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찬반론이 단일 전선으로 재편됐다. 민주당 등 야권이 한·미 FTA 중에서도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ISD)’ 반대를 핵심으로 내걸면서, FTA 찬반론은 사실상 ISD 찬반론으로 좁혀졌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6~2007년에 FTA 찬반론이 달아올랐을 때에도, 반대론자들이 독소 조항 중에서도 핵심으로 꼽았던 것이 바로 이 ISD였다.

볼리비아의 사례를 보자. 1999년 볼리비아 정부는 코차밤바 지역 상하수도 사업을 미국 건설기업 벡텔에 매각했는데, 벡텔은 물값을 서민층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인상한다. 코차밤바 주민 6명이 죽고 175명이 다치는 대규모 저항 끝에 볼리비아 정부는 벡텔의 상하수도 운영권을 박탈한다. 이에 벡텔은 볼리비아 정부가 자신들의 ‘미래 기대이익’을 침해했다며 볼리비아·네덜란드 사이에 맺어진 ISD를 이용해(벡텔은 네덜란드에 일종의 ‘페이퍼 컴퍼니’를 만드는 방법으로 우회했다) 볼리비아 정부를 직접 제소한다. 다국적 투자자본이 물과 같은 기본권까지도 돈벌이 대상으로 만들고, 그 시도가 좌절됐을 때 ISD를 동원한 선례는 세계의 ISD 반대론자들에게 대표적 부작용으로 기억된다.

 

ⓒReuter=Newsis2000년 4월 볼리비아 코차밤바 시에서 수돗물값 인상에 항의하던 시위자들이 경찰이 쏜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ISD란 해외 투자자와 투자 유치 국가 사이에 분쟁이 생겼을 때, 이를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등 국제 중재기구에서 해결하는 제도를 말한다. 쉽게 말해, 미국 투자자가 한국 정부의 정책 때문에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할 경우, 실제 손해 여부와 배상 규모를 한국 법정이 아닌 국제 중재기구에서 결정하는 제도다.

ISD는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제3세계 국가에 투자했다가 정부가 뒤집히며 강탈이나 몰수(이것이 ‘수용’이다)를 당하는 경우를 방지하려는 목적으로 출발했다. 여기까지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간접 수용’이다. 즉, 정부의 몰수나 사업권 회수와 같은 ‘직접 수용’이 아니라, 투자자의 사업과 직접적으로는 무관한 정부 정책 때문에 투자자가 ‘간접적인 손실’을 입었을 경우, 이런 간접적 손해도 정부의 ‘수용’으로 보아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 ISD의 원리다. 우리 헌법에는 간접 수용 개념이 없지만(헌법재판소 판례에도 사실상 직접 수용에 가까운 지속적·누적적 간접 손해에 대한 배상 판례 한 건만이 예외다), 한·미 FTA에는 있다.


미국 보험사가 건강보험 정책 딴죽 걸면?

반대론자의 주장을 따라 가상 시나리오를 하나 들어보자. 한·미 FTA가 체결되고 난 후, 미국의 민간보험 회사가 한국 보험시장에 진출을 해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한국 정부는 사보험 의존율을 낮추고 공보험을 강화하는 정책을 내놓는다. 현재 60% 수준인 건강보험 보장률을 90%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현재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학계와 시민사회 등에서 실제로 거론되는 정책이기도 하다). 이는 전형적인 국가의 공공정책이다.

하지만 미국의 보험사는 생각이 다르다. 한국 정부의 ‘부당한 조처’로 미국 보험사는 시장의 큰 부분이 돌연 사라지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한국 정부가 이 보험사의 재산을 직접 수용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수용이나 다름없는 조처(간접 수용)를 취했다는 것이다. 이제 미국의 보험사는 한국 정부의 건강보험 강화 정책에 따른 손실을 보상하라고 요구한다. 이 분쟁의 결론을 누가 내리나? ISD 원리대로라면, 한국 법원이 아니라 국제 중재기구가 결론을 내린다. 한국 정부의 공공정책은 국제 중재기구의 판단에 따라 무력화될 수 있다. 이것이 ISD 반대론 중에서도 핵심인 ‘공공정책 무력화론’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찬성론자는 “협정문부터 읽고 와라” 하고 되받아친다. ‘협정문 부속서 11-나’의 3-나 항을 보면, “드문 상황을 제외하고는, 공중보건, 안전, 환경 및 부동산 가격안정화와 같은 정당한 공공복지 목적을 보호하기 위하여 고안되고 적용되는 당사국의 비차별적 규제 행위는 간접 수용이 아니다”라고 못 박고 있다. ‘협정문 13.1조’에서도 법정 사회보장제도 등 간접 수용에 해당하지 않는 예외를 나열한다. 외통부는 “협정문에서 공공정책의 자율성을 충분히 확보해두었으므로 ISD 피소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라고 반박했다. 보수 언론도 일제히 “공공정책은 ISD 대상이 아니다”라며 반대론에 ‘괴담’ 딱지를 붙였다.

