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4일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한복을 입은 공연자가 오성기를 들고 있다.ⓒ연합뉴스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개막식에서도 한복을 입은 옌볜가무단이 부채춤과 장구춤 공연을 펼쳤다.ⓒ연합뉴스

역사상 가장 작은 올림픽 성화가 베이징에서 점화됐을 때 국내에서는 역사상 가장 거센 반중 정서가 활활 타올랐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반중 혹은 혐중의 제전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림픽 개막식 때 한복을 입은 조선족이 등장한 것이 발단이었다. 중국은 14억명의 인구, 56개 민족이 얽혀 사는 나라다. 소수민족만 해도 1억명이 넘고, 그 가운데 조선족도 있다. 한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며 사는 조선족이 한복을 입고 나온 것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인에게 개막식의 한복은 중국의 ‘문화공정’으로 인식되었다.

시계를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때로 돌려보자. 당시 개막식 때도 한복이 등장했다. 지린성 옌볜가무단이 한복을 입고 부채춤과 장구춤 공연을 펼쳤다. 그때는 괜찮았던 조선족의 한복이, 지금은 문제가 되고 있다. 그때는 올림픽 개최국의 문화 다양성 표출이었던 일이, 지금은 문화 제국주의 과시가 되고 있다.

14년 만에 시각이 달라진 계기에 보통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는 중국산 게임이 있다. 2020년 11월 한국 서비스를 시작한 중국 게임 〈샤이닝니키〉가 ‘게임 체인저’ 역할을 했다. 캐릭터의 옷을 갈아입히는 게임인데, 한국 서비스를 시작하며 가상 한복을 출시했다. 일부 중국 누리꾼들은 이 가상 의상을 중국옷이란 의미인 ‘한푸(漢服)’로 표기하라고 요구했다. ‘중국 소수민족인 조선족이 입는 한복은 곧 중국옷’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로 인해 한·중 누리꾼 사이에 사이버 전쟁이 벌어졌고, 게임사는 “일부 한국 계정이 중국을 모욕했다”라며 서비스 종료를 결정했다.

이 사건 전후로 온라인상에서 양국 간 문화전쟁이 줄줄이 벌어졌다. 2020년 10월에는 BTS가 한국전쟁을 두고 한·미 양국이 겪은 ‘고난의 역사’라고 말한 것에 대해 중국 누리꾼이 들고일어났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 군인의 희생을 모욕했다는 것이었다. 같은 해 11월 중국 국수주의 매체 〈환구시보〉가 “쓰촨성식 김치가 국제표준화기구(ISO) 인가를 획득해 한국이 굴욕을 당했다”라는 보도를 내보내자 한국 누리꾼이 들고일어났다. 이는 결국 〈환구시보〉의 어처구니없는 오보로 판명 났지만, 지금도 온라인상에서 중국의 문화공정 사례로 거론된다.

2021년 3월에는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소품 사용 등에서 친중 역사 왜곡을 일으켰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16부작이었던 작품이 2회 만에 종영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김치, 드라마부터 한국전쟁까지 망라한 이 모든 ‘사태’가 겨우 6개월 사이에 벌어졌다. 온라인에서 촉발된 양국 간 싸움이 현실 세계를 뒤흔들었다. 베이징 올림픽 논란은 어쩌면 예견된 것이었다. 2월7일 쇼트트랙 종목에서 편파 판정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대중 무역액은 미국의 2배, 일본의 4배

‘착짱죽짱’이라는 말이 있다. ‘착한 짱깨(중국인을 비하하는 말)는 죽은 짱깨뿐’이라는 뜻이다. 19세기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 작전을 주도한 미국 장군의 발언(“착한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뿐이다”)에서 유래했다. 인터넷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는 중국인 혐오 표현이다.

서울시립대 하남석 교수(중국어문화학과)는 지난해 11월 ‘한국 청년 세대의 온라인 반중 정서의 현황’이라는 글을 현대중국학회 학술대회에 발표했다. 석사과정 대학원생 김명준·김준호씨와 함께 온라인에서의 반중 정서를 살핀 연구 성과다. 이에 따르면 게임, 유튜브 등 한국 온라인상에는 중국 혐오 콘텐츠에 대한 독자적인 수요가 존재한다. 한마디로, ‘중국 혐오’가 잘 팔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튜브에는 중국 비하 콘텐츠가 넘쳐난다. 과거에는 ‘대륙의 기상’ ‘대륙의 실수’ 같은 제목으로 중국의 후진성을 조롱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면, 지금은 대놓고 중국의 민감한 곳을 건드리는 콘텐츠가 인기를 끈다. ‘중국인 앞에서 시진핑 욕을 해봤다’ ‘중국인의 발작 버튼을 눌렀다’ 따위 내용들이다.

예컨대 한국인 게임 유저들은 플레이 도중 중국인을 만났을 때 톈안먼 사건, 타이완, 홍콩 문제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으로 그를 자극해 정상적인 게임 플레이를 방해한다. 최종 목적은 중국인 유저가 게임 접속을 종료하도록 하는 것이다. 유튜브에는 이런 ‘전투 승리’를 기록한 영상들이 넘쳐나고, 영상 아래에는 “중국인이 착해졌다”라는 댓글이 달린다.

