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이 넘쳐흐르는 디스코 뽕짝 코미디 잡지입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일 체험을 기록합니다.” 잡지 〈록’셔리〉를 만드는 현영석씨가 말했다. 명품 브랜드를 다루는 잡지 〈럭셔리〉에서 영감을 얻었다. 정확히 그 반대편의 잡지를 구상했다. 돈이 없는 사람도 위안을 받고 휴식을 얻을 수 있는 잡지였다. 배수로에서 썰매타기, 폐가에서 캠핑하기 등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겨 사진과 함께 기록한다. 그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터졌다. 1월10일 서울 신촌에서 열린 잡지 제작자들의 행사 〈스틸 진 매터스(Still, Zine Matters)〉 풍경이다.

이날 자리에서는 〈월간 이리〉 〈센트(SCENT)〉 〈아프락사스〉 〈하우 위 아(How We Are)〉 등 독립 잡지라고 불리는 10개 잡지의 제작자들이 각자 만드는 잡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싱클레어〉의 편집장 피터(김용진)가 운영하는 문화 공간 ‘신촌서당’은 제작자들만으로도 자리가 꽉 찼다. 〈싱클레어〉는 독립 잡지계의 ‘맏형’이다. 2000년 창간해 올해로 15년째 만들고 있다. 그간 53권을 냈다.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라는 모토 아래 글·그림·사진·음악을 하는 개인 작업자의 기고를 받는다. 글 쓰고 음악 하는 삶을 살고 싶었던 편집장 피터는 당시 마침 편집 프로그램 ‘익스프레스’를 배운 밴드 스웨터의 보컬 이아립과 이야기하다 잡지를 만들게 되었다. 그가 웹디자인을 배웠다면 웹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연이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RFA 자유아시아방송 윤무영〈/font〉〈/div〉1월10일 독립 잡지 제작자들의 소규모 콘퍼런스가 열렸다. 콘퍼런스에 참석한 〈How We Are〉의 임소라, 〈SCENT〉의 김다혜, 〈헤드에이크〉의 정지원, 〈월간 교통체증〉의 최지원, 〈싱클레어〉의 김용진, 〈아브락사스〉의 김종소리, 〈월간 이리〉의 이훈보, 〈록’셔리〉의 현영석, 〈뭍〉의 채유수, 잡지 수집가 서상진씨(앞줄 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

피터는 그간 기타 레슨, 영어 강사, 영상 논술 기획자, 예술 강사로 살며 꾸준히 잡지를 냈다. 창간호를 비롯해 3호까지는 전국의 서점에 깔렸다. 잡지 〈좋은 생각〉이 10만 부 넘게 팔리던 시절이었다. 잡지의 호황기였다. 〈나이고 싶은 나〉 〈ttl〉 같은 문화 잡지들이 생겨났다. 말랑말랑한 글이 담긴 ‘감성 잡지’ 〈페이퍼〉의 영향을 받았다. 몇 개월 뒤 ‘재고의 습격’에 충격을 받아 9개월간 잡지를 내지 않았다.

다시 시작하며 지금의 형식이 되었다.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접었다. 유통 규모 역시 소박해졌다. 피터는 “지금 나오는 잡지는 우리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겪지 않는다. 책·공연·전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기나 친구들이 만든 작업물을 정리해 잡지나 단행본 형태로 정리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싱클레어〉는 이후 전시회나 콘서트, 독자 모임을 꾸준히 열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적도 있었지만 하고 싶은 일을 지속하기 위해 먹고사는 일을 놓지 않았다.

‘독립 잡지.’ 대체로 다양한 주제를 자유로운 형식으로 다루는 소규모 잡지를 뜻한다. 제작부터 생산까지 제작자 개인이 결정한다. 2009년 전후로 많이 생겼다. 소규모·디지털 인쇄 방식이 영향을 미쳤다. 편집 프로그램 역시 다루기 쉬워졌다. 처음에는 디자인 계열의 사람들이 많이 만들었다. 독특한 잡지가 나올 때마다 언론에 보도되었다. 보통 그 참신함에 주목한다. 〈싱클레어〉를 만드는 강지웅씨는 “언론에선 대개 잡지를 만드는 ‘독특한’ 사람에 초점을 맞춰 다룬다. 얼굴과 이름만 바뀌는 거라 만드는 처지에선 아쉽다. 내용에 대한 관심은 적다”라고 말했다. 완전히 생소한 개념은 아니지만 여전히 ‘아는 사람만 안다’.

2010년부터 매년 열리는 독립 출판물 기획전 ‘어바웃북스’에는 500종 가까운 잡지들이 모인다. 그만큼 성격이 다양해졌다. 최근 창간한 〈젖은 잡지〉는 여성들이 만드는 도색 잡지다. 언론사 지망생이 창간한 〈월간 잉여〉는 취미·토익·일상 이야기를 다룬다. 문화 잡지 〈도미노〉 〈아카이브 저널〉은 제작자들도 눈여겨보는 잡지다. 일부는 대형 서점에서도 만날 수 있다. ‘소셜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제작비를 모으기도 한다. 만드는 이들도 다양해졌다. 〈월간 교통체증〉의 제작자는 고3 학생이다.

A4 한 장으로도 책을 낼 수 있다?

