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부 검사’가 증거에 손을 댔다. 일본 오사카 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 소속 마에다 쓰네히코 검사(직책은 모두 당시)는 2009년 실체 없는 장애인 단체가 우편 할인제도를 악용해 거액을 챙긴 사건(이하 우편부정 사건)의 수사를 맡았다. 그 과정에서 가짜 장애인 단체에 허위 증명서를 발급해준 후생노동성 계장 가미무라 쓰토무의 자택을 수색했다.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가 될 플로피디스크를 그때 압수했다.

문제는 플로피디스크에 저장된 허위 증명서의 최종 갱신 시각이었다. 2004년 6월1일 오전 1시20분6초. 검찰이 수사 보고서에도 그대로 기재한 이 날짜는 특수부의 공소사실과 어긋났다. “6월 상순 후생노동성 국장 무라키 아쓰코 씨가 부하인 가미무라 씨에게 허위 증명서 발행을 지시했다”라는 게 검찰의 가정이었는데, 증명서의 최종 갱신 날짜가 6월1일 새벽이라면, 무라키 씨가 5월31일 이전에 지시를 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검찰은 부하에게 허위 증명서 발급을 지시한 혐의로 무라키 국장도 함께 구속 기소한 상태였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교도통신사〈/font〉〈/div〉2010년 10월21일 증거 조작 사건에 대해 사죄하는 고바야시 히로시 검사총장.


검찰의 공소사실과 맞지 않자 마에다 검사가 택한 방법은 ‘증거 조작’이었다. 그는 파일 관리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플로피디스크 데이터의 최종 갱신 날짜를 2004년 6월8일 오후 9시10분56초로 바꿨다. 수사팀의 공소사실에 맞도록, 2004년 6월1일 새벽이던 최종 갱신일을 6월8일 밤으로 고친 것이다. 그런 다음 허위 증명서를 작성했던 가미무라 씨에게 이를 돌려줬다. 수사 보고서와 갱신 날짜가 달라진 것에 놀란 가미무라 씨 변호인은 단독 범행임을 주장하는 그에게 불리할 것이라고 생각해 플로피디스크 내놓기를 주저했다. 결국 플로피디스크는 공판에 증거로 제출되지 않았다.

그렇게 조작은 묻히는 듯했다. 2010년 1월 열린 무라키 국장의 첫 공판에서 변호인이 수사 보고서에 기재된 최종 갱신 일시와 수사팀의 가정이 다르다고 지적했지만, 역시 플로피디스크의 데이터가 조작된 사실이 밝혀지지는 않았다. 그해 9월10일 오사카 지방재판소가 무라키 국장에게 무죄판결을 내렸을 때에도, 진술 조서를 바탕으로 한 검찰의 주장 대부분이 부정되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2010년 9월21일 〈아사히 신문〉이 ‘오사카 지검 특수부가 증거품으로 압수한 플로피디스크 데이터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있다’고 특종 보도했다. 최고 검찰청(한국의 대검찰청에 해당)은 당장 최고검 검사를 주임으로 한 수사팀을 꾸렸고, 이날 밤 마에다 검사를 증거 인멸 혐의로 체포했다. 증거 조작 의혹에 휩싸인 한국 검찰의 ‘시간 끌기’ 대응과 달리, 일본 검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수사팀은 마에다 검사의 집무실과 자택도 압수수색했다. 마에다 검사의 상사였던 오쓰보 히로미치 오사카 지검 특수부장과 사가 모토아키 부부장을 범인 은닉 혐의로 체포했다. 수사 과정에서 두 상사가 증거 조작 사실을 알고도 은폐하려 한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FP〈/font〉〈/div〉마에다 쓰네히코 검사(왼쪽)와 오쓰보 히로미치 특수부장(오른쪽)은 이 사건으로 형사 처분을 받았다.

“증거 조작은 국가의 신뢰를 흔드는 사건”

최고검은 마에다 검사뿐 아니라 오쓰보 전 부장과 사가 전 부부장을 모두 기소했다. 세 검사는 법무성으로부터 징계면직 처분을 받았고, 지휘선상에 있었던 오사카 고검 차석검사(차장검사)·오사카 지검 검사정(지검장) 등 간부급 검사들도 줄줄이 감급 등 징계 처분을 받았다. 감급 처분을 받은 수뇌부 3명은 결국 옷을 벗었다. 고바야시 히로시 당시 검사총장(검찰총장)은 10월21일 법무성 장관에게 불려가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하라는 지시를 받은 뒤 기자회견을 열고 “전대미문의 사태에 이른 것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죄한다”라고 머리를 조아렸다. 무죄가 확정된 무라키 국장에게도 사죄했다. 고바야시 총장은 그해 12월 사태의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사건으로 마에다 검사는 징역 1년6월형을 선고받아 복역했고, 두 상사는 항소심에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뒤 항소를 포기했다.

특수부의 전 부장·부부장·주임검사가 압수한 증거물을 조작하거나 이에 관여한 혐의로 체포된 사건인 만큼, 파장은 관련자 처벌과 사과에서 그치지 않았다. 증거를 조작한 마에다 검사가 법정에서 “상사의 뜻에 맞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한 압박을 받았다”라고 조작 이유를 털어놓으면서 일본 검찰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증거 조작으로 구속되었던 무라키 아쓰코 국장. 나중에 일본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사무차관이 되었다.

 


결국 최고검과 법무성은 검찰 개혁에 착수했다. 법무성 장관의 자문기관으로 ‘법제심의회’가 설치되었고, 여기에 증거 조작 사건의 피해자였던 무라키 국장도 위원으로 참여해 검찰 개혁을 논의했다. 무라키 국장은 무죄판결 뒤 복직해 2013년 6월 후생노동성 사무차관으로 기용되면서, 일본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사무차관이 되었다. 그는 지난해 펴낸 책 〈나는 지지 않는다〉에서 164일간 구금되고 검찰과 싸워야 했던 자신의 경험을 풀어내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검찰은 개혁의 일환으로 일부 사건의 취조 과정을 녹화·녹음하기도 했다.

증거 조작에 연루된 특수부장과 부부장의 재판을 방청했던 소노다 히사시 고난 대학 법과대학원 교수는 〈RFA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검찰의 수사 태도가 만천하에 드러난 사건이었다. 검찰의 수사 기법뿐 아니라 일본의 형사 사법제도에 대한 일대 전환점이 된 사건이다”라고 평가했다. 소노다 교수는 “최근 무죄판결이 많이 나오는데, 이 사건 이후로 법원 역시 검찰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기류가 작용한 측면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소노다 교수는 “자백에 의존하고 증거를 짜 맞춰서라도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검찰 구조가 빚은 사건인데, 재판에서는 검사 개인의 문제로 다룬 감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도 검찰의 증거 조작 의혹이 일고 있다’고 얘기를 꺼내자 그는 “증거 조작은 국가의 근본적인 신뢰를 흔드는 사건이기 때문에 중대한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실로 밝혀질 경우 개인적 문제로 끝낼 일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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