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차〉(위)의 동명 원작 소설은 사채업자에게 쫓기다 정체성까지 지워야 했던 한 여성의 이야기다.

변영주 감독이 이선균·김민희 등의 톱클래스 배우들을 내세워 같은 이름으로 영화화했던, 일본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화차〉는 홀연히 사라진 여성의 행방을 쫓는 스릴러다. 휴직 중인 강력계 형사 혼마는 먼 친척 조카로부터 ‘실종된 약혼녀 세키네 쇼코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추적에 나선 혼마는 쇼코에 관해 하나씩 밝혀지는 믿을 수 없는 정보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름부터 출신, 직장까지 쇼코가 약혼자에게 말한 신상이 모두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쇼코는 갚을 수 없을 만큼의 빚을 지고 사채업자들에게 쫓기다 급기야는 자신의 정체성까지 지워야 했던 비운의 여자였다.

빚을 진다는 것, 즉 부채는 경제의 선순환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경제주체들이 돈을 빌려 유망하고 효율적인 부문에 제대로 투입해야 경제성장이 촉진된다.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부를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러나 빚을 진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빌린 돈을 갚지 못할 경우, 신용 하락과 부도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돈을 빌리기 전부터 갖고 있었던 재산마저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기업과 가계는 이런 위험을 부담하는 방식에서 크게 다르다. 기업이 돈을 갚지 못하면 인력 감축 등 구조조정을 감행해서 돈을 만들어야 한다. 혹은 해당 기업 자체를 다른 업체나 사모펀드 등에 ‘부채까지 포함해서’ 매각하는 과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 기업을 인수한 업체나 사모펀드는 해당 부채를 갚을 의무까지 떠안는 셈이다.

그러나 가계부채라면 문제가 다르다. 이런 구조조정이나 매각 절차가 성립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가족을 구조조정하거나 인수합병할 수는 없다). 가계부채가 기업부채나 정부부채보다 더 어렵고 까다로운 부채인 이유다. 케인스는 ‘내가 1파운드를 빚지면 내 문제겠지만, 100만 파운드를 빚지면 그건 빌려준 사람의 문제가 된다’라고 말했다. 문제가 될 가계부채가 많아지면 이는 결국 그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된다. 그렇게 되면 궁극적으로 이를 국가 단위에서 해결해야만 할 가능성도 커진다.

올해 상반기 한국의 가계대출이 급속히 증가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104.2%라는 규모도 엄청나지만 그 증가 속도가 주요국과 비교해 매우 빠르다. 이런 이유로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를 한국 경제의 최대 잠재 위험 요인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지난 6월 한국은행이 발행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가계부채는 2021년 1분기 말 현재, 지난해 동기 대비 9.5% 증가한 1765조원에 이른다. 이는 가처분소득 대비 171.5%(추정치:전년 동기 대비 11.4%포인트 상승)에 해당되는 수치다.

물론 가계부채의 증가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림 1〉은 2012년 이후 가계부채 증가율이 번갈아가며 증가, 감소했으나 항상 양의 값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계부채가 작든 크든 매년 꾸준히 늘어났다는 이야기다. 특히 최근 증가세는 매우 가파르다. 금리 상승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현 상황을 감안하면 당연히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돈을 쉽게 빌릴 수 있게 만드는 환경’

국가별 통계를 봐도 한국의 가계부채는 눈에 띄게 크다. 〈그림 2〉는 각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의 최근 통계다. 한국은 200.7%로 그 수치가 일본(114.09%)이나 미국(104.63%), 그리고 영국(145.01%)보다 월등히 크다. 또 한 가지 빠뜨리지 말아야 할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가계부채 규모 통계는 ‘전세자금 대출’ ‘법인(사실은 가계) 명의 채무’ ‘임대보증금 채무(건물을 빌려주고 보증금으로 받은 돈)’ 등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즉 한국은행의 가계부채비율을 다른 국가의 그것과 직접적으로 비교하려면 주의가 필요하다. 전세자금 대출 등이 빠진 한국은행의 가계부채 통계는 ‘실질적인 가계부채’의 규모와 그 위험성을 축소·왜곡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피할 수 없다(〈2022 피할 수 없는 부채 위기〉, 서영수 지음).

