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일 3월17일 삼성전자 주주총회가 경기도 수원시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물적분할과 자회사 상장 문제로 더욱 불거진 한국의 기업지배구조와 관련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지점이 있다. 주주들은 기업을 비판하고 지배주주를 욕하며 경영자를 비난한다. 그런데 물적분할이나 자회사 상장 등을 승인했을 이사회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나 움직임은 별로 없다. 어찌 된 일일까?

주주들이 이사를 뽑아 월급을 주는 이유는 자신들(주주)을 위해 의무를 다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주주들이 월급을 줘가며 일을 시킨 이사들이 주주들에게 해가 되는 결정을 했다 하더라도 멀쩡하게 잘 살아간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 이사들의 결정이 설령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 하더라도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것이 아니라면’ 배임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슨 소리인지 헷갈릴 것이다. 주식회사에선 주주가 주인이므로 주주의 이익이 회사의 이익 아니었나? ‘주주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이 다를 수도 있단 말인가? 게다가 이런 대립은 유독 한국에서 첨예하게 나타난다.

이사회에 대해 교과서가 가르치는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다. 이사회(board of directors)는 경영자를 감시·감독하고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등 기업경영에 핵심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토록 하기 위해선 ‘이사회의 독립성’이 필수다.

당혹스러운 일이지만 교과서에서 좀 배웠다 하더라도 한국에선 이사회와 관련해 많은 것을 다시 익혀야 한다. 한국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경영자와의 관계에서 이사회가 독립적이냐 여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사이의 갈등도 심각하다. 무엇보다 이사회는 독립성과 무관하게 수많은 일반주주들의 이익을 전혀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사회에 대한 비판이 ‘이사들이 각종 회의에서 거수기 역할만 한다’는 등 딱히 중요치 않은 이슈들에만 집중되어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사실 이사회에 올라오는 공식 안건들은 회의 이전에 이사들로부터 사전적 검증을 받고 수정된다. 즉, 이사회에서 이사들의 찬성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보다 훨씬 더 크고 포괄적이다. 기업지배구조와 관련된 법률적 문제들은 많은 부분 이사회의 의무와 책임에 집중되어 있다. 행동주의 펀드(주주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펀드)와 기관투자자가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주주의 이익을 대변할 이사들을 이사회에 진출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기업지배구조의 중심에는 이사회가 있다.

지주회사 제도는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이후 순환출자 등으로 얽힌 기업집단의 투명성을 높이고 구조조정을 용이하게 하자는 등의 취지로 도입되었다. 이후 20년이 넘는 동안 성과가 컸지만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지배주주가 적은 지분만 보유하면서도 계열회사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지배권 강화 수단으로 이용되는 폐해가 여전했기 때문이다.

주주는 보통 두 가지 권리를 갖는다. 배당을 받을 권리(cash flow right)와 주요 의사결정에 투표로 참여할 수 있는 의결권(voting right)이 그것이다. 원칙적으로 보유한 지분에 비례해서 두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되므로 이를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이 두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유지분에 비례적이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지분율이 높지 않아서 낮은 배당권만을 갖고 있음에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의결권을 누리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스타보드 밸류 CEO 제프리 스미스. ⓒREUTERS

소유-지배 괴리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21년 5월 기준, 총수가 있는 60개 기업집단 소속 2421개사는 총수 일가가 평균 3.5%의 지분만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실질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내부지분율,’ 즉 ‘계열회사 전체 자본금 가운데 총수 일가와 관계인들, 계열사가 보유한 주식가액(자기주식 포함) 등을 모두 합친 비중’은 58%에 달한다. 총수 일가의 의결권 지분이 소유권 지분보다 무려 16.6배(=58/3.5)인 셈이다. 모회사 또는 지주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보유하고, 자회사는 손자회사 지분을, 그리고 손자회사는 증손회사 지분을 보유하는 피라미드식 지분관계 덕분에 지배주주는 지주회사를 지배할 수 있는 수준의 지분만 확보해도 이를 지렛대 삼아 계열사 모두를 지배하는 것이다.

