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동편제마을의 숙소 ‘휴락’. 흑돼지로 만든 샤르퀴트리를 즐길 수 있다.ⓒ고재열 제공

2년 전 기자를 그만두고 ‘여행감독’을 시작했다. 저널리즘에서 투어리즘으로 적을 옮기던 바로 그때 코로나19가 발발했다. 이사 갈 마을을 언덕 위에서 조망하는데 불이 활활 타오르는 광경을 보는 기분이었다. 불길은 점점 거세져만 갔다. 그래도 언젠가 불이 꺼지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것 같아서 마냥 기다렸다.

영화 〈기생충〉과 BTS의 활약으로 한류 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진 가운데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이 연달아 히트하고 애플TV플러스에서 〈파친코〉가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커졌다. 그러면서 코로나19가 극복되면 해외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려들 곳이 한국이라는, K관광에 대한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온다.

여행감독 처지에서 K관광에 대한 이런 예상을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해외에 나가지 못한 지난 2년 동안 여행감독으로서 국내 여행지를 숱하게 답사했다. 그때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좋은 곳이 많구나’ ‘우리나라에 이렇게 좋은 곳이 생겼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했지만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다. 이를 가감 없이 전해보려 한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숙박이다. 이는 일본과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일본 관광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숙박이다. 일본의 지역 관광을 떠받치는 숙박은 세 개의 축으로 형성된다. 하나는 중급 온천호텔이다. 어디를 가나 만족할 만한 가격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다음은 고급 료칸이다. 한마디로 돈값을 하는 곳이다. 마지막은 그 지역 출신 기업가가 지어놓은 대형 호텔이다. 대규모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

일본 숙소의 공통점은 만족할 만한 식사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숙소에서 식사를 하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일찍 숙소에 들어온다. 대욕장에서 목욕을 마친 뒤 식사를 하며 숙소에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숙소는 식사를 제공하는 곳이 거의 없다. 있어도 투숙객들이 좀처럼 이용하지 않는다. 한국의 숙소는 그야말로 숙박을 위한 장소다. 일본 숙소와 비교할 때 만족도에서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나주에 있는 ‘3917마중’은 방치된 한옥 지구 4000평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일궜다. ⓒ고재열 제공

한국은 지난 20여 년 동안 숙박이 펜션과 모텔(러브호텔) 위주로 발달했다. 여행의 관점에서 볼 때 현재는 선호되지 않는 숙박 형태다. 서울·부산·제주를 제외하면, 관광객을 위한 숙박 인프라가 충분히 구축된 곳은 여수와 경주, 강릉과 속초 정도다. 외국인들의 한국 관광 수요가 갑자기 늘어나도 이를 수용할 숙소가 부족하다.

천편일률적인 한국형 관광식당

지자체가 숙소 개발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가보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 대부분이다. 잘 만들어진 곳도, 제대로 운영되는 곳도 거의 없다. 대부분 어설픈 단체 숙소라서 만족도가 낮다. 법률 검토를 제대로 하지 않아 지어놓고 제대로 영업하지 못하는 곳도 즐비하다. 탁상행정이라고 부르기도 부족한 ‘묻지 마 행정’의 산물이다.

물론 ‘앞으로 언젠가 한국형 숙박의 전범으로 발전하게 될지 모른다’라는 기대를 품게 하는 모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전북 남원 동편제마을의 ‘휴락’과 전남 나주의 ‘3917마중’이었다. 가히 ‘오성급 마을숙소’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휴락에서는 지리산 흑돼지로 만든 샤르퀴트리(육가공품)를 즐길 수 있다. 방치된 한옥 지구 4000평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일군 나주 3917마중의 목서원과 난파정은 이제 드라마 촬영 명소로 거듭났다.

마을 호텔을 표방하는 주목할 만한 곳도 있다. 수직의 호텔을 수평으로 눕힌다는 발상 아래 마을의 이야기를 풀어내 구현한 숙소들이다. 한옥 숙소 봉황재를 중심으로 권오상 대표가 공주에 구축하고 있는 ‘제민천’ 마을스테이 사업과 강경환 대표가 주도하는 정선의 ‘고한18번가’를 꼽을 수 있다.

문화적 도시재생을 통한 관광 활성화의 좋은 사례로는 광주 양림동의 ‘십년후그라운드’를 꼽을 수 있다. 여행자들과 커뮤니티를 통해 광주의 속살을 보여주는 양림동을 어떻게 가꿔나갈 것인지 컨센서스를 공유하면서 ‘톤 앤드 무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완만한 개발을 이끌고 있다.

제천 ‘미식이와 떠나는 셀프 맛여행’ 코스 중 한 곳인 카우보이그릴.ⓒ고재열 제공

숙박 다음으로 들여다볼 부분은 식사인데 한국형 ‘관광식당’이 외국인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걱정이다. 너무 천편일률적이다. 영광 법성포에는 굴비정식 식당이 수십 곳이고, 보성 벌교에는 꼬막정식 식당이 수십 곳 있다. 부안 곰소에는 젓갈정식 식당이, 나주 영산포에는 홍어정식 식당이 역시 여러 곳 있다.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똑같은 메뉴의 상차림일 뿐인데, 어떤 식당을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을까.