사실 부채의 규모 자체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과연 ‘그 부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냐’는 것이다. 신용갭(Credit-to-GDP Gap)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신용갭은 국제결제은행(BIS)이 국가별·분기별로 발표하는데 가계와 비금융기업을 포괄하는 민간 부문 신용위험의 정도를 보여주는 측정치다. 민간 부문 부채를 국내총생산으로 나눈 비율이 해당 분기에 얼마나 크게 장기적 추세에서 벗어나 있는지(갭)를 통해 민간 부채의 위험 정도를 경고해준다.

사실 경제가 성장하면서 부채가 함께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GDP와 부채는 둘 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신용갭은 어느 시기에 이 두 변수가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관계에서 벗어나는지 알려준다. 갭이 크다는 것은 민간신용의 증가가 GDP 증가로 감당할 수 있는(늘어난 부채를 소득 증가로 갚아나갈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다는 뜻이다. 그만큼 신용위험이 커진다. 신용위험은 2% 미만이면 ‘보통’, 이후 10%까지는 ‘주의’, 그리고 10%를 넘어서면 ‘경보’ 단계로 분류한다.

한국은 2018년 이후 신용갭이 급속도로 커지기 시작해 지난해 1분기 8.8%를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에 13%로 ‘경보’ 단계인 10%를 돌파했다. 이후 상승세는 멈추지 않아 올해 3월엔 18.3%까지 치솟았다. 역사상 최고치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4분기의 13.2%와, 금융위기로 치솟았던 2009년 상반기의 13.2%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영국·독일·프랑스·미국 등 주요 국가들의 신용갭도 최근 들어 크게 상승하고 있지만 경보 단계를 넘는 나라는 프랑스(19.8%)와 독일(12.3%) 정도다.

부채 문제가 심각해지자 지난 10월 말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을 내놓았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그동안 담보능력만 있으면 빌려주던 대출을 이제는 실제로 빚을 갚을 능력이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 빌려주겠다는 것이다. 매해 갚아야 하는 ‘전체 금융부채 원리금 상환액’을 가계 연소득으로 나눈 총부채상환비율(DSR:Debt Service Ratio)의 2단계 적용(당초엔 내년 7월부터 시행)을 내년 1월로 앞당긴 것 등이 주된 내용이다.

10월26일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정부서울청사에서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계부채를 걱정하는 의견은 넘쳐난다. 그 원인에 대한 진단도 많다. 가계부채가 최근 급등한 이유 중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생계형 부채 증가처럼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 이 부분들은 매출 감소의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와 취약계층에게 특히 더 중요하다.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는 또한 주택 관련 대출수요 확대와 경기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기업의 유동성 확보 등으로 민간 부문의 자금 수요가 늘어난 것이 가계부채가 빠르게 증가하는 요인 중 하나였다고 진단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낮은 금리 등 완화된 금융 환경이 대출을 싸게 만들어주었고, 이렇게 싼값에 빌려진 자금들이 부동산이나 주식 등 자산시장에 큰 폭으로 유입된 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요한 사실은, 가계부채가 늘어난 것은 빚을 무분별하게 여기저기 늘렸기 때문이라며 채무자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사실 문제는 그들이 빚을 졌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빚을 ‘쉽게’ 졌다는 데 있다. 가계부채 증가가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채권자의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약탈적으로 빌려준다’라니 다소 의아하게 들릴 수 있다. 빌려주는 측에 ‘약탈’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쓸데없이 공격적으로 들려 좀 과하다 싶기도 하다. 그러나 약탈적 대출은 시중에 풀린 풍부한 자금을 상환능력이 부족한 채무자에게도 대출하는 관행을 가리키는 말로 미국 월스트리트나 경제학계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다. 광의로는 ‘돈을 쉽게 빌릴 수 있게 만드는 환경’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유명한 미국 카툰 작가 랜디 글래스버겐이 약탈적 대출을 날카롭게 풍자한 작품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혼부부로 보이는 한 쌍의 남녀가 집을 사기 위해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컨설팅을 받는다. 모기지 회사의 직원은 “우리 회사는 30년 만기의 모기지 대출뿐 아니라 ‘(피겨스케이팅의) 트리플 러츠(triple lutz) 점프를 겸비한 스피닝 더블 악셀(spinning double axel) 모기지’도 제공한다”라고 말한다. 물론 이런 모기지는 없다. 그저 뭐든지 원하시면 다 만들어드리겠으니 제발 돈 좀 빌려 가시라는 이야기다.

