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주자는 상품이고 유권자는 소비자다. 품질만큼이나 어떻게 포장해서 파는가도 중요하다. 소비자의 취향은 모호하고 까다로워서 이해하기 어렵다. 소비자의 선택이 늘 합리적인 것도 아니어서 품질 좋은 상품이 1위를 한다는 보장도 없다. 시장 점유율 1위만이 살아남는 특수한 시장에서는(대선이야말로 그런 시장이다), 충성스러운 소비자는 물론이고 변덕 심한 소비자의 마음도 잡아야 한다. 문제는 마케팅이다.

민주주의의 원칙과 대의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 발칙한 관점은, 그러나 좋든 싫든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선거는 거대한 마케팅 산업이 되어가고 있다.

아들 조지 부시의 핵심 선거 전략가 칼 로브는 마케팅 기법의 하나인 ‘마이크로 타기팅’을 선거에 적극 활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쿠어스 맥주를 마시고 픽업트럭을 타는 유권자는 공화당 성향, 볼보 승용차를 타고 요가 교실에 다니는 유권자는 민주당 성향 등으로 분류한 뒤, 공화당 성향 유권자에게 동성애와 낙태 이슈 등을 강조한 메일을 뿌렸다. ‘시장 조사’와 ‘마케팅 기법’이 만나 선거 전략이 탄생했다. 아들 부시는 대선 두 번을 모두 이겼다.

마케팅 전략을 짜는 데 여론조사는 중요한 데이터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치 소비자의 미묘한 속내는 객관식 문항에 전부 담을 수 없다. 여론조사는 지지율, 즉 시장 점유율의 변동 추이는 보여주지만 그 이유까지 보여주지는 않는다.

FGI를 통한 의미망 분석

그래서 각광받는 대안 중의 하나가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Focus Group Interview)’다. 계급·세대·지역 등을 대표하는 포커스 그룹을 깊이 있게 인터뷰해 타깃별로 선거 전략을 고안해 낸다. 객관식 문항으로 포착되지 않는 유권자의 세계관과 선호를 직접 들을 수 있는 FGI는, 이제 대선 캠프에서 선거 전략을 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자료가 됐다. 

 

ⓒ케리돌:RFA 자유아시아방송 양한모 사진:RFA 자유아시아방송 조남진

 


이것으로 충분할까. 문제는 남는다. 먼저 분석하는 쪽에서 듣고 싶은 말만 도드라지게 할 위험이 있다. 소비자가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내용 역시 모호하거나 심지어 사실이 아닐 수 있다. 자신의 선호를 스스로 모를 때도 많다. 사람들은 본인의 속내와 맞지 않더라도 ‘좋은 말’ ‘옳은 말’ ‘착한 말’에 동의하는 경향이 있다. 유권자가 “싸우지 않는 정치인이 좋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이를 액면 그대로 믿으면 곤란하다는 얘기다. 싸우지 말라는 말만 듣고, 손 놓고 지지자를 대변하지 않는 정치인을 좋아할 유권자가 얼마나 될까?

이럴 때 ‘의미망 분석’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의미망 분석이란 발화자의 말을 컴퓨터가 분석해 ‘의미망(네트워크) 지도’를 만드는 분석 방법이다. 발언에서 키워드가 등장하는 빈도는 물론이고 키워드 간의 거리(문장에서 각 키워드의 위치)와 키워드의 연결 형태를 계산해 의미망 지도를 그린다. 이를 통해 ‘진짜 뜻’을 객관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

의미망 분석은 이미 마케팅 업계에서 ‘실전투입’되는 기법이다. 실제 사례를 보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휴대전화 시장에 진출하고 싶은 한국 기업이 있다. 이 기업은 당연히 남아공 소비자의 특성을 모른다. 인터뷰를 해보니, 남아공 소비자는 ‘쿨’한 휴대전화를 원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소비자가 스스로 말하는 것은 여기까지다. 그런데 ‘쿨’한 게 대체 뭘까?

