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3일 국회 국정감사 현장. 이날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 국정감사의 화두는 단연 단말장치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었다. 10월1일부터 시행된 단통법은 입법 취지와 달리 통신비 부담만 늘린 악법이라는 여론이 들끓던 차였다. 여야 국회의원들의 질타가 연이어 쏟아지자, 국감에 출석한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 장관은 이렇게 받아쳤다. “의원님 입법으로 제정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장관의 말은 절반만 진실이다. 법을 통과시킨 것은 국회지만, 단통법을 사실상 고안한 주체는 미래부다. 그래서 이 장면은 더 상징적이다. 시행한 지 고작 13일 만에 단통법은 국회와 정부 양쪽에서 ‘내놓은 자식’이 되었다. 궁금해진다.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단통법이 정작 입법이라는 긴 과정을 어떻게 통과해올 수 있었을까.

단통법의 입법 과정은 그야말로 흥미진진하다. 물타기, 독소조항 심기, 이해관계 침투, 전략적 교환, 입법 이후의 반전 등등. 국회와 정부가 펼치는 ‘입법 정치’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통법은 입법 정치의 메커니즘을 날것으로 보여주는 흔치 않은 사례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최양희 미래부 장관(왼쪽 두 번째)과 최성준 방통위원장(왼쪽 첫 번째)이 10월17일 이통3사 및 단말기 제조사 사장단과 단통법 시행에 관한 간담회를 가졌다.

 의도부터 ‘나쁜 법안’은 아니었다

단통법의 취지는 휴대전화 시장에서 소비자가 제대로 된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어렵고 복잡한 가격 체계를 알기 쉽게 정비하자는 것이다.

SK텔레콤 등 이동통신사와 삼성전자 등 단말기 제조사는, 시장점유율을 위해 일선 대리점과 판매점에 보조금을 푼다. 이 보조금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일선 매장의 영업 전략이다. 일선 매장은 정보에 밝은 고관심 고객에게는 보조금을 한도에 가깝게 풀어 유혹하고, 휴대전화 시장의 복잡성을 숙지하지 못한 고객에게는 높은 가격을 뒤집어씌운다. 후자의 고객이 이른바 ‘호갱님’이 된다.

이런 영업이 가능한 것은 한국의 휴대전화 시장 구조 때문이다. 한국 시장은 단말기와 이동통신사와 통신요금제 선택이 모두 한 덩어리로 엮여 있다. 소비자 대다수는 자신이 구매하는 상품(단말기+통신요금제)이 정확히 얼마짜리인지 알기가 힘들다. 복잡한 통신요금 체계와 단말기 가격 정보를 의도적으로 뒤섞어버리기 때문이다. ‘공짜폰’이라는 말에 솔깃해서 새 휴대전화를 계약했다가 높은 요금제와 기나긴 약정 기간을 족쇄처럼 떠안은 소비자가 속출한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상황을 ‘정보 비대칭’이라고 부른다. 정보 비대칭이 발생하면 정보를 많이 가진 쪽이 초과이득을 취하게 된다. 판매자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한국의 통신 시장은 판매자와 소수 고관심 소비자가 초과이득을 얻고, 다수 ‘호갱님’들이 이를 떠받쳐주는 구조다.

단통법의 핵심은 ‘판매자는 보조금 규모를 소비자에게 정확히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자는 것으로, 여야가 이견이 없었다. 단통법 시행 직후 여론이 악화되자 몇몇 친재벌 언론과 경제지 등에서는, 국회가 시장 원리의 기본도 모르고 규제를 휘둘렀다며 단통법 폐지론을 폈다. 하지만 적어도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자는 법안의 목적은 시장 원리에 충실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취지와 거리가 먼 조항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 은근슬쩍 끼어든 보조금 상한제

단통법 초기에 통신비 부담이 치솟은 핵심 원인으로 보조금 상한제가 꼽힌다. 보조금 상한제는 이동통신사와 제조사가 일선 매장에 주는 보조금에 상한선을 두는 제도다. 상한선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주기적으로 고시하도록 되어 있는데, 단통법 체제에서 첫 상한선은 35만원이다.

정보 비대칭을 해소한다는 법 취지로 보면 보조금 상한선을 설정해야 할 이유는 없다. 기존 휴대전화 시장에서 보조금의 문제는 정보 비대칭에 따른 차별적 지급이었다. 공평하게 지급되기만 한다면, 보조금은 많을수록 소비자에게 이득이 된다. 이런 이유로 국회 입법조사처는 올해 국정감사 정책자료에서 “보조금 상한선 설정은 단통법이 보조금을 규제하는 원래 목적과 관련성이 떨어진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국회를 통과한 단통법에는 법 취지와는 동떨어진 보조금 상한제가 들어갔다. 이통사의 주가와 소비자의 불만이 동시에 치솟았다. 시행 직후의 충격으로 시장은 일단 얼어붙었다.

