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8일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 전광판에 루나 차트가 띄워져 있다. ⓒ연합뉴스

실패한 혁신인가, 아니면 사기인가. 지난 5월7일을 기점으로 가치가 폭락한 스테이블 코인 ‘테라’와 담보 토큰 ‘루나’를 두고 갖가지 의혹이 일고 있다. 그만큼 테라-루나의 몰락이 극적이었기 때문이다. 테라와 루나는 한국인 권도형씨(31)가 대표로 있는 테라폼랩스에서 발행한 코인이다. 테라폼랩스의 대표 스테이블 코인인 UST(테라 USD)는 시가총액 180억 달러 수준으로, 스테이블 코인 중 시가총액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5월19일 오전 9시 기준, 1달러에 고정돼 있어야 할 UST의 가격은 0.091달러 수준까지 급락했다. 루나의 가격은 약 90달러에서 0.00014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그림 1·2〉 참조).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에 따르면, 테라-루나의 몰락은 내재된 불안 요인에 외부 충격이 더해져 빚어진 ‘퍼펙트 스톰’이었다.

자료:코인마켓캡
자료:코인마켓캡

테라-루나의 구조를 살펴보기에 앞서, 두 가지 사실을 상기해보자. 첫째,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상대적 크기에 따라서 결정된다. 초과공급이 발생한다면 가격은 하락하고, 초과수요가 발생하면 가격은 상승한다. 둘째, 차익 거래는 언제나 이윤이 남기에 투자자 처지에서 마다할 이유가 없다. 차익 거래는 물건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을 의미한다. 거래의 상대방만 있다면 투자자는 어떠한 리스크도 없이 이윤을 남길 수 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활용하면 아래의 두 명제를 도출할 수 있다. 첫째, 초과수요 또는 초과공급을 만들 수 있다면 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명제 1). 초과수요·공급이 발생하면 가격은 초과수요·공급이 해소될 때까지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둘째, 차익 거래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면 투자자들로 하여금 어떠한 물건을 사고팔게 할 수 있다(명제 2). 투자자가 차익 거래를 통한 이윤 창출의 기회를 거절할 리 없기 때문이다. 이 두 명제는 ‘테라’ 스테이블 코인의 가장 기초적인 작동 원리를 구성한다.

스테이블 코인은 말 그대로 ‘안정적인(stable) 가치를 지닌’ 암호화폐다. 비트코인 등 널리 알려진 코인들은 투자 수단으로서 인정을 받았지만 ‘화폐’로는 인정받지 못했다. 가치의 변동성이 심해 화폐의 주 기능인 거래 및 가치저장 수단으로 활용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 사과 하나를 팔아 받은 암호화폐로 내일 사과 반 개도 사지 못한다면, 거래 수단으로 사용되긴 어렵다. 반면 스테이블 코인은 법정통화와 안정적으로 연동(페깅·pegging)돼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달러를 기준으로 봤을 때, 코인 1개의 가치는 미국 1달러와 동일한 가치를 갖도록 설계돼 있다. 따라서 논리상 스테이블 코인은 거래의 수단으로 비교적 널리 사용될 수 있다.

스테이블 코인의 핵심은 ‘법정통화와의 안정적 가치 연동’이기 때문에, 각 코인 프로젝트는 ‘연동’을 유지할 방법에 대한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가장 기초적인 해결 방법은 발행한 코인의 가치만큼 현금성 자산을 담보해두는 것이다. 예컨대 100달러를 담보로 가진 기업이 스테이블 코인 100개를 발행한다면, 코인 한 개당 가격은 1달러로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만약 코인의 가치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 등장한다면 이를 1달러 화폐로 바꿔주면 된다. 확실한 담보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1코인이 1달러의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을 신뢰할 수 있다.

그러나 테라폼랩스는 전통적 방식의 해법을 채택하지 않았다. 담보 대신 내놓은 해법은 알고리즘이었다. 2019년 4월 공개한 백서(white paper)에서 테라폼랩스는 ‘테라 프로토콜’(프로토콜)이라는 알고리즘을 통해 스테이블 코인의 가치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어떻게 알고리즘이 코인의 가치를 유지시킬 수 있다는 것일까? 여기서 상술한 두 가지 명제가 소환된다. 테라폼랩스는 연동이 무너질 경우(디페깅·de-pegging), 알고리즘이 두 가지 명제를 활용해 가치 연동을 회복하도록 설계했다.

