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넘게 미국 정계를 달구는 정보기술 이슈가 있다. 망 중립성(Net Neutrality). 망 사업자가 콘텐츠를 차별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문제다. 쉬운 예는 바로 한국의 무선통신 인터넷. 소비자가 무선통신 인터넷을 이용하려면 반드시 ‘네이트’ 같은 통신사 사이트에 접속한 뒤 다른 웹사이트로 가야 한다. 망 사업자가 콘텐츠를 완전히 통제하는 이 상황을 보면 망 중립성이 실로 필요한 것이라 생각되기 쉽다.

인터넷이 민주적인 공간이라지만 이곳에도 차별은 늘 있었다. 라우터(근거리 통신망을 연결해주는 장치)도 패킷을 차별해온 장치이고, 대용량 콘텐츠 전송망(CDN)은 이를 조직적으로 수행한다. 사용자도 프로(고급형) 요금과 라이트(보급형) 요금을 다르게 낸다. 문제는 이러한 차별이 대부분 콘텐츠 사용자나 콘텐츠 제공자의 자발적 선택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망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인터넷 세상에서는 콘텐츠 선택을 망 사업자가 해준다는 점이 다르다. 망 사업자와 계약하지 않은 곳은 느린 속도를 감수해야 하고, 결과적으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뉴시스KT는 망을 지니지 않고 IPTV 사업을 시작하려는 이들을 견제한다. 위는 KT의 IP미디어 시연회.
이는 전화 교환수에게 뒷돈을 주지 않으면 전화 연결이 잘 안 되는 촌극을 떠올리게 한다. 망 중립성은 ‘차별’이라는 불편한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 점이 미국 민주당이 망 중립성을 지지하는 이유다. 스카이프나 구글이 지지하는 이유는 훨씬 실리적이다. 인터넷 전화 스카이프는 당연히 자기 사업이 기득권 전화 사업자로부터 방해받지 않기를 바라고, 광고회사 구글은 어떠한 소비자에게도 평등한 망 접속이 보장되어야 자기 비즈니스 모델이 존속된다.

그러나 경제학적으로 보면 망 중립성은 일종의 규제다. 그 중 특히 가격 규제다. 미국 법무부는 최근 우편 체제를 예로 들며 망 중립성의 허상을 일갈했다. 일반 우편과 특급 우편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자유경쟁 아래서는 당연하다는 말이다. 시장 경쟁을 제한하는 규제란 소비자 선택권을 오히려 제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소비자는 선택권 제한·종량제 모두 두려워

기업에게 동기 부여가 사라진다면, 아무도 네트워크를 개선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다. 게다가 네트워크 설비투자비 일부를 포털과 같이 대량으로 소모하는 이들이 내지 않는다면 결국은 소비자가 지불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종량제라는 무서운 단어를 꺼낼까 늘 두려운 소비자로서는 솔깃할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에서도 ‘망 동등 접근권’이라는 이름으로 이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RFA 자유아시아방송〉 제26호 ‘통신시장 공룡, IPTV도 삼키나’ 기사 참조). 망을 가진 KT가 ‘다음’과 같이 망을 지니지 않은 채 IPTV 사업을 시작하려는 이들을 견제하려는 조짐이다. 자체 망으로 IPTV 사업을 하는 KT는 포털이 자사 망을 이용해 IPTV를 서비스하려면 망 사용료를 내라고 요구한다. 미국에서 망 중립성 논의가 구글과 AT&T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달았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그나마 참고할 대상이 있어 다행이다.

미국은 망 중립성 논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워간다. 차별과 차별화의 차이, 경제학적 타당성과 규제의 필요성 등을 조율하는 풍경은 어찌 보면 자본주의의 질서 그 자체를 시뮬레이션하는 듯 보인다. 이제 우리 차례다. 그런데 이 소중한 과정이 쏙 빠진 채, 행여 FTA로 결론만 영향을 받거나, 방통위의 일방적 시행령으로 갈음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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