지역 맛집 정보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소셜미디어에 익숙한 2030의 취향이 과잉 대표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의 ‘노포’들은 위생과 인테리어, 서비스 등이 안 좋다는 이유로 ‘별점 테러’를 당하고 있다. 지역적으로 봐도, 제주나 강원 동해안 지역 등 2030 세대가 주로 여행하는 곳들이 맛집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쪽에서는 ‘공장제 요식업’이 발달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마케팅에 성공한 곳들은 수도권 관광객의 입맛에 맞춰 공장만 한 규모의 식당을 운영하며 맛을 규격화한다. 현지 정보가 없는 관광객들은 이런 곳에 몰려들어 관광지 식당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생기는데, 대체로 특색이 사라지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지자체마다 미식 관광을 강조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제천시가 소기의 성과를 이뤘다. 사실 충청북도는 광역지자체 중 ‘맛있는 지역’으로 꼽히지 않는 곳이고 제천은 특별히 각인된 특산물도 없어서 미식 도시가 되기에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이런 열악한 조건에서도 ‘가스트로 투어’ ‘마을 맛여행’ ‘미식이와 떠나는 셀프 맛여행’ 등 미식 관광 3종 세트를 개발했다.

숙박과 식사 다음은 이동, 즉 모빌리티 서비스다. 승차 공유 서비스 ‘타다’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다른 모바일 서비스에 비해 모빌리티 서비스는 쉽지 않다. 기득권의 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승합차와 미니밴 공유 서비스 ‘무브(MOVV)’가 등장해 각광받고 있다. 6~12인 정도의 중소 규모 여행에 적합한 이동수단을 제공하는데 앞으로 쏘카(SOCAR)처럼 활성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KTX 정차역 위주로 서비스되고 있지만 국내관광이 활발해지면 전국적인 망을 형성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숙박과 식사와 이동이라는 관광의 기본 요소 외에 살펴볼 부분은 바로 관광 콘텐츠다. 모든 지자체가 뭔가 하고 있지만, 실질적 성과를 내는 콘텐츠는 드물다. 지역의 관광진흥 사업이나 활성화 사업에는 공통점이 있다. 지원금이 지급되는 기간까지만 진흥되거나 활성화되고 지원금이 끊기면 바로 내리막이다. 사업도 잊힌다. 다음 담당자는 이전에 진행된 사업의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하드웨어 개발 사업에 집중되어 있다. 지자체에서는 관광과가 또 하나의 토목·건축과로 인식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중앙정부의 관광예산 지원이 늘면서 환경파괴도 극심해졌다. ‘대한민국 테마 10선’ 등 소프트웨어 개발 방식의 관광개발 사업도 있지만 드문 사례다.

MZ 세대가 발굴해낸 비밀의 정원

케이블카, 짚라인, 출렁다리, 스카이워크, 모노레일에 이어 요즘 지역에서 각광받는 것은 바다낚시터 데크다. 지역관광 개발사업 심사를 가보면 바다낚시터 데크를 설치하겠다는 곳이 많다. 물 위로는 난간이 있는 데크 시설 정도만 보여서 간단한 듯하지만, 물 아래로 기둥을 깊숙이 박아야 해서 공사비가 제법 든다. 간단히 계산기를 두들겨봐도 30년 동안 매 주말 관광객들이 데크를 꽉 채워야 겨우 건설비를 뽑는 수준이다. 건설업자 배만 불려주는 꼴이다. 이런 관광시설이 부지기수인데도 끝없이 ‘신상’ 개발계획이 나온다.

대형 여행사의 국내관광 개발 의지도 박약하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막히자 여행사들은 “앞으로 국내관광이 각광받을 것이다”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대형 여행사 중에서 적극적으로 국내 여행 상품을 개발한 곳은 보기 힘들다. 몇몇 여행사에서 섬 트레킹을 포함한 국내 패키지여행을 개발하기도 했으나 이내 시들해졌다. K관광이 부상하더라도 팔 상품이 없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지자체와 여행사들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국내관광 활성화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움직임은 바로 MZ 세대의 활약이다. 지역의 MZ 세대가 스스로 움직이고 있는데, 대표 사례가 평창의 ‘와우미탄’ 프로젝트다. 미탄면의 MZ 세대 청년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마을여행 프로젝트로서, 동강 어름치마을부터 은행나무 숲을 거쳐 청옥산 중턱의 산너미목장까지 마을의 자원을 바탕으로 관광 코스를 개발하고 있다. 청년들의 자발적 도시재생 프로젝트인 목포의 ‘괜찮아마을’이나 문경의 지역개발 프로젝트 ‘달빛탐사대’도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있다.

MZ 세대가 만든 공간이 ‘관광을 통한 지역재생’의 구심 역할을 하는 모습을 두루 볼 수 있다. MZ 세대의 감성이 국내관광 활성화에 결정적 기여를 하는 것인데 대표적인 곳이 경주 황리단길이다. 황리단길이 보여주는 독특한 심상, ‘식민화되지 않은 1930~1940년대의 조선 귀족사회’를 보여주는 듯했다. 대체로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관광명소가 만들어지고 있는 상업구역은 대부분 이런 ‘톤 앤드 무드’를 구현했다.

ⓒ고재열 제공

MZ 세대의 관광 기여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지역의 시그니처가 될 만한 카페를 만들어낸 점을 꼽을 수 있다. 문경의 고택을 리모델링한 ‘화수헌’이나 부산 영도의 공장을 바꾼 ‘피아크’ 같은 카페는 도심에서는 만나기 힘든 공간이다.

MZ 세대는 이용자 측면에서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이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역 마케팅을 대신해준다. 자신들의 눈으로 지역을 재해석해 알린다. 안동댐 옆 ‘낙강물길공원’이 대표적이다. 한국수자원공사 관할 지역이어서 안동시도 적극 홍보하지 않던 곳인데 이들이 ‘비밀의 정원’이라며 이 공원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여행감독으로서 닥쳐올 K관광 시대에 우려 섞인 기대를 하고 있는데, 그나마 믿을 구석이라면 바로 이런 MZ 세대의 감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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