이 같은 ‘소유-지배 괴리’는 지배주주가 때론 자신의 배당권을 희생하더라도 지배권을 유지·강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지배주주의 평균 지분이 3.5%밖에 안 된다는 것은 그들이 굳이 배당을 받고 싶어 할 이유가 크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실제로 금융위기 이후 10년간 당기순이익 중 배당으로 지급하는 금액의 비율, 즉 배당성향(payout ratio)의 평균은 24.8%로 한국이 다른 선진국(50.1%)이나 심지어 신흥국(36.8%)보다도 월등히 낮았다. 그러나 지배주주와 달리 일반주주들에게는 배당이 중요하지 의결권은 관심사가 아니다. 따라서 의결권을 위해 배당권을 희생해야 한다고 할 때 의결권 유지·강화로 인한 혜택은 지배주주의 몫이 되지만, 배당권 희생으로 인한 손해는 주로 일반주주에게 돌아간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물적분할-자회사 상장이 좋은 사례다. A라는 회사가 물적분할로 핵심 사업부를 떼어내 B라는 기업으로 상장시켰다고 치자. A사의 기존 주주들은 예전 ‘핵심 사업부(지금은 B사)’가 벌어들이는 현금흐름을 B사로 들어온 새로운 주주들과 나눠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손해다. 모회사(여기선 A사)의 일반주주들은 이처럼 배당권 손해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지만, 의결권 손실 없이 자금조달에 성공한 지배주주에게는 배당권 손실이 그다지 대수로운 것이 아니다(〈RFA 자유아시아방송〉 제736호 ‘대기업의 물적분할, ‘한국식 기업지배구조’ 때문이라고?’, 〈RFA 자유아시아방송〉 제737호 ‘개미들은 공매도보다 자회사 상장이 무서워’ 기사 참조). 다시 말해 소유-지배 괴리는 지배주주가 자신의 손실을 최소화하며 지배권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하는 최적의 조건이 된다.

이 같은 ‘주주들 간’의 갈등으로 인한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이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사의 의무(fiduciary duty)에는 크게 주의의무와 충실의무 두 가지가 있다. 상법은 이사의 주의의무(duty of care)를 ‘선량한 관리자’로서 의무로 명시하고 있다. 누군가가 투자한 돈을 맡은 사람은 투자자 이익을 위해 최선의 노력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즉 ‘신의’와 ‘성실’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로 ‘선관주의(善管注意) 의무(선관의무)’라고도 한다. 또한 상법은 이사의 충실의무(duty of loyalty)를 규정한다. 이사가 사익을 추구하지 않고 회사의 이익을 위해 충실히 직무에 임할 의무다. 쉽게 말해 ‘(이사 자신과 회사 사이의) 이해 상충’을 극복해야 할 의무다. 충실의무에 따르면 이사들은 자신의 보수를 스스로 정하지 못하며(상법 제388조), 회사와 경제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비즈니스에 종사할 수 없다(상법 제397조).

2014년 행동주의 펀드 스타보드 밸류는 ‘다든’ 주주총회에서 주력 사업부문인 레드랍스터(오른쪽)를 매각하기로 결정한 이사회 전원을 교체하는 데 성공했다. ⓒAP Photo

이사는 회사의 이익만 책임진다?

당연한 말들을 법에 명문화한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에서 이사회가 설령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의사결정을 내리더라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사의 의무를 규정한 상법 제382조의3은 그 의무의 대상을 ‘회사’만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사는 ‘회사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이지, 주주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와 주주의 이익이 분리되는 것이다. 이는 법률적으로 주주와 회사는 엄연히 다른 법인격을 갖는다는 견해가 판례를 통해 정착한 결과다. 그럼 이사회가 책임져야 할 대상으로서의 ‘회사’라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

주주와 회사가 다르다는 것은 이들이 두 개의 서로 다른 법인격을 가짐으로 인해 두 주체가 상이한 ‘계좌(account)’를 갖게 되고 따라서 이익과 손해도 별도의 계좌에 기록되어야 함을 뜻한다. 경북대 이상훈 교수(법학)는 이러한 견해를 ‘법인 이익-계좌 기준’으로 명명한다. 또한 이 기준은, 주주 간의 갈등을 효과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등 여러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주주의 이익을 함께 고려하는 ‘주주 이익 포함 기준’을 통해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인 이익-계좌 기준’으로 보면, 이사회의 결정이 회사에 손해를 끼치지 않았다면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가운데 한쪽의 이익을 훼손하더라도 법률적으로 책임질 필요가 없다. 이사회가 설령 특정 주주(예컨대 지배주주)에게만 유리한 의사결정을 내렸다 하더라도 회사만 괜찮으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계열사 간 합병의 경우를 보자. 합병비율이 총수의 지분율이 높은 회사에 유리하게 결정되더라도(그래서 총수의 지분율이 낮은 회사의 주주들이 손해를 본다고 하더라도) 이는 주주계좌의 문제이지 회사계좌의 문제가 아니다.

