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민주·공화 양당이 합의한 예산 감축으로 내년부터 불황(recession)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식량가격마저 크게 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세계 최대의 식량 수출국인 미국의 지위를 감안하면 이는 지구적 차원의 식량가격 등귀로 나타나 경기를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미국 농무부는 지난 7월25일 발표한 〈식량 가격 전망, 2012~2013〉에서 내년 식료품 가격이 ‘역사적 평균’(historical average)을 넘는 수준으로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그 원인은 곡창지대인 미국 중서부 대평원을 중심으로 국토의 60% 이상을 덮친 극심한 가뭄이다.

사실 미국 농무부는 6월 말까지만 해도 식량가격에 대해 낙관적인 편이었다. 지난해부터 가뭄이 지속되는 바람에 고기 값이 상승하긴 했으나 과채류 가격은 크게 떨어져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내려가는 추세였던 것이다. 심지어 농무부는 지난겨울의 고온 현상 덕분에 올해 옥수수 수확량이 역대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가축의 주요 사료인 옥수수 생산량 증가로 가격이 떨어지면 쇠고기, 돼지고기, 낙농품 등의 값도 안정될 것이었다.


ⓒAP Photo7월17일 미국 인디애나 주의 옥수수 밭이 가뭄으로 말라가고 있다. 미국 중서부 대평원을 중심으로 국토의 60% 이상이 가뭄에 시달린다.

“역사적 평균 뛰어넘는 인플레이션”

그러나 이런 미국 농무부의 예측이 불과 한 달여 만에 180도 바뀐 것이다. 7월 들어서도 가뭄이 지속되면서 오히려 악화되는 추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가뭄 시기에는 곡물 생산량이 줄어들고 가격은 오르게 마련이다. 더욱이 시장에서는 여기저기서 투기성 ‘곡물 사재기’가 나타나면서 곡물 값 인상을 더욱 부추긴다. 실제로 지난 7월 미국 옥수수 가격은 50%나 올라 부셸(곡물 중량 단위, 옥수수의 경우 25.4kg)당 8달러로 치솟았다. 옥수수 가격이 50% 상승하는 경우 식량가격은 평균 1% 오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옥수수재배자협회(NCGA) 릭 톨먼 회장은 “이것은 재해다. 올해 140억 부셸의 옥수수가 생산될 것으로 예측했으나 가뭄 때문에 30억 부셸 정도가 줄어들 것으로 본다”라고 한 언론에 털어놓았다.

이렇게 옥수수 가격이 폭등하고 이후에도 계속 오를 것으로 전망되면 축산 농가들은 기르던 소와 돼지 등의 사육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도축해서 육류 시장으로 방출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될 때 육류 가격은 일시적으로 내렸다가 그 물량이 소진되는 시점에 다시 치솟는다. 이렇게 사료 값 인상이 슈퍼마켓의 쇠고기 값 인상으로 이어지기까지는 6~7개월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그러니까 2013년 초가 육류의 소비자 가격이 치솟기 시작할 시기다.

미국 농무부는 7월 보고서에서, 내년 쇠고기 가격이 4~5%, 돼지고기는 2.5~3.5%, 가금류와 달걀도 3.0~4.0%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축산 농가의 대량 도축으로 인해 가축 수가 줄어드는 만큼 우유, 치즈, 버터 등의 생산량도 감소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 농무부는 우유 등 낙농품 가격 역시 3.5~4.5% 인상되리라 본다. 민간 연구소 등에서는 농무부가 식량가격 인상폭을 과소 예측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예컨대 위스콘신 메디슨 대학 농경제학과 에드 제시 교수는 우유 값이 2013년 10% 이상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EPA미국 뉴욕의 한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는 시민. 식량가격 인상은 불황을 더 심화시킨다.

5년 안에 글로벌 식량위기 국면?

최근에는 1930년대의 ‘더스트 볼(dust bowl :먼지사발)’ 현상이 다시 나타나는 것 아닌가 하는, 불길한 이야기까지 언론에 오르내린다. 미국의 1930년대는 공황에 최악의 가뭄이 겹쳤던 시대다. 당시에도 가뭄이 지속되면서 미국 중서부 대평원 곡창지대의 토양이 말라 흉작이 계속되었다. 마른 토양은 흙먼지가 되어 폭풍을 타고 날아다니다가 농지와 대도시를 덮쳤다. 이렇게 황폐화된 중서부 대평원 지대를 ‘더스트 볼’이라고 불렀다. 불황기에 식료품 가격마저 오르자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찾아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는 ‘국내 이주민’ 신세로 전락했다. 당시의 풍경을 적나라하게 그린 소설이 바로 노벨상 수상 작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다. 최근 불황 조짐이 역력한 가운데 가뭄이 지속되면서 ‘더스트 볼’의 악몽이 미국에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가뭄과 식량가격 인상은 지금 예상되는 불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음식물은 가격이 올라도 구입하지 않을 수 없는 재화다. 이에 따라 자동차, 의류 등 식량 외 재화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미국 시민들의 소비가 줄어든다는 것은 그나마 세계경제의 엔진 구실을 하는 중국 등 이머징 마켓, 독일이나 한국 같은 제조업 대국의 경제 형편도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지역은 그동안 미국 농산품을 싸게 수입해온 ‘가난한 나라’들일 것이다. 이 나라들의 저소득 민중에게 식량가격 인상은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다. 중동혁명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2009년 중반 이후의 식료품 값 급등이란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가난한 나라’들에서 정변이 터지고 이에 강대국들이 개입하면서 국제적인 정세 불안이 초래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가뭄으로 인해 승승장구할 집단도 있다. 유전자재조합식품(GMO) 개발에 주력해온 곡물 메이저들이다. 미국의 곡물 대기업인 몬산토의 경우 올해 3분기 이윤이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35%나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가뭄에 내성을 지니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옥수수 종자 덕분이다. 이처럼 곡물 메이저들의 시장 권력은 더욱 강해지리라 보인다.

미국의 저명한 금융시장 분석가인 제레미 그랜섬은 “식량가격 인상은 이제 시작이다”라고 주장한다. 식량가격 인상의 진정한 원인은 가뭄이 아니라 인구 증가라는 것이다. 가뭄은 식료품 값 인상이라는 장기적 추세를 일시적으로 악화시키는 촉매에 불과하다. 그랜섬에 따르면, 인구가 증가하면 자원에 대한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며 “5년 안에 엄혹한 글로벌 식량위기 국면이 도래한다”. 또한 “2050년에 예상되는 세계 인구 90억명이 어느 정도 칼로리를 섭취하고 이머징 마켓에서 급속히 증가할 중산층들에게 육류를 제공하려면, 그 시기까지 식량 생산량을 60~100% 증가시켜야 한다.” OECD 국가 중 식량자급률이 최하위(25%)임에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사실상 농업을 포기한 한국에는 위험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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