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개월에 걸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이 사실상 막을 내렸다. 4월25일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부장판사 김흥준)는 유우성씨의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낸 증거는 모두 신빙성이 없거나 유죄를 입증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주요 혐의였던 국가보안법 위반 부분에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와 똑같은 판단을 한 것이다.

2심 재판부가 1심 재판부의 판단에서 더 나아간 부분도 있다. 유우성씨의 동생 가려씨가 합동신문센터(합신센터)에서 불법구금 상태였다는 점을 인정했다. “여동생을 사실상 국가보안법 피의자로서 수사를 하면서도, 영장도 없었고 변호사 조력을 받을 권리 등도 보장하지 않았다. 여동생은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에서 국정원의 회유에 넘어가 허위 진술했다”라고 판시한 것이다(1심 재판부는 유씨가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이 자유로운 상황에서 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RFA 자유아시아방송 신선영〈/font〉〈/div〉4월25일 유우성씨의 간첩 혐의에 대해 2심 무죄 선고가 났다. 서울 서초동 민변 사무실에 유우성씨(가운데)와 변호인단이 한자리에 모였다. 양승봉·김유정·천낙붕·장경욱·김용민·김진형 변호사(왼쪽부터).
ⓒRFA 자유아시아방송 신선영 4월25일 유우성씨의 간첩 혐의에 대해 2심 무죄 선고가 났다. 서울 서초동 민변 사무실에 유우성씨(가운데)와 변호인단이 한자리에 모였다. 양승봉·김유정·천낙붕·장경욱·김용민·김진형 변호사(왼쪽부터).

재판부는 여권법 위반과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만 인정해 유우성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국가기관의 증거 조작 혐의가 드러난 뒤에도 유씨의 간첩 혐의에 대한 유죄 입증을 자신했던 검찰은 완패했다. 1·2심 재판을 이끌었던 이시원·이문성 검사는 선고 날 재판정에 나오지 않았고, 박현준·최행관·이찬규 검사만 재판정을 지켰다.

유씨의 무죄 선고가 나기까지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인(천낙붕·장경욱·양승봉·김용민·김진형·김유정)의 공이 컸다. 유우성씨는 이들 변호인에 대해 “1년4개월 동안 수임료 한 푼 안 받고, 중국 현지까지 가서 증거를 수집해오고, 내 동생을 보살펴주기까지 했다”라며 고마워했다. 천낙붕 변호사는 4월11일 2심 최후변론에서 “지난 1년 동안 변호인들 재정 상태를 보니 다 적자였다”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대가 없이 변론을 맡아 무죄까지 이끌어낸 변호인단은 오히려 유씨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13번째 의견서를 쓰는 순간부터 ‘유씨를 피고인이라 적지 못했다’는 양승봉 변호사는 “내 돈과 시간을 써가면서 변론을 했는데도 미안했다. 대한민국의 국가기관이 저지른 가혹한 행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 느끼는 미안함이었다”라고 말했다. 유우성씨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변호인〉을 보면서 증거를 조작해서 간첩을 만든 내 사건과 똑같다고 느꼈다. 또 영화 속 변호사의 모습이 우리 변호사들처럼 보였다”라고 말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민변 제공〈/font〉〈/div〉유우성씨가 가족사진.

‘탈북자 1만명 정보를 통째로 북한에 넘긴 정황이 있다’(2013년 1월21일 〈동아일보〉 보도)는 혐의는 어떻게 벗겨졌는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았던 유우성 기소부터 2심까지 변호인의 변론 과정을 따라가보았다. 

변호인단이 네 차례나 중국을 방문한 이유

2013년 1월10일, 탈북자 유우성씨가 간첩 혐의 등으로 국정원에 체포되었다. 하지만 유씨 주변에는 체포 사실을 통보받은 사람이 없었다. 고지 대상인 유씨의 가족이 한국에 없었기 때문이다. 유씨가 활동하던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는 그가 갑자기 나타나지 않아 의아해했지만, 무슨 일이 있겠거니 짐작만 했다. 그러다 국정원 수사관이 들이닥쳐 유씨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 급히 민변으로 연락했다.

