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와 얼굴들’의 장기하가 홀에 나타났다. ‘일순간 고요’까진 아니더라도 웅성웅성 시선이 집중될 줄 알았다. 이미 흥이 올라 몸을 들썩이던 40여 명 여행자들은 그보다는 자신의 춤에 집중하는 편을 택했다. DJ로 나선 음악평론가 김작가의 선곡이 탁월했던 덕분. 몇 시간 전 공연에서 500여 관객을 들었다 놓았다 했던 그다. 당황한 기색도 잠시, 장기하는 한잔 술과 함께 일행에 섞여들었다.

그가 ‘홍대 스타일’로 즐기는 이곳은 제주에서도 풍경이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금능해수욕장 인근 호스텔이다. 별이 쏟아지던 8월25일 밤. ‘그레이트 이스케이프 투어 인 제주’(Great Escape Tour in Jeju·겟인제주) 참가자들과 뮤지션의 뒤풀이가 벌어졌다. 같은 시각, 여행을 이끄는 ‘제주바람’의 3인방 역시 각자의 위치에서 부산했다. 박은석 대중음악 평론가(41)와 부세현 부스뮤직 대표(36),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31)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명익겟인제주를 이끄는 부세현·박은석·고건혁씨.

곰사장이라는 별명이 더 익숙한 고 대표는 여행자들과 함께 몸을 흔들었다. 이튿날 금능해수욕장에서 수영복 비슷한 걸(?) 입고 함께 바다에 뛰어든 것도 그다. 홍보와 함께 투어 전 일정을 소화한다. 친절한 가이드 체질은 아니지만 투어를 시작하던 3개월 전보다는 익숙해졌다. 부세현 대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행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제주에서 진행하는 모든 일정과 공연 준비를 담당하는 그는 이날도 맥주가 떨어지기 무섭게 채웠다. ‘고객의 만족을 최우선으로’ 한다. 3인방의 맏형이자 제주바람 대표인 박은석 음악평론가는 30분 거리에 있는 올레리조트에서 뮤지션들의 뒤풀이를 책임지고 있었다. 전날 발을 헛디뎌 다친 검지에 붕대를 두른 채였다. 그는 뮤지션 섭외와 후원 업무를 담당한다.

 음악과 생태여행을 결합해 5월부터 시작한 겟인제주 네 번째는 ‘이매진 어워드 뮤직페스트 2012’(이매진 어워드)가 중심에 있었다. 시상식과 콘서트가 결합된 축제로, 21명의 음악평론가가 뽑은 올해의 앨범에 상을 주는 자리다. 2012 올해의 앨범은 ‘격동하는 현재사’의 정차식이 받았다(60쪽 상자 기사 참조).

겟인제주를 진행하는 동시에 이매진 어워드 사무국장까지 맡은 박은석 대표는 그 어느 때보다 바빴다. 별개 행사지만 목표가 겹친다. 제주에 어떤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것. 지난 3월 세 사람이 주축이 돼 만든 ‘제주바람’의 지향이기도 하다. 나이 차도 있고 성격도 다르지만 세 사람은 제주도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음악 판에서 서로 안면만 익혀오다 올해 초 겟인제주를 기획하면서 의기투합했다. 음악이 ‘탈(脫)서울’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홍대 앞은 너무 좁았다. 자연 자원은 넘치는데 문화 콘텐츠가 부재한 고향에 눈을 돌렸다. 제주엔 이렇다 할 밤 문화가 없었다. 박 대표는 1994년 우드스톡을 다녀온 이래 언젠가 제주도에서 음악 페스티벌을 열겠다고 다짐했다. 


변변한 클럽 하나 없던 학창 시절

세 사람 다 학창 시절 악기를 다루던 ‘재주소년’이다. 박은석 대표는 기타를 독학했다. 고등학교 축제를 앞두고 동아리 친구들과 급조한 팀이었다. 뮤지션으로서 그의 비극은 듣는 귀가 먼저 뜨인 데 있었다. 듣는 음악의 수준을 갓 시작한 그가 따라갈 수는 없었다. 딥 퍼플, 주다스프리스트, 레드 제플린 음악을 흉내냈다. 변변한 클럽이나 학원은 없었다. 제주도라는 물리적 한계가 지금보다 컸던 시절이다. 시내 음반가게에는 라이선스 발매가 거의 없었고 국내 록음악도 잘 갖다놓지 않았다. 라디오에서 음악이 나오면 녹음해 듣거나 해적판을 구해서 들었다. 〈어바웃 어 보이〉의 작가 닉 혼비가 쓴 〈하이 피델리티〉를 보며 공감했던 건 그 때문이다. 학창 시절 추억순으로 앨범을 정리해두는 모습이 자신과 닮아 있었다.

김광석이 소극장에서 장기 공연을 하는 게 이슈가 될 정도로 공연 자체가 많지 않던 시절이다. 재수를 하느라 서울에 간 그는 대중음악 평론가가 되었다. 현재 음악전문 웹진 ‘백비트’의 편집장이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다.

