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3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본관 앞에서 ‘2022 증시대동제’가 열리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진 2020년. 그해 코스피 지수의 연간 수익률은 무려 32%였다. 그러나 지난해는 달랐다. 연초 대비 수익률 1%를 간신히 넘겼을 뿐이다.

주식에 투자한 분이라면 지난해를 돌이켜보시라. 혹시 손실이 난 주식인데 언젠가는 오를 것으로 믿으며 끝없이 들고 있지 않았는가? 주가 상승을 기다리다 지치는 바람에 조금 올랐을 뿐인데 바로 팔아버리진 않았는가? 하루에 수십 번씩 주가를 확인하며 환호하고 탄식하지 않았는지?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투자 행태(behavior)는 당신만의 것이 아니다. 많은 투자자들에게 체계적으로 나타나는 편향(bias)이라서 오래전부터 많은 경제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연구해온 거대한 주제다. 지난해 하루하루 주가가 오르기를 기다리다 지친 당신! 새해를 맞아 이 위대한 학자들의 얘기를 조금이라도 들어보시면 어떨까? 원래 새해에는 어른들 말씀 잘 들으라는 덕담 아닌 덕담도 하고 그러지 않는가.

■ 기대수익이 무한대인 게임

이런 게임을 해보자. 당신은 하루하루 주가가 오를 날만을 기다린다. 만약 오늘 주가가 오르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 내려가거나 어제의 주가와 같았다면, 하루를 더 기다릴 수 있다. 하루를 기다렸는데도 주가가 오르지 않는다면 그다음 날까지 대기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주가가 오를 때까지 기다린다.

게임을 더욱 단순하게 만들어보자. 주가가 오를 확률과 내릴 확률이 반반이라고 하면 더 쉽겠다. 또한 이 게임에서 당신은, 주가가 오르기까지 기다린 날짜 수만큼 2를 곱한 값을 상금으로 받게 된다. 첫째 날에 주가가 오른 경우, 기다린 날짜는 0일이니 1원(20=1)을 상금으로 받는다. 둘째 날에 올랐다면 하루를 기다렸으니 2를 한 번 곱해 2원(21=2)이다. 셋째 날에 올랐다면 이틀을 기다렸으니 4원(22=4), 넷째 날에 올랐다면 8원(23=8)이다.

이 게임의 상금은 하루마다 두 배씩 오른다. 간단한 공식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N번째 날에 주가가 처음으로 올랐다면, 당신은 2N-1원을 상금으로 받는다.’ 이 공식을 적용하면, ‘네 번째 날에 주가가 처음으로 오른 경우, 8(24-1=23)원을 상금으로 받게 된다. 10일째에 주가가 처음 오르면 512(210-1=29)원을 받을 수 있다. 푼돈 같지만 그렇지 않다. 30일째엔 상금(229원)이 5억원 이상이다. 50일째라면 563조원이다. 하루 뒤인 51일째에 주가가 처음 오르면 563조원의 두 배인 1126조원 정도를 상금으로 받는다. 상금은 주가의 첫 상승을 기다리는 날이 길어지면 길수록 빠른 속도로 증가한다.

이 게임의 기댓값(모든 ‘실현 가능한 값’에 ‘각각의 값이 나올 확률’을 곱한 뒤, 해당 수치들을 모두 합산한 것)은 1000억원도 100조원도 아니다. 그야말로 ‘무한대’다. 수식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확률론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아래 공식이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여기서는 일단, 이 게임을 할 때 ‘받을 수 있을 상금이 확률론에서는 무한대로 추정된다’는 점만 인식하고 넘어가셔도 좋겠다.)

(1/2)1×20 + (1/2)2×21 + (1/2)3×22 + (1/2)4×23 +… = 1/2 +1/2 +1/2 +1/2 +… = ∞

기대수익이 무한대라면 이 게임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하나 걸리는 점이 있다. 이 게임에 들어가려면, 참가비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자, 당신은 얼마까지 낼 용의가 있는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설’로 골머리를 앓았던 통계학·수학의 거장 다니엘 베르누이. ⓒWikipedia

■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설

이 게임은 통계학과 수학의 거장 다니엘 베르누이가 골머리를 앓았던, 유명한 문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설’이라고도 불린다.

