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5일 발생한 네팔 대지진으로 5월1일 현재까지 공식 확인된 사망자 수만 5000여 명에 달한다. 사망자 수가 1만명 이상으로 집계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네팔 정부 당국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사실상 전시체제로 돌입했다. 희생자 구조 및 수색 작업에 군 병력의 90%를 투입한 것이다. 그러나 ‘기적’이 아닌 한 피해자를 생존 상태로 구조할 수 있는 기간은 재난 발생 이후 3일 정도에 불과하다. 이 ‘골든타임’도 이미 며칠이 지나고 말았다.

네팔 대지진은 틀림없는 자연재해다. 그러나 정부의 대비나 이후 구조 상황을 감안하면, 수많은 생명의 손실이 인재(人災)로 빚어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일단 네팔 정부는 지진에 대한 대책을 세운 적이 없다. 네팔이 역사적으로 지진 다발 지역이었는데도 그랬다. 1934년에는 규모 8.0의 대지진으로 1만여 명이 목숨을 잃은 바 있다. 1988년에도 규모 6.8의 지진으로 1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1255년의 역사 기록에 ‘대지진으로 땅이 갈라져 국왕이 서거했다’고 적혀 있다.

상식으로 알려져 있다시피, 지진은 지표면을 구성하는 암판들이 충돌할 때 발생한다. 암판이 부딪치는 경계에는 높은 산맥이 있기 마련이다. 네팔은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는 히말라야 산맥을 품고 있는 나라다. 거대 암판들의 경계에 자리 잡은 국가인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4월25일 발생한 네팔 대지진(규모 7.8)으로 수도 카트만두의 한 사원이 무너졌다. 네팔은 지진 다발 지역인데도 내진 설계에 대한 규정이 허술하다.
지금 히말라야 산맥이 지나가는 지형은 2500만 년 전까지는 바다였다. 당시부터 인도판이 유라시아판과 충돌하면서 수만 년에 걸쳐 지표면을 밀어 올렸는데, 그 결과가 바로 히말라야 산맥이라고 한다. 이런 거대 암판들의 충돌에서 발생한 에너지는 그냥 소멸되지 않고 수십 년을 주기로 지진을 일으킨다. 네팔 대지진은 이런 주기적 재앙의 결과로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는 것이다. 마린 클라크 미국 미시간 대학 교수는 “히말라야 탄생 과정을 고려하면 이번 네팔 지진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주일 전 카트만두 학술회의, ‘네팔 지진’ 경고

이번 지진이 일어나기 불과 일주일 전,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는 전 세계 지질학자들이 모인 학술회의가 열렸다. AFP 통신에 따르면, 이 회의에서 전문가들은 2010년 2월에 30만명의 사망자를 낸 아이티 대지진 참사 직후 다음 차례가 네팔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진 규모를 8.0으로 예상했는데 실제 상황(7.8)을 거의 정확하게 맞혔다. 지진 연구단체인 ‘지오해저드 인터내셔널(GI)’은 이미 1990년대에 낸 보고서를 통해 카트만두에서 대지진의 발생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보고서에는 “150만명이 지진의 심각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네팔 지진기술국립협회(NSET) 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네팔에서는 규모 8.0가량 되는 지진이 75년 주기로 반복’되어왔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FP〈/font〉〈/div〉대지진 이후 에베레스트 산의 조난자 수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위는 에베레스트의 구조 헬기.
그러나 이런 지진 위험성에 대응하기에는 네팔 정부의 역량이 너무 취약했다. 수도 카트만두에는 250만명이 넘는 인구가 몰려 산다. 지난 몇 년 동안 인구 증가율이 매년 평균 6.5%로 대단히 높은 편이었다. 인구 밀집도가 높을수록 지진이 발생하면 희생자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카트만두는 그 대표 사례다. 최근 나온 한 연구기관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같은 규모의 지진이 발생하는 경우 네팔에서는 인구 100만명당 1000명 이상이 사망하지만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희생자가 10~30명에 그칠 것으로 예측되었다. 캘리포니아 주가 미국에서 인구 밀집도가 가장 높은 편인데도 그렇다. 지오해저드 인터내셔널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지진 발생 시 인명 피해 정도’를 아시아 각국별로 다음과 같이 예측했다. “지진이 일어나는 경우, 네팔 카트만두에서는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보다 9배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다. 같은 규모의 지진이 일본 도쿄에서 발생하는 경우와 비교하면 카트만두에서는 도쿄의 60배에 달하는 인명이 피해를 당할 수 있다.”

