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현 중앙대 교수(경영학)는 게임 분야에 정통한 학자이다. 한국게임학회 회장이기도 한 그는 셧다운제, 게임 질병화 등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한편, 게임 대기업의 운영에도 비판을 가해왔다. ‘코로나19 특수’로 한국 게임업계 매출은 늘었지만 위 교수는 비관적이다. 한때 게임 강국이라 불렸던 한국이 미국을 따라잡기는커녕 중국에 추월당했다는 것이다. 위정현 교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캠프의 게임·메타버스 특보단 공동단장이기도 했다. 2월28일 위 교수에게 한국 게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물었다.

 

한국게임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위정현 중앙대 교수(경영학)는 게임 분야에 정통한 학자다.ⓒ김흥구

한국 게임산업은 위기인가?
무엇을 위기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1~2년 안에 거꾸러질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정상적인 상태도 아니다. 비유하자면 100m를 9초대에 달릴 수 있는 사람이 태만하게 뛰는 바람에 12초 걸리는 형국이다. 이런 기록을 세우면서도 별다른 의욕이 없다. 현재 한국 게임산업 규모가 20조원쯤 된다. 그런데 산업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 상황을 봤을 때, 전략을 잘 구상했다면 지금쯤 그 10배는 될 수 있었다. 너무 많은 기회를 잃었다. 특히 해외시장이 아쉽다. 중국 게임 시장 70% 이상을 한국 게임사들이 지배할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진입조차 불가능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어떤 영향을 줬나?
넷플릭스가 급성장한 것처럼 게임업계에도 호재였다.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은) 국가가 사람을 집에 가둬놓고 ‘집에서 게임하거나 유튜브만 보라’고 하는 격이니 당연하다. 이전까지 한국 메이저 게임사 매출은 급격히 떨어지는 추세였는데, 오히려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50% 정도 상승했다. 하지만 2년간 지나온 황금의 시절은 오래가지 못한다. 정부가 ‘위드 코로나’를 표방하며, 올해부터 사람들은 밖으로 뛰쳐나오고 있다. 한숨 돌릴 수 있었던 코로나19 시기 게임업계는 개발에 힘썼어야 했다. (업계 지인들에게) 코로나19 초기부터 끊임없이 얘기했다. ‘욕먹으니 내부에서 성과급 잔치 하지 말라. 신규 IP 개발하라’고. 하지만 주가가 떨어지고 난 뒤 이제야 트레일러를 공개하고 개발에 들어간다고 한다. 모바일 게임은 보통 1년 반, 2년이면 베타 버전이 나온다. 이제껏 뭘 했는지 모르겠다.

한국은 ‘게임 강국’이 아닌가?
뜯어보면 한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분야가 없다. 기술력은 미국이 가장 좋다. 트위치 등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도 대부분 미국 회사이다. PC방이라는 엄청난 산업도 놓쳤다. 일찍 움직였다면 중국 PC방을 완전히 석권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아니다. e스포츠 산업의 메카도 중국이다. 중국의 e스포츠 경기장이나 팬덤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이 크다. 실력 좋은 한국 선수는 거액을 주고 영입해간다. 손흥민이 한국에서 뛰나?

‘한국 게임은 기술력은 좋은데 운영 방식이 문제’라는 비판은 사실인가?
기술도 중국이 추월했다고 본다. 재작년 나온 중국 게임 〈원신〉이 미국 양대 모바일 마켓(애플 앱스토어·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1위를 했다. 실제로 그래픽의 질이나 게임성 면에서 수준이 높다. 참 수치스러웠던 게, 당시 이 게임을 보고 한국 개발자들 입에서 ‘이제 우리는 이런 거 못 만들어요’라는 말이 나왔다. 중국 게임산업은 한국 게임을 따라 하면서 성장했다. 이전에도 ‘원하는 퀄리티의 작품을 중국 개발사가 더 빠르게 만든다’는 정도 위기감은 있었다. 〈원신〉은 이걸 넘어 ‘한국 게임사가 못 만드는 게임’이란 한탄을 자아낸 것이다.

