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메시지다. 정치권이 내놓는 메시지의 목표는 다수파를 형성하는 것이다. ‘우리 편’은 최대로 뭉치게 하고 ‘상대 편’은 최대한 갈라치기해야 좋은 메시지다.

6월24일 국가정보원의 정상회의록 무단공개 사건 이후 급물살을 탄 국정원 대선 개입 정국은, 메시지를 다루는 여야의 실력 차를 극적으로 드러내 보였다. 새누리당의 메시지는 분명한 목표 아래 정교하게 배치됐고, 민주당의 메시지는 초점을 잃고 우왕좌왕했다.

새누리당의 ‘솜씨’부터 보자. 7월31일,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장외 투쟁을 선언했다. 새누리당은 마치 준비해두었다는 듯 덫을 놓았다.

첫 번째 덫은 민생방기론. 민주당이 민생의 장인 국회를 버리고 뛰쳐나갔다는 메시지다. 국정원 선거 개입에 큰 관심이 없는 정치 저관심층의 이탈을 노린다.

두 번째는 친노전횡론. ‘나쁜 강경파’ 친노에 ‘좋은 온건파’ 김한길 지도부가 끌려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쏟아냈다. 야권을 친노와 비노로 나누는 고전적인 갈라치기 전술이다.

세 번째로, 가장 믿는 카드가 나온다. 대선불복론. 선거 불복에 혐오감이 큰 중도층을 자극하는 동시에, 야권 지지층 내부 분열도 키울 수 있는 다목적 카드다. 야권 지지층 중 일부 강경파는 민주당이 “부정선거·선거 무효”를 외치지 않는다는 불만이 높다. 이들이 민주당에 “대선 무효를 선언하라”고 압박하는 날에는, 민주당은 진퇴양난에 빠질 수 있다.

정치 저관여층과 중도층을 떼어내고 야권 지지층도 갈라치기하는, 잘 짜인 삼중덫이다. 요약하면 “민주당이 친노 강경파에 휘둘려서, 민생은 내팽개치고, 대선 불복을 외치러 나갔다”가 된다. 새누리당이 내놓는 모든 메시지는, 국정원 선거 개입 국면에서 야권의 잠재 지지층을 쪼갠다는 목표에 맞아떨어졌다. 상대가 다수파를 만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뉴시스문재인 의원(왼쪽)은 메시지가 너무 복잡하고 빠르다.김한길 대표(오른쪽)는 메시지를 ‘병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공세에도 제 말만 하는 새누리당

또 하나 주목할 대목이 있다.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공세에 응답하는 법이 없다. 민주당이 ‘선거 개입’과 ‘국가기강 문란’을 외쳐도, “선거 개입이 아니다”라고 반박하지 않는다. 공식석상에서 지도부의 발언을 보면, 민주당의 공세에 대한 대응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끊임없이 대선불복론으로 맞불을 놓는다.

새누리당은 메시지로 논쟁하지 않는다. 단지 제목을 바꾸고, 상대가 뭐라 하든 바꾼 제목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세부 사항의 논리적 정합성도 거의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미국 민주당의 브레인 중 하나인 인지과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듣는 순간 코끼리를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라면서, 상대 의제에 뛰어들어서 논쟁하지 말고 의제 자체를 바꾸라고 조언했다. 대선불복론에 맞서서 “대선 불복 아니다”라고 주장해봐야 쓸모없다는 얘기다.

레이코프는 미국 공화당의 이런 전략에 미국 민주당이 번번이 말려든다고 보았는데, 이렇게 보면 새누리당은 미국 공화당 메시지 전략의 충실한 후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은 ‘여직원 인권유린 사건’, 국가기록원의 정상회의록 실종 사건은 ‘노무현 정부의 사초 폐기 사건’,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은 ‘대선 불복 획책’으로 다시 규정된다. 따져보면 하나같이 약점이 많은 ‘번역’이지만 개의치 않는다.

반면 민주당은, 메시지의 중심을 잡아주어야 할 두 리더가 무능을 노출했다. 당의 사령탑인 김한길 대표와 대선주자였던 문재인 의원의 메시지는 중심축이 되는 전략이 없었고, 상황을 규정하기보다는 상대의 규정에 그저 반응했으며, 잠재적 지지층을 뭉쳐 다수파로 만드는 데에도 실패했다.