기댓값이 무한대라면, 아무리 참가비가 커도(100만원이든 1000억원이든 1조원이든) 이 게임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좀 더 곰곰이 생각해보면 큰 액수의 참가비를 내는 것은 바보 같은 짓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재수 없게(?) 첫째 날에 주가가 올라버리면 당신은 겨우 1원만 받은 채 참가비를 모두 날리게 될 테니 말이다(100만원을 냈다면 99만9999원 손해). 만약 당신이 참가비로 큰 액수를 낼 의향이 없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이는 엄청나게 큰 상금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도가 그 정도로 크지는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간단해 보이는 이 게임에서 현대 경제학의 바탕인 ‘기대효용이론’이 탄생한다. 사람들은 무한대의 금액을 벌 수 있는 게임에도 아주 큰돈을 걸지는 않는다. 이 역설을 이해하려면, ‘금액’과 ‘효용’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월 소득 1000만원인 당신이 추가로 100만원을 벌어들임으로써 커진 행복감(효용)은, 당신의 월 소득이 200만원일 때 같은 금액(100만원)을 더 벌어 늘어날 행복감보다 훨씬 작을 것이다. 소득이 클수록 행복도가 금액(추가로 더 버는)보다 느리게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가 1억원을 더 번다고 엄청나게 행복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한계효용체감’이라고 부른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은 당신이 가진 돈이 많을수록, ‘효용을 한 단위 올리기 위해(일정한 정도의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 추가로 벌어야 하는 금액’은 더 커야 한다는 의미다. 예컨대, 월소득 200만원인 사람이 100만원을 추가로 벌었을 때 커진 행복감이 ‘10’이라고 치자. 월 소득이 1000만원인 사람이 ‘10’의 행복감을 얻으려면 100만원보다 더 큰 추가소득을 벌어야 한다(이 사람은 100만원을 더 벌어봤자 ‘2’ 정도의 행복감밖에 맛보지 못한다).

이는 당신의 위험선호 성향에 영향을 미친다. 소득이 200만원 안팎이라면 당신은 100만원이 주는 (큰) 행복감을 얻기 위해 어느 정도의 위험을 무릅쓸 용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소득이 1000만원이라면 100만원이 주는 (작은) 행복감을 얻기 위해 그 정도의 위험을 무릅쓰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위험회피’ 성향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처럼 한계효용체감은 위험회피 성향과 같은 말이 된다.

지금까지의 설명을 56쪽 〈그림 1〉로 표현할 수 있다. 소득과 효용 사이의 관계를 표현한 곡선이 오목한(concave) 궤적을 그리고 있다. 소득이 커지는 속도보다 효용의 증가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오목한 곡선이 나타나는 것이다. 소득이 높아질수록, 추가로 벌어들이는 일정 금액(추가 소득)에 대한 효용이 작아진다는 의미다. 효용이 작아지므로 위험을 무릅쓰려는 성향도 작아진다.

투자자들의 위험회피적 성향이 포트폴리오 이론의 중요한 가정임은 이미 지난 글(〈RFA 자유아시아방송〉 제728호 ‘투자의 정석은 분산투자, 정말 그럴까?’ 기사 참조 )에서 밝힌 바 있다. 기대효용이론은 수많은 경제학 모델들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바탕이다. 그러나 당연하게 들리는 기대효용이론은 심리학자들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게 된다.

■ 전망이론(Prospect Theory)

또 다른 게임을 해보자. 뭔가를 잘한 덕분에 상을 받게 되었다. 상금을 받는 방식은 선택할 수 있다. 두 방법 중 하나를 고르면 된다.

(1) 100% 확률로 300만원을 받는다.

(2) 80%의 확률로 400만원을 받지만, 20%의 확률로 한 푼도 받지 못한다.

골랐다면 일단 당신의 선택을 기록해두시라. 이제 문제를 살짝 바꿔보자. 뭔가를 잘못 한 탓에 벌금을 내야 한다. 벌금을 내는 방식은 선택할 수 있다. 두 방법 중 하나를 고르면 된다.

(3) 100% 확률로 300만원을 벌금으로 낸다.

(4) 80% 확률로 400만원을 내지만, 20% 확률로 벌금이 면제되면 한 푼도 내지 않을 수 있다.

