일본은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과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한국에 패한 뒤 본격적으로 대표팀 프로화 및 상설화라는 변화를 줬다. 대표팀 구성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정보와 노하우가 영속성 있게 관리되는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 ‘학구파’ 구리야마 감독이 니혼햄에서 성공을 거둔 이유이기도 하다.

대표팀뿐 아니라 특히 퍼시픽리그를 중심으로 이런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한신 타이거스 등 전통의 명문 팀이 소속된 센트럴리그에 비해 인기가 떨어지는 퍼시픽리그는 적극적으로 혁신을 수용해왔다. 요시이 코치는 대표팀을 맡으면서 지바 롯데와는 코디네이터 계약을 했다. 코디네이터 업무 내용이 눈길을 끈다. ‘1·2군 감독 코치와 상황 공유’ ‘팀과 프런트, 그 외 스태프와의 조정’ ‘전 선수의 상태 및 과제 파악’ ‘중장기적 시점의 강화 시책 확립과 실시’ ‘데이터를 활용한 과제 추출과 해결책 작성’ ‘해외 최신 정보 수집’ 등이다. 대표팀 운영에도 이런 방침이 적용된다면 한국 대표팀이 WBC에서 일본을 꺾는 건 더 어려운 과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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