어정쩡하게 뒤섞인 민생과 국정원 이슈

국정원 정국이 불거지기 이전, 김한길 대표는 본인 임기의 콘셉트를 ‘을을 위한 정당’ ‘민생으로 경쟁하는 정당’으로 잡았다. 집권 초인 데다 큰 선거가 없는 정치 비수기 2013년에 어울리는 전략으로 보였다. 하지만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이라는 초대형 이슈가 터지면서, 궤도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을 맞았다.

메시지는 여기서부터 꼬였다. 김한길 대표는 원래 브랜드인 민생 이슈와, 새로 등장한 국정원 이슈를 하나의 메시지로 통합하는 데 실패했다. 김 대표의 발언을 6월 중순부터 일별해보면, 민생 이슈와 국정원 이슈가 어정쩡하게 뒤섞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메시지로 확인해보자. 6월19일, “민주당에는 피할 수 없는 두 가지 숙제가 있다. 하나는 우리 사회의 을을 살리는 것, 또 하나는 국가 권력기관의 대선 개입을 밝히는 것.” 6월26일, “국정원 진상 규명과 더불어 을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입법에도 최선을.” 6월28일, “국정원과 NLL 발언에 국민의 관심이 쏠리는 와중에 경제민주화 법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정교하게 계산된 메시지가 없는 ‘병렬’이다. 양대 이슈에 대해 정리된 김한길 대표의 메시지는 7월1일 처음 등장하는데, 이날 김 대표는 “한손에 민주주의를, 다른 한손에 민생을 들고 앞으로 나가겠다”라고 말한다. 뒤늦게 핵심 슬로건을 뽑은 셈이다.

하지만 이 메시지는 여전히 ‘민생’과 ‘국정원’ 두 이슈를 별개 취급한다. 이 때문에 김한길 대표가 어느 쪽에 주력하더라도 다른 한쪽을 포기했다는 비판에 취약해진다. 김한길 지도부는 민생 이슈에 계속 미련을 두면서 “선거 개입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라는 비판을 야권 지지층으로부터 들었고, 장외 투쟁을 선언하자마자 새누리당으로부터 “민생을 내팽개쳤다”라고 공격받았다.

민주당 국정조사 특위는 장외 투쟁 카드를 사실상 봉쇄당한 채로 협상에 임해야 했다. 김한길식 병렬구도에서는 장외 투쟁이 민생 포기 선언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협상력은 더 떨어졌고, 국정조사 내내 새누리당에 끌려 다녔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 이럴 때 참고할 만한 모범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다. 2004년 야당 대표 박근혜는 국가보안법과 같은 이념 이슈를 제기할 때 “이념과 민생을 모두 잡겠다”라는 식으로 ‘병렬’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관심 두는 문제가 결국 민생과 이어진다는 논리를 어떻게든 만든다.

2004년 8월, 박근혜 대표는 노무현 정부와 국가 정체성 논란을 벌이면서 민생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을 듣는다. 8월4일 MBN에 출연한 박 대표는 “대한민국이 투자 기피국이 되고 경제가 살아나지 못하는 이유는 좌파적인 정책과 사회주의로 가고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국가 정체성 문제는 ‘투자 기피’를 고리로 민생 문제와 이어진다.

2005년 한나라당의 사학법 장외 투쟁 때도 마찬가지다. 박 대표는 ‘사학법 통과-전교조 학교 장악-이념교육 강화-국가 정체성 훼손’이라는 논리를 구성한다. 다시 국가 정체성 키워드로 연결되었으니, 사학법 역시 민생 문제다. 이제 장외 투쟁도 민생 투쟁이 된다.

이 논리가 실제로 맞고 틀리고는 별개 문제다(투자 부진이 더 심각해진 이명박 정부 시절에 국회의원 박근혜는 이 논리를 꺼내지 않았다). 메시지 전략 차원에서 핵심은, 강경파 지지층과 적당히 호의적인 중도파가 모두 이 메시지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이 이어져 있다는 논리를 어떻게든 제공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세부 정합성은 관심사가 아니다.