의미망 지도를 만들어보니 답이 나왔다. 지도에서 ‘쿨’은 ‘저렴한’ ‘싸면서 성능이 좋은’ 등의 의미와 연결됐다. 가격대 성능비가 핵심이었다. 우리가 흔히 ‘쿨’에서 떠올리는 ‘멋진’ ‘폼 나는’ ‘나를 돋보이게 해주는’ 등과는 전혀 다른 의미다. 의미망 분석을 거치며 마케팅 포인트가 달라지는 셈이다.

〈RFA 자유아시아방송〉과 네트워크 분석 전문기업 트리움은 세대와 소득에 따라 유권자 36명을 6개 그룹으로 나누어 FGI를 진행한 후, 그 결과물로 의미망 분석을 진행했다. 정치 소비자인 유권자의 속내를 잡아내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대선주자라는 상품을 어떻게 팔아야 할 것인지 세 후보(박근혜·문재인·안철수)의 ‘컨설팅 보고서’를 썼다. 시장에서 상품을 컨설팅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옮겨 왔다.

FGI 대상 유권자는 ‘스윙보터’로 한정했다. 대선에서 투표할 의사는 있으나, 아직 지지 후보를 정하지는 않은 유권자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스윙층은 현재 10~20% 선을 유지하고 있다(안철수 후보의 출마 선언 이후 스윙층이 다소 줄었다). 결국 49대49로 재편되는 최종 국면에서, 당락을 가르는 것은 마지막 2%다.

스윙층으로 대상을 한정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여야의 고정 지지층은 대체로 지지 성향이 견고하고 정치적 세계관이 촘촘하게 완성되어 있어서 굳이 의미망 분석까지 동원하지 않아도 이해가 쉬운 편이다. 반면 스윙층의 세계관은 미묘하다. ‘정석적인’ 진보·보수의 논리구조와 다른 경우가 많고, 때로 모순적인 경우마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층이 무엇에 반응하고 어디로 움직일지 더욱 예측하기 힘들다. 깊이 있는 분석이 절실한 이유다.

이번 ‘컨설팅’이 세 후보의 선거 전략 전반을 논하지는 않는다. 분석은 스윙층 공략 전략에 한정된다. 주된 전선을 어디에 칠 것인가, ‘집토끼(고정 지지층)’를 어떻게 단단히 묶어둘 것인가 등 선거 전략의 고전적인 주제는 빠져 있다. 때문에 ‘49대49 구도’가 성립할 때에만 이 분석은 의미가 있다. 박근혜의 보수표가 분열하거나, 문재인·안철수 단일화가 실패해, 어느 쪽으로든 추가 기우는 상황이 될 경우 스윙층 분석은 의미가 없어진다.

문제는 또 있다. ‘정치의 마케팅화’는 대체로 정치가 실패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유권자가 정당이라는 집단적 동원 경로를 잃어버렸다는 신호다. ‘잘 조직되어 집단으로 힘을 발휘하는 유권자 세력’이 ‘파편화된 소비자 개인’으로 대체될 때, 정치는 마케팅에 자리를 내어준다.

이런 한계가 있음에도 이번 분석은 마케팅과 선거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전략기획의 전 과정을 날것으로 보여주는 최초의 시도다. 대선 캠프의 가장 내밀한 전략회의실로, 〈RFA 자유아시아방송〉이 2주에 걸쳐 독자들을 초대한다. 이번 호에서는 세 대선주자들의 스윙보터 공략 전략을 짚어본다. 다음 호에서는 대선의 핵심 변수로 떠오른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전략을 ‘문재인 버전’과 ‘안철수 버전’으로 나눠 컨설팅한다. FGI 대상 36명의 연령·소득 정보와, 6개 그룹의 세대별·소득별 의미망 지도 분석도 다음 호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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