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하고 있었다. 라디오 채널에서 누군가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플로리다주 파크랜드의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을 전하는 긴급 뉴스 도중 학부모 한 명이 울고 있었다. 사망자만 17명. 1999년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이었다.

“당시 갓 태어난 딸의 아버지였기에” 어린 학생들이 희생된 사건에서 “전과 다른 두려움을 느꼈다”라고 그는 말했다. 자연스레 20년 전 기억이 떠올랐단다. 콜럼바인 사건의 범인들과 희생자들 모두 그와 같은 또래였단다. “나 역시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어서 그 사건 때 많이 힘들었다”라고 말하는 걸 보면, 자신도 희생자가 될 수 있었다는 두려움이 전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나도? 그들처럼 왕따를 당했으니 나 또한 그들처럼? 아마도 이런 생각이 더 큰 두려움이었을지 모른다.

그날 밤, 그는 〈콜럼바인〉이라는 제목의 책을 샀다. 관련 다큐멘터리도 찾아보았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총기 난사 사건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가해자의 부모와 피해자의 부모가 만나는 자리가 있었단 걸 그때 알게 되었다.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설립된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였다. 나는 절대 하지 못할 용서와 화해. 그런데 총기 난사 사건 유족들 가운데 같은 선택을 한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정말 상대를 용서했을까? 정말 제대로 화해했을까? 그 수많은 물음표들이 배우 프랜 크랜즈로 하여금 자신의 연출 데뷔작 〈매스〉의 시나리오를 쓰게 만들었다.

어느 작은 교회. 크지 않은 방에 네 사람이 모인다. 린다(앤 도드)와 리처드(리드 버니) 부부, 게일(마샤 플림턴)과 제이(제이슨 아이삭스) 부부. 6년 전 사건으로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들이 테이블에 둘러앉는다. 용서와 화해를 목적으로 모였지만 어느새 말은 칼이 되어 서로를 찌르기 시작한다.

흔한 회상이나 재연 한번 끼워넣지 않고, 오직 방 안에서 주고받는 대화만으로 영화를 완성한 감독. “그런 영화를 누가 보겠어?” 투자자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지만, 관객과 평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영화여야 했다. 그들의 말에 온전히 집중할 기회가 우리에겐 없었다. 어쩌면 나도? 내 자식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더해 가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생생하게 체험할 영화가, 적어도 내겐 필요했다.

네 사람이 둘러앉은 테이블의 보이지 않는 다섯 번째 의자에 우리가 앉아 있다. 내 자식을 죽인 가해자의 부모를, 내 자식이 죽인 피해자의 부모를, 우리는 번갈아 끌어안고 결국 함께 무너져내린다. 그들의 길고 고통스러운 평생 가운데 우린 고작 111분을 함께할 뿐이다. 그 시간이 길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영화가 힘들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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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마음 첫 다짐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