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4일 한국 시각으로 오후 4시, 스위스 제네바 외곽에 있는 유럽원자핵연구기구(CERN)는 그간의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발표는 격년마다 열리는 국제 고에너지 물리학회(ICHEP)의 개최(7월4~11일,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일정에 맞춘 것이다. 유럽원자핵연구기구에는 인류가 만든 최고 성능의 입자가속기인 대형강입자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LHC)가 가동 중이다. 7월4일 유럽원자핵연구기구가 발표한 내용은 LHC가 올해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로, 과학자들이 반세기 가까이 찾아온 ‘신의 입자’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할 것이라고 오래전부터 큰 기대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신의 입자란 무엇인가? 과학자들은 왜 50년 동안이나 그 입자를 찾아 헤맸을까?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인간이 지구라는 행성에 출현한 뒤에 가장 먼저 가졌을 법한 의문 가운데 나는 이 질문이 5위 안에는 들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곤 한다. 철학 혹은 과학의 역사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온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원전 600년쯤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고 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2600년 전의 일이다. 


대형강입자충돌기에서 입자를 충돌시킨 모습.

탈레스 후대의 철학자들도 나름대로 만물의 근원에 대한 답을 제시해왔다.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흙·물·불·공기)이나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이 대표적인 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세상이 물이나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주장이 다소 황당하고 엉성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만물의 근원을 가장 단순한 구성 물질로 이해하려는 이런 패러다임은 현대 물리학자들의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삼라만상이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원자(atom)로 이루어져 있다는 데모크리토스의 주장이 19세기의 시작과 함께 현대적으로 부활하는 데는 2000년도 넘는 세월이 걸렸다. 그러나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다던 원자는 이내 쪼개지기 시작했고 20세기를 전후해서 사람들은 원자가 음의 전기를 가진 전자와 양의 전기를 가진 원자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자핵은 다시 양의 전기를 가진 양성자와 전기가 없는 중성자로 나뉜다.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양성자와 중성자가 전자와 함께 세상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20세기 과학자가 못 밝혀낸 신의 입자

그러다가 양성자나 중성자 같은 핵자와 비슷한 입자들이 수없이 많이 발견되자 과학자들은 핵자보다 더 기본적인 단위인 쿼크(그리고 쿼크를 이어주는 접착자)를 도입하게 되었다. 쿼크와 접착자의 존재는 머지않아 실험적으로 검증되었다.

이렇게 20세기 과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는 크게 물질을 직접 구성하는 입자와 힘을 매개하는 입자로 양분할 수 있다.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는 다시 양성자나 중성자 같은 핵자를 만들 수 있는 쿼크와 그렇지 못한 경입자로 나뉜다. 경입자의 대표적인 예는 전자이다. 흔히 유령의 입자라 부르는 3종의 중성미자도 경입자에 속한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총 6개 쿼크와 총 6개 경입자를 발견했다. 


ⓒAP Photo유럽원자핵연구기구가 7월4일 ‘힉스 입자’를 찾기 위해 실시한 충돌실험 결과를 발표하자 과학자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있다.

힘을 매개하는 입자의 대표 주자는 광자(photon), 즉 빛이다. 빛은 전자기력을 매개한다. 전자기력은 중력과 함께 인류가 오래전부터 알았던 자연의 힘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알게 된 자연의 힘 중에는 원자핵과 관련된 강한 핵력과 약한 핵력이 있다. 강한 핵력은 양성자와 중성자를 원자핵으로 단단히 묶어주는 일을 한다. 앞서 말했던 쿼크를 이어주는 접착자(gluon)가 강한 핵력을 매개하는 입자이다. 한편 약한 핵력은 입자의 종류를 바꾸는 신비한 힘이다. 중성자가 전자와 중성미자를 내놓고 양성자로 붕괴하는 현상이 바로 약한 핵력 때문이다. 약한 핵력을 매개하는 데에는 W와 Z라는 입자가 관여한다.

요컨대,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가에 대한 20세기 과학자들의 답변은 이렇다. 6개의 쿼크와 6개의 경입자, 그리고 힘을 매개하는 입자 4개가 우주의 삼라만상을 설명한다는 것이다. 이들 입자처럼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최소 단위의 입자를 소립자 혹은 기본입자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빠져 있다. 하나는 중력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 설명하려고 하는, ‘신의 입자’라는 별칭을 가진 힉스 입자이다.

힉스 입자가 중요한 이유는 전자기력과 약한 핵력의 통합과 관련이 있다. 과학자들은 단순한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서 자연에 4개나 되는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특히 말년의 아인슈타인은 전자기력과 중력을 하나로 통합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아인슈타인은 실패했지만, 통합을 향한 열정은 후대의 과학자들에게 이어져 1960년대에 그 빛을 보게 되었다. 


ⓒAP Photo영국 물리학자 피터 힉스(가운데)가 CERN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뒤 동료와 함께 나서고 있다.