산업이 내리막을 걷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골병이 단단히 들어 있다. 크게 세 가지 문제다. 우선 ‘확률형 아이템’이다. 게임에 도박 요소를 도입해서 돈을 버는 것이다. 둘째, IP(특정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프랜차이즈) 우려먹기다. 옷만 갈아입힌 새 게임을 출시해 똑같은 방식을 도입한다. 셋째, 보수화다.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도모하지 않는다. 세 가지 요소는 사실 맞물려 있다. 확률형 아이템 모델로는 해외에서 성공할 수 없다. 특히 서구 게이머들은 ‘도박성 게임’에 거부감이 강력하다. 최적화된 시장은 한국이다. 달리 말하자면 국내에서 확률형 아이템과 IP 우려먹기로 돈을 쉽게 버니, 글로벌로 안 간다고 볼 수도 있다.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지도 않는다.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콘솔 게임이 보수화된 일본 상황과 흡사하다. 일본 국내 시장에 집착하고 혁신적 모델을 시도하지 않았다. 이후 일본 온라인 게임 시장은 한국이 휩쓸었고, 일본 게임사는 거의 진입하지 못했다. 한국도 비슷하게 가는 것 같다.

정부 책임이 있나? 업계의 자멸에 가깝나?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게임 정책은 규제 일변도였다. ‘4대 중독법’ 이야기가 나올 때였다. 문재인 정부는 다를 거라 생각했으나 지나고 보니 무관심에 가까웠다. 당국자들이 게임을 비롯한 새로운 IT 분야에 관심이 거의 없다. 여기에 더해, 게임산업이 가진 근본적 과오도 있다. 이 산업에 적대적인 이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청소년 학부모나 선생님은 게임 과몰입에 대해 분개한다. 이건 정서의 문제이지, 논박할 게 아니다. 과거 나는 게임 회사가 선제적으로 셧다운을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우리 아이가 게임 2시간만 하게 해주세요’라고 부모가 신청하면 게임사가 해주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았고, 결국 일률적으로 게임을 금지하는 강제적 셧다운제가 도입됐다. 지난 20년간 이 업계 행태와 정부 규제가 대개 이런 식으로 맞물려 굴러갔다. “게임업계는 매출 극대화를 위해 노력한다. 게임 과몰입 등 문제가 생긴다. 정부가 규제를 검토한다. 업계는 ‘산업 발전을 저해한다’는 둥 반발한다. 정부 규제가 완화된다. 이전과 같은 문제가 생긴다. 더 센 칼이 들어온다.” 집에 불나기 전까지 게임업계는 나서지 않는다.

확률형 아이템 문제에 대한 20대 대통령 선거 후보들의 입장은 어떠한가?
기본 입장은 유사하다. 확률을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재명 쪽이 더 적극적이다. 윤석열 쪽은 원론적인 데 가깝다. 산업을 바라보는 관점도 이재명 쪽이 더 디테일하다. 윤석열 쪽은 처벌 규정에 미온적이다. 하지만 처벌 규정이야말로 핵심이다. 5년 전쯤에는 나도 업계의 자율규제를 주장했다. 아이템 결제 상한선이든, 청소년 결제 금지든 업계가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트럭 시위 전까지 아무도 자율 규제를 지키지 않았다. 이제는 처벌이 필요한 시점이다.

메타버스가 유행이다. 게임업계의 미래와 맞닿아 있다고 보나?
지금은 주가 부양 목적으로 쓰는 기업이 너무 많다. 메타버스의 여러 요소 중 게임과 맞는 것을 도입하는 게 중요하다. 가령 가상 아이돌은 바람직하다. 가상 캐릭터를 통한 스토리텔링은 게임산업이 늘 해왔던 일이다. 하지만 단순히 ‘소셜형 게임’이라고 모두 한국에서 성공할지는 회의적이다. 퀘스트(quest·게임에서 주어지는 임무)가 없지만 뭔가 해야 한다. 〈제페토〉의 성공은 대단하다. 하지만 이 게임 유저 90%가 해외에 있는 것도 이유가 있다. 한국인들은 ‘알아서 노세요’ 하는 콘텐츠를 별로 즐기지 않는다. 최근 예고 영상에서 호평을 받은 게임 〈도깨비〉도 이런 길을 택할 경우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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