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이 가장 즐기는 스포츠를 꼽으라면 단연 풋볼, 즉 미식축구다. 고등학교든 대학이든 프로 세계든 미식축구는 어디서나 각광받는 ‘국민 스포츠’다.

최고 인기 스포츠이니만큼 명문 미식축구팀의 코치는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미식축구의 명문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의 축구팀을 46년간 이끌며 무려 409승을 거둔 ‘살아 있는 전설’ 조 파테노 감독(84)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이 대학의 우상이자 얼굴이었다. 하지만 파테노 휘하에 있던 전직 코치가 15년에 걸쳐 최소 8명의 소년을 성추행했고, 이런 사실을 알고도 파테노와 학교 책임자들이 쉬쉬하거나 은폐해온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미국 사회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이른바 전대미문의 ‘미국판 도가니’ 사건이 터진 것이다.

파테노의 명성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린 것은 물론이고 풋볼의 명문이자 연구 중심 대학으로도 이름이 높은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의 평판을 추락시킨 장본인은 제리 샌더스키 전 수비 코치(67)다. 수사 당국은 2008년부터 그의 성추행 사건을 수사해오다 결국 11월5일 아동 성추행을 포함한 40가지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대학 이사회는 파테노 감독과 그레이엄 스패니어 총장에게도 도의적 책임을 물어 이들을 전격 해임했다. 또 샌더스키의 성추행 사실을 알고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팀 컬리 펜실베이니아 대학 체육국장과 게리 슐츠 재무담당 부총장은 위증 혐의로 기소돼 물러났다.


ⓒAP Photo성추행 사건으로 구속된 제리 샌더스키 코치.

1994년부터 성추행 저질러

이런 가운데 정작 샌더스키 자신은 성추행 혐의와 관련해 한사코 ‘결백’을 주장해 현재 새로운 양상으로 접어들고 있다. 그는 NBC 방송 인터뷰에서 “아이들과 운동 후 샤워하며 껴안기도 하고 다리를 만진 것은 사실이지만, 성적 의도로 그런 것은 아니다”라면서 성추행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하지만 대부분 법률 전문가들은 그의 유죄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CNN의 법률분석가인 서니 호스틴 씨는 “그가 아이들과 샤워를 함께하고 은밀한 신체 부위를 만졌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이미 아동 성학대에 해당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샌더스키의 변호사인 조 아멘돌라 씨는 NBC 인터뷰에서 “아이들과 샤워를 같이한다고 해서 성폭행과 동일시되진 않는다”라고 반박했다.

대다수 미국인의 시각은 한마디로 ‘분노’ 그 자체다. 특히 샌더스키의 비행을 알고도 초동 단계부터 단호한 조처를 하지 못한 파테노 감독과 학교 당국자들에게 쏟아지는 분노와 비난의 눈총은 더욱 따갑다. 사실 샌더스키가 1994년 불미스러운 행동을 하다가 발각된 직후 확실한 제재 조처를 받았더라면 추가 ‘범행’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사태가 지금처럼 확대되지도 않았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AP Photo조 파테노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미식축구팀 감독.

기소장에 따르면 샌더스키는 1994년 10월 당시 10세 소년에게 성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을 처음 한 것으로 돼 있다. 그는 불우 아동을 돕기 위해 자신이 설립한 자선재단인 ‘더 세컨드 마일(The Second Mile)’을 통해 알게 된 이 소년을 축구 경기에 데려가고 자기 집으로 불러 식사도 함께하며 자연스레 친해졌다. 차 안에서 그의 허벅지나 허리를 만졌는가 하면 운동 뒤 알몸으로 함께 샤워할 때는 그를 껴안기도 했다. 샌더스키는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이 소년을 포함해 비슷한 나이 또래인 2명의 다른 소년에게도 부적절한 행위를 한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샌더스키는 결국 1998년 수사 당국에 꼬리를 잡혔다. 샌더스키가 자신의 아들에게 성적으로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고 의심한 한 여성이 그를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하지만 경찰 조사에서 샌더스키는 관련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다짐했다. 사건을 맡은 검사도 대학 당국에 형사소추를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통보하면서 사건은 조용히 종결됐다.