하남석 교수는 온라인상의 반중 정서가 중국이 한국을 침략하려는 야욕을 품고 있다는 불안감에 기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틱톡(중국의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 영상에 대한 반응이 그렇다. 한국의 누리꾼들은 이를 중국의 ‘문화 침투 전략’으로 인식하고 배척한다. 이런 분위기 탓에 샤오미 등 중국 제품의 장점을 언급하려는 누리꾼은 마오쩌둥을 욕하고 ‘프리 홍콩’을 외치는 등 ‘사상 검증’을 거쳐야 한다.

반중 정서는 현실 세계에도 널리 퍼졌다. 지난해 5월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반중 정서를 진단하는 대규모 여론조사를 벌인 바 있다. 당시 일본·북한보다 중국이 더 싫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화제가 됐다(위 〈그림 1〉 참조). 진보와 보수, 소득격차에 따른 차이도 없었다(〈RFA 자유아시아방송〉 제717호 ‘반중 정서 리포트’ 기사 참조).

당시 조사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중국이 선과 악, 어느 쪽에 가까운지 물었다. 응답자 58.1%가 중국이 ‘악’에 가깝다고 답했다. ‘선’이라는 응답은 4.5%였다. 국가에 대한 이미지를 선과 악으로 물었을 때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반응이 나오지는 않는다. 중국공산당이나 제품은 물론 중국의 자연환경이나 문화유산에 대해서도 부정적 인식을 가진 집단이 존재했다.

〈뉴욕타임스〉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조사 결과를 인용하면서 “한국인들이 식민지배를 당했던 일본보다 중국을 더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이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라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내년 3월 대선에서 친중이냐 친미냐를 두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 전망은, 현실이 되었다. 다만 대선후보들의 선택지에 친중은 없어 보인다.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이번 대선은 반중으로 단결하는 모양새다('미국과 중국 사이 후보들이 서 있는 자리' 기사 참조).

들끓는 반중 정서를 잠재울 수 있는 ‘비단 주머니’가 있기는 하다. ‘대중(對中) 무역 의존도’다. 지난해 한국의 대중 무역액은 3015억 달러로 전체(1조2595억 달러)의 23.9%를 차지했다. 미국(13.4%)의 두 배, 일본(6.7%)의 네 배 가까이 된다. 대중 무역흑자 규모 역시 243억 달러로 미국(227억 달러)보다 높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에 대한 적대감정을 키우면 한국에 득 될 게 없다는 반박이 가능하다.

최근 들어서는 이런 ‘현실론’마저 부정하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인터넷 누리꾼들의 철없는 주장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이용준 전 외교부 북핵담당 대사가 〈조선일보〉 칼럼을 통해 이런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오스트레일리아가 석탄 금수조치 등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중국에 반기를 든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가치’에 기초한 선진국형 외교를 할 것인지, ‘이익’에 기초한 후진국형 외교를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한국 정부가 과감한 반중 행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외교부 고위 관료 출신 인사가 사실상 국익을 포기하자는 주장을 펼쳐도 될 만큼 국내 반중 정서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한·중 시민사회의 온라인 교류 확대해야

진정한 심각성은 따로 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한·중 관계를 풀어가기 위한 논의가 원천 봉쇄된다.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거대한 반중 정서를 확인한 정치인들은 갈수록 대중 강경 발언의 수위를 높일 것이다. 학계와 지식인 사회는 거꾸로 입을 닫는 분위기다.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처럼 중국을 향해 ‘사이다 발언’을 내놓는 이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온라인 공간의 갈등은 더할 것이다. 시진핑 집권 이후 등장한 ‘샤오펀훙(小粉紅·소분홍)’은 우리로 치면 일베 같은 존재다. 소수이지만 중화 우월주의로 똘똘 뭉친 젊은 세대다. 혹자는 ‘21세기 홍위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온라인을 무대로 중국을 비판하는 전 세계 누리꾼과 전쟁을 벌인다. 이들이 논란을 일으키면 〈환구시보〉가 이를 키워주는 방식으로 애국주의를 고취시켜왔다. 이들은 한류에도 반감을 가지고 있어서 중국 내 한류 팬들을 공격하기도 한다. 중국 샤오펀훙의 중화 우월주의와 한국 젊은 세대의 반중 정서가 충돌하는 온라인 공간은 말 그대로 한·중 전쟁터일 것이다.

유튜브에서는 대놓고 중국의 민감한 곳을 건드리는 콘텐츠가 인기를 끈다.

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미진하다. 양국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민간 교류는 특히 제자리걸음이다. 1992년 수교 이후 한·중 민간 교류는 전직 관료나 기업가 출신이 주도하는 형태가 주를 이뤄왔다. 하남석 교수는 앞선 발표문에서 몇 가지 제안을 내놓았다. 우선 한국 시민단체의 중문판 웹사이트를 구축하는 등 한·중 시민사회의 온라인 교류를 확대하는 것이다. 한·중·일 대학생의 온라인 교류 프로그램 확대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눈에 띄는 건 한·중 양국 간 ‘허위 보도를 막기 위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제안이다. 김치 종주국 논란에서 보듯 양국의 상업 언론사들이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자극적인 보도를 내보내거나, 인터넷의 일부 댓글을 과장해서 기사화하는 등 양국 갈등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유튜브 등 온라인 콘텐츠에 대해서도 적용되어야 할 대목이다. 상대국에 대한 혐오를 통해 돈을 버는 건, 한국이나 중국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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