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주자 빅3 컨설팅 보고서

〈RFA 자유아시아방송〉이 대선 부동층을 대상으로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치 소비자인 유권자의 속내를 분석하고, 세 후보에 대해 컨설팅 보고서를 썼다. 선거전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전략기획 과정을 보여주는 최초의 시도다.

부동층 움직이는 법 ①안철수를 위한 컨설팅
부동층 움직이는 법 ②문재인을 위한 컨설팅
부동층 움직이는 법 ③박근혜를 위한 컨설팅

대선주자는 상품이고 유권자는 소비자다. 품질만큼이나 어떻게 포장해서 파는가도 중요하다. 소비자의 취향은 모호하고 까다로워서 이해하기 어렵다. 소비자의 선택이 늘 합리적인 것도 아니어서 품질 좋은 상품이 1위를 한다는 보장도 없다. 시장 점유율 1위만이 살아남는 특수한 시장에서는(대선이야말로 그런 시장이다), 충성스러운 소비자는 물론이고 변덕 심한 소비자의 마음도 잡아야 한다. 문제는 마케팅이다.

민주주의의 원칙과 대의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 발칙한 관점은, 그러나 좋든 싫든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선거는 거대한 마케팅 산업이 되어가고 있다.

아들 조지 부시의 핵심 선거 전략가 칼 로브는 마케팅 기법의 하나인 ‘마이크로 타기팅’을 선거에 적극 활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쿠어스 맥주를 마시고 픽업트럭을 타는 유권자는 공화당 성향, 볼보 승용차를 타고 요가 교실에 다니는 유권자는 민주당 성향 등으로 분류한 뒤, 공화당 성향 유권자에게 동성애와 낙태 이슈 등을 강조한 메일을 뿌렸다. ‘시장 조사’와 ‘마케팅 기법’이 만나 선거 전략이 탄생했다. 아들 부시는 대선 두 번을 모두 이겼다.

마케팅 전략을 짜는 데 여론조사는 중요한 데이터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치 소비자의 미묘한 속내는 객관식 문항에 전부 담을 수 없다. 여론조사는 지지율, 즉 시장 점유율의 변동 추이는 보여주지만 그 이유까지 보여주지는 않는다.


FGI를 통한 의미망 분석

그래서 각광받는 대안 중의 하나가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Focus Group Interview)’다. 계급·세대·지역 등을 대표하는 포커스 그룹을 깊이 있게 인터뷰해 타깃별로 선거 전략을 고안해 낸다. 객관식 문항으로 포착되지 않는 유권자의 세계관과 선호를 직접 들을 수 있는 FGI는, 이제 대선 캠프에서 선거 전략을 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자료가 됐다. 

 

 

 

 

 

 

 

 

ⓒ케리돌:RFA 자유아시아방송 양한모 사진:RFA 자유아시아방송 조남진

 

 

이것으로 충분할까. 문제는 남는다. 먼저 분석하는 쪽에서 듣고 싶은 말만 도드라지게 할 위험이 있다. 소비자가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내용 역시 모호하거나 심지어 사실이 아닐 수 있다. 자신의 선호를 스스로 모를 때도 많다. 사람들은 본인의 속내와 맞지 않더라도 ‘좋은 말’ ‘옳은 말’ ‘착한 말’에 동의하는 경향이 있다. 유권자가 “싸우지 않는 정치인이 좋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이를 액면 그대로 믿으면 곤란하다는 얘기다. 싸우지 말라는 말만 듣고, 손 놓고 지지자를 대변하지 않는 정치인을 좋아할 유권자가 얼마나 될까?

이럴 때 ‘의미망 분석’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의미망 분석이란 발화자의 말을 컴퓨터가 분석해 ‘의미망(네트워크) 지도’를 만드는 분석 방법이다. 발언에서 키워드가 등장하는 빈도는 물론이고 키워드 간의 거리(문장에서 각 키워드의 위치)와 키워드의 연결 형태를 계산해 의미망 지도를 그린다. 이를 통해 ‘진짜 뜻’을 객관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

의미망 분석은 이미 마케팅 업계에서 ‘실전투입’되는 기법이다. 실제 사례를 보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휴대전화 시장에 진출하고 싶은 한국 기업이 있다. 이 기업은 당연히 남아공 소비자의 특성을 모른다. 인터뷰를 해보니, 남아공 소비자는 ‘쿨’한 휴대전화를 원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소비자가 스스로 말하는 것은 여기까지다. 그런데 ‘쿨’한 게 대체 뭘까?

의미망 지도를 만들어보니 답이 나왔다. 지도에서 ‘쿨’은 ‘저렴한’ ‘싸면서 성능이 좋은’ 등의 의미와 연결됐다. 가격대 성능비가 핵심이었다. 우리가 흔히 ‘쿨’에서 떠올리는 ‘멋진’ ‘폼 나는’ ‘나를 돋보이게 해주는’ 등과는 전혀 다른 의미다. 의미망 분석을 거치며 마케팅 포인트가 달라지는 셈이다.