밀물과 썰물 같은 ‘테라 프로토콜’

먼저 1UST의 가격이 1달러보다 더 높아진 상황을 살펴보자. 예컨대 1UST가 1.1달러인 상황이라면 UST의 가격을 낮춰야 한다. 여기서 명제 1이 활용된다. 초과공급이 발생하면 가격이 낮아진다는 점을 활용해, 의도적으로 초과공급을 만든다. 그렇다면 어떻게 초과공급을 만들 것인가? 이번엔 명제 2가 활용된다. 차익 거래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프로토콜은 투자자들로 하여금 1달러를 내고 1UST를 받아갈 수 있게 한다. 1달러로 1.1달러 가격의 1UST를 받은 후 시장에 판매하면 투자자는 어떠한 리스크도 없이 0.1달러를 벌 수 있다. 이때 각 투자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UST를 구입하지만, 결과적으로 UST의 가격이 안정되는 데 일조한다. UST의 공급량이 늘어나면 초과공급이 발생해 가격이 하락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1UST의 시장가격이 1달러를 초과하는 경우, 프로토콜은 1UST를 시장가보다 저렴한 가격(=1달러)에 받을 수 있는 차익거래 기회를 제공해 의도적으로 초과공급을 만들어 가격을 낮춘다. 모든 과정은 알고리즘을 따라 자동적으로 시행된다.

그렇다면 어떤 과정을 통해 UST를 받을 수 있게 할 것인가?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담보 토큰 ‘루나’다. 프로토콜은 법정화폐가 아닌 담보 토큰 루나를 이용해 차익 거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1달러어치의 루나를 시스템에 전송하면 1UST로 교환해주는 것이다(시스템에 전송된 루나는 ‘소각’되거나 투자를 위한 펀드로 적립된다). 차익 거래가 실현되면 루나의 가격 역시 변동한다. UST로 교환하기 위해 시스템에 루나를 보내면, 시장에 유통되는 루나의 양이 줄어들어 루나 가격이 상승한다. 이러한 알고리즘을 통해 루나는 UST의 가격 변동성을 흡수해주는 ‘뒷배’, 즉 담보처럼 기능한다.

이제 반대로 1UST의 가격이 1달러보다 낮아진 상황을 가정해보자. 예컨대 1UST의 가격이 0.9달러가 되는 상황이다. 가격을 높이기 위해 프로토콜은 의도적으로 초과수요 상태를 만든다. 마찬가지로 차익 거래의 기회를 제공해서다. 1UST의 가격이 1달러보다 낮아진 경우, 알고리즘에 따라 투자자들은 1UST를 시스템에 전송해 1달러어치의 루나를 받을 수 있다(시스템에 전송된 UST는 ‘소각’된다). 0.9달러 가격의 1UST를 1달러어치의 루나로 교환할 수 있기 때문에 투자자는 0.1달러의 이윤을 얻는다. 루나로 교환하기 위해 UST를 시스템에 전송했기에 시장에 유통되는 UST는 줄어든다. 이는 초과수요 상태를 만들어 UST 가격이 상승하게 만든다. 반면 추가 물량이 유통된 루나 가격은 하락한다.