이에 덧붙여 이상훈 교수는 ‘법인 이익-계좌 기준’이 주주들 간의 이해 상충에 관심을 두지 않다 보니 설령 지배주주에 의해 장악된 이사회가 자신들만을 위한 의사결정을 내린다 하더라도, 이사회를 통과한 안건은 ‘모든 주주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간주되기 쉽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이사회 의무의 대상으로 법인뿐 아니라 ‘주주’를 함께 명시할 필요가 생긴다. 이는 학계뿐 아니라 행동주의 펀드, 시민단체 등이 계속해서 강조해오던 내용으로 이제는 정치권에서도 심심치 않게 언급된다. 회사를 위해 주주를 희생시키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이 부분이 명확해져야 한다.

그렇다면 이사들이 신의성실 의무를 다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도대체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아주 어려운 문제다. 만약 ‘신의성실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너무 낮다면, 이사회에 대한 소송이 난무하게 될 것이다. 이사들은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비즈니스는 좀처럼 승인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이에 따라 회사가 위험성이 굉장히 낮은 사업만 하게 된다면 그 수익성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궁극적으로 회사에 손해이고 주주들에게 손해다.

그래서 이사의 주의의무는 ‘경영판단의 원칙(Business Judgment Rule)’에 의해 ‘보호’된다(이는 충실의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사가 그 권한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신중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린 경우 설령 그 결과로 회사가 손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이사에게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은 1919년 미시간주 대법원에서 ‘판사들은 비즈니스 전문가가 아니다’라는 유명한 판결 문구로 확립되었다. 이 판결은 미국 역사상 경영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판결로 꼽힌다.

주주를 무시한 대가

외국에선 주주를 무시한 이사회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패밀리 레스토랑 올리브가든과 레드랍스터 등을 보유한 미국의 다든(Darden) 레스토랑 사례를 보자. 경영자는 실적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주력 사업부문인 레드랍스터를 매각하길 원했다. 그러나 행동주의 펀드 스타보드 밸류는 핵심 사업을 매각하지 않고도 부동산 매각과 영업비용 절감을 통해 충분히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다며 경영진과 대립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레드랍스터의 잠재적 매수자가 등장하자 스타보드는 특별 주주총회를 소집해서 주주들에게 매각 여부 결정을 맡기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매각 절차가 지연될 것을 걱정한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2014년 5월16일 사모펀드에 레드랍스터를 현금 21억 달러에 매각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발표했다.

주주들의 비난이 폭주했다. 놀랍게도 주력 부문을 헐값에 매각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주주들은 특별 주주총회 없이, 따라서 주주들의 의견도 듣지 않고 이사회 결정으로만 매각을 단행했다는 사실에 격분했다.

행동주의 펀드인 스타보드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불과 며칠 뒤인 5월22일 의결권 대결을 공식 발표하고 이후 주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 결국 10월10일 주주총회에서 자신들이 추천한 12명 전원을 이사회에 진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기존 이사진 전원을 교체했다는 뜻이다. 이는 행동주의 투자자가 이사회를 장악한 첫 번째 사례가 되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행동주의 투자자가 이사회 의석을 얻고자 했을 때, 이렇게 모든 의석을 얻어 기존 이사회 임원 전체를 교체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게다가 다른 주주의 지지까지 얻어낸 경우는 희귀하다”라고 썼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한국에서 행동주의 펀드들이 얼마나 어려운 위치에 있는지 알고 있다(〈RFA 자유아시아방송〉 제691호 “‘묻고 더블로 가’는 직무유기 산업은행” 기사 참조). 기관투자자가 이사회에 진출하는 것에도 보이지 않는 제약들이 작용한다. 한국의 상당수 이사회는 ‘오너’들이 장악하고 있다(주식회사의 ‘오너’는 당연히 주주이겠지만 한국에서 이 단어는 재벌 총수나 지배주주와 동의어로 쓰인다).

한국의 지주회사 체제는 기묘하다. 지배주주의 전횡을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독특한 기업지배구조가 한국 기업들의 주가에 부정적인 요소임은(코리아 디스카운트) 널리 인정되는 추세다. 지배주주의 전횡은 결국 이사회가 풀어야 한다. 설령 이사회가 지배주주에게 장악당한 상태라 하더라도 말이다. 이사회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주식회사에서 주주와 경영자와의 갈등뿐 아니라 주주들 간 갈등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장치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앞으로는 제대로 그렇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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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마음 첫 다짐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