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세의 돈은 집이 없고 트레일러에서 산다. 2013년 휴일 시즌 끝 무렵 돈은 아마존 물류창고에서 일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오후부터 새벽 동틀 때까지 이어지는 12시간 연속 밤샘근무였다. ‘연장 야간근로’였다. 식사 시간은 30분, 15분간의 휴식이 두 차례. 거의 서서 일했다. 아마존 창고 업무를 마치고 연휴가 끝나면 돈은 다시 어딘가로 트레일러를 몰고 갈 것이다. 남부 어디의 사탕수수 농장일 수도 있고 아니면 콜로라도의 겨울 캠핑장일 수도 있다. 돈 같은 사람들은 자신을 홈리스 말고 ‘하우스리스(houseless)’라 불러달라고 말한다.

〈노마드랜드〉는 말하자면 ‘미국의 노인 빈곤’을 탐사보도한 책이다. 미국의 노인 빈곤 이야기를 1만7500원 주고 사서 읽으라고, 나는 추천사를 쓰는 중이다, 세상에. 빈부격차나 노인 가난 이야기는 포털에서 뉴스로 읽고 1분간 인스턴트하게 슬퍼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조지 오웰은 ‘영어와 정치’ 칼럼에서 잘못된 정치적 글쓰기의 악덕을 꼽았다. 그중 첫째가 ‘이미지의 빈곤함(staleness of imagery)’이다. 오랜 밥벌이에 마모된 마흔 살 넘은 중년 남성인 나는 ‘빈부격차’나 ‘노인 빈곤’ 같은 한자 추상어에서 눈곱만큼의 정서적 울림도 느끼지 못한다. ‘사회적 차별’ 또는 ‘사회적 소수자’ 같은 한자어 추상 표현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 한자 추상어는 어떤 이미지도 주지 않는다. 차별받는 소수자는 김씨인가, 남성인가, 나와 같은 76년생인가, 육체노동에 찌든 하루를 마치고 컵라면을 먹으면서 듣는 음악은 BTS인가 아니면 유재하인가. 이미지가 없으니, 울림도 없다. 겨울철 동해안에서 석 달쯤 바람에 말린 팩트의 육포랄까.

이런 육포에 만족하지 못한 기자는 린다 메이를 인터뷰했다. 린다 메이도 트레일러에 살며 전국을 떠돌았다. 기자가 2014년 8월호 〈하퍼스바자〉에 기고한 이 4쪽짜리 기사에는 ‘은퇴의 끝-당신이 일을 그만둘 여유가 없을 때’라는 제목이 달렸다. 인터뷰에 기반한 짧은 기사였다. 현장 취재가 빠져 있었다. 제시카 브루더는 이 죽은 육포 가루에 습기를 불어넣고 싶었다. 동향 보고이면서 동시에 공감을 사는 스토리이기를 바랐다. 기자 일을 그만두고 1년 반 동안 린다 메이를 포함한 미국의 트레일러족과 동행했다. 함께 일하고 먹고 잤다. 취재원에게 다가가되 기자 신분을 드러내어 끝내 관찰자로서 거리를 두었다. 제시카 브루더의 4쪽짜리 기사는 1년 반 뒤 한 권의 르포 논픽션이 되었고, 다시 상업영화가 되었고, 영화는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나는 지금 ‘미국의 노인 빈곤 이야기’에 1만7500원을 지불하라고 추천하는 게 아니다. 나는 ‘고통스럽지만 유목민처럼 살면서, 삶의 끈을 놓지 않은 내 이웃 린다 메이가 세상을 버티는 법’을 다룬 휴먼스토리를 사라고 추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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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마음 첫 다짐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