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30일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가 〈시사IN〉 기자 3명을 고발한 사건과 관련해 사실상 ‘최종 수사 발표 성격’의 언론 설명회를 가졌다.

나 후보는 자신이 강남 호화 피부클리닉을 출입했다는 기사가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한다며 〈시사IN〉을 경찰에 고발한 바 있다. 이날 경찰은 “나경원 전 의원이 출입한 ㄷ클리닉을 이용한 사람 중 가장 많은 돈을 낸 경우는 3000만원 선이었고, 나경원 전 의원은 지난해 10여 차례 이곳에 출입하며 딸과 자신의 피부관리 비용으로 550만원을 쓴 것으로 확인됐다”라고 밝혔다. 또 경찰은 “ㄷ클리닉은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으로 피부관리 비용은 한 차례에 25만원에서 30만원 선이었으며 연간 회원은 받지 않는 곳”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이튿날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일간지와 MBC 등은 ‘나경원 1억 피부숍 보도는 허위’라고 크게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시사IN〉이 취재한 사실과 전혀 다르다. 

〈시사IN〉은 지난해 10월 중순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가 강남구 청담동에 자리한 연회비 1억원대 호화 피부클리닉에 단골로 출입하고 있다는 내용을 제보받고 사실 확인 취재에 들어갔다. ㄷ클리닉에 다닌다는 회원 ㄱ씨는 이곳이 철저히 회원제로 운영되며, 연회비가 1억원에 이른다고 했다. 나경원 후보뿐만 아니라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도 이 클리닉 원장이 ‘피부(건강) 관리’를 해주는 관계라는 증언도 있었다.  


ⓒ시사IN 조우혜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ㄷ 피부클리닉. 나경원 전 의원이 관리를 받았던 곳이다.

사실 확인을 위해 〈시사IN〉은 먼저 10월18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ㄷ클리닉’을 방문해 김 아무개 원장과 총 1시간30분간 면담했다. 면담 전 과정은 녹음 파일과 동영상으로 담았다.  면담 과정에서 이곳에 나경원 후보가 출입하며 정기적으로 피부관리를 받는다는 사실, 클리닉이 ‘연회원제’로 운영되며 ‘항노화 피부 관리’ 등을 받을 경우 연회비가 1억원대에 이른다는 사실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김 원장과의 면담 동영상에는 나 후보 외에 10여 명에 이르는 국내 정상급 연예인의 신상과 성격, 피부 상태 등 ‘고객 프라이버시’에 해당하는 내용도 자세히 담겨 있다.  

딸 치료 이야기 일절 없다가…

취재진은 이튿날인 10월19일 나경원 후보에 대한 확인 취재에 나섰다. 이 과정은 나 후보 선거 캠프에서 언론을 담당하던 이종현 공보특보(현 청와대 춘추관장)에게 기자가 취재 질의서를 이메일로 보낸 다음, 이날 저녁 나 후보에게 직접 답변을 받은 이 특보가 기자에게 전달해주는 형식을 거쳤다. 당시 나경원 후보 캠프에서는 ‘제가~’로 시작되는 나 후보 직접 어법으로 기사에 반영해도 무방하다면서 전화로 나 후보의 답변을 또박또박 불러줬다.

“김 원장과는 오랜 지인으로서 제가 정치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피부가 상하는 경우가 많아 ㄷ클리닉에 자주 들러 관리를 받는 관계입니다. 내가 낸 돈은 1억원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데 프라이버시 때문에 액수는 밝히지 못하겠습니다.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피부클리닉을 이용하는 대신 개인적으로 관리할 생각입니다.” 〈시사IN〉의 첫 취재 당시 ㄷ클리닉 김 원장은 물론 나 후보 본인도 ‘장애인 딸을 치료하기 위해 다녔다’는 주장은 일절 하지 않았다.

이 내용을 “나경원, 억대 피부클리닉 출입 논란”이라는 제목으로 〈시사IN〉 온라인판에 기사화한 다음 날인 10월21일, 기자는 김 원장과 다시 통화했다. 김 원장은 “기사 때문에 난리가 났다. 나 후보 지지 측과 반대 측 양쪽에서 비난과 협박전화가 끊이지 않는다. 1억원 연회비는 실제로는 아니다”라고 하소연했다.
통화 이후 기자는 다시 ㄷ클리닉에 가서 김 원장을 만났다. 그는 첫 면담 때와 달리 ‘연회비 1억원’에 대해 거듭 말을 바꾸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 자리에서 김 원장은 처음으로 “나 후보를 딸과 함께 치료했다”라는 말을 꺼냈다. 10월20일 나경원 후보 캠프가 ‘장애인 딸을 둔 엄마로서 딸의 노화 치료를 위해 ㄷ클리닉에 출입했다’는 취지로 추가 해명을 내놓았는데, 바로 그다음 날 김 원장 또한 나 후보 딸을 언급한 것이다. 

