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2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항 터미널 앞에 줄지어 서 있는 컨테이너 운송용 화물트럭. ⓒAP Photo

미국 경제에 인플레이션이 돌아왔다. 물가상승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했던 1970~1980년대 이후 거의 반세기 만이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도 함께 왔다.

‘인플레이션 공포’가 가시화되기 시작한 것은 2021년 5월이었다. 미국 노동통계국이 집계한 그해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같은 시기(2020년 4월)보다 4.2%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인플레이션 목표치’ 2%를 두 배 이상 상회한 수치였다. 농산물과 석유처럼 가격변동이 심한 품목을 제외하고 산출하는 ‘근원물가지수’도 전년 4월 대비 3% 오른 것으로 집계되었다.

인플레이션은 시장 전반의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화폐가치가 하락하는 경우다.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의 양이 줄어든다. 널리 알려져 있듯, 가격은 대체로 수요·공급의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 공급에 비해 수요가 상대적으로 크다면(초과수요) 가격이 올라간다. 사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 경쟁이 붙기 때문이다. 반대로 공급이 수요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다면(초과공급) 가격은 하락한다.

2021년 4월 소비자물가지수의 큰 상승도 수요와 공급 불균형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해 들어 코로나19 백신접종률이 크게 오르면서 확진자가 줄고 대면 접촉 제한도 완화되었다. 경기회복으로 가계 수입이 늘어난 소비자들은 억눌렸던 수요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비교적 자유롭게 사람들과 만나고 거래할 수 있게 되면서 소비의 기회 자체가 크게 늘어났다. 미국 경제분석국에 따르면,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던 개인 소비지출이 같은 해 3월 이후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반면 공급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소비는 마음만 먹으면 바로 다음 날이라도 재개할 수 있다. 그러나 팬데믹 기간 장사를 못해서 문 닫은 가게나 공장을 다시 돌려 공급을 늘리려면, 짧든 길든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폭증하는 수요를 공급이 따라갈 수 없게 되면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진 것이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급 차질이 여러 층위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원자재 가격이 폭등했다. 글로벌 경기가 회복되면서 생산의 기초가 되는 원자재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팬데믹 직전인 2020년 2월과 비교했을 때 2021년 4월 당시의 원유(브렌트유 기준) 가격은 약 25%, 구리 가격은 약 75% 올랐다.

운송비용도 뛰어올랐다. 선복량(선박의 적재능력)이 물동량을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2020년 2월 기준, 1300달러 수준이던 글로벌 해상운임(40피트 컨테이너 기준)이 2021년 4월엔 4500달러 수준으로 폭등했다. 어렵사리 운송을 마친 이후에도, 포화상태인 항만에서 화물을 수용하지 못해 선박이 2~3주가량 대기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팬데믹 기간에 일자리를 잃은 미국 노동자들 가운데는 회복 조짐이 역력한 2021년 들어서도 직장으로 복귀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감염 우려, 돌봄노동 부담, 자산가치 상승으로 인한 재산 증가 등이 그 원인으로 꼽혔다. 그러나 상점과 공장은 수요 회복에 따라 노동자를 구하기 시작했다. 노동자가 줄면 그만큼 상품 및 서비스의 공급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 2021년 4월 기준, 일자리 919만여 개가 공석으로 남아 있었다.

이렇게 인플레이션율이 높아질 조짐이 나타나자, 팬데믹 기간 연준이 수요를 촉진하기 위해 사용했던 수단들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021년 7월15일 미국 상원 은행·주택·도시문제위원회 청문회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발언하고 있다. ⓒREUTERS

그간의 ‘디플레이션 공포’

연준은 경기부양을 위해 여러 정책 수단을 가동해왔다. 우선 기준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했다. 기준금리가 낮으면 다양한 시중금리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금리가 낮으면 경제주체들은 저축을 줄이는 반면 더 많은 돈을 빌리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시중으로 나온 자금이 소비·투자로 이어진다면 수요를 진작할 수 있다. 연준은 기준금리 이외에도 ‘양적완화’ 같은 ‘비전통적 통화정책’도 수행해왔다. 중앙은행인 연준이, 시중은행 등이 보유한 미국 국채 등 ‘장기 채권’을 사들이는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연준은 채권을, 시중은행들은 ‘돈’을 갖게 된다. 시중은행들은 이렇게 확보된 돈을 대출해서 경기를 되살릴 수 있다. 연준이 실행한 이런 정책 수단들은 팬데믹 기간에 미국 경제가 수렁에 빠지지 않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경제가 활성화되며 공급에 비해 수요가 늘어나고, 큰 폭의 인플레이션이 예상되면서 이를 원상복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금리를 올리는 한편 양적완화로 시중에 흘러간 돈 역시 다시 회수해야 한다(통화 긴축정책)는 것이다.