당신의 선택은 어떤가?

‘전망이론’을 주창한 대니얼 카너먼. ⓒWikipedia

위의 실험은 심리학자인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 교수가 1979년, 경제학 최고 권위 학술지인 〈이코노메트리카〉에 게재한 논문 〈전망이론: 불확실성하의 의사결정〉에 등장한다(화폐단위만 바꿨다). 대다수의 선택은 (1)번과 (4)번이다(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 실험을 해보면 거의 한결같이 논문에서와 일치하는 결과가 나온다).

(1)과 (3)은 ‘확실’한 대안이다. ‘위험이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1)이나 (3)을 선택하는 것은 ‘위험회피(risk averse)’ 성향을 반영한다. 반면 (2)와 (4)에는 ‘불확실성’이 있다. 위험한 대안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2)나 (4)를 선택하는 것은 ‘위험선호(risk loving)’ 성향을 반영한다.

기대효용이론으로는 (1)을 선택한 사람들이 동시에 (4)를 선택하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위험을 회피하면서 동시에 선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기대효용이론에 따르면 (1)을 선택한 사람은 위험회피적이므로 (3)과 (4) 중에서는 (3)을 선택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4)를 선택했다면 (1)과 (2) 중에 (2)를 선택했어야 한다. 기대효용이론으로 본다면, 사람들은 (1)과 (3)을 함께 선택하거나 혹은 (2)와 (4)를 동시에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실험 결과는 그렇게 나오지 않았다. (1)과 (4) 혹은 (2)와 (3)을 선택한 사람들이 유의미하게 많았던 것이다. 이는 경제학의 기본적인 토대를 뒤흔든 초대형 사건이 됐다. 2002년에 심리학자인 카너먼에게 노벨경제학상이 주어진 이유다(트버스키는 1996년에 세상을 떠나 안타깝게도 수상하지 못했다).

‘전망이론’을 주창한 아모스 트버스키.ⓒGoogle 갈무리

실험 결과를 조금 더 음미해보자. (1)은 ‘좋은 것’을 확실하게 챙기고 싶어 하는 심리를 반영한다. 이는 설령 좀 더 나은 대안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선택하기 위해 굳이 위험을 감수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4)는 ‘나쁜 것’을 없앨 수만 있다면 어느 정도의 위험은 기꺼이 감수할 용의가 있다는 뜻이다. 종합해보면 이는 ‘전망이 좋은 일’에 대해서라면 사람들은 위험을 회피하고자 하지만, ‘전망이 나쁜 일’에 대해서라면 오히려 위험을 추구하고자 한다는 말이다. 이처럼 ‘전망’에 따라 사람들의 위험에 대한 태도(risk attitude)가 달라진다는 이유로 이 이론은 ‘전망이론(Prospect Theory)’으로 이름 지어졌다.

전망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어떤 경우엔 위험을 회피하다가 일정한 ‘기준점(reference point)’을 지나면 오히려 위험을 추구하게 된다. 그리고 이 ‘기준점’은 사람마다 다르다. 좀 모호하다면 다음과 같이 얘기해보자.

당신이 이번 달에 100만원을 벌었다면 당신은 얼마만큼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에 답하려면 ‘기준점’이 필요하다. 만약 당신이 지난달에 150만원을 벌었다면 당신은 오히려 불행해졌을 것이다. 100만원은 150만원 대비 50만원 ‘손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이 지난달에 번 소득이 70만원이었다면 이번 달에 30만원의 ‘이익’을 본 것이다. 같은 금액이라도 당신의 상태에 따라 이익이 될 수도 있고 손실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100만원이라는 금액을 벌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금액이 ‘어떤 것에 비해’ 더 큰지 작은지에 달려 있다.

중고등학교 때 수학 시험에서 단 한 문제를 틀렸다고 눈물 찔끔대던 모범생(?)들을 혹시 기억하는가? 누구는 하나‘밖에’ 안 틀렸다면 만세를 부를 참인데,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재수 없다고 욕할 일만은 아니다. 수학 시험에 대한 그 모범생의 기준점이 100점이었기 때문에 찔끔대는 것이니 어쩌겠는가?

