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이 나란히 유니폼을 입고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맞춤 유니폼’에 이은 ‘맞춤 명함’ 디자인이 여간 잔망스럽지 않다. 같은 대학·학과에서 선후배로 만난 지 14년여. 정신씨(35), 사이이다씨(34), 나난씨(33)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 동네 주민이기도 하고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는 ‘절친’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부터는 ‘이태원 주민학교’의 선생이라는 공통분모가 하나 더해졌다.  

책 〈이태원 주민일기〉와 ‘이태원 주민시장’을 통해 이미 세 사람의 ‘이태원 살이’는 많이 알려졌다. 미술과 사진이라는 장기를 살려 ‘이태원을 가드닝한다’거나 ‘나의 집이 부서지기 전에 스튜디오로 바꿔보았다’ 따위 이태원 나기 프로젝트를 해왔다. 세 사람이 지난해 3월부터 집중한 건 ‘이태원 주민학교’다. 이름처럼 지역 주민이 만드는 학교. 주민이 수업을 꾸리고 주민이 배우러 온다(실제 배우러 오는 ‘학생’은 전국에 분포해 있다). 기존 방식과 조금 다른 형태의 배움과 교육을 실험해보고 싶었다.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가르치며 배우는 그런 학교다.

11월 첫선을 보인 이태원 주민학교의 세 과목이 재미있다. ‘콜마이네임’ ‘뉴패밀리’ ‘윈도우페인팅 앳 홈’. 설명이 필요한 제목이다. 먼저 콜마이네임. 정신씨는 광고회사 카피라이터와 마케터 출신의 브랜드 네이밍 전문가다.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와 주식회사 홍진경 ‘더 김치’의 이름을 지었다. ‘콜마이네임’ 수업에서는 이름을 지어 부르는 방법을 배운다. 여름내 농사지어 팔 일만 남은 수박의 이름, 제주도에 지을 집의 이름 등 만들고 싶은 대상의 이름을 만드는 것이다. 최근에는 한 부동산중개업소의 이름을 지었다. 연극을 하고 싶었던 이들이 생계를 위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고 문을 열었는데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이었다. 정신씨의 결합으로 간판은 ‘연극과 부동산’으로 정해졌다. 부동산 한쪽을 카페로 만들고 가끔 인형극을 펼치기로 했다. 

동네 특성 따라 커리큘럼 달라져

사진 작업을 통해 ‘발견된 걸 기록하고 기록을 통해 발견해온’ 사이이다씨는 ‘뉴패밀리’ 수업을 진행한다. 새로운 가족을 기록하는 수업이다. 연인, 친구, 반려동물, 물건 등 무엇이든 ‘뉴패밀리’가 될 수 있는 걸 기록하는 방식. 캐릭터 디자이너인 한 수강생은 본인이 디자인한 캐릭터와 함께 가족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얼마 전에는 부산 출장도 다녀왔다. 부산대 기숙사 친구들끼리 기록하는 ‘뉴패밀리’였다. 

마지막으로 ‘윈도우페인팅 앳 홈’은 미술을 하는 나난씨의 수업이다. 그는 창문에 그림을 그리는 윈도페인팅을 처음 한국에 들여온 윈도페인팅 아티스트다. 주한 영국 대사관, 예술의전당, 남산 서울타워 등의 장식을 담당했다. 윈도페인팅은 단지 인테리어가 아니다. 작가 처지에서는 관객들과 문턱 없이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다. 수업은 6세 아이부터 다양한 연령대가 듣는다. 일이 서툰 신입사원은 그 일을 만회하고자 회사 유리 벽면에 크리스마스 장식 퍼포먼스를 하고 싶어 했다. 누군가는 실제 화환 대신 화환을 그리기로 했다.

세 가지 수업 모두 5~10명의 소수정예가 듣는 맞춤형 수업이다. 지금은 선생이 3명이지만 더 늘어날 수 있다.  전국적으로 온 주민이 잘하는 걸 가르치고 재미있는 걸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다른 지역에도 주민은 있는데 이런 아이디어가 없을 수 있다. 그런 곳은 컨설팅을 할 수도 있다. 세 사람은 자라면서 이웃집에서 많은 걸 배웠다. 처음 컴퓨터와 지점토를 접한 것도 이웃집이었다. 이런 일상의 교육이 사라진 게 아쉬웠다. 동네 특성에 따라 커리큘럼은 달라질 터이다.

돈과 시간을 들여 수업에 모이는 수강생들은 모두 소통 의지가 강한 사람이다. 세 사람도 마찬가지. 해오던 작업은 보통 기업체 등에서 의뢰를 받았다. 지금까지 자신을 위한 작업을 해왔다면 이번 프로젝트는 ‘콩쿠르’ 무대 뒤 코치가 된 기분이 들어 새롭다.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세 사람은 곧 뉴욕에 간다. 한 공익재단에서 후원하는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 팀으로 선정돼 뉴욕에서 수업 설명회를 할 예정이다. 1년이 되면 이태원 주민학교의 이야기를 정리해 간행물로 낼 예정이다. 살고 있는 공간, 이태원에 대한 관심이 이런저런 일을 벌이게 만들었다. 사이이다씨는 제주도 해녀학교에도 관심을 두고 있단다. 3명의 교사 겸 교장이 운영하는 학교의 확장을 기대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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