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방탄소년단의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빅히트뮤직 제공

연달아 날아온 방탄소년단의 수상 소식이 흥미롭다. 11월21일에는 아메리칸 음악상(American Music Awards·AMA)에서 대상 격인 올해의 아티스트 상(Artist of the Year)을 포함해 3관왕의 주인공이 되었고, 이틀 뒤인 11월23일에는 그래미상에서 팝 듀오/그룹 부문 후보에 올랐다. 작년과 비교할 때 AMA의 경우 일반 부문 상에서 대상으로 상승했고, 그래미에서는 똑같은 부문 한 개의 후보 지명만을 유지했다. 무슨 뜻일까.

먼저 두 상의 성격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AMA와 그래미는 모두 미국의 3대 주요 음악상이다(마지막 하나는 빌보드 음악상이다). 그러나 각자가 대표하는 이미지와 가치가 조금 다르다.

그래미가 더 오래되었고, 좀 더 권위 있는 이미지다. 일례로 뮤지션의 부고 기사에는 그래미 수상 경력이 우선된다. 그래미는 프로페셔널 음악인 혹은 음반업계 사람들로 구성된 리코딩 아카데미(Recording Academy)가 회원 투표로 후보와 수상자를 결정한다. 수상이 곧 동료 음악가들의 인정을 뜻하기도 하는 셈이다. 프로들의 결정이니 ‘음악성’을 보다 전문적으로 판단했을 거라는 인상도 준다.

엘리트적인 그래미에 비해 AMA는 대중적인 이미지다. 그래미가 음악산업계의 내부 잔치로 시작되었다면, AMA는 처음부터 텔레비전 시청자를 중심으로 기획된 쇼였다. AMA를 만든 이는 딕 클라크라는 미국의 전설적인 음악방송 진행자다. 그는 1950년대부터 텔레비전에서 로큰롤 등을 소개하며 10대가 유행의 흐름을 주도하는 현대 팝 문화의 근간을 쌓았다. 그런 딕 클라크가 기획한 AMA는, 그래미와는 달리 음반 판매량과 방송 점수를 기준으로 그해 최고의 성적을 올린 가수를 뽑았다. 이런 배경 때문에 ‘인기의 AMA, 음악성의 그래미’라는 인식이 있다.

2006년부터 AMA는 아예 수상자 선정 방식을 바꾸었다. 결정을 모두 팬들의 투표에 맡기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팬 투표 상’이라는 점이 AMA의 차별점이다. 따라서 방탄소년단의 AMA 대상 수상은 이들이 현재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수 중 하나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반면 그래미는 대중보다는 당대 음악 업계인들의 취향을 드러내는 상이고, 그중에서도 주로 미국에 집중되어 있다. 미국에서 오랜 시간 인정 받았거나 뿌리가 깊은 장르일수록 유리하다. 그래미 역시 꾸준히 새 얼굴들을 소개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그래미가 선호하는 젊은 뮤지션들은 대체로 미국 음악 산업의 전통을 반영하는 음악을 하거나 올드패션 방식으로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업계인일수록 레거시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고, 리코딩 아카데미의 꾸준한 신규 회원 영입에도 아직 나이 든 기성 회원들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이야기 좋지, 단 영어가 아니면 무효’

그래미가 듣는 가장 큰 비판은 다양성이 부족하고 변화에 더디다는 것이다. 2020년에는 이런 비판의 세가 정점을 찍었다. 캐나다 출신 흑인 아티스트 더위켄드는 ‘블라인딩 라이츠(Blinding Lights)’가 빌보드 핫100 차트에 장장 90주간 이름을 올리는 대기록을 세웠는데도 단 한 개의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그를 비롯한 여러 인기 가수들이 그래미의 투명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상을 보이콧했다. 행사 10일 전에는 당시 CEO 데버라 두건이 돌연 해고당하기도 했다. 그가 전임자 닐 포트나우를 포함한 조직 내부자들의 성추행과 조작 비리 등을 고발한 뒤였기 때문에 보복 조치였을 거라는 추측도 나왔다. 새로 부임한 CEO는 개선의 의지를 여러 번 내비쳤고, 그 일환으로 올해부터는 더위켄드 등이 비판했던 후보 선정 비밀위원회(Secret Review Committee)를 없앴다. 그러나 후보들의 면면에서 작년에 비해 그리 큰 변화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유의미한 개선은 아직 과정에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올해 방탄소년단의 그래미 수상 가능성을 점쳐보자면, 낙관적이지는 않다. 이들이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팝 그룹임은 분명하지만 올해 후보로 오른 버블검팝 풍의 ‘버터(Butter)’가 그래미의 취향이라 보기는 어렵다. 특히 최근 그래미에서 수상한 젊은 뮤지션들 면면을 보면 자전적인 메시지를 담은 음악이 많았다. 오히려 방탄소년단이 한국어로 해왔던 음악들이 그런 성격이었다. 그러나 내용이 아무리 좋고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은들, 라디오 같은 레거시 미디어는 한국어 곡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방탄소년단의 미국 배급 레이블인 콜럼비아 역시 2020년 말에 나온 한국어 앨범 〈BE〉에는 ‘다이너마이트’나 ‘버터’와는 달리 프로모션을 거의 하지 않았다. ‘자기 이야기 좋지, 단 영어가 아니면 무효.’ 미국 음악업계는 계속해서 이런 메시지를 은근하게 보내왔다. 게이트키핑은 팬데믹 중에 내놓은 번외 같은 영어 곡에 비로소 열렸고, 지금의 성적과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방탄소년단의 한국어 음악부터 꾸준히 사랑해온 팬들로서는 기쁘면서도 복잡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인기의 AMA, 음악성의 그래미’라고 거칠게 요약하기는 했지만 사실 두 상은 서로를 참고해온 사이다. 애초에 AMA는 그래미가 놓치고 있던 부분을 파고든 상이고, 1980년대에는 그래미보다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기도 했다. 그래미가 지금까지 시대에 맞춰 느리게나마 변화해왔다면 그건 아마도 AMA처럼 그래미와 다른 성격의 프로그램이 ‘대중에게 사랑받는 음악’의 의미를 의식하게 만들었기 때문일 터이다. 2019년에 드레이크는 그래미의 ‘베스트 랩 송’상을 받으며 “사람들이 힘들게 번 돈으로 티켓을 사서 눈과 비를 뚫고 당신 공연을 보러 온다면, 이런 상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라고 수상 소감을 말했다. 그래미의 한복판에서 던진 이 말은 결국 팬들의 사랑이 이 산업의 근간임을 명시하며 긴장감을 주었다.

방탄소년단의 멤버 슈가는 11월 말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콘서트 기자회견에서 그래미에 대한 질문의 대답으로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을 들며 도전이 길어질 각오도 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그래미가 방탄소년단을 너무 오래 외면한다면 그 역시 그래미에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상이 가수에게 권위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가수가 그 시대에 어떤 존재로 남는지를 보며 상의 타당성이 평가되기도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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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마음 첫 다짐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