 

 

 

 

 

 

ⓒ사진공동취재단남경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가운데)이 11월2일 한·미 FTA 비준동의안 상정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ISD 피소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와 ‘ISD 대상이 아니다’는 전혀 다른 말이다. 잘라 말하면, 보수 언론의 보도는 오보다. 분쟁이 ISD 대상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권한이 우리 정부에 없기 때문이다. 즉, 우리 정부가 보기에 협정문에 예외로 못 박힌 공공정책이라고 해도, 해외 투자자가 “이것은 공공정책의 정당한 범위를 넘어서는 간접 수용이다”라고 주장하면 어떻게 될까? 앞서의 시나리오에서 보듯 이것이 예외 대상인 공공정책인지 보상 책임이 있는 간접 수용인지, 결정은 국제 중재기구가 내린다. 우리 정부는 주권국가의 최종 권위를 행사할 수 없는 분쟁 당사자 위치로 끌어내려진다.

여당에서도 제소 가능성 자체가 없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외통위 소속 한나라당 홍정욱 의원은 “물론 소송을 걸 권리야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에, ‘ISD 대상이 아니다’라고 원천봉쇄하는 표현은 맞지 않다. 하지만 협정문에 명백히 명시된 유보 조항이 있으므로, 비용을 들여가며 질 것이 뻔한 제소를 할 투자자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여당 시절부터 FTA에 반대해온 최재천 민주당 전 의원은 “애플과 삼성이 특허소송을 벌이기 전까지 ‘트레이드 드레스’ 소송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나 있었나. 법이라는 건 늘 해석이 갈릴 수밖에 없고, 어떤 상황이 새로 등장할지 모르니 소송의 위험은 일상적인 것인데, 왜 스스로 그런 여지를 열어두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반대론 일각에서 ISD를 받아들이는 즉시 한국 정부의 공공정책이 완전히 마비될 것처럼 주장하는 것 역시 과장이라는 지적도 많다. 국제 중재기구로 간다 해도, 한·미 FTA에서 규정된 예외 범위 내에서는 한국 정부의 정책적 자율권이 보다 폭넓게 인정되므로 유리하게 다퉈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에 투자한 미국 자본이 중재재판에서의 승률을 낮게 평가할 근거가 된다. 즉, 웬만큼 큰 ‘판돈’이 걸리지 않는 한, 공공정책에 대해서까지 미국 투자자가 ‘가벼운 마음으로’ ISD 제소를 남발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ISD 제소는 소송비용은 물론 한국 정부와의 마찰과 한국 소비자의 반감 등 기업으로서도 직간접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찬성론자 “ISD 제소 가능성 거의 없다”

다만 건강보험제도와 같은 ‘큰 판돈’이 걸리게 된다면, 그때는 ISD가 어떤 방향으로 작용하게 될지 현재로서 예측 불허다. 반대론자들은 ‘예측할 수 없는 위험성’을 정부가 덜컥 지려 한다는 데 기겁을 한다. 찬성론자들은 반대파가 ‘구체화하지 않은 위험’을 근거로 한·미 FTA를 좌초시키려 한다고 의심한다.

한국 정부의 공공정책이 매번 국제 중재를 받아야 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ISD는 실제로 작동하지 않더라도 공공정책의 폭을 제약하는 기능을 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ISD를 의식해 공공정책에서 위축되는 효과 때문이다. 이른바 ‘찬서리 효과’다.