〈RFA 자유아시아방송〉과 네트워크 분석 전문기업 트리움은 세대와 소득에 따라 유권자 36명을 6개 그룹으로 나누어 FGI를 진행한 후, 그 결과물로 의미망 분석을 진행했다. 정치 소비자인 유권자의 속내를 잡아내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대선주자라는 상품을 어떻게 팔아야 할 것인지 세 후보(박근혜·문재인·안철수)의 ‘컨설팅 보고서’를 썼다. 시장에서 상품을 컨설팅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옮겨 왔다.

FGI 대상 유권자는 ‘스윙보터’로 한정했다. 대선에서 투표할 의사는 있으나, 아직 지지 후보를 정하지는 않은 유권자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스윙층은 현재 10~20% 선을 유지하고 있다(안철수 후보의 출마 선언 이후 스윙층이 다소 줄었다). 결국 49대49로 재편되는 최종 국면에서, 당락을 가르는 것은 마지막 2%다.

스윙층으로 대상을 한정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여야의 고정 지지층은 대체로 지지 성향이 견고하고 정치적 세계관이 촘촘하게 완성되어 있어서 굳이 의미망 분석까지 동원하지 않아도 이해가 쉬운 편이다. 반면 스윙층의 세계관은 미묘하다. ‘정석적인’ 진보·보수의 논리구조와 다른 경우가 많고, 때로 모순적인 경우마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층이 무엇에 반응하고 어디로 움직일지 더욱 예측하기 힘들다. 깊이 있는 분석이 절실한 이유다.

이번 ‘컨설팅’이 세 후보의 선거 전략 전반을 논하지는 않는다. 분석은 스윙층 공략 전략에 한정된다. 주된 전선을 어디에 칠 것인가, ‘집토끼(고정 지지층)’를 어떻게 단단히 묶어둘 것인가 등 선거 전략의 고전적인 주제는 빠져 있다. 때문에 ‘49대49 구도’가 성립할 때에만 이 분석은 의미가 있다. 박근혜의 보수표가 분열하거나, 문재인·안철수 단일화가 실패해, 어느 쪽으로든 추가 기우는 상황이 될 경우 스윙층 분석은 의미가 없어진다.

문제는 또 있다. ‘정치의 마케팅화’는 대체로 정치가 실패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유권자가 정당이라는 집단적 동원 경로를 잃어버렸다는 신호다. ‘잘 조직되어 집단으로 힘을 발휘하는 유권자 세력’이 ‘파편화된 소비자 개인’으로 대체될 때, 정치는 마케팅에 자리를 내어준다.

이런 한계가 있음에도 이번 분석은 마케팅과 선거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전략기획의 전 과정을 날것으로 보여주는 최초의 시도다. 대선 캠프의 가장 내밀한 전략회의실로, 〈RFA 자유아시아방송〉이 2주에 걸쳐 독자들을 초대한다. 이번 호에서는 세 대선주자들의 스윙보터 공략 전략을 짚어본다. 다음 호에서는 대선의 핵심 변수로 떠오른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전략을 ‘문재인 버전’과 ‘안철수 버전’으로 나눠 컨설팅한다. FGI 대상 36명의 연령·소득 정보와, 6개 그룹의 세대별·소득별 의미망 지도 분석도 다음 호에 실린다.

“본인은 헐렁하게 팀은 탄탄하게”
부동층 움직이는 법 ① 안철수를 위한 컨설팅


9월1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후보는 스윙층의 최강자다. 안 후보에 대한 호감은 전 세대·전 소득층에서 발견된다.

그런데 미묘한 차이가 있다. 분석을 총괄한 트리움 김도훈 대표는 분석 결과를 들여다보며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묘하게 소득 변수가 있네요. 안 후보를 좋아하는 이유가 저소득층과 중산층 이상이 달라요.”

〈그림 1〉을 보자. 안 후보에 대한 FGI 결과물을 가지고 의미망 분석을 해서 포착된 핵심 키워드를, 분석 그룹별로 배치한 결과다. 가운데 동그랗게 배치된 키워드는 여러 그룹에서 공통으로 등장한 것이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윤무영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후보(앞줄 가운데)가 9월20일 서울국립현충원을 참배하고 있다.

 

 

3040 중간층 그룹, 3040 고소득 그룹, 4050 고소득 그룹은 안 후보를 ‘신선’하다고 생각하고 ‘지지’할 가능성이 높은 후보로 분류한다. 그는 ‘백신’을 개발하는 등 자신의 일에 ‘프로’이면서, ‘지지층’의 ‘아픔’에 공감할 능력이 있다. ‘깨끗’하고, ‘경제’도 잘 할 것 같아 보인다. 현실적으로, 박근혜 후보를 이길 수 있는 ‘지지율’도 있다.  