김한길 대표의 메시지에는, 박근혜의 ‘투자 기피’와 같은 연결고리가 없다. 이 때문에 국정원 국기 문란 사건이 결국 민생과도 직결된다는 식의 설득 논리를 내놓지 못했다. 김 대표 본인부터가 둘을 별개 취급한다. 7월19일 김 대표는 “민주주의 위기 속에 민생 위기가 묻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메시지 전략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 대표의 메시지가 실패하는 동안, 또 다른 한 축인 문재인 의원의 메시지는 ‘과속 스캔들’이라 부를 만했다. 국정원 국면이 본격화한 6월14일부터 7월26일까지, 문 의원은 관련 트윗 33개와 성명서 5개를 쏟아냈다.

메시지가 너무 많고, 너무 복잡하고, 너무 빨랐다. 상황 전개를 속속들이 꿰고 있는 소수의 정치 고관심층 외에는 문 의원이 내놓는 메시지를 따라잡기가 불가능했다.

정치 고관심층만 따라가는 문재인 메시지

정상회의록 원문 공개 논란을 둘러싼 메시지 관리 실패는 단적인 예다. 문 의원은 6월21일 성명서에서 회의록 원문 공개를 제안한다. 24일 국정원이 회의록 무단 공개를 한 이후, 30일 성명서에서 회의록 원본 공개를 한번 더 요구한다. 이로써 여론은 “문재인 의원이 국정원본 회의록의 조작 여부를 의심하고 있다”로 쏠렸다. 문 의원 스스로도 트위터에 “공개된 대화록에 내용 왜곡이나 조작이 있다면 더 엄청난 문제”(6월27일)라고 썼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윤무영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가운데)가 8월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가기록원에 회의록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 7월23일, 문 의원이 네 번째로 낸 성명서는 “이제 NLL 논란은 끝내야 합니다!”였다. 누가 봐도 ‘발빼기’ 성격이 강한 제목이었다. 하지만 성명서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상회의록이 아니더라도 정상회담 준비 과정과 사후 보고 기록만으로도 NLL 진위 논란을 끝낼 수 있다는, 일종의 공세적 제안이었다. 그렇다면 완전히 엉뚱한 제목이 달린 셈이다.

문 의원 측의 핵심 관심사는 애초부터 회의록 자체보다는 준비 과정과 사후 보고 기록이었다.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 책임자인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이 노무현 정부 정상회담 당시에도 핵심 관계자들(안보정책수석과 국방부 장관)이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논란을 끝낼 수 있으리라 보았다. 실제로 문 의원의 세 번째 성명서는 윤병세·김장수 두 사람을 겨냥해 “진실을 말해달라”고 요구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되짚어보면, 일련의 과정은 메시지 전략의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정치 고관심층도, 심지어 몇몇 정치권 인사들마저 문 의원의 관심이 회의록 원문 공개라고 이해하는 판이었으니, 보통 유권자의 혼란은 그보다 더했다. 회의록 실종 사건의 책임은 고스란히 문 의원에게 쏠렸다. 결국 문 의원은 네 번째 성명서를 ‘해설’하는 다섯 번째 성명서를 내야 했다. 그 성명서도 여전히 길고 복잡했다.

메시지가 복잡하고 속도가 빠르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정치 고관심층과 지지층은 열광한다. 호의적인 피드백도 많이 들어온다. 이런 피드백은 다시 메시지의 속도를 더 빠르게 밀어붙인다. 고관심층의 열광과 메시지의 속도가 상호 상승하는 순환구조가 생긴다. 문 의원은 트위터를 직접 하고, 트윗 메시지도 직접 쓴다. 썼다 하면 1000리트윗을 넘긴다. 상호 상승구조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이럴수록 보통의 유권자는 그 정치인의 메시지를 채 받아들이기도 전에 주제가 바뀌었다고 느끼게 된다. 최신 메시지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그 정치인의 메시지가 복잡하고, 핵심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데다(메시지가 많을수록 이럴 가능성이 커진다), 제목이 잘못 달리기까지 했다면? 고관심층과 보통의 유권자 사이에 큰 온도차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다수파 만들기’와는 정반대 방향이다. 지난 한 달 동안 문재인발 메시지는 정확히 이런 결과를 낳았다. 보통의 유권자에게 ‘문재인이 말을 바꿨다’라고 느낄 빌미를 줬다.