초창기와 달라진 흐름 중 하나는 제작자들이 좀 더 과감해졌다는 것. 피터는 “아날로그적으로 용기를 내는 사람들이 늘었다. 제본을 스스로 한다든지 방식이 다양해졌다. 잡지 제작 강의를 하는데 A4 한 장으로도 책을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 그래서가 아니라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으면 상관없다는 의미인데, 정말 그런 시도들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건 장점이자 단점이다. 신변잡기식 ‘일기장’도 있다. 잡지 만들기가 하나의 스펙이 되기도 했다. 내부에선 ‘숲이 넓으면 좋은 나무가 많아진다’는 긍정적인 시선과 ‘종이 낭비’라는 비판이 공존한다.

이는 잡지의 태생적 특성이기도 하다. 상업지들도 마찬가지였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는 123편의 잡지 창간사를 분석한 책 〈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에서 “잡지는 신문과 달리 단지 몇 명의 동인들만으로도 발간할 수 있고 최소한의 수익과 최소한의 독자와의 피드백만 있으면 재생산이 가능한 매체다. (중략) 아마추어들도 얼마든지 잡지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잡지는 명멸과 부침이 매우 심하다. 얼마나 많은 잡지가 언제 나타났다 사라져갔는지 파악하기 실로 어렵다는 말이다”라고 말했다.

초창기와 달라진 또 다른 특징은 안정적인 유통망이 생겼다는 점이다. ‘유어마인드’같이 독립 출판물을 취급하는 작은 서점이다. 서울 외 지역까지 합치면 전국에 스무 곳가량 된다. 작은 서점 위주로 유통되는 책을 소개하는 잡지 〈뭍〉도 나왔다. 〈뭍〉은 가가린, 더북소사이어티, 유어마인드, 헬로인디북스 등 작은 서점에 입고된 책을 소개한다. 〈How We Are〉의 임소라씨는 잡지를 만들다가 유통에도 관심이 생겨 온라인 독립 출판물 서점을 열었다. 〈싱클레어〉는 지난 잡지들을 전자책으로 변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독립 잡지는 이제 기록을 고민하고 있다.

반면 2009년 창간한 ‘질문 잡지’ 〈헤드에이크〉는 최근 폐간호를 준비 중이다. 끝을 흐리기 쉬운 잡지계에서 마침표를 찍기 위한 시도가 낯설다. 창간 당시 독립 잡지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20대로 이루어진 편집자들이 관심을 끌며 청년을 대변하는 잡지처럼 알려졌다. 창간호의 질문은 ‘졸업하고 뭐 하세요?’였다. 이후 ‘당신이 일으키고 싶은 혁명은’ ‘시간 있어요’ ‘독립 언제 할 거야’ ‘당신의 질문은 무엇입니까’ 등을 물었다. 앞으로 나올 13호(폐간호)에선 ‘멈출까’라는 질문을 던질 예정이다.

발행 부수 1000부, 매호 제작비 300만원. 작업 시간은 거의 매일이었다. 제작비는 그럭저럭 모였다. 정지원 〈헤드에이크〉 편집장은 재정 안정성과 잡지 철학 두 가지만 있으면 잡지가 지속 가능하리라고 봤다. 하지만 이를 넘어선 게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작업이 힘에 부쳐서라기보다 우리가 가진 질문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해서다. 반응은 있는데, 결과는 없달까. 시간과 자원이 좀 더 충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잡지는 휘발성이 강해 정보가 소모된다. 긴밀하게 소통하는 방식으로 더 오랜 시간 책을 준비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입 장벽은 낮지만 자리매김은 어렵다

독립 잡지 제작자들은 대체로 재정 압박을 받는다. 잡지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돈벌이는 판매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알고도 덤빈다. 〈월간 교통체증〉을 만드는 최지원군은 “사실 자기소개서 한 줄 적을 거리밖에 안 되는데 수업 시간에도 글감이나 아이디어가 생각나 멈출 수 없었다. 표현 욕구가 몸 안에서 몸부림쳤다”라고 말했다. 매호 한 가지 주제 아래 작업물을 엮어내는 〈아브락사스〉의 김종소리씨는 “활자화되는 순간 내가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희열을 느끼게 된다. 노는 것과 비슷하다. 술 먹고 노래방 가면 돈 쓰듯이 돈을 들여가며 잡지를 만드는 거다”라고 말했다. 〈헤드에이크〉의 정지원씨는 “우리가 택하는 삶의 방식에 동의할 수 없어서, 다르게 사는 삶을 보고 싶어서, 혼자서는 택할 용기가 없어서,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친구들과의 작업이 좋아서” 만들었다. 각자 다른 이유로 만들지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피터 〈싱클레어〉 편집장은 최근 〈보물섬〉이라는 만화 잡지의 폐간 소식을 들으며 좌절했다. 폐간에 놀란 게 아니라 잡지가 여태껏 있었나 싶어서 당황했다. 이제는 잡지가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존재감이 없어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다. 진입 장벽은 낮지만 자리매김하기는 어렵다. 천정환 교수는 말했다. “영원한 플랫폼이나 ‘매개’(미디어)는 없다. 그것은 미디어의 역사, 나아가 문화사의 법칙이다. 그러니 잡지스러운 것도 끝없이 모양을 바꾸고 다른 매개화를 겪을 것이다. 그 작용은 인간의 언어와 교통이 있는 한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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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마음 첫 다짐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