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의 어느 날. 남북 교류가 시작된 이래, 북한 전역에서 남한 국적자를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는 최초의 날이 도래했다. 정말 완벽한 분단의 역사가 시작된 셈이다. 박근혜 정부가 시작된 지 100일도 안 되어 남과 북은 서로 엉뚱한 방향을 보고 열심히 달려갔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구상, DMZ 평화공원 등이 화제로 등장했고, 한·미·중 전략회의 등 말의 성찬이 이어지지만, 한·미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서울은 개성 회담을 제의했다가 거절당했다. 박 대통령은 북한 측에 의해 ‘교활한 술책’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했다. 공단 국제화를 명분으로 거론했지만 몹시 공허했고, 기업까지 모두 철수한 마당에 해법치고는 식상하기까지 한 것이었다.

‘프로세스’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심지어 “현 정권을 상대해야 하겠는지, 상대해야 해결될 것이 있겠는지를 우리는 지금 신중히 검토 중”(5월15일 조선중앙통신)이라는 북측 반응까지 나왔다. 반면 일본은 특사 플레이를 시작했다. 잘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특사를 보내 ‘뭔가’ 세밀한 토의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아베가 정상회담 카드까지 꺼낸 건 정말이지 절묘한 한 수다. 인정하든 안 하든 간에 박근혜 정권 초기에 드러난 이런 모습이야말로 아주 나쁜 징조가 아닐 수 없다.
수(手)를 빤히 읽혀버렸다는 생각을 박 대통령이 하지 않으면 큰일 날 시점이다. 남북 간에 아슬아슬한 허니문 타임도 이제는 끝물이다. 정권 개시 100일이면 개인 박근혜가 아니라 정책 결정권자로서의 실력 평가가 1차로 종합된다. “당신의 점수는요?” 이렇게 물으면 박 대통령은 뭐라고 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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