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9일, 저녁 7시께 타이 남부 지방 수라타니에 사는 사라윳 밤룽키티쿤(37)의 집으로 군경 30여 명이 들이닥쳤다. 영장을 보여주거나 아무런 설명도 없이 군인과 경찰들은 사라윳을 강제로 차에 태웠다. 사라윳은 눈을 가린 채 끌려갔다. 그가 도착한 곳은 수라타니 지방 내 45여단 군부대. 그곳에서 사라윳은 자신이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열린 토론’을 폐쇄할 것과 정치 활동을 중단하겠다는 서약서에 사인해야 했다. ‘열린 토론’은 2만여 명의 ‘좋아요’와 수십만명의 방문 기록을 지닌 인기 사이트다.

타이 군정이 쿠데타를 감행한 지 2년이 흘렀다. 2014년 5월22일 “행복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던 쁘라윳 찬오차 총리는, 공포정치를 펴고 있다. 법적 근거는 군정이 도입한 임시헌법 제44조다. 총리에게 절대 권한을 부여한 이 조항은 지난해 3월 쿠데타 10개월 만에 계엄령을 해제하면서 발동됐다. 바로 이어 발표된 긴급조치 제3호에 따라 당국은 영장 없는 체포와 7일간 비밀구금을 할 수 있다. 이 기간에는 변호인 접견도 금지된다.

사라윳은 그날 밤 서약서에 서명한 뒤에도 계속 구금되었다. 이튿날 군은 그를 비행기에 태워 방콕으로 데려왔고 서북부 나콘차이시마 도로에 있는 11연대 군부대로 데려갔다. 부대 안에는 임시구금 시설이 있다. 변호인도, 가족도 면회가 불허된 비밀 시설이다. 이곳은 테러리스트 혐의자를 가두던 CIA의 제3국 비밀구금 시설에 비유되면서 타이판 ‘블랙사이트(Black Site)’라 불린다. 지난해 8월 ‘방콕 폭파범’ 혐의를 받고 잡힌 위구르 청년 두 명도 이곳에 있고, 군정이 ‘태도 교정’을 하겠다며 소환하는 비판세력들도 모두 이 곳에 갇혀 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Sa-nguan Khumrungroj〈/font〉〈/div〉4월27일 타이의 페이스북 이용자 10명이 체포되고 이들 중 8명이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위).

사라윳은 가느다란 빛줄기가 새어 들어오는 좁은 공간에 갇혔고 군인 세 명이 돌아가면서 그를 감시했다. 강제구금 셋째 날, 군은 그가 ‘반왕정 네트워크’에 관여한 혐의가 있다며 조사를 시작했다. 노트북과 휴대전화에 ‘왕실모독성 메시지’가 있는지 샅샅이 뒤졌다. 형법 제112조, 즉 왕실모독법에 걸리면 한 건당 최대 15년형까지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자가 된다. 법 조항은 국왕과 왕비, 차기 국왕으로 내정된 왕세자를 모욕한 경우 처벌 대상으로 규정했지만 실제로는 반정부 세력과 정적을 겨냥해 악용돼왔다.

타이 법률 NGO인 아이로(iLaw)에 따르면 쿠데타 후 2년간 67명이 왕실모독법으로 기소됐거나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 말 왕실 모독 혐의를 받고 11연대 시설 내에 구금당했던 두 명은 시체로 돌아왔다. 경찰 간부 프라콤 와룬프라파파와 수리얀 수차릿폴웡(일명 ‘점쟁이 모용’)이 바로 그들이다. 두 사람은 반정부 세력도 아니었다. 모용은 왕실 최측근 역술가였고, 프라콤은 왕실모독법 조사를 전담하던 경찰부서 간부였다. 둘 모두 의문사였다. 이들이 어떤 왕실 모독 행위로 처벌받고, 또 왜 숨졌는지 지금도 미궁 속에 빠져 있다.