통합의 기본원리는 대칭관계였다. 사람의 몸이 겉보기에 좌우대칭이듯이 입자들 사이에도 추상적인 대칭관계가 존재한다. 이는 우리가 자연을 기술하는 기준을 어떻게 잡더라도 그 법칙은 변화가 없어야 한다는 사실과 관계가 있다. 이런 대칭성을 게이지 대칭성이라고 부른다. 사람 몸이 좌우대칭이면 반쪽의 정보만으로도 나머지 반쪽을 알 수 있듯이 게이지 대칭성이 있으면 소립자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좀 더 심오한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전자기력과 약력에 대해 새로이 도입된 이른바 약전기(electroweak) 대칭성은 하나의 게이지 대칭성으로 전자기력과 약력을 통합적으로 기술할 수 있게 해준다. 그 결과 광자의 사촌뻘 되는 W와 Z 입자가 약한 핵력을 설명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도입된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소립자에 대칭성을 도입한 대가는 만만치 않다. 대칭성은 한마디로 말해 구분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사람의 외모는 대략 좌우대칭이라서 거울에 비친 모습과 원래 모습을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 약전기 대칭성은 그 독특한 성질 때문에 소립자들을 구분 짓는 중요한 물리량 하나를 없애버린다. 그것이 바로 질량이다.

소립자들이 질량이 없다는 것은 실험적으로 말이 안 된다. 전자는 그 질량이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만약 W나 Z 같은 입자가 질량이 없었다면 그런 입자는 진작 발견되었을 것이다(W와 Z 입자가 발견된 것은 1983년이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게이지 대칭성이 가진 여러 장점 때문에 이 이론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 그 장점을 이용하는 한 가지 방법은 대칭성을 깨는 기제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소립자가 질량

ⓒAP Photo입자 검출기(위)를 통한 실험에는 물리학자만 3300여 명이 참여했다.
을 가지려면 약전기 대칭성이 깨져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원래 대칭성이 없는 것과 있던 대칭성이 깨진 것은 전혀 다르다. 후자의 경우 대칭성이 깨져 있더라도 원래 대칭성의 흔적이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역할, 즉 약전기 대칭성을 깨면서 소립자가 질량을 갖도록 하는 일을 하도록 도입한 입자가 바로 힉스(Higgs) 입자이다. 이 이름은 영국의 물리학자 피터 힉스(83)의 이름을 딴 것으로, 힉스의 회고에 따르면 힉스 입자라는 이름을 처음 쓴 이가 한국의 물리학자 이휘소였다고 한다. 힉스 입자가 약전기 대칭성을 깨는 과정은 힉스 메커니즘으로 알려져 있다. 힉스 메커니즘이 도입된 것은 1964년이었다. 이해 여름 피터 힉스 외에 이와 비슷한 논문이 두 편 더 나왔는데, 한 편은 벨기에 출신의 프랑수아 엥글러와 로버트 브라우트가 썼고 다른 한 편은 미국 출신의 제럴드 구랄닉, 칼 하겐, 톰 키블이 썼다. 그래서 이들 6인이 힉스 메커니즘의 발견자로 꼽힌다(로버트 브라우트는 2011년 사망했다).

미국의 스티븐 와인버그와 섈던 글래쇼, 그리고 파키스탄의 압두스 살람은 1960년대 초·중반 약전기 대칭성을 도입해 힉스 메커니즘과 결합시켜 전자와 중성미자 같은 경입자의 질량과 이들의 상호작용을 기술했고, W와 Z 입자의 존재를 예견했다. 이들의 글래쇼-살람-와인버그 모형은 현대 입자물리학에서 표준모형의 모태가 되었으며 그 중요한 근간을 이루고 있다. ‘표준모형’(Standard Model)은 강한 핵력에 대해 새로운 게이지 대칭성을 도입해 기술하는 강력이론까지 포함한다. 하지만 중력은 표준모형에 포섭되지 못한 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으로 기술된다. 이는 기본적으로 표준모형이 양자역학적 이론임에 비해 중력을 양자역학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직은 요원한 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표준모형은 말하자면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라는 오래된 질문에 대한 20세기의 모범답안이라고 할 수 있다. 탈레스의 물이나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에 비하면 표준모형이 제시하는 17개의 입자(6개의 쿼크, 6개의 경입자, 광자, 접착자, W, Z, 그리고 힉스 입자)는 무척이나 많아 보인다. 하지만 표준모형은 반세기 가까이 숱한 실험을 통해 놀라울 정도의 정확도로 검증돼왔다. 단 하나, 표준모형에서 소립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 입자만이 아직도 발견되지 않았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실험그룹

유럽원자핵연구기구의 LHC는 사상 최고 성능의 입자가속기이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LHC가 가동되자 머지않아 힉스 입자가 발견되리라 예상했다. LHC는 두 개의 양성자 빔을 27㎞에 달하는 지하 터널을 따라 반대 방향으로 가속시켜 정면충돌하게 한다. 이때의 충돌 에너지는 양성자 질량의 8000배(이것은 소립자 세계에서 인간이 만든 사상 최대의 에너지이다)에 달한다. 두 개의 빔 라인이 교차하는 지점에는 건물 10층 규모의 거대한 입자 검출기가 있어서 충돌의 결과를 기록한다. 양성자가 고에너지로 충돌하면 양성자가 부서지면서 그 속의 쿼크나 접착자가 높은 에너지로 튕겨나와 서로 상호작용을 하게 되며 그 결과 힉스 입자가 만들어진다. 일단 힉스가 만들어지면 즉시 우리가 잘 아는 다른 입자들로 붕괴하게 되는데 그 결과가 입자 검출기에 고스란히 흔적을 남긴다. LHC의 대표적인 입자 검출기로는 아틀라스(ATLAS)와 CMS 두 개가 있다. CMS에는 물리학자만 3300여 명이 참여하는 등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실험그룹을 자랑한다.