이듬해인 1999년 12월 샌더스키는 32년이나 몸담아온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축구팀 코치 생활을 접고 은퇴한다고 전격 발표해 충격을 던졌다. 당시 55세였던 그는 누가 봐도 파테노 감독의 후임으로 간주돼왔기 때문이다. 그의 은퇴를 놓고 언론에선 파테노 감독과의 불화설이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은퇴는 1998년 성추행 수사와 무관치 않았다. 왜냐하면 수사 사실을 알게 된 파테노 감독이 1999년 5월 그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차기 감독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최후통첩을 했기 때문이다.

ⓒAP Photo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학생 1만여 명이 11월11일 성추행 피해자를 기리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샌더스키에게는 불명예스러운 은퇴였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명예코치로 임명되면서 사무실까지 얻어 마음대로 축구 시설을 사용할 수 있었다. 바로 이런 특전 덕분에 그가 소년들에 대한 성추행 행각을 계속할 수 있었다는 게 수사 당국의 판단이다. 실제로 이번 기소장에는 2002년 3월1일 벌어진 샌더스키의 충격적인 성추행 사건이 기록돼 있다. 당시 축구팀의 대학원생 조수였던 마이크 매퀴어리가 밤 9시30분께 축구팀 샤워실에 갔다가 샌더스키가 열 살쯤 돼 보이는 소년과 성행위하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문제는 보고를 받은 파테노 감독의 어정쩡한 태도다. 그는 팀 컬리 당시 체육국장에게 “샌더스키가 어린 소년에게 성적인 행동을 하는 걸 매퀴어리가 봤다”라는 식으로 막연하게 보고했다. 팀  컬리는 총장에게 보고하면서도 구체적인 사실은 피했고, 대학 경찰에 신고하지도 않았다. 관련 사실을 보고받은 부총장 또한 피해 아동의 신원을 알아보려 하지 않은 것은 물론 경찰에 신고도 안 했다. 최초 관련 사실을 파악한 파테노 감독이나 그런 사실을 알고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학교 책임자들의 직무유기 탓에 샌더스키는 그 뒤에도 마음대로 아이들을 농락할 수 있었다.


지난해 미국 대학 스포츠 수입 8536억원

이와 관련해 미국 사회 일각에서는 대학 스포츠의 상업화를 그 배경으로 지목한다. 실제로 미식축구나 농구 등을 포함해 대학 스포츠를 총괄하는 대학체육위원회가 지난해 벌어들인 수입은 약 7억5000만 달러(약 8536억원). 하지만 각종 중계료를 합치면 수입은 천문학적으로 불어난다. 이 수입은 해당 대학과 분배하도록 돼 있다. 그러다 보니 대학마다 해당 스포츠와 우수 선수·코치를 유치하느라 경쟁이 치열한 만큼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보호하기 위해 웬만한 비리가 생겨도 감추기에 급급하다는 지적이다. 이번에 기소된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관계자들이 샌더스키의 성추행 건을 은폐하려 했던 데는 미식축구팀이 벌어들이는 막대한 수입을 고려한 측면도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은 미식축구팀을 통해 지난해 5000만 달러(약 570억원)에 달하는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 타임스〉는 사설에서 “이번 사건을 몇 사람의 불법 행위로 본다면 실수다. 이런 추문은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축구를 보호하려는 문화에서 발생하는 것이다”이라고 지적했다. 저명한 스포츠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이스라엘 씨도 “승리와 그에 따른 현금이 풍족하게 굴러드는 한 스포츠는 사회규범 바깥에서 작동하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편협한 세계다”라고 말했다. 미식축구와 같은 스포츠를 지나치게 상업화하다 보니 거기서 생기는 비리를 은폐하려는 잘못된 관행과 문화가 결국은 이번 사태를 부르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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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마음 첫 다짐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