2008년 9월15일 한 남성이 파산 신청을 한 리먼브라더스 뉴욕 본사를 떠나고 있다. ⓒAP Photo

문제가 생기면 모두 채무자 책임

2008년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되었던 ‘서브프라임(subprime:비우량 신용등급)’ 부채는 신용위험이 큰 이들에게 그들의 상환능력 이상으로 대출해준 경우를 의미한다. 금융기관 측이 시민들에게 상환능력 이상으로 대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부도 위험을 작게 평가했거나, 또한 일부가 빚을 갚지 못하더라도 이런 채무불이행이 대규모로 한꺼번에 터지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브프라임’이라는 용어의 의미가 그 자체로 ‘이 사람에게 대출하면 부도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지 않은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었던 버냉키는 약탈적 대출을 일삼은 은행가들을 감옥으로 보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2015년, 마음을 바꿔 이에 찬성한다는 인터뷰를 했다. 금융소비자들이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시장에서 퇴출돼야 마땅한 ‘위험 금융상품(빌린 사람이 원리금을 상환하기 힘들게 설계된 상품)’을 만든 사람은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데 기꺼이 동의한 것이다.

약탈적 대출의 증거는 학계에도 보고되어 있다. 2006년 시카고에서는 ‘반약탈 파일럿 프로그램(antipredatory pilot program in Chicago)’이 운영되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신용등급이 낮은 채무자들이 위험한 모기지론을 빌리려 할 경우 이를 재무 카운슬러(미국 주택도시개발부 발급 라이선스를 취득한)와 상담토록 규정했다. 이후 해당 프로그램의 적용을 받은 사람들(실험군)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대조군)을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반약탈 프로그램’의 적용을 받지 않은 모기지 회사들이 약탈적 대출을 시행하는 데 훨씬 유리했다. 카운슬러가 신용등급이 낮은 잠재적 채무자들에게 ‘그건 약탈적 대출’이라고 알려줄 경우, 모기지 회사가 대출에 성공할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실증분석은 이 프로그램이 적용될 경우 실제 모기지론 거래가 실험군에서 절반으로 줄어듦을 보여준다. 줄어든 정도는 이 프로그램이 적용되지 않은 대조군의 두 배에 달했다. 취약 신용계층에게 약탈적 대출이 성행했을 것이라는 믿음을 더하는 연구다.

돈을 빌리고 나서 문제가 생기면 채무자가 모두 다 책임져야 한다. 대출이 약탈적이었든 약탈적이지 않았든 상관없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자기 돈 4억원에, 구입할 주택을 담보로 대출받은 6억원을 더해 10억원짜리 주택을 구입했다고 하자. 10억원 주택을 담보로 6억원을 빌린 셈이니 담보인정비율(LTV)이 60%인 거래다. 이제 집값이 8억원으로 20%만큼 떨어졌다고 하자. 그럼 부채를 갚고 난 후 당신의 순자산은 얼마일까?

집값이 떨어지든 말든 빌린 돈 6억원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 집값 8억원으로 6억원을 갚고 나면 2억원이 남는다. 원래 갖고 있던 4억원이 반토막 난 셈이다. 집값은 20% 줄었는데 순자산은 50% 줄었으니 레버리지 승수는 2.5다. 집값 하락의 2.5배만큼 순자산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이처럼 빚을 지는 것(‘레버리지를 일으킨다’고 표현하기도 한다)은 원래 자신이 갖고 있던 재산마저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가 된다. 이는 ‘부채 증가로 인한 자본의 위험 증가’다.

