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맨 왼쪽)이 5월3일 대전차미사일 재블린 생산 공장을 방문했다.ⓒAP Photo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전의 늪에 빠져들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전쟁은 최근 들어 미국은 물론 유럽연합(EU)의 대(對)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이 대폭 확대되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원치 않았던 국제전 양상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국제 공급망 차질과 소비지출 확대 등으로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40년 만에 최고치인 8.5%를 기록한 상태다. 올여름까지 물가를 잡지 못하면 민주당이 오는 11월 의회 중간선거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크고, 그 경우 바이든 대통령은 남은 임기 2년 내내 국정 수행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 이후 무엇보다 코로나19 대처와 경제난 극복에 전념했고, 전임 트럼프 행정부 시절 망가진 동맹관계를 회복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그의 국정 우선순위가 확 바뀌었다. 우크라이나 원조가 국정 최우선 순위에 올라 있다.

미국 의회도 마찬가지다. 의회는 바이든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요청을 즉각 수용했는가 하면, 복잡한 규정을 거치지 않고 우크라이나에 신속히 무기를 대여할 수 있도록 81년 만에 무기대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민주당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4월30일 공화·민주 양당 의원들과 함께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했다. 그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전폭 지원을 다짐했다.

미국인 대다수도 우크라이나 지원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10명 가운데 7명 이상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전폭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정부와 의회, 국민이 똘똘 뭉쳐서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섰다고 봐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전쟁 초기 136억 달러의 군사 지원에 이어 4월 하순 또다시 330억 달러를 의회에 요청한 것도 이 같은 전폭적 지지 여론 때문이다.

미국의 막대한 군사 지원 덕분에 우크라이나 군은 러시아 군을 상대로 잘 버티고 있다. 이대로라면 몇 달, 아니 몇 년도 끄떡없이 항전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종전 협상의 가능성도 그만큼 멀어진다는 게 문제다.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최소한 몇 년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았다. 수도 워싱턴 DC에 있는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국방 전문가 션 모너건 객원 연구원은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 최근호에서 “푸틴은 미국 등 서방이 러시아를 망가트리려 한다고 본다. 여기에 더해 바이든 대통령이 ‘푸틴은 권좌에 남아선 안 된다’고 한 발언까지 감안하면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확대시키고, 종전 협상을 더욱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실제 우크라이나 전쟁이 최근 장기전으로 돌아선 데는 미국의 노선 수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바이든 대통령은 330억 달러의 군사·경제 지원액을 의회에 요청하며 “러시아의 침략행위를 응징하고, 향후 러시아가 개입한 분쟁 위험을 줄이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바이든의 발언 직후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우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과 같은 일을 다시는 벌일 수 없을 만큼 약화되길 원한다”라며 구체적으로 미국의 속마음을 드러냈다. 미국의 목표가 단순히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이 아닌 ‘러시아 군 약화’에 있음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셈이다.

중간선거 앞두고 정치적 부담

그러자 러시아도 발끈했다.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미국이 러시아와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라고 맹비난하면서, 미국의 개입 시 핵전쟁 가능성을 경고했다. 푸틴도 “러시아의 직접 위협에 대응할 모든 수단을 갖고 있다”라면서 핵무기 사용을 경고하고, “불가피하다면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관리들은 ‘러시아 군 약화’로 노선을 수정한 미국의 새 방침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 같은 방침이, 미국이 최근까지 지켜온 ‘한계선’을 넘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미국은 러시아와 직접 군사 충돌을 피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영공에 대한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반대했고, 공격용 무기 공급도 꺼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 군의 민간인 잔학 행위가 속속 드러나고 우크라이나 군의 저항이 예상외로 거세자 미국도 공격적 노선으로 급선회했다. 미국이 최근 우크라이나에 피닉스 드론, 견착식 대전차미사일 재블린, 지대공미사일 스팅어, 공격용 Mi17 헬기 등 공격용 무기까지 공급한 것도 그래서다.

4월30일 키이우에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왼쪽 세 번째).ⓒUPI

뚜렷한 종전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양국 간 종전 협상은 더욱 멀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이 전쟁 종식을 위해 푸틴과 정치적 해법을 모색하는 게 급선무인데 확전 쪽으로 나간다면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찰스 쿱천 조지타운 대학 교수는 〈포린 폴리시〉에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재블린 같은 대전차미사일을 더 많이 공급하는 것을 넘어서 전쟁 종식을 위한 정치적 해법을 서둘러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부시 행정부 시절 중앙정보국(CIA)에서 러시아 분석 책임자를 지낸 조지 비비는 “종전 합의를 위해 미국이 제재를 완화할 용의가 있다는 의사를 직접 러시아에 전달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협상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종전 협상에 적극적이던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국의 전폭적 지원에 용기를 얻은 듯 종전보다는 항전에 치중하는 느낌이다. 그는 러시아가 요구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를 받아들이는 대신 미국 등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안전보장을 내세우며 종전 협상에 적극적이었다. 그런 그가 소극적 태도로 돌아선 데는 미국의 전폭적 지원과 더불어 최근 러시아 군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 행위가 우크라이나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어 항전을 선호하게 만든 탓도 있다. 하지만 전쟁 피난민이 530만명을 넘어섰고, 전쟁으로 인한 인적·물적 피해가 천문학적으로 불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국민 대다수는 여전히 신속한 종전을 바란다.

미국은 올가을 의회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는 선거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 되고 있다. 민주당은 하원에서 공화당보다 고작 14석 많고, 100명 정원인 상원은 50명씩 양분한 상태다. 민주당이 선거에 참패하면 상·하원 모두 공화당에 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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