〈시사IN〉 기사가 나간 뒤 혹시 나경원 후보로부터 직접 전화가 왔냐고 묻자 김 원장은 “전화가 왔다. ‘ㄷ클리닉 때문에 난리가 났다. 기사 나오기 전에 누가 다녀갔느냐’고 묻더라. 그러면서 직접 오시겠다고 전화를 해서 직원들 다 퇴근시키고 나 혼자 기다렸는데 끝내 못 만났다”라고 말했다.    


ⓒ뉴시스나경원 전 의원은 4월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이날 면담에서 김 원장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재임 시절 “매주 토요일 오전 테니스를 친 뒤 ㄷ클리닉에 찾아와 지속적으로 관리받았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김윤옥 여사가 예전에 찾아오셔 관리해드린 적이 있다”라고도 했다(〈시사IN〉 제215호 참조).

〈시사IN〉 보도가 나간 뒤 큰 반향이 일었다. 그중 일부 언론은 강남 호화 피부클리닉 세계를 독자적으로 취재 보도하기도 했다. 10월22일자 〈한겨레〉는 나 후보가 출입하는 ㄷ클리닉 회원이 ‘연회비 1억원’ ‘가족회원은 3억~5억원’ 등이라고 증언하는 내용을 담은 동영상을 단독 입수했다며 이를 상세히 보도했다. 또 11월1일, MBC 〈생방송 오늘아침〉은 강남의 고급 피부클리닉 업계 실태를 취재한 뒤 한 클리닉 원장이 “우리도 연간 1억원짜리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다”라고 말하는 인터뷰 내용을 방영하기도 했다.

이처럼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당초 〈시사IN〉 확인 취재에 적극 협력했던 나 후보 측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시사IN〉을 포함해 〈경향신문〉 〈뷰스앤뉴스〉 등 3사 기자들과 의혹 보도 내용을 공개 브리핑한 야당 대변인 등 7명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10월24일 형사 고발했다.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가 맡은 이 고발 사건은 10·26 재·보선에서 나 후보가 낙선한 뒤 한 달 동안 고발인 측이 경찰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서 유야무야 묻히는 듯했다. 하지만 잠잠하던 나 후보 측이 11월 하순 경찰 조사에 응하면서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이에 기자는 12월20일 서울경찰청 수사과에 출석해 6시간에 걸쳐 취재 보도 전 과정을 자세하게 진술한 바 있다. 아울러 ㄷ클리닉 김 원장과의 상담 녹취록, 나경원 후보 측과 주고받은 취재 협조요청 메일 및 답변 내용 등 일체의 증거 서류도 제출했다.

〈시사IN〉이 경찰에 제출한 녹취록은 총 4장 분량으로 구성돼 있다. 그 핵심은 나경원 전 의원 측이 고발장에 허위 보도라고 기재한 ‘연회원제 1억원대 피부클리닉’이라는 표현에 대한 것이다. 이 4장짜리 녹취록에는 △“나는 1년씩 관리한다. 오든 안 오든 100번을 오든 2번을 오든 똑같다”라면서 ㄷ클리닉이 연간 회원제로 관리됨을 확인해준 부분 △항노화 치료가 필요한 나이 든 고객의 경우 연회비가 한 장(1억원)이고, 상담하러 간 20대 여기자의 경우는 치료비가 반(5000만원)이라고 말한 부분 등이 포함돼 있다.


〈시사IN〉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취재 동영상. 경찰 발표와는 전혀 다른 사실이 담겨 있다.

하지만 1월30일 경찰은 〈시사IN〉이 제공한 모든 증거를 뒷전으로 한 채 나경원 전 의원의 호화 피부과 출입 의혹을 최초 보도한 〈시사IN〉 기사가 허위로 판명난 것처럼 수사 내용을 출입기자단에 설명했다. 나 전 의원이 오는 4월 총선에서 서울 중구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이틀 뒤였다. 대부분의 언론은 경찰 브리핑을 그대로 받아 이 사건 최종 수사 결과가 나온 양 단정적으로 보도했다. 경찰이 몇몇 보수 언론을 등에 업고 전형적인 편파 수사에 언론 플레이를 했다는 비난을 자초한 셈이다. 