이처럼 기준점에 따라 ‘손실 구간’과 ‘이익 구간’이 나뉜다. 또한 이익 구간에서는 위험을 회피하는 반면 손실 구간으로 넘어가면 오히려 위험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망이론은 설명한다. 그렇다면 〈그림 1〉은 이익 구간에서 나타나는 위험회피 현상을 반영한 것으로 기존의 효용이론과 큰 차이가 없다. 여기서는 손실 구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이를테면, ‘누적 손실’이 1000만원인 상태(이미 1000만원의 손실을 본 상태)에서 추가로 잃는 10만원은 그다지 큰 손실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효용 감소’가 작다). 그러나 100만원을 잃은 상태에서 10만원을 더 잃게 된다면 이는 위의 경우에서보다 훨씬 더 큰 손실로 느껴질 것이다(‘효용 감소’가 크다). 똑같은 10만원 손실이지만 누적 손실이 작을수록 효용이 더 크게 감소하는 것이다. 이는 1000만원을 잃고 나서 10만원을 벌었을 때 늘어나는 행복감(효용)보다 100만원을 잃은 상태에서 10만원을 벌었을 때 늘어나는 행복감이 훨씬 더 클 것임을 암시한다.

이제 〈그림 2〉를 보자. 기준점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이익 구간’이고 왼쪽은 ‘손실 구간’이다. S자 모양의 실선은 손실 구간과 이익 구간에서 위험선호도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익 구간의 곡선에서는 위험회피 성향(한계효용 체감)이 나타난다. 이에 비해 손실 구간의 곡선은 이익 구간 곡선의 기울기보다 더 가파르게 떨어지는 것으로 위험선호 성향(한계효용 체증)을 보여준다. 이는 당신의 행복감(효용)이 이익보다 손실에 더 민감하다는 의미다.

〈그림 2〉로 설명해보자. 여기서 당신의 기준점을 일단 0원이라고 치자. 〈그림 2〉를 보면, 당신이 기준점보다 100만원을 더 벌었을 때 추가로 행복해지는 정도는 100이다. 그러나 같은 액수인 100만원을 손해 보는 경우, 당신의 행복도는 100이 아니라 200이나 떨어진다. 손실 구간의 곡선이 이익 구간 곡선의 기울기보다 훨씬 가파르게 떨어지는 것으로 표현된 이유다. 이 같은 성향에 따라, 당신은 ‘100만원 이익으로 가능한 효용 증가를 얻을’ 때보다 ‘100만원 손실에 따른 효용 감소를 회피할’ 때, 더 큰 위험을 추구하려 할 것이다.

이 같은 손실회피 성향은 후일 ‘처분효과(disposition effect)’에 관한 이론과 실증연구들로 발전되어 경제학이 발견한 많은 어려운 문제들을 이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처분효과에 따르면, 투자자들이 ‘손절매’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손실이 주는 상실감이 너무 커서 이를 실현시키고 싶어 하지 않는 ‘손실회피(loss aversion)’의 결과로 나타난다. 헤어지면 ‘내’가 죽을 것 같은 연인과 이별하는 일은 그렇지 않은 상태의 연인과 헤어지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법이다. 손실회피 성향은, 이득이 발생했을 때 더 기다리지 못하고 실현시키려는 성향과 대비된다. 그 결과, 투자자들은 손실이 난 주식을 이익이 난 주식보다 더 오랫동안 보유하게 된다. 이익보다 손실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 편협한 프레이밍(narrow framing)

이제 주식을 사놓고 얼마나 자주 그 주가를 확인하는지가 어떻게 투자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볼 차례다. 자주 들여다본다고 해서 수익률이 바뀔 리는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투자수익률이 좋지 않은 이유가 당신이 너무 자주 주가를 들여다본 탓일 수 있다. 이해하기 어렵게 들리지만 이제 위에서 살펴본 지식을 바탕으로 이 점을 살펴보자.

