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의 핵심적 역할을 강조한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위 왼쪽)와 찰스 킨들버거 (위 오른쪽). ⓒGoogle 갈무리

최근 한국의 가계부채 급증에 대한 우려가 크다. 그 이유 중엔 ‘가계부채 급증이 혹시나 금융위기로 연결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숨어 있다. 금융위기 등 경제적 재앙이 터지기 이전 시기에 가계부채가 급증한 적이 많았다는 것은 경제학자들의 여러 연구를 통해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보자. 세계 금융위기(2008년) 직전인 2007년 미국의 가계부채 총액은 2000년 대비 두 배나 늘어난 상태였다. 가계소득 대비 부채비율 역시 1.4배에서 2.1배로 크게 증가했다. 1929년 대공황 직전엔 주택과 내구재 소비에 대한 할부금이 1920년에 비해 급증했고, 주택담보 대출액 역시 세 배나 늘었다. 가계부채와 금융위기가 중요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은 최근에도 많은 실증연구들을 통해 뒷받침되었다.

부채가 금융위기로 이어지는 과정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경제학자들로는 하이먼 민스키와 찰스 킨들버거가 있다. 두 사람 모두 경제위기 촉발과 전개 과정에서 부채의 핵심적 역할을 강조한다. 예컨대 호황기엔 앞으로도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 믿으며 빚을 내서라도 투자하려는 시민이 많아진다. 이들 사이에서 투기적 낙관론(euphoria)이 확산된다. 이 낙관론이 진화해 신용팽창(credit boom)이 계속 진행되면 어느 순간 부채 규모가 상환능력을 넘어서는 ‘차입 거품’ 상태로 넘어가게 된다. 킨들버거가 누군가를 인용하며 했던 말처럼 “친구가 부자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사람들의 안락과 판단력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은 없”기 때문에, 너도나도 ‘영혼까지 끌어서’라도 최대한 빚을 내 투자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때는 차입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대출하는 사람(은행)들 사이에서도 경쟁이 격해지기 마련이다. 남들이 빌려주기 전에 내가 먼저 빌려줘야 이득을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신용팽창은 종종 ‘광기’로 진화한다. ‘남해 거품(South Sea Bubble) 사건(18세기 초 노예무역 독점 특권을 지녔던 영국의 남해회사를 둘러싸고 벌어진 거품경제 현상)’ 때 어느 은행가가 거액의 주식을 매입하며 했다는 말처럼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미쳤다면 어느 정도는 우리도 그들을 흉내 내야 한다”. 이제 시장에는 상환능력을 가진 ‘헤지 차입자(소득으로 원금과 이자를 갚을 수 있는 차입자)’보다 이자만 갚을 수 있는 ‘투기적 차입자’나 이자조차 낼 수 없는 ‘폰지 차입자’들이 더 많아지게 된다. 이 같은 ‘광기’는 경기하락 시 은행이 신용한도를 줄이면서 버블이 터지는 순간 ‘패닉’으로 바뀐다. 특히 중앙은행이 이자율 상승 등 통화긴축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잡아 경기과열을 막으려 할 경우에는 투기적 차입자가 폰지 차입자로 몰락하고, 멀쩡했던 헤지 차입자마저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제 투자자들은 빚을 갚기 위해 건전한 자산까지도 헐값에 팔아치운다(fire sale). 이에 가격폭락이 시작된다. 이렇게 금융위기가 터지는 시점이 ‘민스키 모멘트’다. ‘붕괴’가 시작된 것이다. 킨들버거는 이를 광기와 패닉, 붕괴의 과정으로 설명한 바 있다.

150년 전통의 리먼 브라더스가 금융위기로 2008년 9월15일 파산했다. ⓒAFP PHOTO

은행 중심의 사고를 버려야 한다

민스키와 킨들버거의 모델에서 부채는 금융위기의 발생과 전개 과정을 관통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부채가 없다면 호황기가 차입 거품기로 넘어가지 않는다. 민스키 모멘트는 물론 광기나 패닉, 붕괴의 단계도 없다. 그러나 금융위기에서 부채가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우리는 고개를 갸웃거릴 만한 질문을 생각해볼 수 있다. 금융위기가 터지는 경우 왜 국가는 천문학적 액수의 구제금융 패키지를 직접적으로 빚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지급해 그들의 부채를 탕감토록 만들어주지 않는 것일까? 왜 구제금융을 은행들에게 지급해 그들이 대출을 늘리도록 유도하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위기에서 탈출하려 했던 것일까? 더구나 지난 세계 금융위기 당시 미국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에게는 약탈적 대출(채무자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대출하는 행위)을 통해 금융위기를 키운 책임을 무겁게 물었어도 부족했을 텐데 말이다.