메시지 전략의 모범, 박근혜와 DJ

다시 한번, 박근혜 대통령이 좋은 대조가 된다. 박근혜표 메시지는 짧고 단순하고 느리다. 한 얘기를 지겨울 때까지 또 한다. 정치 저관심층까지 메시지가 침투하도록 기다린다.

한나라당 대표 시절이던 2004년 이후 2년 동안, 박 대표는 ‘좌파 정부-투자 회피-민생 불안’이라는 기본 메시지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2004년 8월에는 이 메시지를 한 달 동안 여덟 번 쏟아내기도 했다. 현안성 발언을 하더라도, 중심 메시지에 어떻게든 이어 붙인다. 간첩 사건이 터져도 결론은 ‘국가 정체성-투자 회피-민생 불안’으로 난다.

2012년 총선 국면에서도 박근혜표 메시지는, ‘공천 혁신 이뤄낸 변화 세력 새누리당 대 말 바꾸기 일삼는 구태 세력 친노’ 하나뿐이었다. 전국 어디를 가도 같은 말이 나와서, 나중에는 취재기자들이 그녀의 발언이 나오기도 전에 미리 타이핑을 하곤 했다. 정치 고관심층은 그녀를 ‘수첩공주’ ‘녹음기’라고 야유했다. 하지만 대중은 그녀를 ‘신뢰의 정치인’ ‘말을 바꾸지 않는 정치인’으로 봤다.

문재인 의원 주변에는 메시지 전략이라는 개념을 일종의 ‘여의도 정치’로 보는 정서가 있다. 문 의원의 한 측근 인사는 “메시지 전략이 실패했다고 보는 것은 여의도식 관점이다. 문 의원은 정치적 계산 없이 대중과 그때그때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 의원이 소통하는 대중이 소수의 정치 고관심층이어서 오히려 다수 유권자 정서와 멀어지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는 답을 피했다.

국정원 정국에서 민주당의 두 리더는 무능을 노출했다. 김한길 대표는 먼저 나서서 ‘민생’과 ‘국정원’을 별개 이슈로 갈라치기해주었고, 문재인 의원은 메시지의 중심축을 잡지 못한 ‘과속 질주’로 고관심층·지지층과 보통 유권자의 이슈 체감 정도를 크게 괴리시켰다.

더 근본적으로는, 새누리당에 비해 민주당이 메시지 전략이라는 개념이 덜 잡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정치를 일종의 ‘유권자 상대 마케팅’ 차원으로 접근하는 새누리당과 ‘선악 구도’로 접근하는 민주당의 근본적 차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메시지의 타깃과 목표를 설정하고 효과를 계산하는 능력만 놓고 보면, 새누리당이 일관되게 더 나은 모습을 보인다.

애초에 ‘짧고 일관된 메시지의 반복’을 강조한 정치인의 원조는 김대중 전 대통령(DJ)이었다. 지금보다 더한 언론 불균형 구조에서 DJ는, 정확하고 오해의 소지 없는(그는 정치 인생 내내 숱한 흑색선전에 시달렸다) 메시지를 정치 저관심층에까지 침투시키는 것을 핵심 과제로 여겼다. 이런 메시지 전략의 전통이 민주당이 아니라, 박근혜 대표 시절을 거쳐 새누리당으로 넘어간 모양새다.

민주당이 장외 투쟁을 시작하며 정국은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한 비판 여론은 여전히 민주당 지지율의 2~3배로 높게 나온다. 핵심 변수는 중도층과 정치 저관심층이다. 이들이 민주당 핵심 지지층에 합류하느냐 방관자로 남느냐에 따라 장외 투쟁 결과도 갈린다. 새누리당의 ‘쪼개기 메시지’와 민주당의 ‘뭉치기 메시지’가 맞붙을 전망이다. 메시지가 좋다고 늘 이기는 것은 아니지만, 메시지가 나쁘면 이길 싸움도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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