치킨 가게 주인인 당신은 ‘하루’에 30만원어치의 치킨을 파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오늘은 운이 좋았다. 단체주문 덕분에 오전 중으로 목표 액수를 채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가게 문을 일찍 닫을 참이다. 또 다른 치킨 가게 주인이 있다. 그의 목표는 매일 얼마를 벌든 상관없이 ‘한 달’ 동안 매출 1000만원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설령 오전에 30만원어치 매출을 올렸다 하더라도 일찍 가게 문을 닫지는 않을 것이다. 장사가 잘되는 날일수록 부지런히 벌어놔야 한 달 목표를 채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

이 간단한 사례는, 당신의 목표가 ‘장기적(한 달 매출)이냐, 단기적(오늘 매출)이냐’에 따라 당신의 의사결정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단기적 목표를 달성했다고 가게 문을 닫는 것은 장기적인 비전을 희생한 ‘편협한’ 목표치에 집중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이는 ‘편협한 프레이밍(narrow framing)’으로 불리는 체계적인 심리적 편향 중 하나다.

치킨 가게가 아니라 주식투자를 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편협한 프레이밍을 갖고 있다면 당신에게는 아마도 그날그날의 수익률이 중요할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매일 주가를 확인한다. 심지어 오전에만 열 번 넘게 확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장기 투자자라면 매일매일의 주가 변동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만약 중요한 것이 1년 동안의 수익률이라면 몇 개월 동안은 투자한 사실을 잊고 지내도 될 것이다.

투자수익률이 좋지 않은 이유는 당신이 너무 자주 주가를 확인한 탓일 수 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윤무영

매일 주가를 확인하면 날마다의 손실과 이익을 직접 ‘확인’하게 된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만약 1년의 거래일인 250여 일 동안 125일은 주가 상승, 나머지 125일엔 주가 하락이 나타났다고 하자. ‘손실회피’ 성향으로 인해 당신은 이익보다 손실에 훨씬 민감하다. 설령 똑같은 만큼의 이익과 손해가 반반씩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당신 머릿속에는 손실이 더 크게 자리 잡는다. 그러니 손실에 민감한 당신은 자주 주가를 들여다볼수록 위험을 ‘덜’ 감수하고 싶어진다. 이를 ‘근시안적 손실회피(myopic loss aversion)’라고 부른다. 그 결과, 당신은 지나치게 적은 위험만 감수하는 성향을 갖게 된다. 이제 당신은 주가가 조금만 올라도 주식을 팔게 된다. 손실회피 성향으로 인해 손실이 난 주식들은 팔지 않고 갖고 있으면서 말이다. 결국 당신의 투자수익은 나빠진다.

지난해 여름에 나온 자본시장연구원 김준석 연구위원의 보고서 〈주식시장 개인투자자의 행태적 편의〉는 동학 개미들의 투자 성향이 이런 이론들에 잘 들어맞는다는 걸 보여준다. 보고서는 2020년 3월부터 10월까지 개인투자자 약 20만명의 거래 내역을 분석했다. 이들은 보유기간에 상관없이 이익이 난 주식을 손실이 난 주식보다 두 배 정도 많이 매도하고 있었다. 이익이 난 주식들을 팔아치우는 반면 손실이 난 주식들은 계속 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이들이 표본조사 만기 시점에 보유하고 있던 주식들의 70% 정도는 손실이 난 상태였다.

그러니 지난해가 하루하루 주가가 오르기를 기다리다 지친 한 해였다면 새해엔 하루하루 주가가 오르기를 기다리지 않는 것이 좋겠다. 살펴보았듯이 매 순간 스마트폰 주식 창을 들여다보는 것은 결코 좋은 투자 습관이 아니다.

편협한 프레이밍이 성과를 해치는 것이 비단 치킨 가게나 주식투자에서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은 대선을 목전에 둔 정치 과잉의 시기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유권자들도 가시 돋친 미움의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죽도록 미운 누군가를 응징하는 것이 목표라면 그것의 달성 여부는 적어도 오는 3월10일 새벽이면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응징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발전에 좀 더 공헌할, 또는 좀 덜 해악을 끼칠 후보를 뽑겠다면 보다 긴 호흡으로 당선 이후를 따져보아야 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이에 근심이 생긴다(人無遠慮 必有近憂)” 하셨다(〈논어〉 위령공 편). 편협한 프레이밍에서 벗어나라고 2000여 년 전에 하신 말씀이다. 어른 말씀 잘 듣자. 임인년 새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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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마음 첫 다짐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