이번 발표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표준모형의 힉스 입자와 부합하는 신호를 ‘관측(observe)’했다는 것이다. 그 질량은 양성자 질량의 약 126배인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 7월4일자 유럽원자핵연구기구의 공식 언론발표문 제목은 “유럽원자핵연구기구(CERN) 실험을 통해 오매불망하던 힉스와 부합하는 입자를 관측하다(CERN experiments observe particle consistent with long-sought Higgs boson)”였다. 여기서 과학자들이 ‘관측(observation)’과 ‘발견(discovery)’을 엄밀하게 구분한다는 점을 지적해둘 필요가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동전을 100번 던지면 대략 50번은 앞면이 나온다. 이는 동전을 한 번 던졌을 때 앞면이 나올 확률이 2분의 1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자신이 초능력을 발휘해서 동전이 앞면만 나오도록 하겠다고 주장했다고 해보자. 이 경우 100번 중 앞면이 과연 몇 번이나 나와야 이 사람의 초능력을 인정해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과학자들이 정한 기준은 다음과 같다. 앞면이 나온 횟수가 평균값(50회)에 비해 표준편차의 3배 이상이면 ‘관측’, 5배 이상이면 ‘발견’이라고 부른다. 표준편차는 데이터가 평균을 중심으로 얼마나 멀리 퍼져 있는가를 나타내는 수치로서, 과학자들은 관습적으로 그리스 문자 시그마(σ)로 표기한다. 그러니까 앞면이 나온 횟수가 3σ 이상이면 과학자들은 초능력을 ‘관측’했다는 논문 제목을 뽑게 되고, 5σ 이상이면 ‘발견’했다는 논문 제목을 뽑게 된다. 통상적으로 3σ 이상일 확률은 약 700분의 1이고, 5σ 이상일 확률은 무려 350만 분의 1이다.

동전 던지기의 경우 고등학교 수준의 간단한 계산을 통해 시그마가 5회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앞면이 75회(=50+5×5회) 이상이면 초능력을 ‘발견’한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초능력이 없는데도 동전이 75회 이상 나올 확률이 무려 350만 분의 1이니까, 이런 희박한 확률의 사건이 발생하면 그냥 초능력을 ‘발견’한 것으로 인정하자는 말이다.

유럽원자핵연구기구의 이번 발표는 5σ에 가까운 관측이다. 그래서 공식 발표문의 제목이 ‘관측’임에도 사람들이 거의 ‘발견’한 것이라고 여긴다. 실제 유럽원자핵연구기구 롤프 호이어 사무총장은 이날 “우리는 발견을 했다(We have a discovery)”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2012년은 과학 역사에서 중요한 해

LHC는 현재 성공적으로 가동되고 있어서 올해 상반기에 모은 데이터 양이 작년에 모은 양보다 더 많으며 연말쯤이면 전년 대비 약 3배의 데이터를 모을 예정이다. LHC는 올 연말부터 약 20개월 동안 업그레이드를 위한 가동 중단에 들어간다. 그래서 올해 12월 유럽원자핵연구기구의 공식 발표가 다시 기다려진다. 아마도 그때쯤이면 공식적인 ‘발견’을 선언하리라 예상된다.

힉스 입자의 발견은 표준모형을 실험적으로 완성해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라는 질문에 일차적으로 큰 종지부를 찍는 의미가 있다. 아마도 2012년은 그 때문에 과학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힉스 입자는 자체로 모순적인 면이 있다. 힉스 입자는 양자역학적인 과정을 통해 그 질량이 조정을 받는데 그 양이 무한대로 커지는 경향이 있다. 이 문제는 표준모형 안에서는 전혀 해결할 수가 없다. 그래서 힉스 입자의 존재 자체는 표준모형을 완성함과 동시에 표준모형을 넘어서는 새로운 물리학이 존재함을 강력히 시사한다. 과학자들은 이미 1970년대부터 갖가지 대안들을 연구해왔는데 초대칭성이 유력한 대안 중 하나이다.

또한 표준모형이 20세기의 모범답안임에는 분명하지만, 최근의 우주 관측 결과에 따르면 우주에는 그 정체를 알지 못하는 (표준모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암흑물질이 약 23%나 존재한다. 암흑물질의 존재는 새로운 물리학이 필요한 또 다른 중요한 이유이다. 과학자들이 LHC에 기대를 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LHC에서 새로운 물리학의 신호도 포착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래저래 연말 유럽원자핵연구기구의 후속 발표가 더욱 더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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