어찌된 일일까. 결정적인 장면이 있다. 단통법을 최초로 대표 발의한 사람은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이다. 2013년 5월에 발의했다. 하지만 단통법의 실제 내용은 미래부가 만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부는 입법 과정에서 단통법의 논리·근거·예상되는 시장 반응을 제공하는 등 사실상 입법 주체였다.

조해진 초안에는 보조금 상한제 규정이 없다. 단지, 보조금을 “이용자가 알기 쉬운 방식으로 공시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단통법의 원 취지에 부합하는 조항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RFA 자유아시아방송 신선영〈/font〉〈/div〉10월1일 단통법 시행 직후의 충격으로 휴대전화 시장이 얼어붙었다. 10월24일 서울 용산 전자상가 인근 휴대전화 할인상가가 썰렁하다.

그런데 묘한 일이 일어난다. 국회에서 단통법이 가장 집중적으로 논의된 회의는 2013년 12월23일 미방위 법안소위 회의다. 법안소위는 상임위에서도 입법안의 세부 사항을 논의하는 자리다. 법안소위 위원장이 조해진 의원이었다.

12월23일 법안소위.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이인용 수석전문위원(상임위 활동을 보좌하는 국회 소속 직원. 차관보급)이 조해진 초안에 없던 보조금 상한제를 법안에 끼워넣는다. 보조금 상한제가 여기서 최초로 등장한다. 이미 방통위의 상한선 제도가 있고, 전병헌 의원 등 다른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 취지를 반영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미방위 전문위원실에 따르면 상한제를 추가하자는 수정안은 미래부와 협의를 거친 것이었다. 정부는 보조금 상한제로 규제 권한을 확보하고, 이통사들은 상한제로 마케팅비를 절감할 수 있다. 정부와 이통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 이렇게 보면 조해진 초안에 보조금 상한제가 들어가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흥미로운 ‘우연’도 있다. 5월에 조해진 초안이 나오고, 이인용 수석전문위원은 6월에 이 법률안의 검토 보고서를 낸다. 보고서는 조해진 초안이 “보조금 지급 상한을 설정했다”라고 적었다. 그러나 조해진 초안에는 상한제 조항이 없다. 전문위원실에 확인을 요청하자 “그 대목은 착오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착오는 무슨. 상한제는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가, 정작 법 초안에서 빠진 걸 뒤늦게 안 거지.”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당시 미방위 소속이었던 한 의원의 신랄한 관전평이다. 그는 “미래부에게 상한제는 포기할 생각조차 없었던 조항이었을 거다”라고 말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순간적 시장 경직으로 피해를 본 상인들이 10월13일 한 이동통신사 본사를 방문해 항의했다.

뒤늦게 보조금 상한제를 집어넣는 와중에 ‘끼워팔기’를 당한 전병헌 의원실도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의원실 관계자는 “우리 법안의 취지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상한제의 성격 자체도 다르다”라고 말했다.

수석전문위원이 보조금 상한제를 끼워넣는 수정안을 냈을 때 문제를 제기한 의원은 없었다. 법안 발효 이후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된 보조금 상한제는, 정작 법안 심의 과정에서는 전문위원실과 미래부의 주도로 입법권자인 의원들의 묵인 혹은 무관심 속에 끼어들어 갔다.

 자구 한 줄 끼워넣는 데 사활을 건다

12월23일 법안소위의 관심사는 다른 데 있었다. 미방위 파행 정국에서 새누리당 의원들만 참석한 이날 법안소위 속기록을 보면, 제조사 중에서도 삼성전자가 입법 과정에서부터 집요한 관심을 보여왔음을 알 수 있다. 핵심 쟁점은 제조사로 하여금 보조금 관련 자료를 제출하도록 규정한 제12조였다. 몇몇 장면을 발췌해보면 이렇다.

미래부:자료 제출 관련해 이통사와는 이견이 없었고, 제조업자는 이견이 있었습니다. 지금 3개월 가까이 직접 만난 것만 열 번 되는데, 두 번은 장관님이 직접 만나서 조율했습니다. 쟁점은 제출 자료가 공개될까 제조사가 우려하는 겁니다. 때문에 이 법(12조) 4항과 5항에 비밀 준수 의무 등을 제조사 입장을 반영해서 담아줬고요.

