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3일 인천시 연수구 송도유원지 중고차 수출단지에 중고차들이 가득 주차해 있다.ⓒ연합뉴스

말 많고 탈 많던 중고차 시장에 일대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3월17일, 현대차를 비롯한 완성차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공식 승인됐다.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장관 소속의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심의위)가 “중고차 판매업은 생계형 적합업종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의결하면서다.

당초부터 중고차 판매업이 대기업의 진출이 금지된 업종이었던 것은 아니다. SK엔카 등 대기업이 이미 중고차 시장에 진출해 있었다. 그러다 2013년 3월1일, 동반성장위원회(동반위)가 중고차 판매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권고했다. 이로써 대기업의 신규 진출 및 사업 확장이 제한되었던 것이다.

최근의 갈등은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만료되며 시작됐다. 2019년 2월부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기한이 끝나자, 소상공인 단체들이 나섰다. 이들은 중고차 판매업을 대기업이 들어올 수 없는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생계형 적합업종이란 2018년 12월 시행된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지정된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만료되는 업종의 소상공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19년 11월, 동반위는 중고차 판매업이 생계형 적합업종에 ‘일부 기준 미부합’한다고 판단했다. “대기업의 시장점유율이 하락하고, 산업경쟁력과 소비자 후생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에서였다. 동반위는 특정 업종의 생계형 적합업종 부합 여부를 판단하고, 중기부에 추천하는 역할을 한다. 외형적으론 대기업의 손을 들어준 판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소상공인 단체는 ‘5만여 종사자의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반발했다. 대기업 완성차 업계는 자신들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지 못하면 국제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의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양측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산하의 ‘중고차매매산업 발전협의회’에서 협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결국 합의는 실패했다. 그 결과, 앞서 나온 것처럼 중기부와 심의위가 중고차 시장의 향방을 결정짓게 됐다.

합의 실패의 결정적 요인은 ‘차량 매입’ 문제였다. 양측은 완성차 업계의 시장점유율을 10%로 제한하는 것에 합의했다. 소상공인 단체들은 완성차 업계에게 차량 매입 역시 10%로 제한하라고 요구했다. 쉽게 말해, 직접 고객에게 판매할 차량만 매입하라는 것이었다. 반면 완성차 업계는 차량 매입을 제한 없이 하겠다고 주장했다. 고객이 자신의 중고차를 완성차 업계에 팔기 원한다면 받아줘야 한다는 논리였다.

완성차 업계는 왜 자신이 팔지도 않을 차량을 매입하려 할까? 이는 완성차 업계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려는 주된 목적이 ‘보상판매(트레이드 인)’와 ‘데이터 활용’이기 때문이다. 보상판매란 고객의 중고차를 매입해주는 조건으로 신차 구매 시 할인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까지는 신차 구매 시 고객이 자신의 중고차를 직접 판매하거나 신차 판매업소를 통해 소개받은 업체에 매도하곤 했다. 완성차 업계는 중고차 매입과 신차 판매를 한 시스템으로 묶어 충성 고객을 확보할 계획이다. 그러니까 대기업 입장에서는 ‘중고차 매입=신차 판매’의 구조가 만들어지게 된다.

데이터 수집 및 활용도 중요했다. 중고차 시장 진출을 통해 생산부터 폐차까지, 자동차의 전 주기에 따른 데이터를 수집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김주홍 상무는 “완성차 업계에서 직접 데이터를 수집함으로써 차량 판매 흐름에 따른 정보 단절을 방지하고, 데이터의 신뢰도를 제고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중고차 매입 과정에서 대기업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사 차량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소비자는 어떤 차량을 더 선호하는지’ 등의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이 데이터는 신차 기획 및 생산에 활용돼 더 나은 차량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완성차 업계의 설명이다. 완성차 업계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려는 진짜 목적이 보상판매와 데이터 활용 두 가지라면, 중고차의 자유로운 매입은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이 된다. 더 많은 중고차를 매입하면 할수록, 신차 판매와 데이터 수집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기존 중고차 업계는 ‘무제한 매입’이 업체들의 매출이익을 극단적으로 하락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완성차 업계는 자신들이 판매하지 않는 차량을 경매로 기존 중고차 업체들에게 판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고차 업계는 이 과정에서 상품 매입 가격이 올라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차량을 저렴하게 매입하는 것이 중요한 중고차 업계 처지에서 이는 치명적이다. 경기도자동차매매사업조합 엄태권 조합장은 “유통단계가 하나 늘어나면 마진이 붙게 되고, 중고차를 매입하는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우려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유통마진에 대해서는 정해진 바가 없다”라고 답했다.