“구금 사흘째가 지나면서 삶과 죽음에 집착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라고 사라윳은 말했다. 3월11일, 군정 최고기관인 ‘평화와 질서회복 국가평의회(NCPO)’ 대변인인 피야퐁 클린판 소령이 기자들에게 “사라윳이 체포됐는지, 그가 어디에 있는지 우린 모른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를 감금한 채 조사했지만 군은 아무런 혐의도 찾지 못했다. 사라윳은 잡혀간 지 8일 만에 귀가했다. 그는 구금당한 8일간 ‘강제실종(enforced disappearance)’ 상태였다. 그의 행방을 유일하게 아는 군정이 모르쇠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국제법상 강제실종은 ‘국가의 관료나 기관이 시민을 체포하거나 구금하면서도 그 사실을 부인하는 것, 구금자의 위치를 밝히지 않는 경우’를 일컫는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EPA〈/font〉〈/div〉타이 군정은 지난해 3월 쁘라윳 찬오차 총리(위)에게 절대 권한을 부여했다.

탐마삿 대학 정치학도 시라윗 세리티왓도 납치를 당했다. 지난 1월20일 밤 10시30분, 친구와 교문 밖을 걷던 시라윗은 군인 8명에게 붙잡혔다. 군인들은 그를 강제로 차에 태웠다. 번호판 없는 차량은 도로 속으로 사라졌다.

가족들이 수소문했지만 군정은 “모른다”며 확인을 거부했다. 다음 날 새벽 2시30분 시라윗은 경찰에 넘겨졌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납치 군인들은 보병 2사단 2연대 소속이었다. 시라윗은 차 안에서 눈이 가려지고 총으로 추정되는 단단한 물건으로 머리를 가격당했다고 증언했다. 야산으로 끌려간 그는 무릎이 꿇린 채 발길질도 당했다고 덧붙였다. 납치 군인들의 질문이 특이했다. “왜 언론과 인터뷰하는가? 유명해지고 싶은가?” 쁘라윳 총리는 이튿날 기자회견에서 시라윗의 사례는 “합법적으로 공권력을 행사한 것”이며 “정부는 그를 체포하기 위해 어떤 수단이든 사용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2년간 민간인 167명 군사재판에 넘긴 군정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판 세력을 탄압한 군정은 지난 2년간 총 167명의 민간인을 군사재판에 넘겼다. 특히 선동죄(형법 제116조)로 군사재판에 회부된 39명 중 다수는 쁘라윳 총리를 풍자한 혐의였다. 2년 동안 군정의 폭압을 피해 약 200명이 타이를 떠나 정치적 망명길에 올랐다.

유엔 강제실종 조사그룹에 따르면 1980년 이래 타이에서 발생한 강제실종은 최소 82건이다. 하지만 인권단체들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 중 단 한 건도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다. 지난 1월7일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사무소의 자이드 라아드 알후세인은 82건을 재조사하라고 권고했지만 타이 당국은 조사를 거부했다. 오히려 강제실종이 늘었다.

강제실종은 국제법상 범죄다. 하지만 역대 타이 정부는 이를 범죄로 규정하기를 거부해왔다. 그러다 5월24일 군정이 자신들이 임명한 군정의회에 ‘고문과 강제실종 방지’ 법안을 제출했다. 가해자가 자신들이 저지르는 범죄를 방지한다며 법안을 제출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법안 제출 전까지 이뤄진 강제납치 사례를 봐도 군정의 진정성이 의심된다. 그나마 마지막 소통 공간이던 페이스북도 군정의 감시 대상이 되었다. 지난 4월27일 새벽 페이스북 이용자 10명이 비판적 포스팅과 댓글을 달았다는 이유로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체포됐다. 40세 여성 파트나리 찬킷은 자신의 페이스북 메시지함에 도착한 메시지에 “응” 정도에 해당하는 타이어 “짜”를 적었다는 이유로 왕실모독법 위반 혐의로 소환돼 조사받았다. 그녀는 군사재판에 넘겨졌다. 군정이 그녀를 겨냥한 진짜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파트나리는 군정에 납치됐다가 보석 석방으로 풀려난 뒤에도 비판을 멈추지 않은 위 대학생 시라윗의 어머니다. 가사도우미·청소일·다림질 등 온갖 허드렛일로 아들을 명문대에 진학시킨 어머니다. 파트나리는 타이 군정의 탄압 지수를 가장 또렷이 부각시킨 인물로 떠올랐다. 타이가 군정 통치 3년째에 접어들었지만, 민주화로 향한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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