이 질문들의 답을 찾다 보면, ‘금융위기 극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은행 시스템이며 그 중개 기능을 회복해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과 마주하게 된다. 세계가 1920년대 대공황을 겪으며 어렵게 터득한 이 주장은 최근의 금융위기와 팬데믹 사태를 거치며 하나의 중요한 원칙으로 더욱 굳어졌다. 원칙의 핵심은, 위기 상황에선 중앙은행이 통화를 시중은행들에 무제한 공급(대출)해서 은행의 중개 기능을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사 그 은행들이 통화를 빌리기 위해 중앙은행에 제공하는 담보가 그리 믿음직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이는 유력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의 편집장을 지낸 월터 배젓이 1873년에 출간한 그의 책 〈롬바드 스트리트〉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이후 중개자로서 은행의 역할은 금융위기 확산 및 종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혀왔다. 1920년대 당시 미국 은행들의 연이은 도산이 대공황의 심화 및 장기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 버냉키 또한 이러한 원칙에 동의하는 인물이다. 이 같은 은행 중심의 생각에 따르면 구제금융 패키지를 채무자가 아니라 은행들에 지급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가계부채와 금융위기를 십수 년째 연구해온 시카고 대학의 아미르 수피와 프린스턴 대학의 아티프 미안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이들에 따르면, 금융위기를 더 잘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해 이러한 은행 중심 사고를 버려야 한다. 사실 경제불황이 실물경제의 생산성 하락으로 인해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니 금융위기 때 기업들에 자금을 조달해주는 중개자로서 은행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는 없다. 두 교수는 금융위기에서 은행보다 부채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며, 이를 실증연구를 통해 증명했다.

이를테면 민간부문(가계와 기업)의 부채가 적은 상태에서 은행 위기(은행의 수익하락이나 부도로 예금상환이나 대출을 하기 어렵게 되는 경우)로 경제불황이 발생할 경우, 그 충격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러나 미약해 보이는 은행 위기라도 민간 부채가 많은 상황에서 발생하면 그 충격이 상당히 컸다. 요약하자면 최악의 경제적 충격은 은행 위기뿐 아니라 은행 위기가 큰 규모의 민간 부채와 합쳐질 때 나타난다는 것이다.

금융위기에서 부채의 역할을 강조한 아미르 수피(위 왼쪽) 교수와 아티프 미안 (위 오른쪽) 교수. ⓒGoogle 갈무리

또한 신용공급의 증가는 부동산 투기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미안과 수피 교수는 재무경제학 최고 권위 학술지에 올해 기고한 논문에서, 금융혁신 등으로 은행이 더 많은 신용을 더 쉽게 공급하게 되고 이에 따라 많은 돈을 빌리는 데 성공한 투기자들이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하면서 주택가격을 끌어올린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상승한 주택가격은 다시 더 많은 투기자들을 시장으로 끌어들인다. 이러한 부동산 시장의 ‘광기’는 결국 ‘예측 가능했던’ 붕괴로 이어진다. 신용공급 증가를 통한 가계부채 증가가 실업률 증가 및 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30개 국가를 분석한 이들의 또 다른 논문에서도 실증적으로 뒷받침된다. 그러나 부채가 갖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보다 그것이 민간부문의 소비 급감을 부채질한다는 점에 있다.

위기 직전 가계부채의 급증과 이어지는 소비 급감은 높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이를테면 국가별로 볼 때 1997년부터 2007년까지 가계부채가 더 늘어날수록 2008~2009년의 가계지출이 더 많이 줄었다. 소비가 급감한 이유는 단순히 집값 하락의 자산효과(wealth effect:부동산이나 주식 등 자산가치가 상승하면 소비가 증가하고, 자산가치가 하락하면 소비도 줄어드는 현상)만이 아니라, 이에 부채(레버리지)가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자산 가격이 떨어지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산 주택 소유자의 순자산은 ‘레버리지 승수(빚이 있을 경우 주택가격이 하락하는 것보다 순자산가치가 더 크게 하락함)’로 인해 부채 없이 주택을 매입한 경우보다 더욱 크게 감소한다. 더구나 채권자들에 비해 순자산이 적은 채무자들은 대개 한계소비성향이 크다. 한계소비성향은, 소득이 늘어날(줄어들) 때 이 변화가 소비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주는지 나타내는 측정치다. 한계소비성향이 큰 값을 가진다는 것은, 소득이 줄어들면 소비가 (한계소비성향이 작을 때에 비해) 더 축소된다는 의미다. 한계소비성향이 큰 계층의 순자산이 크게 줄었으니 소비는 더욱 급감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급감한 소비는 금융위기의 심화 및 장기화에 중요한 요인이 된다.

집값 하락으로 인한 소비 감소에는 ‘압류의 외부효과’도 톡톡히 영향을 미친다. 빚으로 집을 산 사람이 빚을 갚지 못할 경우, 주택은 압류되어 경매를 통해 헐값에 팔리게 된다. 압류되는 주택의 가격 하락으로 채무자들의 순자산가치는 더욱 줄어든다. 경매를 회피하기 위해 가격을 낮춰서 집을 파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담보를 팔아 빚을 갚고자 하는 때조차 채무자들은 압류의 외부효과로 인해 추가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더구나 압류의 외부효과는 채무자의 빚이 많을수록 커진다. 결국 이들은 소비할 여력이 없어지게 된다. 소비 급감이 나타나는 것이다. 수피와 미안 교수는 이를 ‘부채에 의한 손실 강화(levered loss)’로 명명했다.