연준은 2021년 하반기에도 ‘인플레이션은 일시적 현상’일 뿐이라며 시장의 우려를 일축했다. 연준은 공급이 수요만큼 늘지 못해서 물가가 오르는 ‘병목현상’이 곧 해소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급 정체가 중고차 등 일부 상품에서만 일어나고 있으며 그나마도 완화 중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각종 지표에서 인플레이션율이 높게 나타난 것 역시 코로나19의 여파로 2020년 물가상승률이 비정상적으로 낮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정상을 회복하기 시작한 2021년의 물가를, 비정상적으로 물가가 낮았던 2020년과 비교하니 ‘너무 많이 올랐네’ 하는 착시효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2021년 11월 이전의 연준이 우려했던 것은 오히려 ‘경기회복 시기에 자연스레 발생하는 일시적 물가상승을 통제하다가 회복기의 미국 경제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같은 해 8월27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중앙은행이 일시적 요인(공급 정체에 따른 인플레이션) 때문에 긴축을 시행할 경우, 그 효과가 뒤늦게 나타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통화정책의 효과는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데, 일시적 인플레이션을 저지하기 위해 섣불리 긴축정책을 시행했다가 이후 미국 경제를 불황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디플레이션 공포’ 역시 파월의 판단에 영향을 끼쳤다. 디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과 반대로,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물가하락은 언뜻 ‘좋은 일’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물가의 지속적 하락은, 같은 돈으로 구입할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의 양이 점차 늘어난다는 의미다. 결국 가계와 기업은 점점 소비와 투자에 돈을 덜 쓰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물가가 더 내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수요 부족을 낳아 경기침체로 귀결된다.

2000년대 들어, 특히 2008년의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이었다. 중앙은행들은 디플레이션을 차단하기 위해 금리 인하와 양적완화를 병행했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다(〈RFA 자유아시아방송〉 제445호 ‘디플레이션 공포, 무엇을 할 것인가’ 기사 참조). 2021년 여름에도 파월 연준 의장은 “1990년대 이후의 호황기에도 인플레이션율이 2%를 넘지 못했다”라며, 인플레이션보다는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파월의 예상과 달리 2021년 여름을 지나면서 인플레이션이 강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볼 만한 조짐이 나타났다. 2021년 11월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전해 같은 시기(2020년 11월)보다 6.8%, 근원물가지수도 4.9%나 오른 것이다. 원자재 가격과 운송비용도 안정되지 않았다. 2021년 11월의 컨테이너 해상 운임은 같은 해 4월보다 2배 이상 올랐다. 결국 파월은 자신의 예측이 틀렸음을 인정했다. 지난 11월30일(현지 시각) 미국 상원 청문회에 출석한 파월은 “이제 ‘일시적 인플레이션’이라는 용어를 버려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

“2022년 경제 전혀 알 수 없다”

파월의 입장 선회는 2021년 12월14~15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통해 구체화됐다. 연준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매달 1200억 달러 규모의 채권(국채와 주택저당증권)을 시중은행으로부터 매입해왔다(양적완화). 그만큼의 돈이 시중은행 금고에 쌓인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면서 같은 해 11월엔 1050억 달러, 12월엔 900억 달러어치만 시중은행들로부터 매입했다. 11월과 12월에 각각 채권 매입 규모를 150억 달러씩 줄인 것이다. 그런데 올해 1월부터는 300억 달러씩 줄이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연준이 1월엔 (2021년 12월의 900억 달러에서) 300억 달러 줄인 600억 달러, 2월엔 300억 달러 규모의 채권만 매입하게 된다. 3월의 채권 매입 규모는 0달러다. 양적완화가 종료되는 것이다. 당초 연준은 올해 6월에 양적완화를 끝낼 계획이었다. 그 시기가 3월로 당겨졌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올해 인상될 가능성도 커졌다. FOMC는 매 분기 18명의 위원이 예상하는 금리 인상을 점도표로 발표한다. 이번 점도표에 따르면, 다수의 FOMC 위원은 올해 미국 기준금리가 0.75~1.00%로 오르리라고 예측했다(2021년 12월 말 현재 0.25%). 2021년 9월까지만 해도 다수 위원이 ‘2022년에도 금리인상이 없을 것’으로 예측했던 사실을 감안하면 엄청난 변화다.

파월의 결단에도 불구하고 불안 요소는 여전히 남아 있다. ‘임금 인상’이라는 위험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임금 인상은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특별히 중요한 지위를 가진다. 물가상승 시에 노동자들은 임금 상승을 요구한다. 임금을 올려 비싸진 물가를 상쇄하기 위해서다. 임금이 인상된다면 기업은 그만큼의 비용 상승을 상품 가격에 반영한다. 이는 다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며 임금 상승과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을 유발한다.

2021년 12월15일 FOMC 회의 이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파월은 “현재까지 임금 상승은 인플레이션의 주요한 원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악순환이 시작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임금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미국 경제분석국에 따르면 2021년 10월 임금은 1년 전보다 약 10% 상승했다. 특히 구직자에 비해 일자리가 넘쳐나는 노동시장 상황은 임금 상승을 더 심화시킬 수 있다.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노동의 가격, 즉 임금이 상승할 것이기 때문이다. 임금 상승이 인플레이션에 본격 반영되기 시작한다면 현재 연준이 발표한 수준의 처방으로는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파월은 장고 끝에 드디어 ‘인플레이션과의 전쟁’ 첫수를 놓았다. FOMC 회의 직후 파월은 “누구도 2022년 또는 그 이후에 경제가 어떻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겸손이었을지 고해성사였을지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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