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디지털성범죄 태스크포스 팀장으로 활동했던 서지현 검사(오른쪽).ⓒ연합뉴스

며칠 전 건물 1층 화장실을 찾다가 깜짝 놀라 악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무 생각 없이 열린 문을 밀고 들어갔는데 어두운 화장실의 변기에 중년 남성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옆 칸에 여자가 들어가면 몰래 보려고 했던 걸까.

한 달 전쯤에는 30대로 보이는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옆으로 휙 지나가더니 속도를 늦추면서 자꾸 뒤돌아 나를 쳐다보았다. 뭔가 이상해서 다른 길로 갔는데 가다 보니 그 남자가 앞쪽에서 자전거를 세운 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지나갈 때 그는 자신의 ‘그곳’을 만지고 있었다.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당하는 성범죄 사건이다. 가해자가 부인하고 다투면 범죄 성부(成否)조차 애매한 사건들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더하다.

N번방 사건의 주요 피고인들이나 높은 형량을 받았지 일상적인 디지털 성범죄는 수사기관에서 가볍게 취급되기 일쑤다. 어느 여성 마사지사는 자신의 몸을 교묘하게 촬영하던 남자를 발견하고 핸드폰을 빼앗으려 했다. 그 과정에서 남자가 어딘가 부딪혔고 오히려 피해자가 역고소를 당했다. 경찰은 합의만 종용할 뿐 그 동영상의 삭제 여부는 알려주지도 않았다.

N번방에 가입한 이들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수백 건 소지 또는 시청했는데도 벌금 또는 집행유예를 받았다. 반면 피해자들이 피해를 회복하거나 보상받은 경우는 드물었다.

지난해 8월 출범한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는 이런 보통의 사안들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나를 포함한 위원 10명과 자문위원 12명은 성범죄 피해자들이 많이 겪는 사건을 놓고 피해자 관점에서 형사절차를 단계별로 짚어가며 문제점과 대안을 검토했다. 그 결과 11차례 권고안을 발표했다. 수사기관에 영상물을 삭제하거나 차단을 요청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권고안, 피해자 측의 사정을 형법상 양형요소에 추가하고 피해자에게 피고인의 반성 여부 등 양형요소에 대한 의견을 묻도록 하는 법 개정 권고안, 개인정보 공개 없이 소액의 민사소송을 제기하기 힘든 피해자들이 형사배상명령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 권고안 등을 냈다. 법무부 차원에서 성범죄와 관련해 이렇게 종합 대책을 마련한 것은 드문 일이다.

범죄 예방 강조하는 법무부 장관, 수사만으론 불가능해

그 일을 위원들과 함께 주도적으로 한 서지현 검사가 한동훈 신임 법무부 장관 취임 직전 원래 소속 검찰청으로 복귀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임기 만료를 석 달 정도 앞둔 시점이고, 위원회 위원들과는 한마디 상의가 없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범죄 예방이 법무부의 주요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범죄 예방은 수사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절차와 내용, 결과 전반에서 피해자들이 긍정적인 경험을 해야 숨어 있던 범죄 가해자가 드러나고 처벌을 받는다. 중요 범죄만 수사했던 검사 출신 장관이 일상에서 여성들이 겪는 성범죄에 얼마나 관심을 가질지 모르겠다. 일상에서 만연한 성범죄야말로 피해자 개개인에게는 심각한 사건이다. 그런 만큼 성범죄는 예방도 엄격한 처벌도 필수적이다.

바로 그 일을 하고 있던, 그 누구보다 피해자 관점을 잘 이해했던 서지현 검사가 왜 임기를 채우면 안 되었을까. 장관이 취임하기 전에 왜 급히 법무부에서 없어져야 할 존재처럼 취급되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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