박대출 의원(새누리당)
:이 조항(자료 제출 의무)이 제일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이를테면 삼성전자 같은 제조사들의 영업비밀이 공개될 때 예상되는 부작용을 신중히 봐야 한다. (중략) 삼성전자와 애플이 경쟁을 하잖아요? 영업비밀에 해당되는 자료가 공개됐을 경우 부작용은 심각할 수 있다고. (중략) 아니 아니, (12조의) 1항, 2항, 3항 다 (삼성전자가 수용하는지) 얘기를 해달라니까. 1항 삼성전자 전부 오케이, 2항 전부 수용 이런 식으로…. (중략) 우리가 계속 이 문제를 갖고 늘어지는 이유가 제조업자의 편을 든다는 게 아니라 제조업자가 어쨌든 우리 경제의 중요한 축이 되는데 국제 경쟁력이 혹시 약화되는 우를 범할까 해서.

조해진 소위원장(새누리당)
:여기 있는 (12조) 2항, 3항, 4항, 5항 이게 다 제조업체들 요청을 받아서 새로 만든 거잖아요? 쉽게 말하면 삼성전자의 요청을 받아 가지고?

미래부:예.

조해진 초안에서 제12조는 단순하다. 자료 제출 의무를 규정한 게 전부다. 하지만 이날 수정안에는 단서조항이 5항까지 붙었다. 1항, 4항, 5항이 제조사가 요구한 비밀유지 관련 조항이다. 의원들은 자구 하나하나를 따져가며 12조를 특히 공들여 다듬었다. 이날 법안소위는 단통법 심의 속기록 18쪽 중 13쪽 분량을 12조 하나에 할애했다.

단통법 자체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제조사들은 법의 무산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이 12조에서 최소한의 거점을 확보하는 데에는 성공한다. 뒤에 다시 보겠지만 12조에서 수정된 단서조항들은 제조사에게 반격의 근거가 되어준다.

 야당의 선택-싸우거나 거래하거나

일련의 과정에서 야당의 존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단통법이 논의되던 당시는 KBS의 낙하산 사장 문제와 해직언론인 특별법 등의 이슈로 미방위가 파행 중이었다. 단통법 검토는 여당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야당은 대체로 사후에 묵인하는 모양새였다. 왜 그랬을까.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채널A 화면 갈무리〈/font〉〈/div〉5월28일 단통법 표결 당시 여야 가릴 것 없이 압도적으로 찬성했다.

단통법에 대한 야당의 기류는 대체로 이랬다. 우선 시장의 정보 비대칭을 해소한다는 취지에 동의한다. 다만 보조금 상한제와 같은, 경쟁을 제약하고 정부의 규제 권한을 강화하는 몇몇 독소조항을 손볼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총론 찬성, 각론에는 이견’이 야당의 분위기였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단통법을 핵심 관심 법안으로 올려두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법안소위 위원장이 대표 발의자로 나섰다는 점부터가 정부 내에서 단통법 ‘우선순위’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였다. 당시 미방위의 한 야당 전략통은 “미방위 안에서는 단연 최우선 법안, 국회 전체로 보아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정부 관심 법안이라고 느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는 단통법을 ‘국정과제 이행 관련 법안’으로 분류해 집중 관리했다.

야당의 법안 정치라는 관점에서 보면, 취지부터 반대할 수밖에 없는 법안을 정부·여당이 들고 나오면 ‘전쟁’ 외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이명박 정부 시절 종편을 탄생시킨 방송법이 그랬다. 하지만 총론에는 동의하는데 각론에 이견이 있는 법안을 정부가 강력하게 원할 때, 야당에게는 거래의 장이 열린다. 단통법이 그랬다.

올해 2월24일, 미방위 양당 간사는 KBS 사장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받도록 인사청문회법과 방송법을 개정한다고 발표했다. KBS 사장 인사청문회는 방송의 정권 편향을 견제할 장치를 원했던 야권의 오랜 숙원이었다. 야권 전략통은 “단통법은 KBS 사장 인사청문회와 ‘바터(교환)’된 걸로 보는 게 맞다”라고 말했다.

입법 정치는 본질상 ‘패키지 딜’이다. 여야는 서로의 관심 법안 리스트를 살펴보고, 상대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가늠해가며, 내줄 카드와 따내올 카드를 끊임없이 조율한다. 법안 하나의 결과로 협상의 승패를 따지기가 쉽지 않다.

단통법이라는 전장에서 야당은 전면전을 펼치기보다 ‘카드’로 쓰는 쪽을 택했다. 이 덕분에 단통법은 본회의를 통과해 빛을 볼 수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이는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였다. 하지만 단통법이 예상 외로 여론 지탄의 과녁으로 떠오르면서, 야당도 손익계산서를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할 처지가 되었다.