이처럼 인구 밀집도만 봐도 위험 지역이었던 카트만두에는 흙벽돌과 나무로 만든 주택이 빽빽이 들어서 있기도 했다. 모든 자녀에게 똑같이 땅을 나눠주는 상속법령 탓에 좁은 부지 위에 비교적 높게 쌓아올린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러나 네팔 당국의 건축 규제는 매우 부실하다. 건물의 견고성을 보장하는 내진 설계에 대한 규정은 특히 허술하기 짝이 없다. 이런 안일한 건축 규제로 들어선 부실한 건물들이 이번 지진 피해를 증폭시켰다. 케임브리지 대학 지구과학 학부의 제임스 잭슨 학장은 “카트만두의 시민들을 죽인 것은 지진이라기보다 부실한 건물들이다”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네팔 정부가 미리 지진에 대비하면서 카트만두의 도시계획을 통해 건물의 내구성을 강화하고 인구 분산을 유도했다면 지진 피해 역시 크게 줄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한편 봄철을 맞아 등반객 1500여 명이 몰린 에베레스트 산에서는 지진 여파로 대규모 눈사태가 발생했다. 수십m 높이의 눈덩이가 등반객들의 베이스캠프를 덮쳐 2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직 정확한 피해자 수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실종자와 부상자, 눈사태로 고립된 등반객까지 감안하면 피해자는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네팔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다. 뛰어난 산세와 문화유산 등의 관광자원이 국가의 주요 수입원이다. 세계관광협회에 따르면, 2013년 현재 네팔의 관광수입은 GDP의 8.2%에 달한다. 대다수 관광객은 에베레스트를 오르려는 외국인이다. 에베레스트의 경우, 외국인의 입산료가 1인당 1만1000달러(약 1180만원)나 된다.

네팔 정부는 이렇게 비싼 입산료를 국가의 주요 수입원으로 삼아왔지만 정작 등반객에 대한 안전대책은 전혀 세워놓지 않았다. 이번 에베레스트 눈사태로 고립된 외국인 등반객들을 구호할 장비도 턱없이 부족하다. 맨손과 삽으로 구호작업에 나서고 있다. 네팔 정부가 경각심을 가질 기회는 최근에도 분명히 있었다. 지난해 10월 히말라야 산맥의 고봉 중 하나인 안나푸르나에서 발생한 눈사태로 외국인 등반객 39명이 숨지고 19명 이상이 실종되었다. 이로 인해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한 네팔 정부 차원의 안전대책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지진 사태에 대한 대응을 보면 네팔 정부는 에베레스트 등반객의 안전에 철저히 무심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네팔의 한 일간지 기자는 “만약 네팔 정부가 대지진의 시간을 정확하게 알았다 해도 아마 등반객에 대한 입산 금지를 발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관광수입이 줄어드는 사태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냉소했다.

외국 구호팀의 지원 차단하겠다는 네팔 정부

이런 상황에서 미넨드라 리잘 네팔 정보장관이 현지 텔레비전에 나와서 내놓은 변명이 걸작이다. “전례 없는 대형 재난이어서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힘들다.” 더욱이 외국 구호팀의 지원을 정부가 앞장서서 차단할 뜻을 비쳤다. 로이터 통신(4월28일)에 따르면, 네팔 정부 및 군 당국은 현지에서 열린 국제기구와의 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군과 정부만으로도 사태에 잘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외국 구호팀의 구조작업 지원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국제사회는 기가 막힌다는 반응이다.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구호물품과 의약품을 전달하기는커녕 피해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네팔 정부가 큰소리를 치고 있어서다.

자연재해는 불가항력적이고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유능한 정부는 재해에 대비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이번 대지진 사태에서 네팔 정부가 보여준 것은 ‘무능’ 그 자체였다. 바로 1년 전 어느 정부가 보여준 그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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