‘국가보안법 전문가’인 장경욱 변호사에게 사건이 전해졌다. 장 변호사는 “체포하면 무조건 그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게 되어 있다. 그런데 탈북자는 대개 홀로 남한에 있다. 그럼 남쪽의 연고자에게 체포 사실을 알려주면 되는데도 그렇게 안 한다. 남한에 피붙이 한 명 없다는 이유로 체포 사실을 통보조차 안 하면, 행방불명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장 변호사는 수소문 끝에 유우성씨가 서울구치소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유씨가 체포된 지 열흘째 되던 날인 1월19일 장 변호사가 면회를 갔다. 그리고 충분히 다퉈볼 만한 사건이라는 판단이 섰다. 장 변호사는 “홀로 열흘간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으면, 없던 죄도 만들어 자백하게 된다. 게다가 탈북자는 남한 사회에서 가장 약자다. 그런데도 유씨는 일관되게 자신은 간첩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작된 사건이라는 느낌이 확 왔다”라고 당시를 기억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민변 제공〈/font〉〈/div〉장경욱 변호사는 유우성씨가 가족사진을 찍은 중국 사진관에 직접 가서 사진을 찍어 증거로 제출했다(증거 제출용이라 모자이크를 함).
변호인단을 꾸리기 위해 민변 통일위원회 소속 변호사들에게 연락을 했다. 양승봉·김용민 변호사와 접촉했다. 둘 다 국가보안법 사건이 처음이었지만 “하겠습니다”라며 변호인단에 합류했다. 김용민 변호사는 “그때까지만 해도 사건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가볍게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두 변호사는 먼저 기록부터 꼼꼼히 살폈다. 기록상으로는, 여동생이 오빠를 간첩이라고 자백한 사건이었다. 양승봉 변호사는 그때를 떠올리며 1심 최후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사건을 맡으면서 처음부터 유우성씨를 의심했다. 가장 큰 이유는 여동생 때문이었다. 그런데 공소가 제기된 다음, 기록을 보고 유우성씨 주변 사람을 만나보니 유씨와 입을 맞춘 것도 아닌데 유씨와 같은 말을 했다. 그때부터 의심이 무너졌다.”

변호인들은 유씨의 동생 가려씨를 만나고 싶었다. 수사기관이 유씨가 간첩이라고 자신하는 이유가 가려씨의 진술이었기 때문이다. 가려씨가 있는 합신센터를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했다. 그녀가 만남을 거부한다고 국정원 관계자가 전했다.

변호인들은 급한 대로 중국을 먼저 다녀왔다. 변호인이 중국에 있는 유씨 아버지에게 집에 있는 사진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보내주지 않았다. 장경욱 변호사는 “그때는 아버지가 우리를 국정원 요원으로 의심했다. 무료로 변론을 해준다는 변호사가 있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나 보더라”라고 말했다. 결국 3월 말 천낙붕·장경욱·양승봉·김용민 변호사는 중국의 유씨 집을 직접 찾아갔다.

현장에 가니 답이 나왔다. 유씨 집에 있는 가족사진(위 왼쪽)에는 ‘2012. 1. 22’라는 날짜가 찍혀 있었다. 중국 동네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2012년 1월22일 유씨가 밀입북해 간첩 행위를 했다는 검찰의 기소 내용과 맞지 않는 증거였다. 또 다른 검찰의 공소사실도 검증했다. 여동생이 북한으로 정보를 빼돌리기 위해서 USB를 샀다는 중국의 동네 슈퍼를 찾아갔다. 정작 그 슈퍼에서는 USB를 팔지 않았다. 여동생이 USB를 샀다고 국정원에 진술한 시점에도 이 슈퍼에서는 USB를 팔지 않았다는 가게 주인의 말을 모두 녹음기에 담았다.