 본회의 통과? 끝난 게 아니다

보조금 상한제와 더불어, 독소조항이라는 지탄을 받는 내용이 하나 더 있다. 분리공시 철회다.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보조금은 이통사와 제조사가 나누어 부담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때 이통사와 제조사가 각각 얼마를 부담했는지를 구분해 알려야 한다는 것이 분리공시다.

분리공시제의 취지 역시 정보 비대칭과 관련이 있다. 분리공시가 도입되면 제조사는, 일단 높은 출고가를 매겨놓고 물밑에서 보조금을 많이 지급하는 식의 영업 전략을 쓰기가 곤란해진다. 셈법이 뻔히 공개되기 때문이다.

분리공시를 막아내는 노력은 삼성전자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삼성전자는 “분리공시가 되면 영업비밀이 노출된다”라는 논리를 폈다. 출고가와 보조금의 차액이 드러나면 영업비밀이 침해된다는 논리다. 이 논리는 미래부와 국회를 설득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9월24일,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가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준다. 규제개혁위원회는 분리공시 삭제를 권고하고, 이에 따라 대통령령에 있던 분리공시 규정이 후퇴한다. 회의록에는 삼성전자의 반대 의견이 명시되어 있다.

이때 규제개혁위원회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인용한다. 법제처가 분리공시 불가 근거로 드는 조항이 12조 1항 비밀유지 조항이다. 미방위 법안소위에서 의원들이 심의 시간 대부분을 투자해가며 다듬고 또 다듬었던 그 조항이, 마지막 순간에 삼성전자의 구명줄이 되었다.

 단통법이 보여준 입법 정치의 맨얼굴

여러 이해 당사자들이 저마다 이익 극대화를 추구한 결과 누구도 만족하지 않는 묘한 균형에 도달했다.

규제 권한을 지킨 통신 당국과 보조금 상한제를 얻어낸 이통사 연합이 단기적으로는 승자라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이 연합도 안정적이지 않다. 통신 당국은 이통사가 절약한 마케팅 비용으로 통신요금을 내리도록 압박할 이유가 있다. 통신요금 인하는 박근혜 대통령 공약 사항이고, 단말기 보조금보다 일반 국민이 체감하는 효과가 훨씬 크다. 그 때문에 정권의 업적으로 내세우기가 좋다. 통신 당국이 관치경제라는 비난도 감수하고 연일 통신요금 인하를 공개 압박하고 나선 데에는 이런 맥락이 있다는 분석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단통법 입법을 주관한 국회 미방위 조해진 새누리당 간사(왼쪽)와 유승희 새정치민주연합 간사(오른쪽)가 한선교 미방위원장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삼성전자로 대표되는 제조사는 단통법 자체를 막아내는 데 공을 들였지만 실패했다. 차선책으로 분리공시를 철회시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단통법에는 불만이 많다. 반대로 미래부는 삼성전자가 최고 실세 부서인 기획재정부를 끌어들여 마지막 순간에 분리공시제를 막아냈다는 주장을 장관이 직접 꺼내들었다. 자칫하면 ‘미래부·이통사 연합’ 대 ‘기재부·제조사 연합’이라는 구도가 등장할 수도 있는 발언이다. 기재부는 개입설을 부인했다.

이럴 때에는 여론의 향방이 중요하다. 분노한 여론이 단통법 폐지를 외친다면 제조사로서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반면 통신 당국은 단통법 비난 여론을 조기에 반전시킬 필요가 있다. 통신 당국이 공개 압박에 나서자, 법 발효 2주일 만에 이통사들도 요금 인하 움직임을 보인다. 요금 인하 폭에 따라 여론이 반전될 여지는 남아 있다.

여야는 서로 납득할 만한 협상을 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여론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여야는 단통법 개선 경쟁에 뛰어들었다. 보조금 상한제를 철폐하는 개정안과 분리공시를 법에 못 박는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정부나 기업 같은 핵심 이해 당사자들은 입법 정치의 과정에 필사적으로 개입한다. 단통법 논의는 소비자 이익을 명분으로 출발했지만, 규제 권한 강화를 추구하는 정부와 정보 비대칭 유지를 추구하는 기업에 한발 한발 잠식당했다. 이해관계 침투는 사소한 우연으로 보일 만큼 은근슬쩍 들어올 때가 많고, 때로는 한참 후에야 진짜 위력이 드러나기도 한다. 눈 밝은 파수꾼이라도 족족 차단해내기가 쉽지 않다.

이때 가장 소외되기 쉬운 것은 소비자다. 숫자는 압도적으로 많지만 결집된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든 주체다. 소비자의 이해관계라는 압력은 법안이 여론의 폭발적인 주목을 받을 때에나 작동한다. 대체로 법안이 이미 통과된 후의 뒷북일 때가 많다. ‘모두가 미워하는 법’은 이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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