40여 일 지나서야 장부 압수한 경찰

경찰 조사 결론은 ‘1억원 피부클리닉’이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자 당황한 김 원장이 경찰 조사에서 번복한 진술을 토대로 한 것이다. 경찰이 김 원장의 피부클리닉을 압수수색한 시점도 조사 결과의 신뢰성에 의문을 던진다.

경찰은 이 사건이 보도된 지 무려 40여 일이 흐른 지난해 11월30일에야 ㄷ클리닉을 찾아가 장부를 압수했다. 압수한 장부에는 연간 3000만원이 가장 비싼 금액으로 기재돼 있고, 나경원 후보는 550만원을 낸 것으로 적혀 있다는 것이 경찰 발표다. 김 원장이 보도 후폭풍에 크게 시달리고 있었고, 나 후보 측이 이 사건을 고소한 시점이 10월24일이었다는 점에서 병원으로서는 충분히 경찰 조사를 예견하고 대비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경찰 조사 발표 내용의 신뢰성과 공정성에 의심이 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시사IN〉은 1월30일 ‘경찰은 나경원 선거운동원인가’라는 제목으로 편파 수사를 비판하는 온라인 기사를 내고, 2월1일에는 ‘연회원제 관리’ ‘얘는 젊으니까 5000이면 돼’ 등 김 원장의 육성 발언이 담긴 동영상 일부를 공개했다. 이 동영상을 접한 여론은 경찰의 부실·편파 수사를 질타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자 이날 오후 서울지방경찰청 수사팀은 〈시사IN〉의 반박 기사와 동영상 공개에 대한 공식 ‘해명 자료’를 냈다. 경찰은 먼저 “〈동아일보〉 1월30일자에 ‘나경원 후보 1억 피부숍, 사실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단독 보도된 이후 서울청 출입기자단에서 이 내용에 대한 설명을 요청해 수사팀 관계자가 기자실에서 수사 내용을 질의 답변해준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경찰이 수사 내용을 고의적으로 언론에 흘린 것이 아니라고 변명한 셈이다. 그렇다면 〈동아일보〉에 최초로 이 내용을 알린 경찰이 누구냐는 질문에 대해 이 사건 수사팀 관계자는 “수사팀은 전혀 모르는 일이 발생했다”라며 곤혹스러워했다. 〈동아일보〉 보도를 빌미로 이튿날 실시한 서울청 출입기자단 브리핑은 수사팀 책임자가 했다.

경찰은 또 해명 자료에서 “피고발인들(〈시사IN〉 기자 2명)이 출석해 관련 자료를 제출하고 조사를 받아야만 (나경원 후보 1억원대 피부과 출입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라고 밝혔다. 출입기자단 질의응답 형식을 빌려 ‘나경원 1억 피부과 보도는 허위’라고 사실상 수사 결론을 흘려놓고 뒤늦게 “피고발인들이 다 출석하지 않아 아직 사실관계 확인이 끝나지 않았다”라고 앞뒤가 안 맞는 해명을 한 것이다. 


경찰의 치졸한 여론 조작

취재에 참여한 기자들이 다 출석하지 않아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경찰의 주장은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취재 보도 전 과정을 책임졌던 기자가 이미 경찰 조사에 응해 모든 취재 경위와 내용을 소상히 진술하고, 관련 증빙 자료를 제출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수사팀은 보조 취재기자가 마치 이 사건 진실 규명의 열쇠를 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심지어 경찰은 지난달 〈시사IN〉 기자가 소환에 불응한다는 이유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기각당하기도 했다.

설상가상 2월1일 서울경찰청 홍보담당관실이 산하 57개 경찰관서 트위터와 페이스북 홍보 담당자들 휴대전화에 “서울청 트위터에 〈시사IN〉 나경원 피부클리닉에 대한 입장 리트위트(RT)를 부탁드립니다” “나경원 피부클리닉 관련 경찰 수사 진행 상황을 지켜본 후 ‘비난하자’는 논조로 댓글도 부탁해요”라는 문자 메시지를 일제히 전송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에서는 수사는 끝나지 않았다고 해명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공정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여론이 나빠지고 있으니 〈시사IN〉을 비난하는 댓글을 달아라’ 하고 독려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첫 마음 첫 다짐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