그러고도 변호인은 세 번을 더 중국에 갔다. 갈 때마다 새로운 게 보였다. 유우성씨의 가족사진을 찍었던 사진관에 다시 가서 변호인도 사진을 찍었다. 원본 필름을 구하지 못했기에, 유씨 가족사진의 배경과 같은 게 그 사진관에 있는지, 사진을 찍은 날짜가 그대로 박히는지 등을 실험해보기 위해서였다. 모두 재판부에 증거로 냈다. 중국의 한 PC방에도 갔다. 검찰이 주장하는 것처럼 유우성씨가 보낸 탈북자 신원 파일을 QQ메신저(중국의 대중적인 온라인 메신저)로 전송받기도 했다. 한글 파일이 열리지 않았다. 검찰의 공소사실은 곳곳이 부실했다.

사건을 키운 건 국정원과 검찰이었다고 변호인들은 입을 모은다. 주요 사건의 변곡점마다 수사기관이 나서 변호인을 고소한다거나, 증거를 조작하는 등의 정황이 발견되면서 사건은 점점 커져갔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민변 제공〈/font〉〈/div〉변호인단은 중국에서 유씨 아버지를 만나 진술을 받기도 했다. 장경욱 변호사, 유우성씨 아버지, 양승봉·김용민 변호사(왼쪽부터).
유씨의 변호인은 동생 가려씨를 만나기 위해  법원에 인신구제 청구(위법한 행정처분으로 자유를 제한당한 개인을 구제하는 절차)를 했다. 전례없는 일이었다. 합신센터라는 곳은 대중에게 낯선 까닭에, 인신구제 청구 대상이 되어본 적이 없었다. 그간 장애인 시설 등에 대해 청구했던 인신구제가 법리적으로 가능할지 변호인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검토 끝에 내린 결론은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자”였다. 변호인단은 천주교인권위 변호인단에게 사건을 의뢰했다. 이전에 합신센터의 문제점을 가지고 정부와 소송을 한 적이 있는 황필규 변호사 등이 나섰다.

‘전의’를 불태우게 만든 6억원짜리 명예훼손

4월26일 관련 재판이 열렸다. 재판이 열리기 직전, 국정원이 유가려씨에 대해 ‘비보호’ 결정을 내렸다. 판사의 법리적 판단이 필요 없게 되었다. 판사는 가려씨가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면서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고 했다. 그날 밤, 여동생은 합신센터에서 당했던 고초를 털어놓았다. “조사받는 내내 국정원 직원은 때리고 협박도 하면서, 이미 오빠가 간첩 혐의를 다 인정했다고 했다. 내가 협조만 하면 KAL기 폭파범 김현희처럼, 오빠가 몇 년 감옥 살다가 나와서 우리 둘이 한국에서 살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민변 변호사들은 거짓말쟁이에 돈만 밝히니 믿지 말라는 말도 했다.”

여동생의 양심선언에 변호인단은 다음 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들이 대개 근무하지 않는 토요일이었지만, 급한 대로 시간을 잡았다. 1980년대에나 행해졌을 거라고 생각한 고문·거짓자백 같은 단어가 여동생 입에서 나오자 국정원도 급해졌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장경욱·양승봉·김용민 변호사를 민·형사상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1인당 2억원씩, 손해배상 금액으로 6억원을 청구했다. 김용민 변호사는 “그것이 오히려 국정원이 변호사들을 전의에 불타게 만들었다. 퇴로를 차단했다고 해야 하나. 무료 변론 소송인데, 지면 6억원을 감당해야 하니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웃었다. 그때부터 장경욱 변호사는 ‘조작’이라는 말을 쓰는 걸 망설이지 않았다. “기자회견 후 민변 내에서도 한 사람의 진술만 믿다 나중에 말을 바꾸면 어떻게 하려느냐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조작 사건을 ‘조작 사건’이라고 부르지 못하게 하는 공포를 뛰어넘고 싶었다.”

