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1일 사퇴한 독일 녹색당의 안네 슈피겔 가정노인여성청소년부 장관. ⓒdpa

4월11일 독일 연방정부의 아네 슈피겔 가정노인여성청소년부(가족부) 장관이 자진 사퇴했다. 이 녹색당 정치인의 사퇴가 독일 사회에서 공직자의 직무 윤리와 관련해 다양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슈피겔은 지난해 12월 녹색당이 사민당과 연정에 참여하게 되면서 연방정부 가족장관에 임명되었다.

지난해 7월 슈피겔 장관은 10일간 사망자가 180명 넘게 발생했던 대홍수 기간 4주 동안에 프랑스로 휴가를 떠난 사실이 4월 초 일간지 〈빌트〉에 보도되며 비판의 대상이 됐다. 당시 그는 홍수 피해가 가장 심했던 라인란트팔츠주의 환경장관이자 부총리였다. 휴가를 떠날 당시 새로운 홍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기도 했다. 홍수로 인해 라인란트팔츠주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135명에 달한다.

독일 언론은 슈피겔 장관의 휴가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특히 휴가를 떠나기 직전 슈피겔이 방송 인터뷰에서 홍수 피해에 강하게 공감을 표하던 모습이 재조명되었다. 홍수가 난 직후 슈피겔이 부서 직원과 나눈 메시지 역시 문제가 되었다. 그는 부서 직원에게 홍수 피해의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도록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을 전달했다. 기민당 대표인 프리드리히 메르츠는 “슈피겔은 자신의 휴가와 개인 이미지가 피해 지역 주민들의 불행보다 중요했다”라며 사민당 출신 올라프 숄츠 총리에게 그를 해임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슈피겔 장관은 녹색당 내부의 비판, 연정 파트너 정당의 압력, 그리고 여론에 의해 자진 사퇴했다.

휴가 그 자체보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둘러댄 거짓말이 사퇴의 원인이 되었다. 논란이 불거지자 슈피겔은 휴가 기간 중 온라인으로 내각 회의에 참석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로 밝혀졌다. 회의 참석이 계획에는 잡혀 있었지만 실제로는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시인했다. 대다수 언론은 온라인 회의에 참석했다는 슈피겔의 거짓말은 심각한 문제라고 평가했다. 정치권도 이것을 끝까지 문제 삼았다.

오히려 최초에 문제가 되었던 휴가를 두고는 다양한 논쟁이 일어났다. 슈피겔은 자신이 휴가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가족의 특수한 상황을 거론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어 가족사를 자세하게 밝혔다. 2019년 뇌졸중을 앓았던 남편은 지속적인 안정이 필요했고, 코로나19로 등교가 막혀 집에만 있어야 하는 네 자녀의 스트레스도 컸다. 자녀 한 명은 미취학 아동이며, 세 명은 한국 기준으로 초등학교 4학년까지 과정에 해당하는 그룬트슐레에 재학 중이었다. 슈피겔은 “장관으로서의 책임과 네 아이 엄마로서의 책임 사이에 중심을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라며 휴가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설명했다.

다양한 반응이 이어졌다.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 일과 가족 사이에 균형을 잡는 것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며, 기업이나 정부의 고위직 인물에게 개인 생활을 포기하고 지나친 업무와 성과를 요구하는 데 대한 비판도 나왔다. 주간지 〈차이트〉는 ‘숨을 돌릴 수 있는 권리’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정부나 기업의 고위 인사에게 조직과 개인의 어려움이 동시에 찾아왔을 때, 개인의 삶을 돌볼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칼럼은 정부 고위 인사라고 해서 위기 상황에 휴가를 떠나는 것을 무조건 비판하는 건 가혹하며, 조직의 시스템과 동료들의 지원을 통해 휴가를 떠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칼럼은 과도한 업무와 성과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높은 직위에 있는 인사는 가족생활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여성이 자신의 직업을 영위하거나 고위직에 진출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일간지 〈타게스차이퉁〉의 칼럼 또한 슈피겔의 상황을 통해 직업과 여성의 문제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칼럼은 직장에서 높은 성과와 책임이 요구될수록 아이를 가진 여성은 직장을 포기하기 쉬우며, 남성이 육아휴직을 내는 일 또한 어렵다고 지적했다. 간혹 독일에서 주요 여성 정치인의 남편이 자기 직업을 포기하고 가정을 돌볼 때 찬사를 받는 일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고위직에 있더라도 가족과의 삶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이라는 주장이다.

슈피겔의 기자회견이 공감만 불러일으켰던 것은 아니다. 정치인에게는 사기업 관리직과는 다른 책임이 요구되며, 홍수는 생명과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에 일반적 상황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비판도 나왔다. 슈피겔이 자신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기보다는 가족을 무기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슈피겔의 사퇴 성명 또한 비판을 받았다. 그는 성명서에서 자신은 “정치적 압력 때문에 사퇴하며, 커다란 정치적 과제를 가지고 있는 가족부의 업무에 피해가 가면 안 되기 때문에 떠난다”라고 밝혔다. 본인이 한 잘못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2021년 7월18일 홍수 피해가 컸던 라인란트팔츠주를 찾은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가운데). ⓒEPA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윤리는?