이 예를 통해 강조하고 싶은 것이 또 있다. 집값이 떨어지는 경우 그 손실이 ‘차입자’들에게 집중된다는 점이다. 위의 사례에서 돈을 빌려준 채권자는 집값이 떨어졌는데도 아무런 손실을 입지 않는다. 갖고 있던 재산이 절반으로 줄어들면서까지 빚을 갚아야 하는 건 채무자다. 채무자가 집값 하락으로 인한 손실을 100% 부담하는 것이다. 이는 빚을 내 구입한 주택에 대해서는 주택 소유자라 하더라도 그 가치에 대해 ‘후순위 청구권’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여기서 주택 소유자의 ‘후순위 청구권’이란, 특정 시점에 집을 매각할 경우 채권자가 원리금을 먼저 가져가고(채권자의 ‘우선 청구권’), 집주인은 남은 돈을 후순위로 갖는다는 의미다.

주택 소유자들은 가난할수록 빚을 많이 내야 집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집값이 하락할 때 이런 가난한 주택 소유자들은 레버리지 승수만큼 순자산이 감소하는 타격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그러나 채권자들의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위의 예에서 집값이 떨어질 때 채무자는 50% 손실을 입었지만 채권자는 아무런 손실을 입지 않았다. 이제 집값이 두 배나 더 떨어져 40%만큼 하락해 6억원이 되었다고 치자. 이 경우 채무자는 전 재산인 4억원을 모두 잃게 된다. 그러나 채권자는 그 결과 이제 그 집을 100% 보유할 수 있게 된다. 채권자에게 주어진 ‘우선 청구권’과 채무자에게 주어진 ‘후순위 청구권’이 이렇게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다. 채권자는 집값이 40% 이상 하락할 경우에만 부분적으로 책임을 지게(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이 발표된 10월26일 서울의 한 시중은행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그게 오해라는 겁니다”

집값이 하락할 때 채무자가 이를 모두 또는 대부분 책임져야 한다니 이래도 괜찮은 걸까? 언제부터 이런 관행이 거래 법칙으로 굳어진 걸까? 역설적이게도 사실 채무자가 부채를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봉건제도를 타파하며 시민의 권리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쟁취한 투쟁의 산물이다. 툭하면 시민들에게서 돈을 빌리곤 하던 봉건시대의 왕들은 자신이 빌린 돈을 굳이 갚으려 하지 않았다. 갚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이 왕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 세금을 내는 행위의 다른 이름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시민의 권리가 확대되면서 아무리 왕이라 할지라도 빌린 돈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의무를 지게 되었다.

채무불이행이 온전히 당신의 잘못 때문이라면 그걸 모두 당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그것이 온전히 당신 잘못이 아니라는 데 있다. 사실 당신은 완화된 금융 환경이 만들어낸 대출 확대의 희생자일 수 있다. ‘도드프랭크 월스트리트 개혁과 소비자보호법’ 역시 이런 상황에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형사) 혼마 씨는 지금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것 아닙니까? 세키네 쇼코는 개인파산을 한 여자다. 게다가 술집에서 일하고 있었다니까 돈 낭비가 심했던 건 물론이고 사생활도 엉망이었을 게 분명하다. …그게 오해라는 겁니다. 현대사회에서 카드나 은행 대출 때문에 파산에 이르는 사람들 중에는 부지런하면서 겁도 많고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아요. 그런 점을 이해하려면 우선 이 업계의 구조부터 알아야 합니다(〈화차〉).”

〈화차〉를 손에 잡았던 건 더운 여름에 시원한 스릴러 소설이 제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일본에서 신용카드가 얼마나 남발되었는지에 대한 통계를 몇 페이지에 걸쳐 읽게 될 줄은 몰랐다. 신용카드 남발은 약탈적 대출의 잘 알려진 사례다.

물론 빚에 대한 채무자의 무한책임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특히 다음의 사례가 자주 인용된다. 미켈란젤로의 예술 작품들은 그가 친척들 빚을 갚아주기 위해 열심히 일한 결과다. 도스토옙스키는 도박에서 진 빚을 갚기 위해 미친 듯이 글을 썼다. 빚으로 지은 문화유산을 후세들이 누리는 것이야 좋은 일일 테다. 그렇다고 그들이 가졌던 종류의 고통을 얼마나 감수할 의지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더구나 우리는 미켈란젤로나 도스토옙스키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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