저소득층, IT 산업에 대한 의구심 가져

“중·고소득층은 안철수의 인생 스토리에 잘 감정이입합니다. 자신들과 닮았거나, 조금만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성공담이거든요. 그런데 저소득층으로 가면 달라져요.” 저소득층으로 가면 안 후보는 ‘결정’을 내리는 데 우유부단한, ‘신중’하기는 하지만 어딘가 ‘실망’스럽고 준비가 ‘부족’한 후보로 이미지가 바뀐다. 물론 ‘기대’를 철회한 것은 아니다. ‘박원순’과 같은 성공 사례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의구심. 그는 내 삶의 변화를 이끌어낼 집행자일까, 아니면 말은 그럴듯해도 실제 현실을 바꾸지는 못할 그냥 ‘학자’일까.

김도훈 대표는 이 차이를 이렇게 분석한다. “저소득층 FGI에서 IT 산업에 대한 의구심이 두드러진 적이 있어요. IT는 잘나가는 사람들 얘기, 자신의 삶과는 무관한 얘기라고 보는 거죠. 안 후보의 성공 스토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소득층이 오히려 안 후보에 감정이입을 덜해요. 다만 저소득층은 누구보다 변화가 절실한 계층이기 때문에, 변화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안철수를 좀 의심스러운 대로 사후 추인합니다. ‘내 얘기’로 감정이입하는 고소득층과는 이유가 달라요.”

분석 대상이 스윙층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2030 세대는 안 후보의 가장 탄탄한 지지층으로 다수가 이동했지만, 이 분석은 ‘남아 있는 2030’이 왜 안철수 지지를 주저하는지 보여준다.

많은 그룹에서 반복되는 핵심 키워드가 있다. ‘정치’와 ‘세력’. 정치 경험도 없이 혼자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특히, 감정이입보다는 변화의 도구로 안 후보를 사후 추인한 저소득 스윙층에서 이는 결정적인 질문이 된다. 그런가 하면 고소득 스윙층에서는 미묘한 정서도 잡힌다. “감정이입은 합니다. 그런데 잘난체하는 건 또 못 참아요. ‘여우’짓 하지 마라는 거죠. 왜? 좀 거칠게 말하면, 본인들도 충분히 잘났거든요(웃음).”

 

 

 

 

 

 

 

중·고소득층은 안철수의 인생 스토리에 감정 이입한다. 그런데 저소득층으로 가면 우유부단하고, ‘신중’하지만 준비가 ‘부족’한 후보로 이미지가 바뀐다.

 

 

안철수 후보는 소탈한 화법과는 달리 본인의 약점을 드러내는 장면이 별로 없다. “성적표에 ‘수’가 ‘안철수’밖에 없었다”라는 말도 약점을 드러낸다기보다는, 결국 서울대 의대에 갔다는 ‘해피엔딩’을 강조하는 극적 장치에 가깝다. FGI 과정에서 “단란한 게 뭐죠?”(단란주점을 모른다는 의미) 발언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하는 등 의외로 자기 포장에 강하다는 인상을 중·고소득 스윙층에 주고 있다. 나쁜 신호다. 안 후보의 장점으로 꼽히는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는 징후다. 상대 후보에게는 공략 포인트가 된다. ‘가식’이 핵심 키워드가 될 수 있다.

집행 능력을 입증하는 것은 전 그룹에서 요구받은 과제다. ‘고고한 척한다는 인상’은 특히 중·고소득층 그룹에서 장애가 된다. 김도훈 대표가 내놓은 컨설팅은 ‘본인은 헐렁하게 팀은 탄탄하게’다. “양질의 참모진을 빨리 가시화해야 합니다. 안 후보의 비교우위는 문제 진단인데, 그의 진단에 동의하는 유권자도 집행은 다른 세력에 맡길 수 있습니다. 그런 이탈을 방지하려면 자신이 ‘그냥 학자’가 아니라 ‘집행자’라는 걸 보여줘야 해요. 그러려면 결국은 사람이죠. ‘섀도 캐비닛(예비 내각)’만 한 게 없습니다.”

안 후보는 9월19일 출마 선언에서 함께할 사람들을 일부 공개했다. 그중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진보 성향 유권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됐다. 양극화와 부동산 폭등의 주범이라는 지탄이 나왔다.

하지만 정치 고관여층이 아닌 평균적인 스윙층이 보기에는, 경제 사령탑을 두 번 지낸 집행력 있는 인사가 안 후보와 함께한다는 것은 좋은 신호가 될 수 있다. 물론 ‘집토끼’의 이탈을 방지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본인은 헐렁해야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나쁘지 않은 빈틈’을 보여야 합니다. 지금 안 후보에 강하게 감정이입하고 있는 중·고소득층에서 미묘한 이상 징후가 보여요. 너무 고고한 이미지는 약간의 네거티브에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똑같은 인간’임을 보여주는 겸손하고 감동적인 메시지가 나와야 해요. ‘이런 바보짓도 했다’는 스토리가 필요합니다.” 잠재적 위험요소인 ‘가식’ 이미지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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