테라폼랩스 측은 이 과정을 지구와 달의 관계에 비유한다. 달이 지구의 밀물·썰물을 일으켜 생태계를 일정하게 유지시키듯, 루나가 테라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는 뜻이다. ‘지구’를 의미하는 단어 테라(terra)와 ‘달’을 의미하는 루나(luna)로 명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백서를 통해 제시된 테라폼랩스의 대담한 기획은 논리적으로 매우 타당해 보인다. 그 누구의 의지에 기댈 필요도 없이, 논리와 알고리즘이 스테이블 코인의 가치를 지켜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테라폼랩스 측이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금융시스템의 근간을 이루는 자원은 신뢰이며,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어떤 논리와 시스템도 무력해진다는 사실이다. 약 3년간 끝없이 성장하던 테라는 금융의 역사가 증명한 냉혹한 사실을 간과한 대가로 처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테라 스테이블 코인에는 시스템 안에 내재된 불안 요소들이 있었다. 먼저, 서로를 지탱하던 테라-루나가 최악의 상황에서는 서로를 끌어내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과 같이 UST의 가격이 급락하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UST 가격이 하락할 때, 프로토콜은 연동을 회복하기 위해 1UST를 1달러어치의 루나와 교환한다. 시스템에 들어온 UST는 소각돼 UST 가격이 상승하지만, 루나의 유통량이 늘어났기 때문에 루나 가격은 하락한다.

그런데 UST의 가격 하락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면, 루나의 가격은 점점 더 큰 폭으로 하락한다. 1UST와 교환되는 루나의 양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UST와 교환되는 것은 1개의 루나가 아닌, ‘1달러어치’의 루나다. 따라서 루나의 가격이 떨어진다면 교환의 대가로 지급해줘야 할 루나의 개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다. 예컨대 루나의 가격이 2분의 1이 됐다면, ‘1달러어치’ 루나의 토큰 개수는 전보다 2배가 되는 것이다. 이는 유통량의 폭증을 불러일으킨다. 5월7일께 3억4000만 개 수준이던 루나 유통량이 불과 일주일 뒤 6조5000억 개 수준으로 늘어날 정도였다.

가격 하락으로 인해 루나를 팔고 탈출하려는 투자자들의 행렬까지 더해지면 루나의 가치 하락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더 큰 문제는 루나 가격의 급락이 테라 생태계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생태계 자체가 불신을 받게 되면 이는 다시 UST 가격의 하락으로 이어지고, 루나의 추가 유통 및 가격 하락을 불러일으킨다. UST 가치 하락과 루나 가격 하락이 서로의 원인과 결과가 되며 서로를 끌어내려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이자율 20% 약속하며 이용자 모아

더욱이 더 많은 이용자를 끌어 모으기 위해 테라 측에서 출시한 금융서비스인 ‘앵커 프로토콜’(앵커)은 UST의 기초체력을 약하게 만들었다. 백서에 따르면, 테라폼랩스는 스테이블 코인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으로 가치 연동의 안정성과 함께 ‘네트워크 효과’를 꼽았다. 네트워크 효과란 한 상품을 사용하는 사람이 늘어났을 때 이용자들이 더 많은 편의성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중고거래 플랫폼에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수록 모든 참여자의 효용이 높아지는 것과 같다. 스테이블 코인도 마찬가지다. 더 많은 사람이 이용할수록, 화폐로서의 기능이 강화된다. 따라서 각 스테이블 코인 프로젝트는 상당 수준의 이용자를 모으기 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테라폼랩스가 제시한 것은 고이율의 예금 서비스였다. ‘앵커’라는 서비스(일종의 은행 같은 역할)에 자금을 예치하면, 대략 20% 수준의 높은 이자를 지급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용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앵커는 테라폼랩스의 ‘돈 먹는 하마’가 됐다. 높은 이자를 얻기 위해 예금은 크게 증가한 반면, 대출 증가는 미미했기 때문이다. 추락이 시작되기 전날인 5월6일 기준, 앵커의 예금 규모는 140억 달러 수준이었지만 대출은 30억 달러에 불과했다(〈그림 3〉 참조). 더욱이 대출이자가 예금이자보다 낮은 역마진 상황까지 더해져 테라폼랩스는 이자 지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테라의 가치 연동을 보장하기 위한 비영리 조직인 ‘루나 파운데이션 가드(LFG)’에서 앵커의 이자 준비금으로 4.5억 달러를 수혈할 정도였다. 그러나 앵커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은 그치지 않았고, 테라가 시장의 신뢰를 잃는 데 일조하게 되었다.