제주시청 근처 박은석 대표의 집에서 10분 떨어진 거리에 살던 곰사장은 학창 시절, 박 대표가 라디오에 나와 하는 음악 얘길 들으며 자랐다. 중학교 때 접한 너바나가 인생을 바꿨다. 고등학교 1학년, 학교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해 베이스를 쳤지만 집안은 대대로 음치였다. 미천한 재주를 일찍 간파하고 홍보·공연기획에 집중했다. 그래도 어느 공연인가, 자신이 몸담았던 밴드의 공연에 온 관객 수와 가수 윤도현 공연 관객 수가 같았던 적도 있다. 물론 윤도현이 지금보다 덜 알려졌던 시절 얘기다. 인디음악이 처음 생겨나면서 전국 유통망이 섰다. 〈서브〉(SUB) 같은 잡지도 탐독했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그를 굳이 말리지 않았다.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는 밴드 활동을 결심하게 만들었던 크라잉넛을 얼마 전 겟인제주에 초대했다. ‘재주소년’ 시절을 생각하면 감격스러운 일이다.

이름난 직장을 다니는 친구를 만나면 서로 부러워한다. 개성 있는 뮤지션과 일하지만 음원 판매 수익 구조상 하는 일에 비해 벌이가 적기 때문이다. 겟인제주 때문에 이전보다 제주에 자주 오지만 집엔 거의 못 들른다. 그래도 제주 구석구석, 그에게 좋은 곳을 소개해주는 분은 부모님이다. 그는 부산영화제 모델을 꿈꾼다. 부산이 영화의 도시가 된 것처럼 변방의 제주를 음악의 도시로 만들고 싶다.


ⓒ신재민 제공8월24일 고내리 바닷가에서 겟인제주 참가자들이 ‘얄개들’의 공연을 보고 있다.

부세현 부스뮤직 대표는 마른 체구에 항상 커다란 백팩을 메고 있다. 언제 어디서 숙식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세면도구 등을 지고 다닌다. 겟인제주를 시작하며 생긴 습관이다. 제주 성산이 고향이지만 생태 관광을 위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제주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됐다.

부 대표는 ‘블록’이란 이름으로 밴드 활동을 했다. 고등학교 때 아침조회에 빠지기 위해 교악대에 들어갔다가 잡게 된 플루트를 진지하게 해볼 작정이었다. 한번 꽂히면 그것만 파는 스타일. 우연히 음반가게에서 흘러나온 메탈 음악에 꽂힌 뒤, 록음악만 들었다. 당시 제주의 라이브클럽은 한 군데였다. 노래방, 음악다방 등을 찾아다니며 연습했다. 20대 후반, 제주에서 더 이상 밴드 멤버를 구할 길이 없었다. 모두 서울로 가버렸다. 할 수 없이 그도 홍대 앞으로 갔다. 녹음실에 적을 두며 일했다. 처음부터 여기서 음악을 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지치고 열정이 사그라진 뒤였다. 비슷한 길을 걷게 될 후배에게 좋은 판을 마련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2005년 제주로 내려와 레이블을 차리기로 했다.

2007년, 5000만원을 들여 지은 녹음실이 태풍 나리로 물에 잠겼다. 1년 뒤 녹음실 없이 다시 시작했지만 제주도에서 인디레이블을 운영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 문화판 전체가 황무지였다. 황무지에 꽃을 심는 작업부터 하기로 했다. 겟인제주도 일환이다.

10년 뒤에는 제주를 기반으로 음악·사진·미술 작업을 하는 이들을 위해 에이전시를 운영하고 싶다. 겟인제주 4회차. 이렇게 버티면 될 것 같다. 

세 명 다 음악과 관계된 일을 해서인지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 말하자면 ‘음악 소비자’를 만나는 일도 하나의 재미다. 참가자 대다수가 20~30대 여성이다. 이번 투어에도 개학을 하루 앞둔 교사, 지인 중에 밴드 음악을 듣는 게 본인밖에 없다는 IT 프로그래머, 총 세 번을 참가한 일간지 기자, 번역가, 의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찾았다. ‘잘 놀지만’ 극성스럽진 않다. 팬들과의 만남 때문에 참가를 주저하던 뮤지션도 일단 만나면 편하게 논다고. 하지만 제주도민의 참여는 부족하다. 지자체 초청 방식의 무료 공연이 익숙한 제주도 관객에게 유료 공연은 낯설다.

세 사람은 서로 연락할 때 제주 말씨를 쓴다. 서울말을 쓰면 ‘곤밥(쌀밥) 먹은 소리를 한다’라며 핀잔을 듣기도 한단다. 언어가 문화의 총아라면 음악은 어떨까. 다른 듯 비슷한 꿈을 꾸는 세 사람. 다섯 번째 겟인제주는 9월 한 달 쉬고 10월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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