재판 중에 국정원이 유우성씨의 컴퓨터 사진을 은폐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수사기관이 유씨 컴퓨터를 수사한다고 가져간 다음, 컴퓨터에 저장되었던 사진이 사라졌다. 유우성씨가 이상하다고 지적해 민간 전문가에게 컴퓨터를 복구하도록 했다. 일부 사진이 살아났다. 다시 나타난 사진 6만 개를 뒤지고 뒤져, 그중 4장을 건졌다. 검찰이 유씨가 북한에 간 날짜라고 한 2012년 1월23일, 중국 노래방에서 찍은 사진 등이 나왔다. 증거를 검증할수록 수사기관의 거짓말이 드러났다.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다음, 변호인단은 2심은 무난하리라 예상했다. 1심에서 워낙 많은 쟁점을 다퉜기에 더 이상 나올 게 없다고 여겼다. 변호인끼리 농담처럼 ‘기록을 조작해서 내거나 북한의 고위 간첩을 데리고 와서 유우성씨를 자기가 키운 간첩이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2심 결과가 달라질 게 없다’는 말을 했다.

농담은 현실이 되었다. 지난해 11월 검찰은 유우성의 출입경 기록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출-입-출-입(2006년 5월23일-5월27일 오전 10시-5월27일 오전 11시-6월10일)’이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검찰의 공소사실과 딱 들어맞는 내용이었다. 유우성씨가 북한을 드나들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변호인이 떼어본 기록은 달랐다. ‘출-입-입-입’이었다. 딱 한 글자가 고쳐졌지만 의미하는 바는 컸다. 증거에 손을 댄 것이었다. 검찰은 오히려 변호인이 낸 출입경 기록이 이상하다는 주장을 폈다. 결국 누구 말이 맞는지 중국 정부에 물어보자는 사실조회 신청을 지난해 12월 했다.

변호인단은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중국의 사법 공조가 어디까지 될지 가늠이 되지 않아서다. 오히려 검찰과 국정원의 계속되는 증거 조작을 막고 싶다는 마음에, 빠른 변론 종결을  요청했다. 2심 재판부는 1월17일 결심, 2월5일 선고 기일을 잡았다. 이대로 기일이 진행되었으면 중국 정부의 증거 위조 회신문을 받지 못할 뻔했다.

검찰은 기일 연기를 신청했다. ‘검찰 정기 인사’를 이유로 들었다. 재판부는 결심을 2월28일로 미뤄줬다. 양승봉 변호사는 “지금 와서 보면 검찰 인사는 핑계다. 2월13일까지 국정원에서 추가 문건을 위조했다고 드러나지 않았나. 또 다른 위조 문건을 내려고 기일을 미뤄달라고 한 게 아닌가 강하게 의심된다. 결과적으로 그게 검찰과 국정원의 잘못된 판단이었다. 선고가 미뤄진 사이 2월13일에 중국 정부의 회신이 오면서 증거 조작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라고 말했다.

주한 중국 영사관에서 변호인들조차 예상치 못한 답변이 왔다. 2월13일 중국 정부는 서울고등법원에 ‘변호인이 낸 기록이 모두 사실이고, 검찰이 낸 증거는 모두 위조다’라는 내용의 사실조회서를 보냈다. 검찰과 국정원이 낸 서류는 볼수록 조악했다. 공증 도장은 중국 정부에서 쓰는 것과 달랐고, 공문에 쓰인 중국어는 문법이 틀린 내용까지 있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은 그렇게 ‘간첩 증거 조작 사건’으로 변했다. 천낙붕 변호사는 “유우성씨 사건은 많은 걸 드러냈다. 합동신문센터에서 어떻게 간첩을 만드는지, 국정원이 어떻게 대공수사를 하고 증거까지 조작해 간첩을 만드는지, 검찰은 그걸 어떻게 그대로 받아쓰는지가 여과 없이 드러났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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