슈피겔 장관의 거취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과거 독일 정치인들의 다양한 사퇴 사례가 재조명되기도 했다. 1993년 연방 내무장관직을 사퇴한 루돌프 자이터스의 사례는 책임감 있는 퇴진으로 주목을 받았다. 당시 무장 극좌 단체 ‘적군파’ 조직원 볼프강 그람스를 경찰이 체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일어났다. 특수경찰과 그람스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졌는데 경찰 여럿이 크게 다치고 그람스는 사망했다. 정부 당국은 그람스가 자살했다고 밝혔지만, 일부 언론을 통해 그람스의 사망 원인이 자살이 아니며 이미 저항할 수 없는 상태인 그람스를 특수경찰이 고의로 쐈다는 의혹이 나왔다.

그람스 사건은 경찰의 과잉 폭력과 연결돼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경찰이 그람스를 사살했다는 의혹은 증명되지 않았고, 자이터스는 경찰 출동을 직접 명령한 당사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논란이 커지자 그는 경찰 업무를 총괄하는 내무장관으로서 모든 책임을 지고 헬무트 콜 총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진 사퇴했다.

반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연방 교통장관을 지낸 기사당 정치인 안드레아스 쇼이어는 명백한 정치적 책임이 있음에도 사퇴하지 않은 사례로 언론에 거론되었다. 쇼이어는 2019년 외국 차량에 고속도로 통행료를 부과한다는 독일 정부의 계획이 유럽 사법재판소에서 차별금지법 위반 판결을 받으면서 비판에 직면했다. 교통장관인 쇼이어가 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 통행료 부과 인프라를 설치하기 위해 업체들과 계약을 맺은 것이다. 게다가 인프라 설치가 진행되지 않으면 정부가 업체에 위약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이 계약서에 있었다. 결국 업체들은 약 5억6000만 유로의 위약금을 요구했다. 언론과 정치권은 쇼이어의 퇴진을 강하게 외쳤고, 당시 여론조사기관 유고브(YouGov)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60%가 쇼이어의 퇴진에 찬성했다. 반대는 고작 13%였다. 하지만 그는 임기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다. 당시 정부와 기사당 내부에서 사퇴 압력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프란치스카 기파이 베를린 시장. 논문 표절 시비로 지난해 5월 가족장관직을 사퇴했다. ⓒdpa

논문 표절, 저렴한 대출, 휴가 비용···

경제지 〈한델스블라트〉는 슈피겔 장관의 사퇴 직후 과거 연방정부 내각 인사의 대표적인 스캔들과 퇴진 사례를 재조명했다. 가장 빈번한 문제는 논문 표절이었다. 근래에는 메르켈 4기 정부의 가족장관이었던 프란치스카 기파이가 지난해 5월 정치학 박사 논문 표절 시비가 일자 장관직을 사퇴한 사례가 있다. 사퇴 3주 뒤 베를린 자유대학은 그의 박사학위를 박탈했다. 하지만 그는 그해 12월 베를린 시장이 된다.

2002년 슈뢰더 정권에서 사퇴한 사민당 출신 루돌프 샤르핑 국방장관 사례는 대표적인 뇌물 스캔들이다. PR 컨설턴트인 모리츠 훈칭어가 샤르핑의 고급 양복 값을 대신 지불하고 무료로 국방장관의 개인 홍보를 컨설팅해준 것이 문제가 되었다. 훈칭어는 기업과 정치권을 연결하는 컨설팅을 주로 해왔으며 방위산업체를 고객으로 두고 있었다. 거기다 과거 샤르핑이 훈칭어가 주최한 행사에서 발표를 한 대가로 고액의 사례비를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훈칭어와 연루된 정치인은 샤르핑만이 아니었다. 현재 연방정부 식품농업장관인 녹색당의 젬 외즈데미어도 2002년 훈칭어와 연루되어 홍역을 치렀다. 당시 그는 훈칭어에게 시중보다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 문제가 되었다.

2012년 대통령직에서 사퇴한 크리스티안 불프의 사례 또한 독일의 대표적인 정치인 뇌물 스캔들이다. 그는 니더작센주 총리로 재직하던 2008년 부동산 구입을 위한 비용을 마련하며 기업인으로부터 시중보다 낮은 금리의 사채를 조달한 의혹을 받았다. 또 친분이 있는 영화제작자로부터 휴가 비용을 지원받은 혐의도 있었다. 불프가 이러한 의혹을 보도한 언론사에 협박성 전화를 한 것이 드러나면서 강한 비판을 받았다. 결국 독일 검찰은 불프를 기소하기 위해 연방의회에 대통령의 면책권 박탈을 요청했고, 다음 날 불프는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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