자료:앵커 프로토콜

테라 내부에 잠재됐던 불안 요인들은 5월7일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과 만나 폭풍으로 자라났다. 시작은 ‘커브’에서 발생한 유동성 경색이었다. 커브는 스테이블 코인 간 교환 서비스로, 각 코인이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법정화폐로 비유하자면 일종의 외환거래소와 유사하다. 다른 화폐와 자유롭게 교환이 가능하다면 보유한 화폐를 손해 없이 원하는 대로 처분할 수 있는 가능성(유동성)이 늘어난다. UST는 또 다른 스테이블 코인인 다이(DAI), 테더(USDT), 서클(USDC)로 구성된 ‘커브 3풀(3-pool)’에 연결돼 있었다. 시가총액 기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다른 스테이블 코인들과 손쉽게 교환이 가능했기에, UST의 유동성은 높은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러던 5월7일, 커브 3풀에서 UST의 유동성이 급격히 하락했다. 새로운 유동성 풀인 ‘커브 4풀’로의 이동을 위해 테라가 1억5000만 달러 상당의 UST를 커브 3풀에서 꺼냈기 때문이다. 이 전환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기존 커브 3풀의 UST 유동성이 낮아져 취약한 상태가 발생했다. 문제는 이 타이밍에 누군가 대량의 UST를 처분하며 유동성 경색이 심화됐다는 점이다. 5월7일 오전 10시경(UTC 기준), 한 ‘고래’ 투자자는 8500만 달러 정도의 UST를 일시에 서클(USDC)로 교환했다.

대량 교환은 UST의 유동성을 급격히 고갈시킨다. ‘교환 가능하다고 교환소에 공급된 UST의 양’이 줄어들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커브는 유동성이 부족한 코인 보유자에게 일종의 페널티를 부과한다. 매도·매수 희망 가격 사이 격차(슬리피지)에 대해 유동성이 부족한 코인 보유자가 더 큰 책임을 지게 된다. 결국, 유동성이 더 경색돼 더 큰 슬리피지를 물기 전 탈출하려는 UST 보유자의 행렬이 이어졌다.

테라폼랩스 측이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후속 조치를 급하게 시행한 후, 달러와의 가치 연동은 다시 회복되는 듯했다. 하지만 테라에 대한 시장의 신뢰는 회복되지 못했다. 블록체인 전문 매체인 〈코인데스크 코리아〉는 ‘커브’ 등에서 심화된 UST 탈출이 (중앙화) 거래소에서의 가치 연동 파괴로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사건 발생 다음 날인 5월8일 하루에만 테라의 대표 서비스인 앵커에서 예치금이 16% 이상 빠져나갔으며, 한 투자자가 홀로 2억8500만 달러어치의 UST를 커브와 중앙화 거래소에서 처분하기도 했다. 결국 5월9일 연동은 다시 깨졌고, 회복되지 못했다. 5월13일 테라폼랩스 권도형 대표는 “UST는 사용자에게 신뢰를 너무 많이 잃었다”라며 테라-루나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테라와 루나 폭락으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을 대리해 변호사들이 5월19일 서울 서울남부지검에 권도형 대표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연합뉴스

권도형 대표는 계속해서 테라를 복구할 계획을 밝혔지만 그의 계획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5월13일 ‘테라 생태계 재생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5월17일 권 대표는 ‘테라 생태계 재생 계획 2’를 테라 커뮤니티에 발표했다. 이 계획이 실현되기 위해선 ‘테라 커뮤니티’의 투표에서 제안이 통과돼야 한다.

5월19일 오후 4시 현재 진행 중인 두 번째 제안에 대한 투표의 투표율은 39.45%이며 찬성률은 약 77.97%를 기록하고 있다. 테라 커뮤니티 규정상 제안이 통과되기 위해선 투표율이 40%를 넘어야 하며, 그중 과반이 찬성해야 한다. 그러나 권 대표의 계획을 저지하려는 세력도 만만치 않다. 커뮤니티 참여자들은 제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며, 거부권을 행사한 비율이 33.4% 이상이라면 과반의 찬성을 받아도 제안은 부결된다. 5월19일 4시까지 거부권 행사 비율은 20.28%이다. 권 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테라는 UST 이상의 것이다”라며 UST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테라를 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RFA 자유아시아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첫 마음 첫 다짐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