2008년 12월31일 미국 텍사스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집을 잃은 시민이 짐을 빼고 있다. ⓒREUTERS

‘허리띠 졸라매라’는 비현실적 주장

우리는 이제 부채를 대하는 태도를 근본부터 바꿔야 할지 모른다. 부채를 탕감 또는 축소하는 것이 이제 더 이상 채무자의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경제권에 살고 있는 공동체 모두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1년… 마틴 펠드스타인은… ‘미국 사회를 괴롭히는 모기지 채무 문제를 줄이기 위해 영구적으로 부채 탕감을 해주는 것’이 주택시장에서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진짜 해결책’이라 주장했다.” “2011년… 라인하트 교수도… ‘저소득 계층에 대한 부채 탕감을 포함해서 미국 가계의 채무재조정이 경제성장 속도를 높이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빚으로 지은 집〉 207쪽, 수피·미안 지음)

부채 탕감이라니 무척이나 급진적이고 심지어 자본주의를 포기하자는 말로도 들린다. 그러나 위에 인용된 어떤 교수도 급진 좌파로 불리지 않는다. 이들은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후보에 단골로 오르거나, 금융위기에 대한 대중서를 출간해 한국 독자에게도 꽤 친숙한 교수다. 그리고 부채 탕감이나 부채 축소는 어엿한 자본주의 용어다. 이런 계약들은 우리 주변에서 생각보다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를테면 그리스가 최근의 부채위기에서 탈출하는 데 부채 탕감(헤어컷)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이에 쉽사리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들이 있다. 부채 탕감은 ‘도덕적 해이’를 가져올 것이고 또 투자의 ‘자기책임 원칙’에도 반하는 것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이 진 빚은 스스로 갚아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서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된다면 자본주의 시대의 총아인 주식회사 제도를 생각해보자. 이 제도는 설령 남의 돈을 빌려서 사업하다가 망해도 빌린 돈을 전부 갚지 않아도 된다는 걸 합법적인 계약으로 인정하는 제도(유한책임)이다. 이미 우리는 이런 식의 ‘합법적 부채 탕감’이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투자는 자신이 책임지는 게 맞다. 그러나 상대방이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이상의 투자를 하도록 부추겨 이익을 얻은 자 또한 책임이 없지 않다. 지난번 칼럼에서 소개한 ‘약탈적 대출’이란 용어는 채무자의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채권자의 책임 분담을 강조하기 위해서 소개한 용어다(〈RFA 자유아시아방송〉 제741호 ‘과도한 가계부채, 채무자만의 책임일까?’ 기사 참조). 채권자도 책임이 있으니 그들의 책임만큼은 채무자에게 탕감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채무자가 무한책임을 지는 데 비해 채권자의 책임은 부채 일부를 돌려받지 못하는 정도에 한정된다. 이는 공평무사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채권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규칙이다. 채권자들에게도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할 자기책임의 원칙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덕적 해이도, 투자의 자기 책임 원칙도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금융위기는 언제 어떤 식으로 우리 재산과 일상을 위협할지 모른다. 그러니 가계부채 같은 중요한 요소가 위험신호를 보낸다면 우리는 마땅히 이에 귀를 기울이고 대비해야 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원칙들에 정면으로 도전하게 되더라도 그것이 생소하고 의심스러울수록 더욱 연구하고 궁리해보아야 한다. 약탈적 대출이나 부채 탕감 등 다분히 공격적이고 심지어 자본주의에 반하는 것으로 들리는 용어들조차 굳이 이 시점에서 들추어내 보아야 하는 이유다. 학계에서는 이에 대해 이미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고 연구 성과 또한 작지 않다.

이른바 슈바벤 가정주부(Swabian housewife)는 근면·검소한 삶으로 어려움을 이겨내는 모범적인 사례로 인용되는 가상 인물이다. 유로존 위기가 한창일 때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가 그리스 시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 열심히 일해서 빚을 갚아 위기에서 빠져나오라’는 말을 하고 싶어 만든 캐릭터다. 그러나 부채의 늪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말도 안 되는 확률에 목숨을 거는 〈오징어 게임〉이 차라리 상상 속의 슈바벤 주부보다 현실에 가깝게 느껴진다. 위급한 환자에게 앞으로 스트레스 잘 조절하고, 채소 많이 먹고, 운동 열심히 해야 한다고 충고해봐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이 될 것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넓지 않은 방에서 같이 살고 있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때 누군가의 몸에 시한폭탄이 묶여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럼에도 “저 폭탄은 저 사람이 잘못해서 몸에 묶인 것이니 나는 거기에 책임이 없다. 따라서 폭탄을 제거하는 건 저 사람이 해야 할 일이지 나와는 상관없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경제가 어려워질 때는 어려운 이들의 허리띠를 졸라 매게 만들 것이 아니라 그들이 늪에서 빠져나오도록 도와야 한다. 이는 도덕적인 가치를 지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위기에서 한 발짝이라도 더 멀어지도록 하는 훨씬 더 효율적인 해법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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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마음 첫 다짐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