캐나다 정부는 2001년 담뱃갑에 ‘순한 맛(mild)’이라고 표기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제 도입을 검토했다. 이를 안 미국 담배회사 필립모리스는 이것이 자사의 수익을 떨어뜨릴 수 있는 간접 수용에 해당한다는 항의서를 보냈다. 캐나다 정부는 ISD 소송을 우려해 답뱃갑 규제안을 철회했다. 이런 ‘찬서리 효과’는 국제 중재 건수나 승소율 따위 통계에 포함되지 않아 잘 드러나지 않지만, 국가의 공공정책 역량을 전방위로 제약하는 효과를 낸다.

따라서 한·미 FTA가 비준되면 거꾸로 보수 진영이 ISD를 입에 올릴 가능성이 커진다. 즉, 정부가 복지 확충 등 과감한 공공사업을 계획한다면, 보수 언론 등에서 국내에 투자한 미국 자본의 간접 수용에 해당한다며 공세를 펼칠 가능성이 크다. ISD가 복지 확충에 반대하는 보수의 무기가 되는 것이다.

 

 

 

 

 

 

 

ⓒ뉴시스한·미 FTA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11월3일 서울 여의도 둔치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있다.

 

 

유사한 실례도 있다. 지난해 11월 영세 골목 상권을 기업형 슈퍼마켓으로부터 보호하자는 유통법·상생법이 국회를 통과할 당시, 보수 진영은 반대 논거로 비준도 되지 않은 ‘한·미 FTA 위반’을 외쳤다. 한·미 FTA가 비준되고 특히 ISD가 도입이 된다면, 정부 공공정책에 대기업과 보수 언론이 어떤 논리로 맞설 것인지 ‘예고편’을 본 셈이다. ISD 문제는 앞으로 한국 사회 내에서 복지를 둘러싼 진보·보수 논쟁과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이슈다. 반대론 진영에서 ‘공공정책 마비론’을 주장할 때, 그 ‘마비’는 해외 투자자가 아니라 국내 대기업과 보수 언론이 일으킬 수도 있다는 얘기다.


오스트레일리아 사례가 뜻하는 것

“ISD가 위험하지 않다”라는 방어적 주장 외에, 찬성론자들이 내세우는 ‘적극적 근거’는 “ISD는 세계 표준 제도이며, 특히 해외에 투자하는 우리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라는 것이다. 투자협정의 세계 표준을 지켜야 우리 기업 역시 제3세계 국가에 투자할 때 ISD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ISD가 세계 표준이다’라는 주장은 오스트레일리아(호주)가 미국과의 FTA에서 극렬한 반대 끝에 ISD를 제외하고, 올해 들어 모든 해외 투자협정과 FTA에서 ISD를 배제하겠다는 결론을 내림에 따라 다소 머쓱해졌다. 외통부도 11월3일 배포한 자료에서 오스트레일리아·미국 FTA 사례에 한 장을 할애했다.

자료에서 외통부는 “미국의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한 투자가 오스트레일리아의 대미 투자를 상회하고 있어 오스트레일리아는 ISD 도입 유인이 크지 않았다”라고 설명한다. 즉, 오스트레일리아는 내보낸 투자보다 받아들인 투자가 더 크니 ISD를 안 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ISD가 투자 자본에는 이익이 되지만 투자를 받는 국가에는 부담이 되는 제도라는 사실을 얼떨결에 드러낸 꼴이다. 해외 투자보다 투자 유치가 많은 국가는 ISD를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는 ISD의 본질적인 속성을 건드린다. ISD 찬성론자들이 “미국 정부에서도 반대론이 나오는 만큼,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나쁜 제도가 아니다”라고 주장하지만, ISD를 둘러싼 전선은 본질상 ‘국가 대 국가’가 아니다.

한신대 이해영 교수는 “ISD는 한국의 국익 대 미국의 국익이 아니라, 한국·미국 자본 대 한국·미국 ‘피플’이 대립하는 주제다”라고 정리했다. 즉, 공공정책을 요구할 권리를 가진 다수 대중과, 공공정책이 자리를 비켜준 시장에서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대자본 사이의 이해가 충돌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ISD가 국가의 공공정책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는 한, 한국 대자본의 이익과 한국 다수 대중의 이익은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2004년 존 케리 민주당 대통령 후보 등 미국의 몇몇 정치 지도자가 ISD 반대 의견을 낸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한국에 좋고 미국에 나쁜’ 제도여서가 아니라, ‘대자본에 좋고 대중에 나쁜’ 제도여서 반대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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