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이 같은 성과 앞에는 흔히 ‘눈부신’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그러나 언론과 소비자는 삼성전자가 자사의 성장에 걸맞게 ‘눈부신’ 숫자의 일자리를 창출해냈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삼성 갤럭시S 스마트폰 시리즈의 신제품에 열광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누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따져 묻지 않는 것이다.
지난 8월7일 서울 정동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열린 ‘삼성전자 사례로 본 전자산업 하청 노동권 실태’ 토론회에서는 삼성전자의 제품들이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생산되고 있다는 정황이 여럿 발표됐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국제민주연대, 금속노조는 이날 토론회에서 그간 전자산업 업계의 깔끔한 이미지 뒤에 숨어 있던 열악한 노동 현실을 지적했다.

반올림의 공유정옥 산업의학과 전문의는 삼성전자의 하청업체와 납품업체 노동자들의 건강권 문제를 사례로 발표했다. 토론회 제목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듯 삼성전자 생산 방식의 핵심은 ‘하청’이다. 이는 기술 개발과 제품 순환의 속도가 빠른 전자산업의 특징과 관련이 있다. 애플, 시스코 등은 본사가 설계와 디자인만 담당하고 생산 일체는 전자제품 전문생산업체(EMS)에 위탁한다. 노동자가 잇달아 자살해 악명이 높은 폭스콘은 애플의 EMS이다(세계 곳곳 드러나는 인권침해 기사 참조). 삼성, 노키아 등은 핵심 공정을 자체 생산하는 대신 주변 공정은 외주로 돌리는 방식을 쓴다. 반올림의 공유정옥 전문의는 이를 “위험과 책임의 외주화”로, 노동자운동연구소 이유미 연구원은 “생산의 일체화, 비용 부담의 외부화”로 설명했다.
“일차적인 언로조차 막혀 있다”
실제로 지난 1월과 5월 경기도 화성의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불산 누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다치거나 사망한 노동자들은 삼성의 협력업체 직원이었다. 적절한 보호장비를 착용할 겨를도 없이 현장에 투입됐다가 변을 당했다. 1959년생 남성 손 아무개씨도 협력업체 소속으로 2003년부터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2009년 5월 백혈병 진단을 받고 2012년 숨졌다. 공유정옥씨는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보호구를 착용하자니 시간이 부족하고, 착용 안 하자니 불안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라고 말했다.
납품업체 직원들이 암에 걸리거나 과로사한 사례도 있다. 협력업체와 납품업체 모두 원청(삼성전자)이 제시한 업무량 압박에 시달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업무량 압박은 높은 노동 강도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아모텍은 삼성전자 등에 스마트폰 세라믹 칩을 납품하는 업체다. 올해 1~3월 아모텍에서 노동자 세 명이 과로로 쓰러지고 이 중 두 명이 사망했다. 숨진 노동자 가운데 임승현씨는 사망 직전 석 달 동안 고작 나흘밖에 쉬지 못하고 매일 출근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날 소개된 노동자들의 피해 사례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이다. 공유정옥씨는 “원청의 지배 아래 있는 협력업체의 경우 일차적인 언로조차 막혀 있어 목숨을 내놓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