소비자들은 ‘대기업의 시장 진입’에 우호적

소비자들은 대체로 완성차 업계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소비자주권시민회의의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의 56.1%가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에 찬성했다. 시장 투명화 및 선진화(56.3%), 신뢰할 수 있는 가격 산정(44.1%) 등이 이유로 꼽혔다. 2020년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조사에서도 찬성이 63.4%로 나타났다. 현대차 역시 소비자 권익 증진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2020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김동욱 현대차 부사장(당시 전무)은 중고차 사업 진출 계획을 처음으로 인정하며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완성차가 반드시 (중고차) 사업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말 완성차 업계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게 되면, 시장을 투명하게 만들고 소비자의 후생을 증진시킬 수 있을까? 중고차 시장 진출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현대차의 사업계획이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2월24일 국회 앞에서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회원들이 현대·기아차의 중고차 시장 진입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김흥구

3월7일 현대차가 공개한 중고차 사업 방향에 따르면, 소비자 권익을 증진시킬 수 있는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인증 중고차’ 사업을 실시한다. 현대차는 “제조사로서 보유한 기술력을 활용해 200여 개 항목의 엄격한 품질검사를 통과한 차량만 선별해 상품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현대차의 말처럼, 제조사에서 직접 차량을 정비한 후 판매한다면 소비자들은 중고차의 품질을 비교적 높은 수준으로 신뢰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허들이 있다. 인증 중고차의 대상이 ‘연식 5년 이하, 주행거리 10만㎞ 이하 차량’으로 한정된다. 중고차 시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주로 오래되거나 주행거리가 긴 차량에서 발생한다. 반면 5년·10만㎞ 이하의 차량은 비교적 고품질 차량일 확률이 높다. 따라서 인증 중고차 제도가 대기업 자신의 중고차 상품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는 있지만, 시장 전반의 신뢰도를 높이긴 어렵다.

그렇다면 연식 5년 또는 주행거리 10만㎞ 이상의 차량은 어떻게 될까? 이 차량들은 여전히 기존 중고차 매매 업체들이 담당할 수밖에 없다. 즉, 불신의 주범인 ‘노후 차량’을 불신의 대상인 기존 중고차 업계가 떠맡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중고차 업계의 주장처럼 유통마진이 더 붙으면서 저품질 차량의 가격이 오를 가능성도 있다.

메기의 등장인가, 공룡의 등장인가

중고차 업계는 더 나아가 5년·10만㎞ 이하라는 기준이 ‘소비자 권익 증진’이라는 현대차의 명분과 모순된다고 주장했다. 현대차는 현재 판매 중인 모든 승용차와 SUV 차량의 엔진 및 동력전달 주요 부품에 5년·10만㎞의 보증기간을 적용한다. 즉, 인증 중고차 대상 차량들에서 발견되는 주요 결함은 원래 현대차에서 무상 AS를 제공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엄태권 조합장은 “어차피 자신들이 AS해줘야 될 차량들을 수리해 판매하면서, 마치 중고차 시장 전반의 품질을 높여주는 것처럼 홍보한다”라며 비판했다.

현대차는 또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을 구축해 중고차 시장의 ‘정보 비대칭’을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국토교통부와 보험개발원의 정보를 기반으로 현대차가 수집한 자체 정보를 결합해, 투명한 중고차 정보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포털의 시장 개선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와 보험개발원이 2018년부터 ‘자동차 365’ 포털을 통해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델별 시세, 사고 및 보험수리 이력, 침수 여부, 허위 매물 여부 등을 모두 ‘자동차 365’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대차가 수집한 정보가 더해져 정보의 질이 나아질 수는 있지만, 중고차 시장의 판도를 바꿀 혁신이라 평가하기엔 무리가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신차가 174만 대 팔리는 동안 중고차는 257만 대가 거래됐다. 개인 간 거래까지 포함하면 387만 대까지 늘어난다. 신차 시장에 비해 훨씬 큰 규모임에도, 중고차 시장은 그동안 불투명하고 사기가 많다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중고차 거래업체 스스로 소비자들이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시장을 정화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 이러한 상황 속, 완성차 업계는 스스로 시장을 건강하게 할 ‘메기’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공룡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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